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놀라운 통찰로 표면 아래의 진실을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10년간 통찰력 분야를 연구한 신병철 WIT 대표가 8000여 개의 사례를 분석해 체계화한 ‘스핑클’ 모형을 토대로 기업인들의 통찰력을 높이는 실전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생각이 달랐다. 비록 중세의 과학관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 놓은 우주관에 영향 받고 있었지만, 갈릴레오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무엇이 둘의 의견을 갈라놓은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과학자요, 갈릴레오는 중세를 대표하는 과학자였다. 둘 다 당대의 지성이고 현자의 표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집대성한 과학적 정리들은 무려 2000여 년간 유럽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중 하나가 ‘자유낙하에 대한 이론’이다. 약 두 세기 동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바로 이 이론에 갈릴레오가 최초로 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자유낙하에 대한 이론은 무엇인가?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 이론인 ‘5원소론’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은 모두 다섯 가지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다섯 가지 원소는 흙, 물, 불, 공기의 네 가지 기본원소와 에테르(Ether)라는 순수원소로 구성된다. 이때, 흙과 물은 무거워서 아래로 내려가려 하고 불과 공기는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려 한다. 이들 네 가지 기본 원소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원소가 바로 에테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테르의 운동을 통해 우주가 균형을 잡는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무거운 원소인 흙과 물은 낙하와 관련해 일정한 법칙을 따른다고 가정했다. 그것은 ‘무거운 것은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것은 천천히 떨어진다’는 법칙이다. 이게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낙하에 대한 이론이다.
자유낙하에 대한 이론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낙하운동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종이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종이를 펼쳐 놓은 상태에서 떨어뜨리면 천천히 떨어진다. 그런데 이것을 뭉쳐 떨어뜨리면 빨리 떨어진다. 이 두 가지는 형태는 다르지만 무게는 똑같다. 무게는 같지만 떨어지는 속도는 달라진다.
이 자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낙하에 대한 이론은 모순에 빠지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을 비단 갈릴레오만 발견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낙하에 대한 이론에 모순되는 사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지만, 아무도 이를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증명하지 않았다.
25세의 나이로 수학교수가 된 갈릴레오는 천문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을 가르쳤다. 그는 수업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학을 가르쳐야 했으므로, 좋든 싫든 낙하운동에 대한 이론을 강의해야만 했다. 그러나 수업을 하면 할수록 이론의 모순을 발견하게 됐다.
중요한 것은 모순의 핵심을 발견하는 것이다. 모순의 핵심만 발견하면, 나머지를 풀어나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지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증명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갈릴레오의 자유낙하 이론에 대한 모순 증명>
1.무거운 것은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것은 천천히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맞다고 가정하자.
2.그렇다면 그 둘을 묶어서 떨어뜨려 보자. 그렇게 되면, 무거운 것은 빨리 떨어지려 하고 가벼운 것은 천천히 떨어지려 하니, 이 둘을 묶어 놓은 것은 평균의 속도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3.그러나 묶어 놓은 이 돌은 이미 무거운 돌 하나보다 더 무겁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낙하에 대한 이론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갈릴레오는 딱 3단계의 논리로 2000년간 유지돼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된 이론을 단숨에 논파해버렸다. 이 논리를 접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리송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논리상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평소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가 실험을 통한 확증이 필요한 순간이다. 갈릴레오는 부피는 같지만 무게가 다른 두 개의 공을 들고 피사의 사탑에 올라갔다. (피사의 사탑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294계단이나 올라가 꼭대기층에 이른 갈릴레오는 부피는 동일하지만 무게는 다른 두 공을 동시에 떨어뜨렸다. 두 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과는 달리 동시에 떨어졌다. 2000년 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갈릴레오는 이처럼 모순된 현상을 발견하고 그 핵심을 간파해 대안을 제시하려는 머릿속의 노력을 ‘생각실험(Thought Experiment)’이라고 불렀다. 갈릴레오는 이와 같은 생각실험을 통해 자유자재로 자기 이론을 입증하곤 했다. 갈릴레오의 생각실험 절차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모순되는 현상을 발견한다.
