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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수돗물처럼 제품을 만들어야 하나

김남국 | 176호 (2015년 5월 Issue 1)

 

‘수돗물처럼 제품을 만들자.’

 

이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고()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가장 중요한 사업 철학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정에서 가전제품이나 귀금속을 훔치면 범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목이 말라 수돗물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묻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수돗물은 흔하기 때문에 누구도 거리낌 없이 주거나 받을 수 있는 재화입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궁핍한 소비자들이 싼 값에 제품을 쓸 수 있도록 해 사회에 기여하자는 수돗물 철학을 근간으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는 회사 설립일이 아니라 수돗물 철학을 정립한 날을 창립기념일로 삼기도 했을 정도로 이 철학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1984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고 일본 경제의 한 세기를 마감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파나소닉은 2000년대 중반 역사에 남을 만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세계 TV시장에서 LCD PDP가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고 있었는데 파나소닉은 과감하게 PDP사업에올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장 증축에 무려 6000억 엔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초기 기술적 우위를 점했던 PDP의 뒤를 맹렬하게 추격한 LCD가 시장을 장악해버렸고 파나소닉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고올인전략을 폐기했습니다. 이런 전략을 추진했던 기반 가운데 하나가 수돗물 철학이었다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로 다가옵니다.

 

수돗물 철학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후계자들이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파나소닉이 LCD를 수돗물처럼 만들었더라면 성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옵션적 사고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처럼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옵션을 쥐고 있다가 시장 추이를 봐가며 수돗물처럼 만들 시기를 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성장 동력이 고갈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신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사업은 그 자체로 실패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모두 예측해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이런 예지력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현실적인 대안 가운데 하나는 옵션적 사고입니다. 소규모 투자로 옵션을 확보한 다음 상황 전개를 지켜본 후 추가로 더 큰 투자를 할지, 아니면 옵션을 포기할지 결정하면 환경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금융상품에서 개발된 아이디어를 실제 기업 전략에 차용한 리얼옵션은 이런 접근을 뒷받침하는 좋은 대안입니다.

 

DBR은 경영자들이 리얼옵션 방식을 활용해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스페셜 리포트를 제작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 소개된 리얼옵션 활용 사례 가운데 이승현 댈러스텍사스대 교수가 소개한 Capital One Bank의 성공 전략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대부분 신용카드 회사들이 신용도가 높은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때 이 업체는 신용이 좋지 않은 고객을 찾아 차별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리얼옵션의 개념을 효과적으로 적용했습니다. , 신용카드를 발급하되 한도를 작게 설정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약속한 기간까지 돈을 잘 갚는 고객만 선별해서 한도를 확대해나가는 정책을 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포인트는 경쟁자를 고려해 이 과정을 은밀하게 추진했다는 점입니다. 리얼옵션의 약점은 경쟁 상황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경쟁자가 위협적이라고 느껴 애써 개척한 시장에 대거 진입해버리면 경쟁우위를 순식간에 잃을 수 있다는 현명한 판단이 곁들여지면서 리얼옵션이 빛을 발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를 토대로 옵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신시장 신사업 개척 아이디어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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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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