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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멀리 보는 장수를 써라

임용한 | 10호 (2008년 6월 Issue 1)
현대전은 총력전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전쟁은 언제나 총력전이었다. 그래서 전쟁은 영웅을 낳는다. 전쟁터에서 리더의 역할이 특별히 중요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리더에게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능력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전쟁 속에서 수많은 영웅을 낳았다. 그중에서도 지도자, 최고 지휘관급 인물들을 살펴보면 두드러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평화기라면 결코 그 자리에 서지 못했을, 속된 말로 배경과 신분이 부족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명장 을지문덕은 귀족이었을까?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외침(外侵)은 수 양제의 침공이었다. 이 전쟁에서 고구려군을 지휘한 인물이 을지문덕이다. 그러나 을지문덕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전혀 없다. ‘삼국사기’에서는 가계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고 을지문덕이 평민이나 하층민 출신이라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시 최고 사령관이 되려면 최소한 국왕의 아들, 동생, 사촌이거나 서열 5위 안에 드는 정통 귀족 가문이어야 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무 기록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전시가 아니었다면 고구려군의 총사령관 지위에 오르기 곤란한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삼국 통일을 이룩한 김춘추(태종무열왕)와 김유신은 왕족이다. 위에서 제기한 가설에서 벗어나는 인물로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김춘추는 지증왕의 손자로 왕족 중에서도 최고의 정통성을 갖춘 인물이다. 그러나 지증왕이 무능과 문란한 사생활로 왕위에서 쫓겨나면서 김춘추 집안은 왕위에서 멀어졌다. 왕위계승 1순위 인물은 왕이 되었을 때는 괜찮지만, 왕이 되지 못했을 때는 경계대상 1순위가 된다. 김춘추는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고 사촌에게 넘어간 왕위를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과 가문의 생존을 위해서 조부와 달리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치가가 됐다. 그는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고구려, 왜국, 중국으로 돌아다니며 외교전을 폈다. 이 과정에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김유신은 외형만 진골이고, 본질은 가야왕족이다. 정통 신라왕족들은 김유신 집안과 혼인하기도 꺼려했다. 김유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안보다 훨씬 격조 높은 왕족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야반도주까지 해야 했다. 김유신도 자신의 여동생과 김춘추를 결혼시키기 위해 혼전 관계를 주선했다. 여동생이 임신을 했지만 그래도 결혼이 쉽지 않자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여동생을 불태워 죽인다는 쇼를 한 끝에 김춘추와 간신히 결혼시켰다.
 
이 일화만으로 본다면 김유신가(家)의 출세기는 별로 교훈적일 것도 없다. 그러나 최근에 발견된 ‘화랑세기’는 김유신만이 아니라 그의 형제들이 모두 남들이 가지 않는 최전선에 나가 싸웠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사실 김유신가가 용병처럼 전쟁에 동원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조부 때부터였다. 김유신의 집안이 큰 공을 세워갔으나 신라 왕족들은 여전히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노력과 헌신을 거듭했으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기개발을 하면서 능력을 쌓았다. 신라가 전면전 상태로 돌입하자 신라 왕족들은 전투로 단련된 이들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진정벌을 지휘한 윤관과 오연총은 정통 문관으로 장원급제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무명 집안 출신이었다.(윤관의 파평 윤씨가가 명문가로 자리잡은 것은 윤관 이후의 일이다.) 배경 좋은 관료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윤관과 오연총은 문관으로서 당대의 문장가이면서도 여진정벌에 종군한 것이다. 그렇다고 막사에서 지휘만 한 것도 아니다. 몸소 최전선에 서서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쳐내고 부상을 당하면서 싸웠다.
 
