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영혼을 빼앗는 맛’ 포숑과 푸알란의 비밀

DBR | 35호 (2009년 6월 Issue 2)
혁신과 전통을 동시에 추구하는 프랑스 고급 식품업체
프랑스의 고급 식품 전문점 포숑(Fau-chon)의 베스트셀러 상품은 프랑스 전통 과자 에클레르(éclair)다. 포숑은 4계절마다 새롭게 장식된 특별 에클레르를 내놓는다. 2008년 가을 ‘포숑 오트쿠튀르’ 컬렉션에서 선보인 34종의 에클레르는 명품 패션 카탈로그에서나 나올 듯한 호화로운 상품 진열로 눈길을 끌었다.
 
파리의 최고급 제과점 푸알란(Poilâne)에 가보자. 푸알란의 명물 미셰(miche)를 사기 위해 파리 시민, 파리에 거주하는 외국인, 관광객 등이 언제나 줄지어 서 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미셰는 푸알란이 문을 연 1932년 이후 오늘날까지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프랑스 명품 기업들은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과 품질을 영원히 고수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변화의 물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유럽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업계 선두주자들끼리의 합병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명품 업계의 초점은 경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동아시아 시장과 세계 각국 부유층으로 이동하고 있다.
 
명품 기업들의 전략 수정과 변신도 불가피해졌다. 이제 명품 업계의 화두는 ‘혁신이냐 전통이냐’다. 급격한 세계 경기 침체 때문에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와 같은 업계 최고 기업도 1년 사이 40%의 손실을 기록했다. 중소 업체들의 자금 압박은 더 크다. 많은 전문가들은 2009년이 명품 업계 사상 최악의 해가 되리라고 점치고 있다.
 
우리는 프랑스의 대표적 고급 식품업체 두 곳, 포숑과 푸알란의 전략을 비교해 명품 업체들의 변신 전략을 연구했다. 두 회사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 현대화와 대형화에 주력한 포숑은 프랑스산 고급 식품을 취급하는 대형 소매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가족이 운영하는 푸알란은 전통적인 운영 및 생산 방식을 고수하며 틈새시장 1위를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포숑과 푸알란의 성공 비결을 분석하면,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명품 업체가 위기를 타개할 때 도움을 줄 것이다.
 

현재 프랑스 명품 업계의 시장 규모는 2020억 달러(1640억 유로)다. 프랑스 명품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상은 고급 맞춤복, 향수, 샴페인 등이다. 하지만 고급 식품 또한 프랑스 명품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 셋을 받는 최고급 식당의 미식가용 요리, 희귀하고 이국적인 가공식품, 모나리자의 눈을 본뜬 에클레르와 같은 창의적 요리까지 고급 식품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일반 식품이 극도로 세분화되거나 질이 엄청나게 높아져 누구나 탐내는 식품을 고급 식품이라고 한다. 고급 식품은 사치품이며 신분의 상징이다. 소비자들이 고급 식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품질이 월등하며 자신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연간 총 수출액은 5000억 달러다. 이 중 명품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8%(140억 달러)로, 의외로 그 비중이 낮다. 금액은 크지 않을지라도 명품은 명실상부 프랑스를 상징하는 수출품이다. 세계 경제 위기가 프랑스 고급 식품업계에 미친 타격은 그다지 크지 않다. 오히려 내수 부진으로 인한 위기가 더 심각하다.
 
고급 식품업계가 내수 부진에 신음하는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오직 한 가지 식품만 주력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포숑처럼 다양한 식품을 취급하는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고 있다. 둘째, 까르푸나 모노프리(Monoprix)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도 고급 식품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당신 입술에 포숑을
파리에 있는 포숑 본점은 고급 식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다. 마들렌 광장에 위치한 포숑 본점은 이웃하고 있는 마들렌 교회를 뛰어넘는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포숑은 1886년 채소 행상을 하던 오귀스트 포숑에 의해 만들어진 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혁신과 전통을 조화시킨 제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포숑은 에어프랑스와 독점 계약을 맺고 프랑스 최초로 외국 고급 식품을 수입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의 다카시야마 백화점과 제휴해 사과향 홍차를 판매했다. 그야말로 해외 시장 개척의 선두주자였던 셈이다.
 
