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ic Communication
TV 드라마, 영화, 소설.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주인공이 다양한 사건을 겪고 그 속에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에는 ‘갈등’이 있다. 갈등을 풀기 힘들수록, 그래서 주인공이 점점 더 곤경에 처할수록 우리는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 그러다 그 갈등이 ‘해결’되는 순간, 우리는 짜릿함을 느끼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갈등’은 짜릿함은커녕 ‘고통’만 준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항상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든 일은 항상 나에게만 생기는 걸까’라며 원망한다. 한 설문조사 결과,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퇴사나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무려 76.8%가 ‘그렇다’고 답할 정도1 로 많은 사람들에게 갈등은 심각한 고민거리다.
‘갈등’에 대한 상반된 반응. 이유가 뭘까? 드라마 속의 갈등은 나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드라마 내용이 아무리 심각해도 우리는 ‘주인공이 언젠가는 멋지게 해결할 거야’라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드라마 속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문제 해결 과정을 ‘짜증’이 아닌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즉 나의 일상에 닥친 갈등에 대해서는 어떤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지라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지’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갈등이 심각해 질수록 ‘절정으로 향해간다’고 인식하기는커녕 ‘모르겠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기 쉽다.
자, 그럼 명료해졌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의 갈등 구조를 즐기는 것처럼 내 삶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갈등에 당당히, 그리고 긍정적으로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가 ‘갈등’에 대해 갖고 있는 3가지 오해를 바로잡아보자.
첫 번째 오해. 갈등, 없는 게 좋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2시간, 그리고 차로 또 한 시간 반을 달려야 하는 외딴곳. 이곳이 요즘 인기 여행 코스로 뜨고 있다고 한다. 바로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시설인 ‘싼샤댐’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 때문. 산샤댐은 세계 최대라는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다. 홍수 때 1초에 약 10만㎥를 방류할 수 있는 최대의 시설이라는 것은 기본이고 세계 최대의 총공사비(공사비가 209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37조6200억원), 댐 건설로 인한 수몰 면적 1084㎢로 세계 최대 (서울 면적(605㎢)의 1.8배가 넘는다) 등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
이런 댐이 설계되고 완공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이 댐의 건설을 책임진 설계 담당자에게 물었다.
“싼샤댐이 성공적으로 완공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이에 대한 답변이 놀라웠다. 그는 “댐 건설에 반대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사실 싼샤댐은 건설되기까지 아주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댐을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는 1919년 쑨원(孫文)에 의해 나왔다. 그런데 최종 결정은 자그마치 73년이나 지난 후인 1992년 4월3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표결에 붙여져 이뤄졌다. 수많은 문화재가 물에 잠겨야만 하고 천문학적인 이주 비용과 건설 비용이 드는 일에 반대 의견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중국’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도 기권을 포함한 반대 의견이 32.9%나 나왔다.
하지만 “그래서 싼샤댐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고 설계 담당자는 말했다. 엄청난 반대 여론을 뚫고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무리해야 했기에 설계 때부터 많이 고민하고 신경 써야만 했다는 설명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 최대의 댐을 성공적으로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싼샤댐 건설에 숨겨진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갈등은 ‘있는 것’이 좋다는 것. 그래서 많은 조직행동론 연구자들은 말한다. 적당한 갈등은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그림1)
하지만 적정 수준의 갈등이 있다고 무조건 성과가 높아지거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이런 갈등을 ‘건설적’ 갈등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켜야 할 4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직접적’ 대립. 문제의 원인이 된 당사자와 직접 대립해야 한다. 뒤에서 수근 대거나 애꿎은 상대에게 나쁜 말을 퍼트리지 말고 당사자와 직접 풀 것, 이게 첫 번째다. 쉬운 예로, 부부 싸움 상황을 생각해 보자. 어떤 부부는 부부 싸움을 할 때 아이를 메신저로 활용해 “너희 엄마처럼 살지 마라” “너희 아빠를 만난 게 인생 최고의 실패다”라며 싸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갈등을 다루는 것은 가정의 행복도를 낮추는 가장 빠른 길이다.갈등 상황에서의 메시지는 누구를 통해서가 아닌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메신저를 쓰지 않고 직접 만나는 것, 그것이 첫 번째 원칙이다.