2)모순된 현상의 핵심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3)생각실험을 통해 해결 방안을 탐색한다.
4)도출된 해결대안이 처음 발견된 모순을 극복하는지 적용한다.
5)실제 실험을 통해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갈릴레오의 생각실험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은 문제들도 생각실험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처음의 모순을 극복하게 된다. 이는 비단 수백 년 전 과학 실험에만 유효한 방법이 아니라 현대 경영에 있어서도 적용할 수 있는 통찰 기법이다. 지금은 어떤 경영 사례들을 생각실험의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다.
구글은 첫 화면에 왜 배너광고를 하지 않았을까?
구글은 전 세계 그 어떤 포털 사이트와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첫 화면에 배너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구글은 그 이전의 어떤 포털도 생각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다. 도대체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까? 그것은 자유낙하 이론의 모순을 파헤친 갈릴레오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정보’를 보고 싶어 하지 ‘광고’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돈을 내는 기업은 광고를 먼저 제공하고 싶어 한다. 이로써 상호 모순된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것만 해결하면 소비자도 행복해지고, 기업도 행복해지고, 포털도 행복해진다. 갈릴레오의 생각실험 절차에 따른다면 쉽게 해결대안을 탐색할 수 있다. 생각실험은 모순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그 모순의 핵심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게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모순의 핵심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불필요한 광고는 싫어하지만 필요한 광고는 좋아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소비자가 편광필름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있다. 이 소비자는 편광필름에 적합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려 할 것이다. 이 때 편광필름 광고는 이미 광고가 아니라 정보에 가깝다. 오히려 제품 광고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광고가 자신이 검색하는 제품의 정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광필름을 찾는 사람에게 여행용 선글라스 광고를 제시하면 어떨까? 불필요한 정보에 해당될 뿐이다. 바로 이 점이 구글이 발견한 모순 해결의 돌파구였다.
구글에서 첫 화면은 오직 소비자를 위한 깨끗한 화면이 제시된다. 그러나 원하는 키워드를 치고 나면, 그 키워드에 적합한 정보와 제품 광고가 제시된다. 이때에는 제품 광고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반가운 존재가 된다. 놀라운 사고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고는 초기의 모순을 해결할 뿐 아니라 소비자, 기업, 포털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너지 효과까지 유도한다.
김치냉장고는 어떤 모순을 해결한 것인가?
모순 해결 제품으로 김치냉장고를 빼놓을 수 없다. 1995년을 기점으로 김치냉장고가 한국시장에 선을 보이더니, 지금은 가가호호 없는 집이 없다. 김치 냉장고의 성공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있는 것일까? 그것은 구글과 마찬가지로 모순의 발견과 해결이 핵심이다.
한국의 주부들은 한겨울 땅속에 묻어놓은 김장김치를 가장 맛있어 한다. 그런데 아파트에는 김장김치를 묻을 만한 땅이 없다. 전형적인 모순이 발생한 순간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순의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 현상적으로 보기에는 땅속이 핵심인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땅속의 온도와 습도 유지가 핵심이다. 다시 말해, 땅속에 묻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온도와 습도를 유지시켜주는 작업이 핵심이 된다. 김치냉장고는 한겨울 땅속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실증적으로 실험해 그 맛을 되살려냈다.
생각해 보자.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이 충돌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많이 먹고 싶어 하지만 살찌는 것은 싫어한다. 좋은 제품을 원하지만 가격이 비싼 것은 싫어한다. 건강은 원하지만 운동은 싫어한다. 성적은 올리고 싶어 하면서도 공부하기는 싫어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모순이다. 남은 것은 모순이 발생하는 핵심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되면 대박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갈릴레오의 생각실험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신병철 대표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명 학술지인 에 브랜드 시너지 전략과 관련한 논문을 실었다. 브랜드와 통찰에 대한 연구 및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통찰의 기술> <브랜드 인사이트> 등의 저서가 있다. 시맨틱 리서치 전문회사 WIT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