세아상역 CSR

“빈국 아이티 혁신의 방아쇠 당겨” CSR의 교과서를 쓰는 세아상역

215호 (2016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매출 1조 원대의 국내 중견기업이 중남미에 위치한 최빈국 아이티의 교육과 의료를 바꾸고 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미국 정부의 아이티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아상역은 아이티 북부 카라콜 공단에 봉제공장을 짓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공단 내에 세아학교를 짓고 지역 교육에 힘쓰고 있다. 또 매년 양산부산대 의과대학과 함께 아이티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아의 CSR 활동이 아이티 전체의 변화를 이끌 방아쇠(trigger)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우종현(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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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12일. 아이티에 규모 7.0의 강진이 몰아친다. 50만 명의 사상자와 18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인구 1000만 명의 나라에서 이 정도의 숫자라면 재앙도 보통 재앙이 아니다. 30만여 채의 가옥이 파손됐고 대부분의 정부기관 기능이 마비됐으며 1300여 개의 교육시설 및 50개의 의료시설이 붕괴됐다.

아메리카 대륙의 최빈국인 아이티. 가뜩이나 가난한 이 나라에 지진이 몰아쳤으니 망연자실(茫然自失)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도움이 절실하다. 실제 아이티를 돕기 위해 많은 원조국과 NGO가 모여 아이티 재건을 위해 땀을 흘렸다. 그러나 워낙 피해가 컸던 탓에 회복세는 생각보다 더뎠다.

1990년대 말부터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진출해 있었던 세아상역도 ‘가까운 이웃을 돕는다’는 심정으로 아이티 돕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대규모 자연재해 직후에는 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하기 마련이다. 세아상역은 위생키트 지원 활동을 시작으로, 아이티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단순한 물품 지원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방법을 고민했다.

마침 미국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중남미는 지리적으로 멀지 않다. 불의의 대형 재해를 맞은 아이티에 미국 국민들은 기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집도 필요하고, 빵도 필요하며, 쌀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것에 모든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 사회공헌의 기본 원칙 중의 하나는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든가. 급하니까 먹을 음식, 마실 물도 필요하지만 일정 부분은 중장기적인 계획하에서 아이티라는 나라 자체를 재건시키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내부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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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재건 위해 봉제 공장 지어

아이티는 크기가 2만8000㎢ 정도다. 한반도의 8분의 1 크기이며 경상도보다 작다. 지진 근원지는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로부터 25㎞ 떨어진 곳이다. 남부지역에 위치한 수도가 큰 타격을 입었다. 상대적으로 아이티 북부지역은 건재했다. 지진 피해를 입지 않은 곳에 산업단지를 건설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대상 지역은 카라콜(caracol). 아이티의 북단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에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 맞는 산업은 무엇일까. 아마 우리나라의 1950∼1960년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봉제업처럼 고용창출 효과가 크면서 참여하는 기업에게는 저임금이라는 메리트를 줄 수 있는 산업이 우선순위로 떠오른다. 미국 상무부는 데이터 리서치를 했다. 과연 어느 나라가 미국에 봉제수출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가. 한국, 홍콩,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서 후보 기업들의 리스트가 작성됐다. 미국 정부가 기본 골격을 짜고 아이티 정부가 땅을 제공했다.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아이티에 돌려준다). IDB(미주개발은행)는 아이티 정부가 준 땅에 공장을 짓는다. 미국 정부는 발전소, 도로, 항만 등 인프라를 건설한다. 근로자들이 들어와서 생활할 주택을 건설하는 것도 미국 정부의 몫이다. 관건은 공장이었다. 이 신도시에 섬유봉제 노하우를 지닌 업체가 기계를 갖고 들어와 고용을 창출하고 운용한다면 아이티 국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결론이었다.

그림은 그려졌다. 이제 업체를 선정해야 했다. 미국 정부는 공정성을 중시했다. 후보 리스트가 있다면 모두 만나보는 것이 관례였다. 세아상역도 여러 후보 중 하나였다. 세아상역은 공장 12개를 지어서 2만 명 정도를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후보 업체 중 다른 한국의 기업(H기업)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선협상 순위자는 문자 그대로 협상에 있어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호 의견이 안 맞으면 얼마든지 결렬될 수 있다. H 기업은 고민 끝에 당초 제안을 철회했다. 어느 틈엔가 세아에까지 순서가 찾아왔다. 2010년 11월의 일이다.



