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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

“도저히 성공할수 없는데…” 無에서 有를 만들 수 있는 이유

문휘창 | 103호 (2012년 4월 Issue 2)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의 성공사례
지난 호(DBR 99호, 국가경영전략, 국경의 틀 속에서 볼 것인가)에서 필자는 국제세미나에서 아르헨티나 대표와 대화를 나눴던 일화를 소개했다. 내용의 핵심은 “아르헨티나가 현재 못사는 이유는 과거에 돈 벌기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고 한국이 현재 잘사는 이유는 과거에 돈 벌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과거에 얼마나 힘들여서 오늘날의 성공을 이뤘나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선진국 기업들의 경우와는 다른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제시해 한국식 경영전략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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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국가건 기업이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잘하는 부분을 특화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POSCO,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이 처음 시작할 때에는 해당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 이러한 기업들의 성공신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가장 쉬운 답은 이들이 꾸준한 노력과 뛰어난 아이디어로 기적을 이뤄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답은 특별히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지 못한다. 어떻게 노력했고 왜 남들보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는가? POSCO,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3사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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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CO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세계은행 보고서
1960년대 초 한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정도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다. 국민은 보릿고개 배고픔에 시달렸고 농지가 더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한국 산업은 농업 위주인 1차 산업 중심이었고 주요 수출 품목은 가발, 신발, 합판 등 노동집약형 제품들이었다. 당시 한국으로서는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때부터 철강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철강은 경제의 기간산업으로서 ‘철’ 없이는 한국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고, 또한 철강산업이 발전해야 이와 관련된 산업들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1968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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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한국의 사정으로서는 철을 만들 자원, 자본, 기술, 경영경험이 전혀 없는 황무지인 상태였다. 박태준 사장과 30여 명의 직원이 재산 전부였다. 정부에서는 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냉담했다. 1968년 세계은행(IBRD)의 ‘한국경제동향보고서’가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제철소 설립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가난한 나라 한국이 최첨단 고부가가치인 철강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직 저개발국 단계에 있는 한국이 제철소를 짓는다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기계공업을 하더라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먼저 발전시킬 것을 권고했다. 국내 여론에서도 한국이 철강산업을 국산화한다는 정책에 부정적이었으며 “차라리 수입해 쓰자”라는 주장이 주류였다. 한국 철강산업의 역사는 시작부터 큰 난관에 부딪쳤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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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넓은 포항 벌에서 이미 수백만 평의 부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면초가에 처한 박태준 사장은 대일청구권에서 아직 남은 1억 달러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당시 협정에 따르면 이 자금은 오직 농업 분야에만 사용이 가능했다. 한국 정부는 박태준 사장을 일본에 파견, 일본 정·재계의 유력자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해서 농업전용 대일청구권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일본 철강업계로부터 설비와 기술지원 약속까지 받아냈다. 돌이켜보면 현재 한국의 POSCO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더라면 일본은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아무튼 이로 인해 한국은 당시 철강산업 구축에 필수적인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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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가동하기 시작하자 박태준 사장은 엄격한 군대식 경영으로 직원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실수를 하거나 정신태도가 느슨한 직원들은 혹독하게 다뤘으며 기술지원을 하러 온 일본 기술자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드디어 여러 난관을 극복한 끝에 1973년 7월3일 포항 제1기 설비를 성공적으로 완공했고 3년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해외의 예상과 달리 본격 개업 6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 세계 철강업계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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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세계은행이 투자하기 적합한 곳으로 인정한 브라질의 연간 생산량은 한국의 수준에 훨씬 못 미쳤다. 세계은행의 분석과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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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영국 런던에서 박태준 회장과 자페(Jaffe) 박사(60년대 당시 IBRD 아시아지역 실무담당자인 선임연구원) 사이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태준 회장은 “그때(1968년) 세계은행은 당신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라 한국을 거절하고 브라질을 선택했죠. 당신은 지금도 한국이 제철소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웃으며 물었다. 자페 박사는 “한국이 그때와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지금도 같은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나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나는 당시에는 바로 당신 같은 한국 사람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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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POSCO는 세계 최강 철강업체로 성장했다. 글로벌 철강분석기관(World Steel Dynamic, WSD)에서 실시하는 기술력, 수익성, 원가절감 등 23개 평가항목을 통한 2011년 종합평가에서 POSCO는 세계 34개 철강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기존 경제학의 비교우위론에 따라 분석한다면 자페 박사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비교우위론에 의하면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며 비교우위가 변하지 않는 이상 답도 역시 항상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페 박사가 18년이 지난 후에도 자기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대답한 것이다. 자기가 약한 분야보다는 잘하는 분야를 특화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성공한 기업들은 사실 비교우위에 의한 것보다는 비교열위를 극복하면서 경쟁력을 만들어 왔다. 한국 기업의 성공역사는 특히 그렇다. 이제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 낸 삼성전자의 성공사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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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미쓰비시 보고서
