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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by Map

고흐의 혁신, 현대 기업의 전략으로 부활하다

송규봉 | 154호 (2014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강력한 경영혁신은 자신의 업을 재규정할 때 일어난다. 과거의 성공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할 오늘을 결박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인상파는 프랑스 황실이 정해 놓은 쇠창살을 거부했다. 고흐는 초기 인상파가 쌓아 놓은 담장을 부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다. 미국의와와도 편의점에 관한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후발주자였던 홈플러스는 발상의 전환으로 단숨에 국내 할인점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했다. 모두 사고방식의 전환이 만들어낸 성과다.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53일부터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라는 이 전시회는 8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인상파 그림의 전당인 프랑스국립오르세미술관의 네 번째 국내 출품전이다. 인상주의의 태동, 후속 사조와 작가들의 등장, 변화의 태동지가 된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을 여러 갈래로 보여준다. 이제 인상파는 창조적 파괴의 상징이 됐고 고흐는 열정의 표징이 됐다. 인상파는 당대의 전통적인 화풍을 거부하고 혁신을 시도했다. 고흐는 남프랑스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화폭에 담았다.

 

최근 편의점 브랜드 CU가 상장을 준비하자 46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공모주 청약에 몰렸다. CU는 지난 20년 동안 일본 패밀리마트와의 합작을 마감하고 독자적인 브랜드로 거듭났다. 국내 편의점 사업의 경쟁구도는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편의점 브랜드와와(Wawa)’의 행보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미국 동북부에 근거를 두고 있는와와는 연 매출 약 10조 원에 도달할 즈음 미국 동부 최남단 플로리다에 새로운 거점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 사업 초반기는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했다. 홈플러스는 1997 9월에 첫 매장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15개 국내외 할인점 브랜드가 40개의 점포를 열어 신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격렬한 실험이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선발 브랜드 이마트는 수도권 선점에 이어 지방 소도시에 누구보다 먼저 진출한다. 후발주자 홈플러스는 경쟁이 비교적 덜한 영남지역을 전략적 요충지로 정하고 성장의 도약대를 준비한다.

 

강력한 경영혁신은 자신의 업을 재규정할 때 일어난다. 이미 굳어진 전통적 사고방식은 과거가 만들어낸 익숙함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렇게 과거의 성공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할 오늘을 결박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경영자들이 만나는 감옥은 과거가 만들어놓은 생각과 사고방식의 쇠창살 안에 있다. 인상파는 프랑스 황실이 정해 놓은 쇠창살을 거부했다. 고흐는 초기 인상파가 쌓아 놓은 담장을 부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다. 미국의와와(Wawa)’도 편의점에 관한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후발주자였던 홈플러스는 발상의 전환으로 단숨에 국내 대형마트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했다. 모두 사고방식의 전환이 불러온 결과들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상파 고흐의 혁신, 미국 편의점 브랜드와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혁신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알아보고자 한다.

 

고흐가 남쪽으로 간 까닭

피카소가 부럽다면 고흐는 애달프다. 피카소는 살아 있는 동안 화가로서 최고의 성공을 누렸다. 고흐는 죽은 뒤에야 명성을 얻었다. 피카소는 아흔 넘도록 장수를 누렸고, 고흐는 서른일곱에 생을 마감했다. 단명한 피카소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흔의 고흐를 상상하는 것은 어색하다. 고흐만큼 시대를 뛰어넘어 열렬히 사랑받는 화가가 있을까? 고흐에 대한 팬덤현상은 불행하고 짧았던 그의 삶에 대한 안타깝고 애처로운 감정 때문인지 모른다.

 

<그림 1> 감자 먹는 사람들(1885)

 

<그림 2> 밤의 카페 테라스(1889)

 

정작 고흐 스스로는 불행하기만 했을까? 미술비평가들은 고흐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순도 100%로 행복하거나 불행한 삶은 없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행복과 불행도 영향을 받는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편지 속 고흐의 독백이다. <그림 1>은 고흐가 최초로 도전한 유화 대작이다. <그림 1>을 그릴 때는 불행했다. <그림 2>를 그릴 때는 행복한 열정에 휩싸였다.

