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지역 정치경제학

지방 맹주 영향력 큰 인도네시아, 대통령만 믿다 혼쭐난 한국 기업

155호 (2014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서는중앙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전통적으로강한 국가’, 중앙 집중화된개발 국가의 영향하에서 비즈니스를 진행해 온 한국 기업들이 쉽게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과 규정에 따라 비즈니스를 진행하면 된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등 저개발국에서는중앙정부 핵심인사국가수반과 협의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는 좀 다르다. ‘중앙정부의 약속만 믿고 인도네시아 찔레곤시에 진출한 포스코는 지방권력을 무시했다가 큰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어느 지역이든 기업이 진출하고자 한다면 지역의 전통적인 후견인이자 권력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들과 호흡하는 것을 시작으로 차차 장기적으로 기업 스스로 지역의 후견인이자보스가 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현지 한인 기업인 코린도와 인화, 국내 기업 중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미원 역시 이 같은 원칙을 지켜 큰 성공을 거뒀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연아(한성대 산업공학과 4학년) 씨와 장은빈(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0년 봄. 포스코 관계자들이 인도네시아 전문가 한 명을 찾아갔다. 인도네시아 찔레곤 지역에 제철소를 짓기로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와 모든 협의를 마친 상황에서 혹시나 주의해야할 점은 없는지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인도네시아 전문가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토지분쟁과 관련된 문제였다. 인도네시아는 토지분쟁이 많이 발생하는데 국가가 최종적으로 소유권을 정리해줘도 주민 저항이 있기 때문에 결국 해결이 잘 안된다는 얘기였다. 제철소를 짓는다는 건 막대한 면적의 토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토지 소유권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로한국과 인도네시아 중앙정부 간 합의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원래 인도네시아 찔레곤 지역에 제철소를 짓는 문제는순수한 비즈니스차원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할 때 인도네시아 부통령이 왔고 두 정치 지도자가 얘기를 나누다철강협력사업을 해보자는 데에 합의해 추진된 일종의정책이었다. 얼핏 보면 아무런 문제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라는 게 이 전문가의 지적이었다. 1998년 인도네시아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 각 지역에서는 지방 토호 세력들이 지방자치를 통해 시장과 군수 등의 자리를 맡거나 그들을 후원하며 지역의맹주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각맹주가 있는 지역에서는 중앙정부의 지시나 정책이 잘 안 먹힌다. 그들이 해당 지역의자원 배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그나마 중앙정부의 설득과 협박이 먹혀들었으나 1998년 민주화와 지방자치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얘기였다. 인도네시아 전문가의 말을 들은 포스코 관계자들은 과연 두 가지 경고를 잘 받아들여 문제없이 일을 진행했을까?

 

국영기업과 합작한 포스코는 왜미운오리새끼가 됐나?

