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by Map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일본의 군신(軍神)
러시아 황제는 격분했다. 일본이 러시아를 향해 전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유럽 발트해(Baltic Sea)에서 황제의 함대가 한반도 동해안을 향해 출발했다. 러시아는 발틱함대를 투입해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고 황제의 체면을 살리려 했다. 태평양함대만으로는 일본함대에 대항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발틱함대를 추가로 파견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을 제압하기 위해서 블라디보스토크에 황제의 함대를 더 많이 배치하려 했다.
황제의 위엄을 전달하기에 3만3000㎞의 길이는 너무 멀었다. 대륙 세 개를 경유한 것이다. 10월15일 유럽에서 출발한 발틱함대는 대부분이 증기선이라 중간중간 석탄 공급이 필요했다. 수시로 석탄을 보급할 수 있는 항구가 필요했다. 선발대는 영국과 협상이 풀리지 않아 아프리카를 돌아서 아시아를 향해 이동했다. 출발한 지 7개월이 지나서야 대한해협에 닿을 수 있었다. 이동 중 한반도와 일본의 해상조건에 맞는 전투연습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도 1)
일본의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한반도 남단 진해에 대기 중이던 연합함대를 출동시킨다. 진해항에서 쓰시마해협으로 가려면 거제도 칠천량을 굽어보고 부산 가덕도를 바라보며 태평양으로 우회해야 한다. 칠천량은 임진왜란에서 원균이 이끈 조선수군 300척이 하루 만에 궤멸된 패배의 바다였다. 동시에 일본 해전사에서 가장 눈부신 승리의 역사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도고 제독은 발틱함대에 승리하기 위해 1년 가까이 준비한다. 러시아함대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해로마다 정보시스템을 가동했다. 지도상 경위도 10분씩 구분해 구역번호를 정하고 구역별로 함정을 식별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군함들은 완벽하게 수리를 마쳤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단독, 소규모, 함대별로 엄격한 훈련을 반복했다. 전투계획에 따라 통신, 어뢰공격, 기동훈련을 기상이 허락하는 한 거의 매일 실시했다. 함대의 진형유지, 종렬이동, 가상훈련을 통해 다양한 모의전투를 수행했다.1
결전의 날. 도고 헤이하치로는 칠천량 승리의 기억을 뒤로 하고 ‘전쟁의 신’ 이순신 장군에게 묵념을 올리며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기원한다.2 러시아 태평양 함대와 일본함대는 전력상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막상막하의 대등한 전력이었다. 그러나 1905년 5월27일부터 28일에 걸친 쓰시마해전에서 일본함대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쥔다. 러시아는 8척의 전함과 5000명 이상의 병력을 잃은 반면 일본은 겨우 3척의 어뢰정과 116명의 병력을 잃었을 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도쿄의 황궁 정원에서 대연회를 열어 도고를 치하했다. 연회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축하주는 여순항에서 노획한 러시아산 샴페인이었다. ‘동양의 넬슨’이라는 별명을 얻은 도고 헤이하치로는 나중에는 ‘일본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다. 도고에 대한 국민적 신망은 높았고 황실에서도 그를 황태자 학교의 교장으로 7년간 초빙했을 정도였다.3 장차 일본 황제의 군사적 지식과 경험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데 도고 제독이 최고의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군신이 존경한 남자
도고 제독은 자신을 ‘동양의 넬슨’에 버금가는 군신이라고 치켜세우는 말에 “영국의 넬슨은 군신이라 할 정도의 인물이 못 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 이순신과 나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경남 진해에 일본해군의 사령부가 주둔했을 때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연례행사 중의 하나는 통영 충렬사에서 지낸 이순신 장군의 진혼제였다. 일본 해군성의 예산서 항목으로 비용을 지급하고 사령부의 장병들은 당일 진해에서 통영까지 이동해서 진혼제에 참석했다.4
이순신의 탁월함은 해군제독이라는 틀에만 갇히지 않다. 이순신의 전쟁경영이란 적을 섬멸하는 전투지휘뿐 아니라 군수, 병참, 보급, 징병, 부상자 처리에서부터 전함제작, 화포제작, 탄약생산, 농사관리, 소금확보에 이르는 전쟁의 모든 국면을 스스로 해결하는 경영의 전 과정에서 드러난다. 국가적 차원의 전쟁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의주로 달아난 피난 조정은 오히려 남해안의 수군 진영에 대해 종이나 탄약 같은 궁중용 소비물품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전시에 지방 관아는 수군에게 일정한 군량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피난민들의 경작지 이탈과 지방 관아의 부패 등으로 군량의 징수가 어려웠다. 실제로 이순신의 부대는 계사년 한 해 동안 한산수영에서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고 상당수의 병사들이 굶주려 죽는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말을 키우기 위해 농사를 금지한 섬들에 농민들이 들어가 곡식을 경작할 수 있도록 조정의 허락을 받아낸다. 이렇듯 이순신이 시련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악조건과 불운한 상황에 어떤 정서도 개입시키지 않는 데 있다. 오직 ‘사실’을 ‘사실’로만 받아들여 문제해결의 대안을 찾고 창의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에 전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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