 

두 작품은 4년의 시간 차와 전혀 다른 공간 차로 그려졌다.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네덜란드 누에넨(Nuenen)에서 탄생했다. ‘밤의 카페 테라스 1889년 프랑스 아를르가 배경이다. 고흐는 아버지가 있던 누에넨에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지도 1>은 고흐가 누에넨을 떠나 파리를 거쳐 프랑스 남단 지중해 연안 아를르(Arles)로 이동한 여정을 담고 있다. 구글 지도에서 운전거리를 따져보니 대략 1185㎞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신의주에서 남한 부산까지의 철도길이와 비슷하다.

 

<지도 1> 빈센트 반 고흐의 여정(1883∼1890)

 

<그림 1>이 그려진 시기, 고흐의 연애는 실패했고 청혼은 세 번이나 거절당한다. 1885 3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그해 4월에 완성됐다. 그때 마음은 어땠을까? 고흐는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파의 세례를 받는다. 화가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남프랑스 아를르로 향했다. 아를르 시절 고흐는 작품 200점을 쏟아냈다. 이틀에 한 점씩 완성한 셈이다. 틀에 박힌 파리 살롱의 화풍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림 1>에서 묻어나는 유럽 북부의 음울한 색상은 <그림 2>에서 지중해의 눈부신 색감으로 바뀌었다. 환경과 관점의 변화는 작품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인상파의 도전

파리 살롱전에서 10년째 낙방하자 쥘 홀차펠(Jules Holtzapffel)은 권총으로 자살했다. “살롱의 심사위원들이 계속 나를 거부했다. 따라서 나는 재능이 없다. 나는 죽어야 한다.” 1866년 일이다. 당시 파리 살롱전은 황실 미술부가 관장했다. 살롱전에 나갈 화가들은 자신이 그린 유화 두세 점을 마감일까지 제출했다. 심사단은 몇 주에 걸쳐 차례로 그림에 투표를 했다. 심사에 통과하지 못한 그림에는 ‘R’이라는 탈락표시(rejected)가 찍혔다.1

 

파리 살롱전의 심사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작품은 원근법과 익숙한 예술적 전통을 따라야 했다. 현미경 수준으로 정밀하고, 제대로 마무리가 돼야 했으며, 형식에 맞게 표구돼야 했다. 서사적인 그림에서는 정확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분위기의 장면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 파리 시민들이 정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주제와 표현방식이 권장됐다.2

 

1865년경 마네 주위에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들었다. 대담하게 드러나는 붓터치, 원근감을 단순화시키는 독창적인 공간처리, 당시 제도권의 화풍과 타협하지 않고 새로운 재능을 발휘하고 싶은 화가들이었다. 모네, 시슬레, 르누아르, 바질, 세잔, 피사로. 이들은 살롱전 심사위원들의 기준을 따르는 대신 1874년 별도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인상파 탄생의 배경이다. 남들이 세운 기준을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나갔다.

 

인상파 탄생 배경에는 기술 발전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60년대에 튜브물감이 대량 생산됐다. 화가들은 튜브물감을 들고 화실을 벗어나 야외로 나갔다. 유화제작의 모바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동식 이젤, 접이식 팔레트, 야외용 화구함이 등장했다. 바람, 햇살, 풍광이 생동하는 현장에서 튜브물감은 진가를 발휘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튜브물감의 초기 수용자들이었다. 르느와르는 튜브물감이 없었다면 인상파도 없었을 것이라 단언했다. 화가들은 화실 밖으로 작업공간을 확장했고 인상파는 살롱전 너머에서 새 지평을 열어갔다.3

 

 