2013 1223.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포스코 정준양 당시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찔레곤 포스코-크라카타우 일관제철소 준공식이 열렸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국내 철강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공장이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고 정준양 회장은제철소 완공으로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아름다운 장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상황이 연출됐다. 가동 열흘 뒤 고로 설비 중 열풍을 넣는 풍구에 문제가 생겨 쇳물이 새어나오는 사고가 발생해 수개월간 가동이 중단됐다. 공장은 지난 3월 중순이 돼서야 재가동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해 만들어진 포스코 최초의 일관제철소는 이 같은 기술적인 문제 이외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실 앞서 한 인도네시아 전문가가 경고했던 두 가지 문제는 그간의 포스코 공장 건립과정은 물론 현재 지역사회와의 갈등해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포스코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포스코는 크라카아우스틸과 73의 비율로 합작을 했다. 포스코는 차관을 얻어 30억 달러를 투자했고 인도네시아는 현금 대신 토지 338㏊를 제공했다. 문제는 이 땅 중 65㏊ 정도가 소유권이 불분명한 땅이었다는 것. 포스코는 이 사실을 몰랐다. 전문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중앙정부와 다 얘기된 것으로 생각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1999년 인도네시아 대법원이 국가 소유로 인정한 땅이었지만 그 지역의 첫 민선 지방자치단체장1 은 판결 직전부터 바로 그 땅에 항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 10년 동안 우리 돈으로 약 100억 원을 투자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어 민선 시장의 손을 들어준 행정법원 판결도 나왔다.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갔다. 더군다나 항만사업을 10년간 추진해왔던 찔레곤의 첫 민선 시장은 해당 지역에서 인도네시아 국가 형성 이전부터 지역을 사실상 통치해 온 맹주 집안사람2 이었다. 엄청난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가진 그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중앙정부 하고만 소통하는 포스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이 투자한 항만사업까지 건드린 셈이니 지역민심 전체가 포스코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는 우여곡절 끝에 토지문제가 겨우 봉합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찔레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슬람 지도자와도 관계형성이 제대로 안됐다. 찔레곤은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이슬람학도들의 성지 같은 곳이다. 제철소 건설 당시부터 밀려들어온 한국인들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려 없이 돼지고기나 술을 먹거나 밤샘 유흥을 즐기기도 했고, 이에 독실한 무슬림인 찔레곤 사람들은 분노했다. 포스코는 자사 직원들은 통제할 수 있었지만 협력업체 직원들까지는 관리하기 어려웠다.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며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준공식 행사 때 대통령을 부르면서 찔레곤 시장을 안 불러 또 한 번 지방정부의 원성을 샀다 “‘윗선하고만 일하면 된다는 전형적인한국식 사고방식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동남아)의 중앙-지방 관계와 비즈니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서는중앙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전통적으로강한 국가’, 중앙 집중화된개발 국가의 영향하에서 비즈니스를 진행해 온 한국 기업들이 쉽게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과 규정에 따라 진행하면 되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등 저개발 국가에서는중앙 정부 핵심 인사국가수반과 협의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물론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은 좀 다르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한 한국 기업 사례가 많다. 한국의 최대 건설사 중 하나인 A사는 지방 정부와 전혀 관계를 맺지 않고저가 수주전략 하나로 밀고 나가다 큰 손해를 봤다. 이 회사는 로컬 파트너 회사인 아디카리야(AdiKariya)와 손잡은 뻐르따미나(Pertamina)라는 기업이 발주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건설업에서는 토지문제와 지역개발 문제가 모두 얽혀 있다. 파트너인 아디카라야사와는 별개로 A사 역시 건설이 이뤄지는 지역에서 토호, 맹주들과의 관계형성이 필요했으나 이를 소홀히 했다. 계속 사업 진행이 늦어졌고 A사의 손해는 커졌다. 인도네시아 현지 사업가는 “A사뿐 아니라 어떤 업종에서 누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더라도 자신의 회사와 공장의 거점 지역을 관할하는 영향력자가 누군지 파악하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조언했다.

 

1) 식민지, 그리고 역사적 조건

왜 유독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는지방 권력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남아 지역의 국가 형성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인도네시아는 7세기 말부터 아라비아-중국 동남해에서 이어지는 해상무역의 거점을 중심으로 왕국이 번성하는 지역이었다. 삼성전자 현지 관계자는인도네시아는 불교에서 이슬람으로, 하나의 왕권에서 또 다른 왕권으로 종교와 권력이 바뀌어 오면서 밀려난 권력이 지방으로 내려가 각자자신의 지역을 다스리는 형태가 됐다각 지역에 정착한 권력자들은 풍부한 자원과 농산물을 바탕으로 지역민들을 후원하고 돌봐주면서지역의 맹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식민지 이전 시기에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당연히인도네시아라는 통일된 국가 개념은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를 하나의 국가로 만들어 준 건 바로 네덜란드 등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었다. 현재 말레이시아 지역은 영국이 통치했고,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파푸아 섬 중 동쪽 편인 뉴기니 지역은 독일과 영국의 분할 통치 등을 거쳐 호주의 영향권하에 있다 독립했다.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이 없는 태국은 서구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힘의 균형점이었다.