삼성전자는 1969년 1월에 설립됐으며 당시 직원 36명으로 구성된, 이름도 잘 모르는 후진국의 작은 회사에 불과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주로 TV, 라디오 등 백색가전을 조립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앞으로 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가져오려면 오직 하이테크 산업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과감히 반도체 산업에 투자했다. 1974년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전자의 한 개 사업부로 운영했다. 그러나 기술혁신속도가 빠르고 전자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증가하는 반도체를 하나의 사업부로 다루는 것은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1983년 이병철 회장은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도쿄선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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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가 나오자 국내외에서 모두 ‘삼성전자가 파산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주류였다. 사내 경영진마저도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라며 반도체 산업 진출을 만류했다. 반도체의 원천기술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던 삼성전자가 당시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도 감히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삼성의 운명을 건 위험스러운 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모토로라, 인텔 등 미국 기업과 NEC, 도시바 등 일본 기업 같은 선진국 기업들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 미쓰비시연구소에서는 한국 기업의 반도체 사업 진출에 냉소를 보였으며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 5가지 이유는 협소한 한국 내수시장, 취약한 관련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삼성전자의 작은 규모, 빈약한 기술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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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러한 평가에 굴하지 않고 무모해 보이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우선 취약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기술 협약을 맺고 연수팀을 미국에 파견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한물간 사양기술만을 이전했고 또한 우리 기술자들이 거기서 연수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삼성은 일본으로 눈을 돌렸는데 다행스럽게도 일본 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으로 기술 이전을 해줬다. 특히 일본 샤프로부터 최첨단 VLSI(초대규모집적회로·very large-scale integration) 반도체 기술을 제공받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삼성전자는 이처럼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드디어 1984년 제1 생산공장을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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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까지 “국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반도체 제품이 모두 외국의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세계 일류 기술 또는 기업을 좇아가는 데 치중했고 어설프게 블루오션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삼성전자는 새로운 발전시기에 들어선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경영이념을 내세웠다. 여태까지 배울 만큼 배웠으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앞서가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그 이후 삼성전자는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계속해서 새로 써나가고 있다. 1987년 반도체 산업에 진출할 때는 국제사회에서 이름도 없던 삼성전자가 이제는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면서 ‘삼성전자’의 시대를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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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성이 처음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 미쓰비시 보고서에서 제기한 삼성이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는 당시의 한국 경제와 삼성의 상황을 보면 반드시 틀린 분석이라고도 할 수 없다. 자본이나 기술, 시장수요, 관련 산업 발전 등 어느 하나라도 국제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때 비교우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쓰비시 보고서 역시 POSCO 사례에서의 자페 박사처럼 선진국 경제이론과는 다른 한국식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현대자동차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고 종합적인 시사점을 찾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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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미국의 컨슈머리포트
현대자동차의 역사는 현대의 모태기업인 1950년대에 설립한 현대건설로부터 시작된다. 현대건설은 자동차정비사업과 현대토건을 합병해 설립됐는데 1960년대 말 정부의 중화학공업 추진정책과 국산 자동차산업 육성 필요성에 힘입어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했다. 그러나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 기술, 경험 등 기반이 전무한 상태에서 자동차산업에 뛰어드는 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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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도로 현대자동차는 미국 포드와 기술제휴를 통해 1968년에 제1호 자동차인 ‘코티나’를 시장에 내놓았다. 코티나는 미국 포드의 기술 지도를 받아 부품을 수입해 조립 및 생산한 것이다. 그러나 코티나는 미국과 한국의 노면 차이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코티나는 미국의 포장도로를 기준으로 설계한 차종이다. 경제가 아직 제대로 발전되지 않아 노면이 고르지 않은 한국의 비포장도로에서 오랜 운전을 하게 되면 고장이 잦았다. 코티나를 ‘코피나’ ‘골치나’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빗발치는 항의를 견디다 못해 결국 1971년 생산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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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시장에 내놓은 ‘포니’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 모델로 90% 자체 기술로 만들었다. 한국은 자체로 고유 자동차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세계에서 16번째의 국가가 됐다. 1976년에 에콰도르에로의 첫 수출로부터 시작해 그 후 중동지역을 비롯, 세계 각지로 수출했다. 그러나 1986년 ‘엑셀’을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 경쟁하는 다른 차종들과 비교해 모든면에서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미국 소비자들의 조롱의 대상이었으며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Jay Leno)는 “현대차는 밀어야 달리는 차”라며 조롱했다. 