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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웨이’ 핵심은 경쟁적 협력 시너지 경영으로 다각도 경쟁력을

송재용 | 135호 (2013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송재용 교수가 최근 출간한 삼성 웨이), (21세기북스)>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비관련 다각화를 추구하는 복합형 기업집단(conglomerate)은 선진국에서 1980년대까지는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기업 형태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복합형 기업집단은 자원배분과 경영관리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특정 사업에만 전념하는 전업형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이 잘 발달된 선진국에서는 급격히 약화 내지 해체의 길을 걸었다.

 

‘재벌’로 불리는 한국의 기업집단은 소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하에 각 계열사들이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는 선단식 경영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지급보증의 고리로 연결된 선단식 경영이 특정 계열사의 부실화로 인한 타 계열사의 동반 부실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대우를 포함한 다수의 기업집단이 붕괴되면서 시너지 창출을 위한 재벌의 선단식 경영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비판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의 개혁 및 정부 규제 강화에 반영됐다.

 

하지만 삼성은 달랐다. 대규모 기업집단인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해 왔다. 삼성은 TV,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등 전자산업의 주요 세트와 부품 사업에서 공히 글로벌 1위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각화되고 수직적 계열화된 체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략적 초점의 부재, 관료주의적 비효율성, 강한 계열사에 대한 의존적 행태로 인한 하향평준화 등의 문제점을 극복했다. 오히려 다각화되고 수직적 계열화된 체제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유기적 협업을 통한 융복합화 시너지를 창출해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 삼성은 주요 사업에서 세계적 초일류 기업들과 전방위적인 경쟁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스마트폰 분야의 애플을 비롯해 노키아, 모토로라, HP, 인텔, 마이크론, 소니, 델 등이 그들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 경쟁사 대부분이 전문 분야에 특화된 기업이라는 점이다. 삼성이 고도로 다각화되고 수직적 계열화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각 사업ㆍ제품 분야에 전업화된 세계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오히려 우월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삼성식 경영 속에 내재된 패러독스의 중요한 단면이다. 이처럼 다각화와 전문적 경쟁력을 동시에 달성하게 된 원천은 무엇일까?

 

 

경쟁적 협력 시스템의 개념과 중요성

 

삼성이 다각화와 전문화를 조화시키면서삼성식 패러독스 경영을 통해 글로벌 일류 경쟁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촉매역할을 한삼성 웨이의 근본 작동 원리는 삼성 특유의경쟁적 협력 시스템이다. 이는 신경영 이후 삼성이 진화, 발전시켜 온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미묘한 긴장관계로, 현재 삼성 내부 계열사나 사업부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용어다.

 

다각화된 사업을 하는 대규모 기업에서 내부적으로 긴밀한 협력과 치열한 경쟁을 조화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협력을 도모하다 보면 약한 계열사가 경쟁력 있는 계열사에 의존해 기업 전체의 역량이 질적으로 저하될 수 있다. 반대로 내부 경쟁을 도모하다 보면 역량 결집에 필요한 협력이 일어나지 않아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은 이러한 경쟁과 협력의 상충 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경쟁적 협력 시스템을 진화 발전시켜 오면서 협력이 필요할 경우에는 협력이, 경쟁이 필요한 경우에는 경쟁이 일어나 유기적으로 전체 최적화가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고안해 왔다.

 

복합형 기업이 시너지를 성공적으로 창출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시너지 창출을 위해 계열사 간, 사업부 간 협력을 강조하다 경쟁력이 약한 계열사 내지 사업 부문이 경쟁력이 강한 곳에 의존적으로 기생함으로써 후자의 경쟁력마저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GE의 잭 웰치 회장도 본격적인 계열사 간 협력을 통한 시너지 경영의 드라이브를 걸기 전에 먼저 각 계열사의 경쟁력 및 경쟁적 지위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강한 계열사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할 때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창출되고 비용이 절감돼 시너지가 창출될 확률이 높아지지만 강한 계열사와 약한 계열사 간의 협력을 반강제적으로 도모할 경우 강한 계열사만 피해를 보고 약한 계열사는 의존적이 되면서 시너지는 고사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러한 시너지 경영의 성공 조건에 눈을 뜨게 됐다. 신경영 이후, 특히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이후에는 계열사/사업 부문 간에 꼭 필요한 경우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추구하면서도 시장 경쟁 메커니즘을 적극 도입해 경쟁과 협력의 조화를 추구했다. 필자는 신간 <삼성 웨이>에서 이러한 삼성 특유의 경쟁과 협력의 조화 체제를그룹 내부적인 경쟁적 협력(internal co-opetition)’ 체제라고 이름 붙였다.