 

그림 1 동남아시아 지역 지도

 

<그림 1>에는 동남아 국가들의 현재 국경 모습이 나타나 있다. 보루네오 섬은 북쪽 말레이시아 영토와 인도네시아 영토로 나뉘어져 있다. 파푸아 섬 역시 왼쪽 인도네시아 영토와 파푸아 뉴기니로 나뉜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대다수 동남아 국가들에서는 자생적으로 국가를 형성한 뒤에 전쟁과 협상 등을 통해 국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식민 지배를 하던 유럽 국가들이 분할해 둔 선을 따라, 즉 어느 국가로부터 지배를 받았느냐를 기준으로 국경이 형성된 사례가 많다. 실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통일된 국가의 형태를 이뤘다. 그러나 식민지배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각 지방에는 해당 지방을 직간접적으로 다스리던지역 맹주들이 존재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현재 행정구역으로 치면시군 단위수준이다.3  당연히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 캄보디아 등을 제외한 대부분 동남아 국가 사람들은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이상으로지역주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은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외국에서는 무조건한국이라고 말하고 우리나라 사람끼리는 본인의 나고 자란 곳 근처의 가장 큰 도시를 기준으로 말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군 단위의 작은 단위나 종족을 먼저 말한다. 정체성의 방점이 약간을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2) 후견의 정치경제학: ‘Bossism’을 이해하라

동남아의 정치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역 토호 혹은 맹주들의 영향력에 의해 이권배분과 비즈니스가 좌우되는 현상을 ‘Bossism(보스주의)’이라 명명했다.4  보스주의에 대한 논의는 필리핀의 각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는 가문들, 지역 조직들과 중앙정부와의 관계 등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인도네시아의 지역별 맹주자와라등 동남아 국가 내 각 지역별보스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킬 수 있다. 이 보스들이 그저 오랜 시간 지역 내 이권을 독점하고 지역민들을 억압해왔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이들은 바로 해당 지역민들의후견인이자, ‘복지 제공자이며 리더였다. 이들은 각 국가마다 군부독재 시절이나 민주화 이후 시기 모두 중앙정부와의 관계 설정 속에서자원 배분자의 역할을 해왔다. 동남아 국가들은 어차피복지 정책’ ‘사회 보장정책’ ‘고용 향상 정책’ ‘물가안정책등 정치경제적 정책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지 않는다. 대부분 천연자원이 많은 나라인 까닭에 일종의자원의 저주5  현상으로 중앙 정치 엘리트들은 부존자원에 대한 지대추구 행위로 이득을 취하고 지방 농민과 도시 빈민층에게는 직접적인 혜택을 배분하는 방식(pork barrel)6 을 통해 지지를 획득한다. 이때 도시를 제외한 농어촌 지역 전반에 중앙정부 차원이든, 지역 자체에서든 자원을 조달하는 동시에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부와 자원을 시혜적으로 배분하는 게 바로 지역 보스의 역할이다.

 

그림 2 후견의 정치경제학이 작동하는 방식

 

 

<그림 2>를 보면 군부독재 시절은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각국의 지역 보스들이 자신의 지역민들이물질적 혜택을 입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군부독재 시절에는 독재정부에 대한 지지를 도출하기 위해 지역보스와의 유대를 강화해 시혜를 베풀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직접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중앙정치인으로 만들거나, 지방정부의 수반으로 세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중앙정부가 이들을 무조건 이용했다기보다는, 서로 이용하는 관계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식민지 지배 시절 훨씬 이전부터 해당 지역의 후견인으로 자리매김해오던 이들과 가문, 혹은 이후 새롭게 등장한 가문과 명사들은 중앙정부로부터 자원을 들여오는 영향력자인 동시에 스스로의 지역기반, 농장과 자원개발사업 등을 중심으로 부를 창출해 지역민들에게 배분하는 혜택 제공자였고, 당연히 이들은원망의 대상이 아닌 해당 지역의 후견인으로 인식됐다.

 

Play with the boss, be a boss”

앞서 언급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 지역 보스들의 역할 등을 감안하면, 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중앙정부와의 관계 이상으로 자신이 진출한 지방/지역 보스들과의 관계 설정에 충실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완벽한 성공과 정착, 현지에서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진다. 바로 기업 스스로가 진출한 지역의후견인이 되는 것이다. 기존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보스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자체적인 고용창출과 사회공헌으로또 하나의 새로운 후견인이자 보스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의 맹주와 함께 호흡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예 스스로 지역의 후견인이 돼 버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최고의 전략일 수 있다. 이 같은 전략으로 인도네시아 내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한 두 개의 한인 기업, 그리고 국내에서 진출한 한국 기업 중 가장 성공한 두 기업의 사례를 정리한다.