지방 편의점의 도전

‘와와(Wawa)’라는 편의점이 있다. 탄생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작은 마을로 필라델피아에서 가깝다. 펜실베이니아의 지명은 원래윌리암 펜(Penn)의 숲(sylvania)’에서 유래했다.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암 펜은 종교적 신념대로 노예제도, 인종차별, 전쟁에 반대했다. 원주민과의 유대를 중시했던 퀘이커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졌다. 와와(Wawa)는 인디언 원주민의 언어로캐나다 기러기를 뜻한다. 원래 농장으로 사업을 시작했던와와의 창업주도 퀘이커교의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점포 수 600개를 넘긴와와는 특이한 기록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비상장기업 매출 순위 40위에 올랐다. ‘와와 2013년 말 매출은 한화로 10조 원에 달한다. ‘와와 2008년 미국에서 커피판매 랭킹 8위에 올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스타벅스, 던킨도너츠, 맥도널드, 버거킹, 웬디스, 세븐일레븐을 바짝 뒤쫓고 있기 때문이다. 매장 수 1∼2만 개를 자랑하는 골리앗들과 비교하면 더욱 놀라운 숫자다. 2008년 미국 세븐일레븐의 점포 수는 6000개였고와와 587개였다.

 

‘와와’의 점포당 평균 매출은 세븐일레븐의 15배에 달한다. 600개의 점포 중에서 절반가량이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유소와 편의점이 통합돼 있는 미국에서와와의 점포유형은 특이하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특이한 것은와와스스로 자신들의 업을테이크아웃 레스토랑이라고 정한 것이다. <그림 3>와와1호점의 흑백사진이다. 큰 글씨로푸드마켓이라고 적어 놓았다. 탄생부터 식음 분야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그들이 농장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림 3> 와와 제1호점(1964)

 

 

‘와와’가 남진을 택한 이유

창업 후 50년 동안와와는 창업 근거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델라웨어, 버지니아 지역에만 선별적으로 출점했다.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반경 150㎞ 안에 전체 점포의 70%가 몰려 있다. 2009년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얼어붙었지만와와는 계속 성장을 기록했다. 금융위기가 진정되자와와 50년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결정을 내린다. 미국 최남단 플로리다에 향후 100개의 신규 점포를 출점하겠다고 밝혔다.

 

<지도 2> 미국 편의점와와의 전략적 중심지 확대경로

 

필라델피아에서 플로리다 올랜도까지는 운전거리로 약 1600㎞다. 자동차로 14시간30분의 거리다. 필라델피아에서 올랜도까지 운전을 한다면 95번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중간지대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가 있다. 왜 중간지역을 모두 건너뛰어 동부 땅끝에 해당하는 플로리다 지역을 제2의 전략지로 선택했을까?

 

<그림 4>와와 플로리다점(2013)

 

 

선벨트(Sunbelt)는 미국에서 기온이 가장 높은 지역을 말한다. 영화태양은 가득히의 제목이 어울리는 지역이다. <지도 3>에서 붉은색이 진하게 표시된 지역이 바로 선벨트 지역이다. <지도 3>에서 파란색으로 나타나는 북부 스노벨트(Snowbelt)의 반대의미로 만들어졌다. 선벨트는 서부의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해서 멕시코 접경 텍사스를 지나 동부의 플로리다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선벨트는 단지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온난한 기후만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미국 인구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상징한다.

 

<지도 3> 미국 연평균 기온 분포도

 

온난한 겨울 날씨는 수많은 은퇴자를 미국 남부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라틴계 미국 인구는 이미 흑인을 추월한 지 오래다. 선벨트의 일부 대도시에서 라틴계의 인구비율은 30∼50%를 넘기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인 라틴계는 낙태를 꺼리고 다산을 축복으로 여긴다. 이민자들이 더 많이 합류하고 대가족을 이루니 미국에서 가장 인구성장이 빠른 지역이 됐다.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고 장기적으로는 남미로 진출하기 위한 중간지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인구성장세, 풍부한 노동력, 남미로의 가교역할이 선벨트의 매력이다.