프로젝트에 사인을 하고 공장 착공식을 2011년 11월에 거행했다. 그리고 불과 11개월 만인 2012년 10월에 공장 오픈 행사를 가졌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미셸 마르텔리 아이티 대통령, 루이스 알베르토 모리노 미주개발은행 총재 등 저명인사 500여 명이 참석했다. 마돈나의 전 남편 숀 펜과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그만큼 아이티 재건 행사는 전 세계의 관심거리였다.

미국은 아이티의 경제적 상황을 감안해서 무관세 혜택을 보장했다. 소위 HOPE(Haitian Hemispheric Opportunity through Partnership Encouragement Act)라는 것이다. 지진을 겪으면서 좀 더 큰 혜택을 주기로 했다. HELP(the Haiti Economic Lift Program)라 불리는 제도로 아이티에서 생산된 봉제품은 2020년까지 무관세로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경제 회복 속도가 더딤에 따라 이를 2025년까지 연장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새로 조성된 아이티 산업단지는 미국 본토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다. 게다가 무관세. 유행에 민감한 의류 바이어는 아이티의 가격 및 시간 경쟁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아상역은 미국의 앞마당에 공장을 세우고 무관세 혜택을 받음으로써 미국 시장 내 경쟁력 강화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당초 2016년까지 2만 명 고용을 목표로 제시했다. 종업원의 숙련도가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아 목표 달성 시기가 계속 늦어지는 게 고민이기는 하다. 그래도 꾸준히 공장을 증설하고 종업원을 늘릴 계획이다.

이곳의 종업원은 재봉틀은커녕 수세식 화장실조차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만 했다. 당연히 초기 몇 년간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고 나면 흑자로 돌아설 것이고, 추가로 공장이 증설되고 나면 이익 규모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세아상역 CSR의 빅 픽처(Big Picture) 세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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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도로 끝났다면 인건비가 싸고 관세가 없는 국가에 들어와 섬유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한 회사의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티를 바라보는 세아상역의 눈길은 기존의 다른 회사들과는 달랐다. 공장 오픈 행사를 하던 바로 그날, 아이티 산업단지 인근에 들어설 세아학교(S&H School) 착공식도 함께 열렸다. 카라콜 지역의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아이티 정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도 뜻을 같이했다. 세아는 2013년 가을학기 개강을 목표로 약 1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다.

세아학교가 특이한 점은 세아학교가 공장 옆에 들어선 직원 대상 교육시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아학교는 세아상역 아이티 공장 임직원이 아닌 카라콜 지역의 모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다. 왜 세아상역은 당장 교육 후 채용할 수도 없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같은 어린 학생들 교육에 돈을 쓰는 것일까.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세아상역이 지난 30년 동안 걸어온 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초 무역회사로 출발한 세아상역은 의류제조업으로 변신한다. 1990년을 기점으로 볼 때, 한국 내에서 의류생산은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 해외 진출은 숙명이었다. 세아도 중국, 사이판 등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국내에선 예상치 못했던 어이없는 경험도 했다.

특히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멕시코에 생산법인을 설립했다 크게 실패한 경험은 아직도 세아상역 내에 회자되고 있다. 김기명 글로벌세아 대표이사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멕시코에 공장을 설립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에 저희는 근로자들에게 월급이 아닌 주급 형태로 임금을 지불했었죠. 그런데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그때가 귤 수확기였는데요. 공장 옆의 커다란 농원에 귤 따러 간다고 회사를 안 나오는 거예요.”

물론 농장 측은 귤 수확 기간만큼은 세아보다 더 많은 임금을 준다. 그래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멀쩡히 일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귤 따러 갈 수가 있을까. 한편 반성도 했다. 우리가 어떻게 저들을 대했길래 애사심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력으로 키운 것일까. 결국 1년도 안 돼서 멕시코 공장을 접었다. 그러면서 해외 진출을 할 때에는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현지 문화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점, 특히 현지 커뮤니티에 공헌함으로써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생산 단위당 원가가 낮은 지역으로 진출함을 의미한다. 재료를 싣고 나가면서도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그만큼 인건비가 낮아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거점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는 이유다. 세아상역의 매출비중 중 70∼80%가 미국이다. 미국은 2003년부터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 중미 5개국 간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향후 10년 내에 섬유와 농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것이다. 세아가 과테말라, 니카라과에 진출한 것도 중미자유무역협정의 혜택을 보기 위함이다.