 

득표와 지지를 원하는 중앙 정치 엘리트들은 신생 도시의 맹주인 코린도를 위한 정책적 배려를 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코린도 타운에서 교육받은 학생이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도 생겼다.

 

1) 현지 한인 기업으로부터의 교훈: 코린도그룹(Korindo Group)과 인화(PT. Inwha Indonesia)

코린도와 인화7 는 한인이 설립한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코린도는 1960년대 말 인도네시아 원목개발을 목표로 현지에 진출한 뒤 원목 개발 및 수출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합판 사업으로 눈을 돌려 성공한 기업이다. 그 후 지속적으로 사업을 키워 현재는 제지, 금융, 보험, 부동산,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30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으며 총 직원 수 3만 명 중 현지인 직원은 2만여 명이다. 여전히 그룹의 핵심동력은나무와 관련된 사업들이다. 주로 밀림에서 사업을 전개하다 보니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 자체는 크게 심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밀림의 사업장에서는 누군가를 고용해 일을 해야 했고 그들이 주변에 정착해야 했다. 인도네시아인, 동남아 지역 특유의 정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코린도그룹은 자신들이 사업을 펼치는 지역마다 일명코린도 마을을 만들었다. 기업이 마을의 후원자이자 보스가 됐다. 가장 강력한 규제산업을 진행하다 보니 중앙정부로부터 혜택을 얻어와코린도 마을주민들에게 배분할 수 있었고 기업 스스로 고용 창출을 하는 동시에 장학사업을 벌여 2세 교육의 후원자가 됐다. 단지 현지인들을 고용해 임금을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노동자들의 정착촌을 아예 하나의 시·군급 ‘Town’으로 육성해 스스로 보스가 된 셈이다.

 

코린도는 또 주력 사업 자체가 원목개발과 합판 생산이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법에 따라 조림사업을 의무로 진행해야 했다. 조림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사업이 바로팜유를 추출하기 위한 농장 개발이다. 코린도는 200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의 오지 파푸아 지역에서 바로 이 사업을 추진한다. 이때 그동안 코린도가 쌓아왔던 경험이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현지에서 농장을 개발하고 팜유 생산 활동을 해야 하는데전 근대적 생활방식으로 흩어져 살고 있던 파푸아 지역 현지인들만으로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미 코린도 기업의보스 기질을 잘 알고 있던 자바 섬 등지에 살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코린도를 믿고 파푸아 섬으로 건너왔다. 자연스레 코린도 마을이 형성됐고 농장과 함께 도시도 만들어졌다. 학교를 세웠고 스쿨버스도 직접 코린도에서 운영했다. 직업학교와 연계해 원하는 학생은 직업체험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늘 해오던 방식이었다. 마침 자바 섬의 인구밀도 심화로 고민하던 중앙정부와 파푸아 섬의 저발전으로 고민하던 지방정부도 코린도의 이런 정책을 반겼다. 코린도는 마을 조성 등과 관련한 투자비는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받아오거나 부족하면 자체 투자비로 감당했다. 정리해보면, 코린도그룹은 자신이 개발하러 들어가는 지역마다 일꾼들의 정착촌을 키워 아예 기업형 타운, 기업도시를 만들어버렸고 그 도시의 보스가 됐다. 득표와 지지를 원하는 중앙 정치 엘리트들은 신생 도시의 맹주인 코린도를 위한 정책적 배려를 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코린도 타운에서 교육받은 학생이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는 선순환 구조를 낳아 코린도의 사업이 번성할수록 코린도의지역 맹주로서의 입지도 확장됐다.

  