 

스페셜 와와

미국 선벨트가 모든 기업들에 희망의 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벨트의 특징은 모든 기업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와와의 전략적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일부와와고객들은 팬덤현상을 보여준다. 따로 팬카페를 만들고 페이스북에 100만이 넘는 열성 지지층이 만들어져 <뉴욕타임스> <ABC< SPAN>뉴스>가 따로 보도를 했을 정도다.4

 

편의점에 충성고객이란 단어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편의점이란 눈에 먼저 띄고 가까우면 찾게 된다. 브랜드를 굳이 따져 더 먼 곳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2014 4 <뉴저지신문>와와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소비자들이와와를 찾는 이유를 물었다. 모두 5171명이 답했다. 커피(21.9%), 주유(18.9%), 샌드위치(16.4%), 무료 ATM 수수료(11.1%), 아침식사(8.2%), 간단한 스넥(7.2%), 담배(5.2%), 복권(3.4%) 순으로 답했다. 53.7%가 먹고 마시는 이유로와와를 찾고 있다.

 

‘와와’ 경영진은 독특한 경영전략을 펼쳐가고 있다. 연간 한화 15000억 원에 달하는 ATM 수수료를 포기하는 대신 소비자들의 방문과 이로 인한 연관 판매를 유도해왔다. ‘와와의 커피는 10∼20가지로 진열돼 고객이 직접 따라 마시도록 설계했다. 호기(Hoagie)라는 이름을 가진 샌드위치는 10가지가 넘고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면 즉석에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스무디 같은 즉석 음료도 반응이 좋다. 손님의 취향대로 주문할 수 있는 즉석 메뉴가 강점이다.

 

<그림 5> 와와 매장 내부 커피 매대

(자료: 와와 공식 페이스북)

 

 

심층조사에서 고객들이와와를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커피도, 샌드위치도, 공짜 ATM 수수료도 아니라고 밝혀졌다. 편의점의 편리성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와와를 찾는 걸까? 고객들은와와의 사람들이 좋아서와와를 찾는다고 답했다. ‘와와직원들과의 친밀한 관계형성이와와마니아를 만들고 있다. ‘와와지분의 30%는 직원들의 몫이다. ‘와와는 창업 후 100년 넘게 지역 생산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편의점 사업에 진출한 50년 동안 지역 브랜드와 더불어 성장해왔다.

 

100년에 걸쳐 작은 동네에서부터 평판을 쌓아온 저력이 금융위기의 한파마저 넘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2011년 허리케인 아이린(Irene)이 미국 동부를 강타할 때와와경영진은 모든 매장의 문을 이틀 동안 닫기로 했다. 직원들을 일찍 귀가시켜 가족들을 돌보도록 배려했다. ‘와와마니아들은와와라면 그럴 만 해!” 하고 반응했다. 경영진이 임직원의 안녕과 행복을 적극 챙기니 임직원들의 근무만족도가 높아졌다. 지역 소비자들은와와매장에서 매뉴얼에 나와 있는 친절이 아니라 자기 회사를 사랑하는 진심 어린 친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와와’의 시도는 과학적 경영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와와 1997년부터 와튼경영대학원 산하 GIS연구소에 매출 예측 모델링을 의뢰했다. 기존 점포의 매출액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를 반영해 신규 점포의 예상매출액을 미리 점검한 뒤에 출점 여부를 결정해왔다. 10년 넘게 장기투자하며 매년 예측식을 고도화하고 있다.5  2005년에는 SAP의 비즈니스인텔리전스 솔루션을 도입해서 사내 분석역량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선발자의 선점포석

유통사업은 입지산업이다. 신세계그룹을 이끌어온 구학서 회장의 진단이다. “유통업은 입지선점이 가장 중요한 입지산업이다. 이마트는 점포를 120개까지 늘릴 수 있는 입지를 이미 선점해 놓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신제품과 서비스로 역전이 가능하지만 유통업에서는 좋은 입지를 먼저 확보한 기업을 따라잡는 것이 매우 어렵다.”6

 