한편 미국의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는 현대차가 형편없는 차라고 불평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도했고 한국의 현대차는 당시 또 다른 형편없는 자동차인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조된 유고라는 차와 더불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없는 차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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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 시장에서 유고는 퇴출됐는데 현대차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노력으로 소나타 등 중형차들을 미국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품질이 과거에 비해서 월등히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비자들은 이를 믿지 못했던 것이 큰 문제였다. 이에 현대차는 큰 반전을 시도하게 되는데 바로 자동차의 부품과 품질에 대해서 ‘10만 마일, 10년 보증’을 해주는 것이다.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유럽, 미국, 일본 업체들도 기껏해야 “5만 마일, 5년 보증”밖에 못 해주는 상황에서 이렇게 주행거리와 기간을 연장해주는 보증은 파격적이었다. 한국 자동차에 대해서 시비를 걸었던 보고서들은 오히려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을 다시 평가하게 됐고 한국 자동차들은 각종 컨슈머리포트에서 상위에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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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현대자동차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던 것은 미국의 컨슈머리포트뿐만은 아니었다. 당시 포니 자동차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 출신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12월12일 열린 제48회 한국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주지아로는 한국 자동차의 지난 50여 년 동안의 눈부신 성과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70년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자동차 타이어는 물론 조그마한 부품까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한국인은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강한 열정과 의지만 갖고 있었다. 부품이 없으면 일본이든 유럽이든 날아가서 적합한 부품을 사오고 며칠 밤을 세우면서 불평 없이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주지아로가 지금은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과거를 회상할 수 있지만 아마 당시에는 과연 자기가 디자인하는 자동차가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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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소개한 POSCO,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성공사례는 사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보통 이 기업들이 성공한 이유를 CEO의 탁월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피나는 노력과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성공 스토리에 대한 감동은 받겠지만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시사점을 도출할 수는 없다. 자 이제 답을 찾아보자. 앞에서 소개한 기업들의 성공요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공통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출해 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기존의 선진국 비교우위이론은 더 큰 만드는 것인데 여기서 소개한 한국 기업들은 에서 만들어냈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만을 보고 성공할 수 없는 이유만을 늘어 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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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이제 한국식 경영전략의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정리해보자. 첫째, 서양식 이론이 기존의 비교우위를 강화하는 것임에 비해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로운 목표를 세워 놓고 이에 따른 새로운 경쟁우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존의 이론은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이론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많은 무리가 따르겠지만 성공했을 경우에는 보다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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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고 해서 섣부르게 블루오션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해당 산업에서 최고의 기업을 철저하게 벤치마킹을 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먼저 달성하는 것이다. 앞에서 사례로 들었던 POSCO,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최근에 세계 최고의 기술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이 기업들은 철저하게 다른 경쟁사들의 역량을 연구하고 습득한 다음에야 그들보다 뛰어난 역량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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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렇게 철저하게 글로벌 일류기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는 국제화가 필수조건이다. POSCO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웠고, 삼성전자는 미국과 일본기업으로부터 배웠으며, 현대차도 미국, 일본, 유럽 자동차 업체들을 잘 연구해서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오늘날 각 분야에서 일류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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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핵심은 에서 만들어내는 것인데 연결시키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바로 ‘철저한 벤치마킹’과 ‘적극적인 국제화’다. 이 두 전략은 한국 기업의 발전단계에 있어 과거에도 중요했지만 미래에도 중요할 것이다. 철저한 벤치마킹은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적극적인 국제화는 선택의 폭을 넓혀 준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무조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벤치마킹과 국제화 전략을 잘 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경쟁우위를 창출해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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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강의했다. 주 연구 분야는 국제경쟁력, 경영전략, 해외직접투자, 문화경쟁력 등이다. 현재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다수의 국내외 기업, 외국 정부(말레이시아, 두바이, 아제르바이잔, 중국 광둥성), 및 국제기구(APEC, UNCTAD, IBRD)의 자문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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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c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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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강의했다. 주 연구 분야는 국제경쟁력, 경영전략, 해외직접투자, 문화경쟁력 등이다. 현재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다수의 국내외 기업, 외국 정부(말레이시아, 두바이, 아제르바이잔, 중국 광둥성), 및 국제기구(APEC, UNCTAD, IBRD)의 자문을 담당했다.
  • 문휘창 문휘창 |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현)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
    - (전)미국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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