둘째는 ‘객관적’ 대립이다. 즉, ‘사실(fact)’ 위주로 이야기하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당신과 의견 충돌이 생긴 부하 직원 박 대리에게 “당신은 항상 고집이 너무 세. 그러니까 매번 나랑 이렇게 부딪히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사실인가? 아니다. 이 말은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사실이란 “박 대리와 내가 이야기를 할 때 지금까지 나온 5개 안건 모두 당신의 주장을 양보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막연한 추론이나 들리는 소문만 가지고 갈등하지 마라. 정확한 관찰을 통한 객관적 사실만을 갖고 토론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셋째, ‘긍정적’으로 대립하라. 갈등 해결에 서투른 사람일수록 과거의 문제에 집착한다. 남편의 잦은 술자리 때문에 화가 난 부인. 갈등 관리가 안 되는 부인은 “당신은 옛날부터 술을 좋아해서 술만 먹고…”라며 잔소리한다. 하지만 현명한 부인이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주일에 술 몇 번 먹을 거야?” 건설적 갈등이 되려면 ‘과거’가 아닌 ‘미래’, ‘문제’가 아닌 ‘해결책’을 갖고 만나야 한다.상대와 내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한 방향에 서서 문제를 함께 바라보려는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마지막, 네 번째 원칙은 ‘적시’의 대립이다. 많은 사람들이 갈등 상황에 대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언젠가는 해결되겠지’라고 체념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혼자 끙끙 앓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돼서야 “지난 번 그 일, 화가 났었어”라고 말한다. 이런 자세는 갈등 해결에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갈등이 곪아 터지기 전에, 그래서 내 마음 속에서 상대가 ‘나쁜 사람’이 되기 전에 대화를 시작하라.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러한 건설적 대립의 4가지 원칙을 업무 현장에 적극 활용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글로벌 기업 인텔(Intel)이다. 인텔의 조직원들은 회사 내부나 외부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덮어두지 않는다. 대신 열띤 토론과 논쟁을 통해 발전적 결론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인텔의 경쟁력이다.
경영 구루 톰 피터스가 이런 말을 했다. “두 사람이 업무에 대해 항상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면 그중 한 사람은 불필요한 사람이다.” 상대와 다른 의견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오해. 갈등, 참는 게 좋다?
“친구랑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 넓은 내가 양보한다’고 자위하며 갈등 상황을 참는 게 미덕인 양 행동한다. 하지만 조직에서 이런 태도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최근 이를 증명하는 ‘심각한’ 설문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직장생활 중 억울하고 답답할 때 이를 풀지 못해 생기는 속병을 앓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2.5%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심지어 본인의 답답함을 풀지 못하는 것 때문에 10명 중 8명은 ‘퇴사를 생각하게 된다’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협업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58.5%)’ ‘애사심이 떨어진다(50.9%)’ ‘집중력이 떨어진다(47.2%)’는 대답도 많았다.3 결국 갈등을 참느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조직의 성과 달성도 먼 나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
가끔은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2012년 8월, 서울 여의도에서 벌어진 칼부림 사건. 가해자는 “전 직장에서의 갈등 때문에 범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직장 내에서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갈등이 끔찍한 사고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갈등 상황을 겪고 나면, 그리고 이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화가 생긴다. 그 화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 힘은 엉뚱한 데로 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바로 폭력이 생긴다. ‘화’는 가만히 담아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증발하는 게 아니라 겹겹이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하다간 화가 엉뚱한 곳으로 튀어 나오게 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은 이를 ‘수평폭력’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근원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거나 나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대신 분노를 드러내는 현상을 의미한다.4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말하는 사건들도 모두 이러한 ‘수평폭력’의 결과다.
그럼, 수평폭력으로 번지기 전에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없을까? 고대 로마시대의 지혜를 빌려 그 방법을 찾아보자.
옛날 로마 사람들은 부부 싸움이 격해지면 ‘비리플라카 여신의 신전’에 찾아 갔다.5 신전에 “4주 후에 만납시다” 같은 해결책을 내려주는 TV 가정 법원 속 신구 선생님이 있는 게 아니다. 그곳엔 아무도 없다. 부부 싸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렇다. 잔뜩 화가 난 부부는 여신상 앞에서 각자의 분노를 쏟아낸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화를 뱉어 낼 때 옆에 있는 다른 한 명은 반드시 침묵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른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각자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한 사람이 시작하는 형태로 서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이야기한다. 그런 다음 둘이 신전에서 나올 때는 어떻게 달라질까? 손잡고 나올 정도까진 아니지만 서로 가까워져서 나온다. 이것이 왜 가능할까? 속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상대에 대한 증오가 어느 정도 증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상대를 이해할 수도 있다. 이처럼 ‘터 놓고’ 얘기하는 것. 그것이 수평폭력을 막고 갈등을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최근 ‘아이돌계의 조상’이라 불리는 그룹 ‘신화’가 데뷔 15주년 콘서트를 열었다. 파릇파릇한 10대에 데뷔해 이젠 30대를 훌쩍 넘긴 그들. 이들이 말하는 장수의 비결은? 할 말은 하는 것이다. 그렇다. 비결은 항상 간단하다. 갈등은 참는 게 미덕이 아니다. 상처를 그냥 두면 곪는다. 제대로 소독을 해줘야만 상처 없이 잘 아물게 된다. 갈등도 마찬가지다. 갈등에도 소독이 필요하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