이쪽에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김웅기 회장은 지진이 나기 전에 두어 번 아이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티에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김 회장은 “그때도 가난에 찌든 나라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진이라니”라며 비통해 했다. 사실 김웅기 회장이 처음 아이티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 개화기 시절이나 1950년대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옛날 선교사가 와서 학교를 짓고, 병원을 만든 것이 오늘날 배재학당, 세브란스병원 등의 효시가 아니었던가. 미국이 10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게 해주었던 것을, 지금 우리가 아이티에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숙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티의 교육 수준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대학 진학률 1%. 그런데 이 1%가 아이티에 있지 않고 미국으로 간다. 소위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현상’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진학률이 50%밖에 안 된다. 그 나라 국무총리의 이야기에 따르면 교사의 80%가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은 가르쳐야 하는데 교사는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자격 없는 선생님들이 생겼다. 결국 세아상역은 아이티에 가장 급한 건 교육 시설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세아상역은 카라콜에 학교를 세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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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를 통해 모셔온 교장

부지 확보 및 인허가, 건축 등의 외적인 부분(Hardware)에 대한 계획은 세웠지만 ‘아이티 최고의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모토에 걸맞게 최고의 교육을 진행할 교사들,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며 커리큘럼을 개발할 교장이 절실했다. 여러 명의 지원자들을 인터뷰하고 검토하며 뉴욕시립대 교수들에게도 도움을 청한 결과 적합한 인물을 한 명 추천받았다. 뉴욕시립대에서 진행하는 ‘아이티 지원 교사 교육프로그램’을 주관해오다 은퇴를 앞둔 미국 학교 교장 ‘장 멀빌’ 씨가 주인공이다. 아이티 출신인 멀빌 씨는 고교시절 미국으로 이민해 하버드대, 프랑스 소르본대를 연달아 졸업한 엘리트로 영어와 불어, 아이티 현지어인 크레올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한다. 뉴욕 브롱스(Bronx)초등학교의 교장을 10여 년간 맡고 있던 멀빌 씨는 수년간 세네갈 교육 봉사를 해온 것은 물론 교장 재임 중에도 방학 때마다 모국 아이티를 찾아 2달간 현지 교사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등 평소 꾸준한 나눔을 실천해온 ‘노블리스 오블리제’ 재능 기부자이기도 했다. 첫 만남에서의 부드러운 인품과 재능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세아 미국 법인장은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멀빌 씨를 영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무상 교육을 실시하기로 한 세아학교의 예산에 비해 현저히 높은 미국 교장의 처우가 문제였다. 그간 면접을 진행해온 교장 지원자들의 처우보다는 거의 10배인 멀빌 씨의 보수는 당초 예산을 초과하는 부분이었다. 급여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아직 ‘건축 계획’인 학교를 맡는다는 것 역시 상당한 책임과 위험부담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멀빌 씨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 아이티 현지 인프라를 고려했을 때 뉴욕에 거주하던 가족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어려웠다. 이로 인해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 세아 법인장은 멀빌 씨의 출신 국가를 강조하며 ‘국가에 대한 헌신’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당장은 부족하겠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티 투자가 이익이 나면 전반적인 처우는 개선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우선 아이티의 미래를 만들자고 부탁했다.

멀빌 교장은 “세아학교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아이티 교육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과업인 학교 운영에 시작부터 함께하게 됐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멀빌 씨는 반으로 낮춘 급여까지 감수하며 세아학교에 합류했고 본격적으로 본인의 열정을 학교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교실들의 구조/배치에서부터 교사들에 대한 채용 인터뷰와 커리큘럼 회의까지, 오랜 교육 경력에서 나타난 그의 역량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선발하려보니 전부 교육을 안 받아서 학년을 나눌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1학년으로 출발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이가 많으면 3학년, 적으면 2학년, 1학년으로 나눠서 교육을 해나갔다. 아이티 언어인 크레올어를 비롯, 프랑스어, 영어를 교과과정에 넣었다. 기술 교육과 함께 건축, 회화, 조각 등 시각예술 교육도 병행했다.

