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상에서 외환위기의 파고가 휘몰아쳤던 1998년 새해에 발표됐던 이건희 회장의 신년사 메시지가 화제가 됐습니다. 아마도 지금의 경제상황이 외환위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회장의 당시 신년사는 크게 3가지 핵심 메시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성찰, 변화, 그리고 실천입니다. 신년사 첫 문장은 “저는 오늘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참담한 마음으로 무인년 새해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로 시작합니다. 이어 “역사는 지금 우리 모두의 무지와 자만, 그리고 안일함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엔고 호황의 착각 속에서 세계의 흐름을 억지로 외면해 온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깨달아야 합니다”라며 냉철하게 현실을 진단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불리한 대외 여건과 상황을 탓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았다는 점입니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소인은 남을 탓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는 <논어>의 명구가 떠오릅니다.
이어 이 회장은 “기업도 이제는 양적 사고의 구시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뼈를 깎는 혁신으로 경영체질과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라며 변화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생존이나 멸망을 결정짓는 것은 복잡한 경영이론이 아니라 경쟁력입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력입니다”라며 실천을 강조합니다.
이런 논리 구조는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현재의 상황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규모가 크니까”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버텨왔으니까” “당장은 수익이 나니까” 등과 같은 생각은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숨기고 싶은 모습까지도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은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공급과잉 상황이라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가격 대비 최고의 품질에 도전해 경쟁우위를 차지해야 합니다. 고부가가치 사업이나 새로운 분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지금과는 다른 기술과 문화를 적극 수용하거나 선진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필요한 역량을 확보해야 합니다. 디지털 파괴로 인한 변화가 일고 있다면 스스로 파괴자가 되기 위해 루틴을 벗어나는 틀을 깨는 시도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DBR은 매년 세계적인 경영 석학들을 초청해 깊이 있는 토론을 벌이는 동아비즈니스포럼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포럼 2015에서는 특히 저성장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최고의 대안인 혁신 전략을 집중 탐구했습니다.
이 포럼에서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다양한 지혜와 교훈이 제시됐는데 이 가운데 전략 분야의 거장 제이 바니 유타대 교수가 들려준 일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가 컨설팅했던 한 가공식품 회사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 제조시설이 있었는데 서부에서는 하나의 제조업체에 한 종류의 제품을 공급해 1파운드 분량의 생산 단가가 20달러에 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부의 공장은 362개 고객사에 274개 제품을 공급하느라 1파운드당 단가가 75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동부 공장 상품들을 먹어봤더니 맛의 차이도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바니 교수는 제품 수를 3개로 줄여 이런 문제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CEO는 듣지 않았다는군요. 특정 경영이론에 심취한 나머지 여기에만 몰입하고 정작 중요한 문제는 돌보지 않았던 겁니다. 바니 교수는 결국 컨설팅을 포기했답니다.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찾아내는 게 CEO의 핵심 과업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통찰대로 나에게서 원인을 찾고 대안을 물색해 강력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그의 지론대로 복잡한 경영이론이 아닌 경쟁력, 그리고 실천이 핵심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게 뜰 수 있다’는 이 회장의 말을 새기며 이번 스페셜 리포트와 함께 새해 도약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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