 

co-opetition’이라는 용어는 게임이론을 기반으로 네일버프(Nalebuff)와 브랜든버거(Brandenburger) 등이 주창한 개념으로서 경쟁자가 동시에 보완자(complementor)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니와 삼성은 경쟁자인 동시에 보완자다. 두 회사는 TV 등 가전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신제품의 기술 표준을 정립해 시장 자체를 키우는 과정에서 S-LCD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LCD 패널을 공동으로 생산했다. 본래 경쟁적 협력의 개념은 독립적 기업들 간의 경쟁과 협력의 조화를 도모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필자가 정의한 내부적인 경쟁적 협력 체제는 그룹 내부에서 계열사 간, 또는 사업부 간의 경쟁과 협력의 조화와 긴장 관계를 촉진시킨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기존 게임이론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필자가 제시하는 내부적인 경쟁적 협력 개념은 아이젠하트(Eisenhardt)와 갈루닉(Galunic)이 진화생물학에서 차용한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진화생물학에서 공진화란 여러 종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적 변화를 일컫는다. 필자는 공진화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기업 내 사업부 간의 협력에 적용하면서 다각화된 기업 내에서 사업부 간 협력관계는 필요하지만 이것이 고착화되는 경우 오히려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따라서 협력만을 강조해서는 안 되고 조직 내에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만 다각화된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경쟁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학술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다각화된 기업그룹에서 경쟁과 협력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는 경쟁적 협력 체제 구축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삼성이 성공적으로 진화, 발전시켜 온 경쟁적 협력 체제는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삼성식 경쟁적 협력의 메커니즘

 

계열사/사업부 간의 협력과 경쟁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낼 것이냐는 시너지 경영을 추구하는 복합형 기업 그룹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신경영 이후 삼성이 경영시스템 구성요소의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난 것이경쟁적 협력체제다. 신경영 혁신 이전의 삼성은 계열사 간, 사업부 간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에 훨씬 높은 가중치를 뒀다. 이러한 협력 위주의 경영은 소유경영자를 구심점으로 해 공유된 조직문화와 가치에 기반을 둔 강한 결속력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그 나름대로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가 지속되자 각 사업이 전문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생존이 가능해 경쟁력이 약한 계열사나 사업부가 경쟁력이 강한 계열사나 사업부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동반부실과 하향 평준화의 우려가 커졌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삼성도 심각한 경영부실과 적자를 경험하게 되자 삼성은 계열사/사업부 간 협력 위주에서 내부경쟁 위주로 경영의 강조점을 급격히 바꿨다. 이를 통해 형성된 삼성식 경쟁적 협력 구조는 다음과 같다. (그림1)

 

먼저 삼성에서 경쟁력 협력의 가장 중요한 기반인 소유경영구조와 복합형 사업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계열사 간, 사업부 간 경쟁과 협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엄정한 보상과 승진제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내부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삼성에서 특별하게 활용하는 내부거래의 시장 메커니즘 도입과 듀얼 소싱, 동일 사업에 대한 병행 투자, 상시적 사업구조조정을 통한 위기감 고취에 대해 각각 설명한다. 삼성은 위의 방법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활용함으로써 시너지 경영 추진 시 흔히 발생하는 하향 평준화의 위험성을 줄이고 상향 평준화를 촉진할 수 있었다. 기업그룹이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별 사업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부적으로 잘 구현한 것이다.

 

 

경쟁적 협력의 기반

 

삼성의 소유지배구조와 복합사업구조는 결함을 지니기 쉬운 구조들이지만 삼성은 이들을 활용해 계열사 간 치열한 경쟁과 긴밀한 협력을 동시에 유도함으로써 경쟁력 창출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경쟁력 협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자.