국내 대형 할인점은 이마트가 선도해왔다. 외환위기 당시 신세계는 보유 중이었던 카드사 매각대금 3000억 원을 대부분 신규 입지를 확보하는 데 투자했다. 본격적으로 격화될 미래의 경쟁구도를 내다보고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입지를 선점한 것이다. 초창기 수도권에 주력하던 이마트 출점지는 후발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해 대도시 중심으로 경쟁이 격해지자 인구 20∼30만의 지방 중소도시에 과감하게 진출했다. 미리 확보해둔 입지가 있었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동일 시장에서 모든 기업이 선도자가 될 수는 없다. 후발주자가 경쟁에 진입하면 선도자의 지위는 도전받는다.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 새로운 사업에 선발주자가 되는 것만으로 우월적 지위가 영속된다면 비즈니스는 참 쉬울 것이다. 후발주자들의 도전은 거세고 집요하며 창의적이며 때론 위협적이다. 경쟁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전략과 전술의 창의적 구사는 늘 새로운 생각과 관점을 요구한다.

 

 

국내 인구는 502030으로 분포한다. 서울·경기·인천을 합친 수도권이 전체 인구의 50%를 차지한다. 대전·광주·부산·울산·대구 5대 지방광역시의 인구는 전체의 20%, 강원·경상·전라·충청·제주를 모두 합산하면 전체의 30%에 해당된다. 선발주자 이마트는 국내에서 가장 큰 시장인 수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최초 10개 매장 중 6개를 수도권에 포진시킨다. <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마트는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소재한 물류창고를 첫 번째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수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일산, 안산, 부평, 분당, 안양에 연달아 매장을 열고 멀찍이 제주, 남원, 부산, 김천에 지방형 매장을 실험한다.

 

1이마트와 홈플러스 최초 10개 매장의 출점대상지 비교

홈플러스가 남쪽으로 간 까닭

홈플러스는 매우 뒤처지는 후발주자였다. 홈플러스가 제1호점의 문을 연 1997 9월 초순에 이미 영업 중인 대형마트는 무려 40개에 달했다. 이마트 9개 점( 1), 킴스클럽(강남점, 야탑점, 과천점, 인천점, 일산점), 2001아울렛(당산점, 분당점, 안산점, 중계점), 월마트(남부점, 인천점, 일산점), 까르푸(중동점, 일산점, 둔산점), 하나로클럽(양재점, 파주점), 그랜드마트(신촌점, 화곡점), 빅마트(북부점, 주월점), 코스트코(대구점, 양평점), LG마트(일산점), 메카마트(동래점), 탑마트(진주점), 해태마트(광주점), 대한통운마트(전주점), 리치마트(양주점)가 앞서 시장에 진입했다. 그야말로 대형마트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출점 순서로 따지면 40등으로 출발한 홈플러스의 전략적 행보는 남녘에서 시작된다. 2001년 영등포점을 열기 전까지 서울시 진입을 뒤로 미룬다. 초반기 사업에서 홈플러스는 2가지 이유로 영남지역을 테스트베드로 정한다. 첫째는 새로운 한국형 할인점을 실험하기 위해서다. 매장형태, 제품구색, 차별요인을 실험하고 다듬기 위해서였다. 수도권에서 제일 멀리 떨어졌지만 안정적인 배후인구를 가진 영남지역을 선택했다. 둘째는 수도권에 비해 경쟁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영남거점 확보 후 수도권 진입으로 도전하고 이마트는 수도권 수성과 중소도시 선점으로 응전한다. 홈플러스는 매장형태에서도 선택적 대형화를 추구한다. 서울의 첫 매장인 영등포점의 경우는 15030㎡로 할인점 평균 영업면적 1만㎡의 1.5배를 선택했다. 넉넉한 주차장, 편안한 고객동선, 더 많은 제품구색(SKU·Stock-Keeping Unit)으로 인접 할인점보다 경쟁우위에 서고자 했다.