2016년 8월 첫 번째 졸업생이 배출됐다. 아이티는 초등학교가 5년 과정이다. 3학년에 배치된 학생이 졸업을 맞이한 것. 세아는 초등학교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종합학교로서의 성장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2016년 7월부터 중학 과정을 진행할 신규 건물을 준공했다. 9월부터는 해당 과정 교육을 시작했다. 중학 과정을 이수한 시점에서는 고등 과정 전용 건물 신축 계획도 마련돼 있다. 2020년에는 700명 이상 규모의 아이티 최고 수준의 종합 학교로 성장할 계획이다.



교육에 이어 의료까지

세아는 교육 못지않게 의료 부문에도 관심이 컸다. 과거 콜레라 관련 의료키트를 제작하던 때부터 주민들을 위한 의료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2012년 전남대와 함께 의료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한 번 의료봉사를 실시하면 3000명 정도의 환자를 본다. 2012년 의료봉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와 본 사람도 꽤 됐다고 한다. 심지어 트라코마(trachoma, 전염성 각결막염의 일종)로 인해 본인이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된 것으로 착각한 환자도 30여 명이었다. 이런 환자들은 세아의 의료봉사를 통해 시력을 회복했다. 어떤 어린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허벅지가 심하게 곪아 있었다. 걸음마를 가르쳐 주는 게 불가능했다. 걷는 것은 고사하고 서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선천적 장애아로 여겼다. 의료진이 보니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허벅지의 고름을 제거해주니 걸을 수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딛는 걸음이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는 곳이 아이티다. 트라코마만 해도 그렇다. 195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는 자취를 감춘 질병이다. 후진국에서는 여전히 맹렬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13년에는 현지 공장의 사정으로 인해 의료봉사를 실시하지 못했지만 2014년 이후로는 매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이때부터는 양산부산대 병원이 참여했다. 이 병원은 원장의 마인드가 다른 병원과 다르다. 의료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이러한 병원의 풍토와 세아의 아이티에 대한 절박한 의료개선 심정이 맞아떨어졌다. 같은 해에 미국 조지워싱턴 간호대학도 동참했다. 우연한 기회에 조지워싱턴 간호대학이 아이티에 의료봉사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아 측에서 “우리가 가는 시기에 맞춰 카라콜 쪽으로 오지 않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함께 간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은 세아 측에서 부담하겠다는 의사도 넌지시 표현했다. 조지워싱턴 간호대학은 세아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이후 3년째 의료봉사를 함께하고 있다.

물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간호대학과 한국의 간호대학은 성격이 좀 다르다. 미국은 의사의 처방 없이도 간호사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다. 처음에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양 진영 간에 조그마한 신경전이 있기도 했다. 한국 의사들이 미국 간호사들의 역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 그러나 이런 문화적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지금은 2017년에 언제 갈지 날짜를 잡자며 서로 연락할 정도로 친해졌다.

서범주 세아상역 홍보팀장은 “실제 의료봉사를 진행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흥미로운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며 “지금은 비전 플러스라는 아이티에 있는 의료 조직의 안과의사들이 봉사기간 중 카라콜을 찾아 함께 의료봉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미국, 아이티 3개국 연합군이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과 의료, 개발도상국일수록 꼭 필요한 분야다. 하지만 사회공헌 테마로서는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섬유업종이라고 하면 섬유업의 특성을 살린 활동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닐까? 여기에 대한 김기명 대표이사의 생각은 명확하다.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입니다.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현지에 공헌한다면 회사가 망하겠죠. 이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죠. 바른 일을 제대로 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제대로 된 기업인 겁니다. 글로벌화를 하기 위해서는 현지 커뮤니티와의 친화는 필수입니다.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현지 사회와 친해지는 것은 비즈니스에도, 현지 사회에도 도움이 됩니다”.

섬유봉제업의 경우 해외 공장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보통 1년 반이 걸린다. 아이티는 2년 반이 걸렸다. 그만큼 기술을 쫓아오는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더디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최소 2020년까지 미국지역에 무관세로 들어간다는 엄청난 장점을 갖고 있다. 4년 전에 지은 공장들은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교육을 하건, 의료봉사를 하건 모두 카라콜을 중심으로 한 아이티 북부지역이다. 내 아이에게 초등학교 교육을 시켜줬건, 나의 눈을 고쳐줬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그만큼 세아에 대해 고마운 감정이 생긴다. 지역 커뮤니티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자리잡는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취업한 사람은 자부심을 갖고 일할 것이다.