 

1)소유경영구조와 미래전략실의 역할

 

먼저 소유경영구조가 경쟁력 협력에 미치는 영향부터 살펴보자. 삼성에서 경쟁과 협력은 소유경영체제에 기반한 강력한 리더십에서 나온다. 그룹 경영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이건희 회장과 미래전략실이 경쟁과 협력의 구심점으로서 그룹 전체 차원에서의 최적화를 추구해 왔다. 이들은 계열사 전문경영자들의 경영의사결정을 지원하기도 하고 계열사 차원의 부분 최적화를 제어하는 역할을 해 왔다. 삼성에서는 소유경영자가 전문경영인의 승진 및 임면에 관여해 그룹 차원의 최적화에 기여한 전문경영인을 우대함으로써 치열한 경쟁과 긴밀한 협력을 동시에 촉진할 수 있다. 전문경영자의 인사와 보상에 대한 결정이 계열사 이사회 차원에서만 이뤄진다면 현재 삼성에서 나타나는 정도의 계열사 간 경쟁적 협력 체제는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삼성의 계열사들은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절대적 성과치뿐만 아니라 타 계열사나 사업부와 비교한 상대적 성과에 의해 임원들의 보상과 승진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강력한 성과주의적 보상과 승진제도 때문에 협력을 통해 경영성과를 크게 높일 수 있을 때는 자발적이고 긴밀한 협력이 일어나며 그 범위와 강도 면에서 독립적인 기업 간의 협력보다 광범위하고 긴밀하다.

 

반면에 한 부문이나 개인이 희생을 해 전체의 성과를 높여야 할 때, 협력의 효과가 어느 한 부분에만 긍정적으로 나타날 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장기적으로만 효과가 나타날 때는 자발적인 협력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삼성을 먹여 살릴 만한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을 위한 계열사나 사업부 간의 자발적 협력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처럼 계열사들이 서로가 장기적으로 윈윈할 수 있음에도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전체 최적화를 위해 이건희 회장과 미래전략실이 조정자로 개입하기도 한다.

 

 

2)복합사업구조의 역할

 

다음으로 복합사업구조가 경쟁적 협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복합사업구조가 있었기에 가치창출을 위한 사업 간 협력과 가치배분에서의 사업 간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삼성은 복합사업구조로 인해 계열사, 사업부와 같이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추진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업단위를 둘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객관적 업적 측정과 업적의 상대적 비교에 근거한 보상 방법으로 치열한 내부 경쟁과 긴밀한 협력을 동시에 유발할 수 있었다. 특히 삼성은 전자사업 분야에서 외국의 다른 전자업체들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수직적 계열화를 심화해 경쟁적 협력이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고 이들 간의 경쟁력 협력을 통해 빠른 속도로 글로벌 일류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3)엄정한 내부상대평가와 보상

 

삼성은 신경영 혁신 이후 모든 단위에서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고 협력이 요청되는 곳에서는 철저한 협력이 일어나도록 평가와 보상시스템을 재설계했다. 삼성에서는 계열사, 사업부, , 개인 수준에서 업적 평가가 행해진다. 업적 평가에서는 목표 달성도를 평가하는 절대평가 방식과 서로의 성과를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상대평가 방식이 동시에 활용되고 있고 평가 결과는 해당 임직원의 승진, 임면, 연봉, 보너스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평가와 보상에 있어서 철저한 업적주의가 작동하면서 치열한 내부 경쟁과 협력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엄정한 평가 시스템은 맹목적인 시너지 추구 경영의 역작용을 줄이고 적자생존의 내부 경쟁을 기반으로 한 상향 평준화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각 계열사 및 사업부는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업이나 제품의 특성에 부합하는 자원과 역량을 구축해 외부적으로는 경쟁자, 특히 전업형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해왔고, 내부적으로도 그룹 차원에서 정해진 엄정하고도 높은 수준의 평가 기준에 의해서 다른 계열사나 사업부와 끊임없이 비교 평가돼 왔다.