이를 통해 포숑은 세계 시장에서 프랑스 고급 식품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그리고 1990년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소매 유통업에 뛰어들어 까르푸와 같은 슈퍼마켓 체인에 납품을 시작했으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포숑이 원래 가격보다 20% 낮은 유통업체용 전문 제품을 만들자 소비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고급 브랜드 자산을 내팽개쳤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나 포숑은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난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1998년 한 사모펀드 컨소시엄이 포숑을 인수했다. 이후 포숑의 해외 진출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당시 컨소시엄의 대표 투자자였던 로랑 아다모비츠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포숑은 세계 고급 식품업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포숑 제품이 판매되지 않는 미국에서도 누구나 ‘포숑’이라는 브랜드 명칭을 안다.”
 
그러나 사모펀드의 포숑 인수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뒀다. 포숑은 뉴욕에 세 곳의 매장을 열었지만 모두 매출이 부진했다. 뉴욕 매장을 열기 위해 쓴 엄청난 비용은 2003, 2004년 연속 포숑의 적자 폭을 늘리는 데 상당한 몫을 담당했다. 2004년 포숑의 성적표는 최악이었다. 매출은 7000만 유로였지만, 영업 적자가 무려 1030만 유로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포숑이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때 프랑스 고급 식품업계의 신화적 인물 미셸 뒤크로가 포숑의 대다수 지분을 사들였다. 그는 지분을 확보하자마자 브랜드 이미지 재구축에 나섰다. 뒤크로는 홍보 전문가 이사벨 카프롱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광고 홍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카프롱은 포숑의 훌륭한 전통과 전위적일 정도의 참신함을 훌륭하게 조화시켰다.
 
신임 경영진은 포숑이 최고급 명품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그들이 주력한 사안은 현대화와 고급화였다. 포숑은 이 두 전략에 맞는 광고 캠페인을 벌이고 매장도 새로이 설계했다. 2005년 마들렌 광장에 위치한 포숑의 매장 두 곳은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마치고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포숑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는 리노베이션을 마친 최첨단 고급 매장이 포숑의 120년 된 이미지를 날려버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포숑의 새로운 매장은 프랑스 오트쿠튀르 패션 하우스의 외관을 그대로 본떴다. 음식점이 아니라 샤넬이나 디오르 매장과 비슷하게 보일 정도다. 포숑은 ‘당신 입술에 포숑을(Fauchon on your lips)’이라는 톡톡 튀는 카피를 담은 광고를 보그, 바자와 같은 고급 패션지에 대대적으로 실었다.
 
내수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포숑은 해외 시장에서의 입지 확대 및 차별화에 나섰다. 프랑스에서 쌓은 고급 이미지를 극대화해 한국, 중국, 일본, 중동 등 성장 일로에 있는 시장으로 수출한다는 전략이었다. 뒤크로는 “포숑은 민첩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성명을 언론에 발표했다.
 
