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업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새로 입사를 했거나, 승진을 했거나, 혹은 새해가 됐거나, 심지어 월요일이 됐을 때에도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조직에서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열심히 일하는 것에는 많은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업무 몰입이 일과 삶의 균형을 파괴하고 직무 탈진을 유발해 장기적으로 조직의 자원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열심히 하는 것에는 또 다른 치명적 약점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우선순위의 문제가 무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몰락한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망한 기업은 별로 없습니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조직원들은 더 열심히, 더 많은 시간을 일합니다. 실제 노키아 같은 회사를 보면 위기 상황에서 조직원들은 극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몰락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업무의 성과는 열심히 일하는 수준과 상관관계가 별로 없습니다. 성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입니다. 지금 당장 내 역량을 쏟아야 할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배가 산으로 갑니다. ‘라따뚜이’ ‘인크레더블’ 등 창의성 넘치는 영화를 만든 브래드 버드 감독은 “완벽하게 찍어야 할 장면도 있지만 훌륭한 수준에서 찍어야 되는 장면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상을 깨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만 찍어도 되는 장면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비행접시를 찍을 때 파이 접시를 날려서 그 모습을 촬영해 사용하기도 했다는군요. 대신 그는 고객 가치와 직결되는 창의적 작업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조직에서 우선순위에 대한 체계적 고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으로 인해 과거 상황에서 결정됐던 업무 우선순위가 현재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사례도 많습니다. 영화 ‘곡성’의 명대사 “뭣이 중헌디!”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우선순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맞물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직에서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유력한 솔루션이 바로 애자일(agile) 방법론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 방법론은 과거 발주자의 주문을 받아 과업을 세분화해서 열심히 개발한 다음에 납품하는 관행과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취합니다. 전통적인 방법론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고객이나 시장이 원하는 것과 큰 차이가 나서 엄청난 시간과 자원이 낭비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자일 방법론에 따르면 우선순위를 결정한 다음, 중요한 과업을 수행한 다음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과업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고객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부터 우선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자원 낭비도 최소화됩니다. 애자일 방법론이 소프트웨어 기업을 넘어 제조업이나 유통업체, 스타트업 기업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기업 현장에서 조용히 확산되고 있는 애자일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애자일 기법을 도입해 성과를 낸 기업의 사례와 적용 방법론, 전문가들의 조언 등을 담았습니다. 애자일 방법론이나 프로세스를 엄밀하게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애자일의 핵심 취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조직 문화에 맞는 고유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이런 고민의 출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직원이 있다면 ‘무엇’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인지 꼭 되물어보시면서 우선순위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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