세아의 맞춤형 CSR 전략

세아가 아이티에서만 CSR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생산기지에서도 현장에서 필요한 활동을 수행한다. 특히 세아의 CSR은 단순히 큰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을 벗어나 지역별 맞춤 CSR로 정평이 높다.

“니카라과에서는 헌혈이 주된 활동이죠. 이곳은 가톨릭이 미신과 좀 섞여 있어요. ‘피를 뽑아가면 자기의 영혼이 빠져나간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돌아요. 그래서 국민들이 헌혈을 거부하는 거죠. 어느 나라나 피는 필요한데 피가 항상 부족하죠. 그래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헌혈활동을 테마로 잡았어요. 니카라과 적십자사도 많이 고마워하고 있죠.” 김영훈 홍보팀 대리의 말이다. 고아가 많은 베트남에서는 고아원을 돕고, 수도인 자카르타 주변에 빈민촌이 산재해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도시락 나눔봉사를 실시한다.

세아는 섬유 부문에서 1조50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큰 회사이다. 1986년에 설립돼 역사만 해도 30년이 넘는다. 비상장회사인 관계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돈 벌기에만 몰두해서는 회사의 역사가 30년이 넘기 어렵다. 회사를 이끄는 리더의 핵심가치가 전 조직원에게 전파돼 있어야 한다. GE의 전 회장이었던 잭 웰치도 “능력은 뛰어나지만 회사의 핵심가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인력을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세아의 창업자인 김웅기 회장은 회사를 배에, 자기 자신을 탐험대장에 종종 비유한다. 회사를 막 차렸던 시절, 그땐 낡은 나룻배 한 척이었다. 어차피 망하더라도 나룻배 한 척에 불과하다는 개척정신으로 무장했다. 두려움은 없었다. 뜨거운 열정으로 세계를 탐험해 왔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회사는 멋들어진 범선이 됐다. 초창기의 어려움을 몰랐던 젊은 인재들도 많이 유입됐다.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핵심가치의 필요성을 느꼈다.

김웅기 회장은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1위 기업을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계와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세아의 나아갈 길입니다”라고 강조한다. 도전정신, 인재제일, 일터행복, 상생추구는 이러한 세아인이 되기 위한 핵심가치다.

매출액 1조 원대의 회사가 한 나라의 교육과 의료를 변화시키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국가 전체는 아니다. 공장이 들어가 있는 공단지역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작된 변화는 다른 회사, 다른 단체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한강에 잉크를 한 통 넣는다고 해서 강물 색이 바뀌지 않지만 종이컵에는 약간의 잉크만 넣어도 물 색깔이 바뀐다. 세아가 아이티의 북부 공단지역인 카라콜을 변화시킴으로써 아이티 전체의 변화를 이끌 방아쇠(trigger) 역할을 시작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2007년에 80%를 넘어섰다. 일본, 미국 등이 30%대인 것에 비하면 그만큼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해외에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누구나 다하는 봉사활동, 어쩌다 한번 생색내기 위한 대규모 사회공헌활동은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한다. 마치 기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비전을 갖고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 후, 그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아는 상생추구를 핵심가치 중 하나로 내세우면서 이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회사의 귀감이 된다.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자문역 gowmi123@gmail.com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윈윈!> 등이 있다.


생각해볼 문제

1. 값싼 인건비를 찾아 생산 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은 많지만 세아상역처럼 B2B 기업이 적극적으로 CSR에 뛰어드는 사례는 드물다. B2B 기업에게 CSR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2. 세아상역의 과감한 CSR 활동은 세아상역이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 세아상역은 아이티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대규모 투자보다는 맞춤형 CSR을 진행하고 있다.?니카라과에서는 헌혈 활동을 펼치고, 베트남에서는 고아원을 돕는 등 규모보다는 지속적인 CSR 활동에 힘쓰고 있다.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운 투자와 지속성 중 어떤 것이 성공적인 CSR을 견인할까.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