 

이와 같이 내부평가 시스템이 잘 작동하다 보니 계열사의 사장이나 사업부의 장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외부 경쟁자보다도 실적의 상대평가 대상인 내부 경쟁자를 더 의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계열사의 사장들은 타 계열사보다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타 계열사와 거래 조건을 두고 치열하게 협상한다. 계열사들의 상대적 성과 평가 결과에 따라 이들의 연봉 수준, 연임 여부, 더 큰 계열사 사장으로의 전임 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계열사 내부의 사업부 책임자, 사업부 내의 팀장이나 팀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상대적 업적 평가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보상의 크기가 매우 크기 때문에 조직의 각 수준에서 철저한 경쟁이 중첩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휴대폰을 생산하는 무선사업부는 반도체사업부와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실적 경쟁을 벌인다. 더 높은 성과를 내는 사업부의 임원들이 더 높은 경영진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계열사 간 경쟁을 유발하는 요소인 계열사 성과에 근거한 보상과 승진이 계열사 간 자발적 협력을 유발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자기 계열사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계열사와 자발적이고 과감한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 계열사 간의 자발적 협력의 범위와 강도는 독립적인 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보다 훨씬 폭이 넓고 강도가 크다. 금전적 보상에 추가해 이건희 회장과 미래전략실에서 계열사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통제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고삼성의 계열사들은 하나라는싱글 삼성의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4)내부거래의 시장 메커니즘 도입과 듀얼 소싱

 

삼성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수직적 계열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내부거래에도 엄정한 시장거래 메커니즘을 도입했다. 계열 부품/소재 부문에 끊임없는 생산성 및 품질 향상, 원가 절감 압력을 가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그룹 내부에서 생산해 공급하는 소재나 부품도 가능하면 외부업체로부터 동시에 구매하는 듀얼 소싱(dual sourcing)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더더욱 내부 공급 계열사나 사업부를 압박해 왔다. 예를 들어 TV사업에서는 관계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패널을 공급받고 있음에도 샤프 등 외부업체로부터 패널을 병행 구입해 왔다.

 

그 결과, 최근에는 계열사 간 또는 사업부 간 거래에도 외부 공급업체에 비해 별다른 특혜는 없으며 품질, 가격, 납기 면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예컨대, 2001년에 삼성전자는 전해콘덴서 납품 경쟁에서 관계사인 삼성전기를 탈락시켰다. 이 사건은 삼성전기에도 큰 자극을 줬고 삼성전기의 고부가가치 제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가 세계적 수준의 품질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또한 삼성전자 LCD사업부는 LCD부품인 컬러 필터(color filter)를 사업부 내부에서 직접 생산하기도 하지만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한국 자회사인 동우화인켐로부터도 공급받는다. 두 제품을 철저히 비교한 후 사업부 내부에서 생산하는 물건이 스미토모의 것보다 품질이 낮거나 납품가가 높으면 즉시 질책과 경고 메시지를 준다. 계열사 내부에서삼성전자는 우산이 아니라 채찍 역할을 하고 있다” “외부고객보다 삼성전자가 더 무섭다” “외부 거래처도 삼성전자만큼 혹독하지는 않다는 불평이 터져 나올 정도다. 특히 정보와 기술 동향 파악을 위해서라도 전체 구매의 30% 이상은 외부로부터 구매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확고한 방침이다. 이런 방침은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 비중이 높은 계열사들에 자극을 줘 삼성전자라는 내부고객에게 안주하기보다는 외부 시장개척에 힘을 쏟도록 만든다.

 

5)동일 사업에 대한 병행 투자

 

삼성의 각 계열사와 사업 부문은 그룹 내 타 계열사 및 사업 부문과 직접적인 내부 경쟁에 직면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계열사가 새로이 생겨나는 사업 분야에 동시에 진출하는 예도 있다. 어떤 기술적 대안이 더 좋을지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그룹 내부에서 동일한 프로젝트를 여러 곳에서 수행하도록 해 경쟁을 자극하고 개발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 카메라 모듈 분야에서 삼성전기와 삼성테크윈은 각각 최신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벌인 바 있다. 또한 OLED 분야에서도 2008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의 합작법인을 출범하기 전까지 삼성전자 LCD 총괄과 삼성SDI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러한 내부경쟁은 지나칠 경우에는 자원의 중복으로 인한 손실과 전략적 부조화로 인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관리가 된다면 불연속적인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과 운영상의 유연성을 창출할 수 있다. 또한 적자생존의 내부적인 도태 메커니즘을 통해 기존 조직이 흔히 빠지기 쉬운 현실에 안주하려는 타성을 깨고 변화와 혁신을 위한 동기부여를 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성과가 좋은 부문에 파격적인 보상을 지급하는승자독식의 기업문화가 자리잡은 삼성에서 이러한 경쟁은 단순히 스파링 수준이 아니라 진검승부 수준이다.