건설·토목·기계 사업 중심의 인화는 이미 형성된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 사업을 펼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한국의 많은 기업들에 더 큰 교훈과 시사점을 줄 수 있다. 1992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인화는 현재 수라바야 섬 노고로 지역, 쯔뿌 지역, 수마트라 섬과 파푸아 섬, 찔레곤 지역 등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직원 수도 3만 명으로 코린도그룹과 비슷한 수준이다. 각 지역에 진출할 때마다 인화는 해당 지역의 든든한 후견인이자 후원자, 즉 보스가 된다. 우선 해당 지역 주민을 고용할 때 딱 필요한 인력만 뽑는 게 아니다. 새로운 건설현장이 생기면 지역주민들이먹고살 일을 달라며 인화의 사무실을 찾아온다. 여성들에게는 건설 현장 주변에 건물을 지어주고 식당을 운영하도록 해 준다. 국내 건설현장의함바와 비슷하지만 단 한 개만 짓는 게 아니라 두세 개 정도 지어 상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힘든 노동 자체를 꺼려하거나 복잡한 노동을 하기 어려운 교육 수준의 남성들, 사실상건달에 가까운 이들에게도경비 업무를 줘 먹고살 수 있게 해준다. 후원과 배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실질적인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돈도 기부한다. 쓰러져가는 집이 있으면 고쳐주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역 사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지역의 주민들은 인화의 현장 소장, 관리직원 등을 찾아와 상의한다. 또 종족 혹은 종교적 갈등이 발생하거나 시위가 일어나면 지역민들은 자발적으로 인화의 설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직접적으로 혜택을 얻어와 배분하거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나 자원을 통해 혜택을 베푸는 건 아니지만 기업이 지역주민과 함께 창출하는 가치를 다시 나눔으로써 지역에서의 안정적 정착과 사업전개, CSR까지 동시에 해결하는 셈이다.

 

2) 삼성전자, 미원: 지역사회의 새로운 후견인

이미 40년 전에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 미원과 20년 전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역사와 기간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본사를 한국에 둔 기업이라는 측면에서인도네시아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정착한한국 기업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20년 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삼성전자 케이스는 인도네시아 진출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삼성전자는 1991 8월 법인을 설립한 뒤 1992년 본격 진출해 TV 생산을 시작했다. 주재원 12명에 현지인은 약 26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 중 제조인력은 1600명 정도다. 현재 40여 개의 1차 협력사가 삼성전자 법인이 위치한 베카시(Bekasi) 내 찌까랑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협력업체 임직원 13000여 명의 90% 이상이 찌가랑시 시민들이다. 삼성과 지역사회는 불가분의 관계다. 법인이 위치한 자바베카 공단을 중심으로 삼성은 지역사회의정신적 지주인 이슬람지도자들과 최대한 협력하면서 스스로 지역사회의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개발돼 있던 자바베까 공단에 진출했기 때문에 지역에 존재하던후견인과 따로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었지만 직간접 고용인원이 워낙 많았고, 그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독실한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한국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됐다. 아예 무슬림인 한국 임원이 직접 나서 이슬람 종교지도자인이맘을 공장으로 불러 강연을 하도록 하고 기도실과 기도일정 보장 등을 철저히 하면서 삼성전자가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회사임을 각인시켰다. 즉 지역에 물질적 자원배분권을 가진보스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보스라 할 수 있는 사원과의 관계에 신경 쓰면서 인도네시아 지역사회에 부드럽게 안착했다는 얘기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역 이슬람 사원에는 특정 종교 행사 때마다 TV를 기부하고 종교적 축제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직원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거부감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삼성전자는 지역의후견인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갔다.우선 공단 인근 지역 4개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의료복지시설을 만들고, 고아원/양로원 등 복지시설 지원, 환경개선 작업에 큰돈을 투자했다. 또 지역민들이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직업학교를 만들어 미래 세대가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지역 유지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가져오거나, 본인의 농장이나 이권사업의 수익으로 지역민들에게 교재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던 전형적인후원자역할을 삼성이 직접 맡은 것이다. 이 같은 지역 후견인의 역할과 이를 통해 형성된 긍정적 이미지를 토대로 삼성전자는 향후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전략 도시를 선정해삼성시티프로젝트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반둥 지역에 존재하는 편의시설을 최대한 활용, ‘삼성브랜드하에 각종 문화사업을 지원하고 만들어 내는 것들이 바로삼성시티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자카르타에 본사를 두고 17개의 지점, 164개의 대리점, 동부자바 그레식 지역 등 4군데에 공장을 갖고 있는 미원 역시 지역민들의 후원자이자 보스로 자리매김하며 성공했다. 환경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면서 주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고 지역주민들이 공장 인근에 포장도로를 내달라고 하면 이를 들어주기도 했다. 특히 2000년 이후, 즉 인도네시아 민주화 이후 제기되는 지역의 민원과 각종 요구를 유연하게 들어주고, 직원을 한국에 비해 훨씬 싼 임금으로 고용하는 대신 다양한 혜택을 노동조합 등을 통해 배분해줌으로써 전국적인 파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대한 공격에서도 지역주민과 회사 노동조합이 미원 공장을 보호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8  소비재, 특히 음식물 첨가제를 주로 생산하는 미원 입장에서는 이 같은 공장 지역의 우호적 여론을 통해 전반적인 이미지 향상을 이뤄냈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공장이 있는 지역에서는 보스가 됐고착한 보스의 이미지에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존중하며 이슬람식 식품 생산방식 인증인할랄인증 등에 철저한 활동으로 전국적으로 브랜드 가치 자체를 올릴 수 있었다.