포숑은 36개국 451개에 달하는 해외 매장에도 초호화판 매장 콘셉트를 고스란히 적용했다. 이 전략은 중국에서 정점에 달했다. 포숑은 2007년 베이징에 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카프롱은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구 명품이 가장 잘 팔리는 곳은 동양이다. 그들이 포숑에 요구하는 점은 단 하나, 즉 프랑스라는 브랜드 이미지다. 아시아는 우리의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포숑의 브랜드 재구축 전략과 세계화 캠페인은 결실을 맺었다. 2006년 포숑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21% 늘어난 3800만 유로를 기록한 반면, 손실은 500만 유로에 그쳤다. 2007년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현재 포숑은 전체 매출의 60%를 해외 시장에서 거두고 있다. 이 비중은 조만간 80%대로 높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포숑이 적기에 브랜드 이미지를 재구축한 점이 업계 대표주자라는 입지를 공고히 다지게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전략은 해외 시장에서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신흥 시장 중산층을 사로잡을 확고한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포숑은 브랜드 재구축 캠페인으로 명성을 지켰고 수익성도 높였다. 포숑이 미래에도 이런 성공을 거두려면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함을 제시해야 한다. 포숑의 새 카피 ‘당신의 혼을 앗아가는 포숑(Fauchon takes you away)’은 이 전략에 매우 적합한 카피라는 평가를 받았다.
100만 개 빵을 항공기로 공수하는 푸알란
 포숑과 반대로 대대적 변신을 시도하지 않고도 핵심 경쟁력을 확보한 고급 식품업체가 바로 푸알란이다. 파리의 고급 제과점 푸알란은 76년 전 처음 개점했을 때와 변함없는 제품 구성, 매장 위치, 광고 전략,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제과 업체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고 세계화를 모색하는 동안, 푸알란은 프랑스 고급 식품업체라는 독자성과 가족 경영 전통을 굳건히 지켰다. 80년간 같은 시스템을 유지해왔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현재 푸알란을 이끌고 있는 아폴로니아 푸알란은 헬기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 리오넬 푸알란의 뒤를 이어 푸알란을 이끌고 있다. 푸알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소박한 매장 외관, 수수한 색상의 제품, 홍보 전략 없음을 고수하고 있다. 아폴로니아 푸알란이 취임했을 때 이 전략이 바뀌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있었지만, 그는 전통을 선택했다. 많은 프랑스인들은 푸알란이 가족 운영의 소규모 제과점이라는 점을 높이 산다.
 
푸알란은 간단한 종류의 빵들만을 취급한다. 가장 효자 품목이 누룩으로 빚은 2kg짜리 시골 빵 미셰다. 푸알란에서는 식품이 아니라 예술품에 가까운 화려한 제품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2001년 1160만 유로였던 푸알란의 매출은 2007년 1500만 유로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꾸준한 증가세다.
 
광고 대신 입소문에 의존한 전략도 여전하다. 홍보 전략이 없는 것이 푸알란의 홍보 전략이건만, 해외 고객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푸알란은 생산 제품 중 20%를 해외로 수출한다. 특히 대표 상품 미셰의 판매는 독보적이다. 현재 푸알란은 미셰 50만 개를 세계 곳곳의 고객과 유통업체에 항공기로 공수하고 있다.
 
푸알란이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면 득보다 실이 컸을지 모른다. 프랑스 중소기업들의 이익단체 ASMEP의 자크-앙리 부르두아 이사는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푸알란은 최고의 브랜드 명성을 지녔지만 여전히 틈새시장에만 머물러 있다. 무모한 확장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푸알란이 대량 유통을 시도하고 대대적인 해외 시장 진출을 꾀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설사 가능했더라도 푸알란의 가장 큰 매력을 지키지는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푸알란의 강점은 정통성과 소박함에 있다.”
 
물론 다른 고급 식품업체와 마찬가지로 푸알란 역시 대형 제과 체인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제과점 팽폴(Pain Paul)의 도전이 거세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푸알란은 여전히 틈새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아폴로니아 푸알란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는 경쟁 상대가 없다”고 단언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푸알란이 외부 자금을 들여와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푸알란의 충실한 고객들 역시 수십 년간 지켜온 습관을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고급 식품업계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탁월한 품질과 고급 이미지로 명성을 떨쳤기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소비자를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 위기는 명품 산업 역시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선진국의 소득 수준 정체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은 고급 식품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들 또한 변화와 혁신이 불가피하다.
 
포숑이 꾸준한 혁신으로 소비자를 자극하고 푸알란이 틈새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듯, 명품 업계는 어떤 식으로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아시아 시장이 세계 소비 중심지로 떠올랐다는 점은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명품 업계의 숨통을 틔워주고 확장 전략을 구사할 확실한 교두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이 글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스쿨이 발행하는 경영 전문 웹진 <Knowledge @ Wharton>에 실린 글 ‘French Luxury Foods Firms Bet On Innovation While Preserving Tradition’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