 

6)상시적 사업구조조정을 통한 위기감 고취

 

삼성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은 언제든지 정리한다는 상시적 구조조정 개념이 정착되면서 계열사나 각 사업 단위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관계사를 무조건 도와주기보다는 자신의 경쟁력 제고를 최우선으로 하게 됐다. 이에 따라 그룹 내 사업 부문 간의 거래, 특히 이전가격에 관해서 각 사업 부문들은 시장가격에 의거해 철저히 합리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사업 부문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한 식구라고 해서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는 냉철한 경쟁 질서가 그룹 내에서 형성됐다.

 

결언

 

경쟁적 협력 시스템이 정착된 삼성에서 관계사나 타 사업부는 언제나 최고의 경쟁자이자 협력자라는 모순된 위치에 있는 존재다. 평소에는 계열사와 사업부들이 내부 경쟁조직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아 금전적인 보상이나 승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래서 사업부 간 내부 이전가격을 결정할 때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하지만 애플이라는 공포스러운 경쟁자가 출현하거나 함께 협력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사업이 생겼을 때는 각종 TFT, 위원회를 구축하고 전 그룹 차원에서 협력체제를 갖추고 일사 분란하게 역량을 결집한다. 이러한 경쟁적 협력시스템을 바탕으로 전문화를 가로막을 수 있는 다각화를 오히려 전문적인 경쟁력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계열사 간의 협력만 강조될 때는 현재 일본 기업에서 관찰되듯이 구조조정에 난항을 겪으면서 진출한 모든 사업영역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삼성은 경쟁적 협력시스템을 바탕으로 계열사 자원들의 이합집산을 통한 사업포트폴리오 조정을 할 수 있었고 구조조정도 폭과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실행해 낼 수 있었다.

 

특히 삼성은 경쟁메커니즘을 통해 다각화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무임승차와 타 계열사에 대한 의존성을 억제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직적 계열화 체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계열 부품과 소재의 생산성 및 품질 저하 문제는 내부 거래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 해결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아 실시한 사업구조 조정은 각 계열사와 사업들이 본격적으로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성과가 좋지 않은 사업은 퇴출시키고 핵심사업에 자원과 역량을 몰아주는선택과 집중전략이 전격 도입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삼성에서는 매년 사업 경쟁력을 평가해 왔기 때문에 각 회사와 사업부는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경쟁력이 없는 사업부는 회사 차원에서 스스로 정리하도록 했다. 결국 삼성은 외부 시장에서보다 더욱 치열한 내부 경쟁을 촉발함으로써 다각화된 기업이 갖기 쉬운 의타성이라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삼성은 협력메커니즘을 통해 전문화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계열사 및 사업부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다. 계열사 및 사업부 간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이 행해지고 있으며 다양한 경영방식이 도입됐다. 비관련 다각화 관계사 간에는 경영인프라, 브랜드, 디자인을 공유함으로써 시너지를 내고 있다. 관련 다각화나 수직적 계열화 관계에 있는 계열사들끼리는 정보, 기술, 지식을 공유함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유통, 고객, 협력사까지도 공유한다. 이런 방식으로 내부 시너지를 창출해 각각의 사업부와 계열사가 고도화, 정예화하자 그 결과는 여느 다각화 기업이나 전업형 기업을 능가하는 전방위적인 경쟁력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삼성과 유사하게 다각화된 기업으로 발전해 왔다. 삼성처럼 다각화되고 수직적 계열화된 기업 구조하에서도 전문적 경쟁력을 글로벌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삼성이 지난 10 여 년간 구축해 온 것과 같은 경쟁적 협력 시스템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소위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대세가 되면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작금의 한국적 기업 환경에서는 무조건적, 일방적 협력 시스템을 포기하고 경쟁적 협력 시스템으로 변신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 한국의 다각화된 기업들은 삼성의 경쟁적 협력 시스템을 잘 벤치마킹해 볼 필요가 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 jsong@snu.ac.kr

필자는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대 와튼(Wharton)스쿨에서 박사를 취득한 후 컬럼비아(Columbia), 연세대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경영학회, 유럽국제경영학회, 한국경영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Columbia, 서울대에서 최우수강의상을 수상했고 등 저명 저널에 논문을 다수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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