 

한국 기업을 위한 제언

제조업체인 한국의 B사는 1992년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짓고 20년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성과가 좋지만 미래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지나치게한국적 효율성을 강조하고 한국인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직원들과의 화합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공장말이라고 부르는 오직 의사전달만을 위한 문법에 맞지 않는 단어 나열식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며 생산목표와 일정 등을 수치로 게시판에 적어놓고 라인을 감시하는 체계다. 이에 따라 현지 직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어를 배울 기회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한국인 직원들도 자신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B기업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 하나를 설립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직업교육보다, 희망등의 단어만 되풀이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CSR만 펼치고 있다. 하지만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민주화가 진행되는 등 인도네시아 사회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지면 B기업에 대한 직원들과 지역사회의 반발은 커질 확률이 높다. ‘후견인’이 되지 않고 식민지적 지배자의 모습과 겹치는 행태가 보이기 때문이다.

 

직접 지역에 공장을 짓지는 않더라도 어느 거점에서든 지역의 맹주, 후견인과의 관계설정에는 특히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지역의 자원배분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업무 처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어떻게 지역보스와 관계설정을 할 것인가?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스가 될 것인가? 삼성전자 현지 관계자, 인화와 코린도 등에 정통한 현지 사업가 등의 제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To play with the boss

인도네시아는 어느 지역에든 보스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지방행정부의 수반이 돼 있는 경우도 많다. 포스코가 위치한 찔레곤의 현 시장은 지난 10년간 항만사업 등에 투자하며 찔레곤을 키워오고 신망을 받던 전 시장의 아들이다. 포스코가 지방정부와 유지들과의 관계를 풀어나가기가 앞으로도 만만치 않다는 걸 시사한다.

 

현지 전문가들은 우선누가 진짜 보스인가부터 파악하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는 한 도시 안에도 여러 개의 province(지방자치 단위 구역)가 존재한다. 자카르타의 경우 5개의 province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province Mayor(시장)가 존재한다. 보통 한국 기업이 처음 진출해 지역 유지와 관계형성을 하려 할 때 스스로를자카르타 정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접근해 온 사람이거나, 수소문을 통해 소개를 받은 사람이라도 신중하게 그가 어느 지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즉 관계형성을 위해 많은 자원과 역량을 투입했는데 알고 보니 인근 다른 province의 유지인 것으로 드러나 난감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해당 지역의 보스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중심인물과 집단과 관계형성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이 같은관계 맺기는 비단 공장이나 플랜트, 건설현장을 만들어야 하는 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이나 소매업에서도 중요하다. 해당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특정 산업을 영위해온 로컬 경쟁자 및 그 후원자가 존재할 때 무턱대고 차별화된 마케팅과 가격전략 등으로 경쟁하겠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지역사회 특유의 배타성을 자극해물리적으로 회사 건물이나 매장을 부수러 몰려오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 기존 로컬 업체와의 경쟁을 피하고 지역 보스와 서로 협조하면서 각기 다른 영역에서 비즈니스가 이뤄질 것임을 약속하고 우호적 관계를 맺는 게 바람직하다.