 

<지도 4, 5> 최초 매장 분포도 - 이마트(좌측)와 홈플러스(우측)

 

서로 다른 초반기 입지전략은 두 브랜드의 생각 차이를 보여준다. 이마트는 교외지역 매장비율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훨씬 높았다. 브랜드 파워가 강하기 때문에 부동산 비용이 높은 도심을 벗어나 교외지역에 매장을 만들어 고객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상권을 만들어간다는 전략이다. 반면, 홈플러스는 역발상을 시도한다. 부동산 비용이 높지만 도심 한복판 중심상업지구에 들어갔다. 초기비용이 높은 대신 고객방문이 용이하고 면적당 매출액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업을 바라보는 생각 차이

인상파는 프랑스 황실이 주관하는 살롱전(Salon de Paris)의 심사기준을 거부했다. 오랜 전통으로 굳어진 좋은 그림의 요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독자적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인상파의 첫날 관람객은 기껏 수십 명에 불과했다. “이런 짓은 정신병자들이 길에서 주운 돌을 다이아몬드라고 우기는 것처럼 웃기는 것이다.” 비평가들은 인상파의 시도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황실주관 살롱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작가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고흐는 그림 파는 사람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파리에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만들기 위해 몰입한다. 아버지와 머물던 네덜란드의 도시를 떠나 1185㎞ 남하를 선택한다. 고흐는 초기 인상파들의 작풍을 뛰어넘어 꿈틀대는 붓의 흐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작가로 산 10년 동안 전력을 다해 폭포처럼 자신의 열정을 캔버스에 쏟아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 그는 행복한 창조자로 생동감 속에 살았을 것이다.

 

‘와와’는 편의점에 대한 고정관념을 거부했다. ‘테이크아웃 레스토랑이라고 스스로의 업을 재규정했다. 농장경영이라는 태생적 조건을 강점으로 전환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지역 커뮤니티와 동반성장하며 직원들이 행복한 기업문화를 정착시켰다. 직원들의 만족감은 매장에 잠깐 머물다 가는 고객들에게도 전염됐다. 고객들의 고단한 하루하루의 일상에 작은 활력을 불어넣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지역언론은 이를 두고격려의 체험(Cheers experience)’이라고 호평했다.7  금융위기에 더 큰 자신감을 얻어 창업지역의 테두리를 박차고 1500㎞ 남진을 선택했다.

 

뒤늦게 국내 대형마트 시장에 뛰어든 홈플러스는 전략적 사고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한국 소비자들은 창고형 할인점의 제품박스만 가득했던 삭막한 진열대를 좋아하지 않았다. 홈플러스가 시도한 것은 백화점 같은 매장 분위기였다. 그래서 백화점에나 있던 문화센터도 제일 먼저 도입했다. 매장의 활력소를 확보하고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카센터, 레스토랑, 미용실, 치과, 약국, 세탁소도 도입했다. 이제 거의 모든 대형마트의 표준이 됐다. 그들의 신선한 실험은 서울에서 400㎞ 떨어진 남쪽 지방에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관점의 차이는 IQ 80점의 차이에 준한다. (Perspective is worth 80 IQ points).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가 남긴 명언이다. 더 유명한 명언도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인상파와 고흐는 과거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쪽으로 움직였다. ‘와와(Wawa)’와 홈플러스의 실험도 유쾌한 성과를 남기고 있다. 누구든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하면 창의적인 성취의 도약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남쪽이든, 동쪽이든, 어디든 새로운 생각의 공간을 찾아보자. 인상파 화가들의 미술전도 좋다. 신윤복, 김홍도, 김정희, 훈민정음 해례본이 전시된 간송문화전도 좋다.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다.

 

송규봉 GIS United 대표 mapinsite@gisutd.com

송규봉 대표는 ㈜GIS United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연세대 생활환경과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를 전공했으며 와튼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에서 GIS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미국 인터넷산업의 지도> <비즈니스 GIS>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등이 있다.

 

  • 송규봉 송규봉 | - (주)GIS United 대표
    -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
    - 와튼경영대학원, 하버드대 GIS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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