망한 나라의 왕족’이 살아남는 법
고려시대 묘청의 난이 발발했을 때 정부군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김부식이다. 정부군은 3군으로 구성되었는데, 김부식이 중군(中軍)을, 동생 김부의가 좌군(左軍)을 지휘했다. 이 놀라운 가족적 군대 편성과 김부식이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라는 사정 때문에 이 집안은 최고 귀족가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망한 나라의 왕족’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사람들이다. 망한 왕족이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은 가문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밖에 없다. 김부식은 모두 4형제였는데, 맏형은 윤관을 따라 여진정벌에 종군해서 선발대를 이끌고 싸웠다. 나머지 3형제는 모두 과거에 급제해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전략가가 됐다.

변혁의 시대를 보면 최고 명문가에서 편안하게 자라난 인물이 지휘봉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지극히 형식적인 경우다. 역사를 통해 보면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집정자들도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신분차별과 권력세습이 심하던 시절에도 항상 이런 인물들을 양성했다가 전시에 활용했다.
 
전시, 변혁기에 이런 인물들이 필요하고, 그들이 특별한 활약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안과 배경이 좋다고, 온실에서 자라난 인물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무능했던 것은 아니다.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국가와 가문에 대한 책임감, 성취욕과 목적의식도 투철하고, 남보다 일찍 중요한 관직을 역임하면서 풍부한 국정경험을 쌓은 인물도 많다. 그러나 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다르다.
 
전시에는 평화시에 겪을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인간 행동도 끊임없이 변한다. 끝없는 긴장과 압박, 좌절과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투지와 모험정신도 필요하다. 모든 것이 준비되고, 늘 안정적인 상황에서 살아온 인물들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영역, 경험해보지 않은 소재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을 가지고 역경을 극복하며 살아온 인물을 당해낼 수 없다.
 
여기서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이라고 말하면 임기응변과 대응능력을 연상하기가 쉽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분야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비전,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는 눈을 말한다.
 
누구보다 멀리 전체를 본 김부식
이런 능력을 갖춘 대표적 인물이 김부식이다. 김부식을 향해 수구적, 보수적 인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정말 커다란 실수다. 김부식은 귀족층의 수장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당대 인물 중에서 누구보다 멀리, 부분보다는 전체를 볼 줄 알았다.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김부식은 평양성을 포위했다. 자고로 반란과 쿠데타는 최대한 빨리 진압하는 것이 철칙이다. 연쇄반응과 혼란을 틈탄 2차 반란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부식은 자신에 대한 모함과 해임 논의가 일고 있었는데도 무려 2년 동안 장기전을 폈다. 무력진압이 아닌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반란과 진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피를 보더라도 조기 진압을 하는 것이 옳다. 김부식 시대에 볼 수 있었던 모든 역사책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러나 김부식은 이렇게 말한다. “반란은 조기 진압해야 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부식은 고려라는 전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평양성, 즉 서경(西京)은 고려가 건국할 때부터 왕실에서 직접 개척하여 왕실의 직영지와 같은 곳으로 삼은 지역이다. 고려 왕실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서경의 군대와 주민의 도움을 받아서 진압해왔다. 비록 지금 반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서경을 무력으로 진압하면 왕실과 서경 주민의 관계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 김부식은 예상했다. 게다가 서경은 북방 방어의 핵심지역이었다. 왕실 약화는 귀족층이 더할 나위 없이 바라는 바일 것 같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균형과 견제를 상실한 권력은 자멸한다. 간을 고치기 위해 심장을 들어낸다면 그것은 치료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史實)은 다양한 인재 양성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해준다. 흔히 우리는 고대와 중세 시대에 엄격한 신분제와 폐쇄적인 정치체제가 유지됐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귀족가문과 문벌이 득세하던 시기에도 자수성가형 인재를 등용하고 포용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부 기업들은 고위 간부를 거의 명문대 출신으로 구성하고 있다. 물론 안정적 시기에는 이런 인적 구성에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환경이 급변할 때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간부들만으로 문제에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귀족 출신과 자수성가형 인재를 고르게 활용한 선조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도 맡고 있다.
  • 임용한 임용한 |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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