 



비즈니스 규모가 크고 전국적일 경우, 중앙정부와 먼저 접촉하되 그들과 연결돼 있는 잠재적 경쟁기업(현지기업)과도 만나 관계형성을 해야 한다. 만약 지역에 거점을 만들려고 한다면(대부분의 비즈니스가 그렇듯) 역시 그 지역정부는 물론 그 지역정부와 관계 깊은 현지기업 및 그 주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비즈니스 내용에 대해 먼저 조율해야 한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적 경쟁, 경제적 이득보다무슬림식 사고에 기반한 공동체주의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지역사회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지 않은 인상만 남기고 사업을 철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2) To be a boss

진출 지역에서 보스들과의 관계 형성, 지역사회 내 안착에 성공했다면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서자원을 배분하고 지역사회를 후원하는또 한 명의 보스가 되는 게 좋다. 장기적으로 정치 불안 등의 발생으로종교 갈등’ ‘종족 갈등’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분위기등이 형성되더라도 항상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전문가들은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라고 얕보고 돈으로 다 해결하려고 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고 조언한다. 그저 돈을 나눠준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지역의 갱단들도 몰려오고, 한 갱단에게 혜택이나뇌물을 주고 나면 다른 갱단이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돈에 의존해 스스로 입지를 만들고 나면 다른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내는 순간충성심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우리 기업이 이 지역의 후견인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현지 전문가는후견인이 되기 위해서는큰 틀만 도와주고 세세한 건 지역민들에게 맡기는 게 중요하다한국 기업들은 세세한 부분을 다 만들어주려 하고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모든 걸 스스로 판단해 제공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르치려들지 말고 그저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는지역의 어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Don’t be a teacher, be a patron.)

 

앞서 살펴봤던 인화의 경우, 자사가 진출한 곳에 동네 여성들을 위한 식당을 만들어준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음식을 파는 어떤 식당을 만들고, 그걸 누가 운영할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인화는 식당 건물만 지어주고 메뉴나 운영방식은 현지인들이 결정한다. 거기에다가 이미 동네건달까지 인화로 인해 다 일하게 된 상황에서 전 가족친지가 일을 하고 혜택을 얻게 되면 기업은 명실상부한지역의 어른으로 인식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인건비가 싸다는 이유로 동남아에 진출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 인도네시아는임금은 싸지만, 기업의 정착비용은 비싼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후견인으로서 한번 신뢰를 얻고 나면 지속가능하게충성스러운 직원들과 생산성을 높여갈 수 있고, 어차피 투자해야 할 CSR 비용을 접근방법을 달리해지역사회 보스가 되기 위한 비용으로 쓰는 것이기에 생각만큼 부담이 크지도 않다. 더군다나 인구와 자원 규모, 성장세 등을 생각하면 초기 정착비용(투자비용이라기보다는 정착비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이 생각보다 크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비서구 국가, 저개발 국가에 진출할 때 기업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두 가지 원칙을 잊지 않는다면 성공궤도에 오를 수 있다. 그 원칙은첫째, 이 지역에 의문을 품지마라. 둘째, 그래도 의문이 생기면 첫 번째 명제로 돌아가라.

 

3) 한국 기업의 한계와 가능성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과연 동남아,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자신의 거점에서후견인혹은보스가 돼 장기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까? ‘빠르고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중시하고 CSR투자보다는비용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한국 기업들이 지역사회에자원배분자이자후원자로 쉽게 변신할 수 있을까?

 

한국 기업에는 사실 다른 어떤 나라의 기업들보다 강한복지 공급자로서의 DNA가 내재돼 있다. 대한민국이 지난 60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국가적 차원의 복지정책은 빈약했지만 그나마 불만의 수준을 낮출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과 한국에만 존재하는기업복지의 역할이 컸다. 한국 기업들은 평생직장 구조 속에서 자녀 학자금 지원 같은 다양한 복지정책을 펴왔다. 이 같은 한국 기업의 전통을 동남아에서 지역사회에 혜택을 배분하는보스 기질로 바꿔낼 수 있다면 우리 기업, 특히 제조업체의 동남아 진출과 정착, 그리고 지속성장에는 파란불이 켜질 수 있다.

 

참고문헌

양승윤 저, <인도네시아: 개정판>, 2013, (서울: 한국외대 출판부)

Rodan, Garry, Kevin Hewison, and Rcihard Robinson, The Political Economy of Southeast Asia-Markets, Power, and Contestation, 3rd ed., 2006, (South Melbourn: Oxford University Press)

Kingsbury, Damien, South-East Asia-A Political Profile, 2005, (South Melbourn: Oxford University Press)

Sidel, Jonh T. “Philippines Politics in Town, District, and Province: Bossism in Cavite and Cebu”,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56(4), 1997

 

고승연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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