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physics on Trend

빈민촌 브롱크스의 힙합, 세계 흔들고 애플의 히피들, 블랙베리 뱅커 눌렀다

176호 (2015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마케팅, 인문학

문화는 더 이상 상위계층에서 하위계층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서구인들은 문화가 부챗살처럼 몇 개의 중심점에서 사방으로 퍼진다고 믿기 시작했다. 마치 뉴욕 브롱크스의 음악과 패션이 전 세계 젊은 소비자층을 뒤흔들어놨듯이, 그 중심은 반드시 부유층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모임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각계각층의 트렌드 리더들이 모여 있는창의력 공장’, 파리, 런던, 뉴욕, 도쿄, 글로벌 A레벨 시티의 움직임이다. 여기에서 시작된 트렌드는 서울과 같은 다음 단계의허브 시티로 옮겨가고 이 허브 도시를 기점으로 또 다시 퍼져나간다. 물건이 아니라 가치관을 팔아야 하는 시대에, 여전히 소득 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시장을 세분화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는 방식으로는 선도기업이 될 수 없다. 지금 누가 트렌드를 이끌고 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트렌드의 특징과 추종자들은 누구인지를 아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21세기 마케팅이 시작된다. 

 

편집자주

매해 연말이 되면 ‘20XX년 트렌드 예측류의 책이 서점에 넘쳐납니다. 하지만 대부분 신문기사와 몇 가지 특정한 문화현상을 짜깁기한 것에 그쳐 실망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사회와 문화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위치한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를 알고 싶어 합니다. 글로벌 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현재 세계적트렌드 리더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해외의 최신 문화 트렌드, 그리고 그것이 비즈니스에 미칠 영향에 대해 소개합니다.

 

 

Urban Culture의 탄생

1) “Bronx is Burning”

뉴욕의브롱크스는 한때 폭력과 마약, 범죄의 온상으로 불렸다. 뉴욕의 할렘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사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백인 중산층 거주지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에서 엄청난 수의 이민자들이 미국의 대도시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입성했다. 그리고 동부에서는 당시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뉴욕 브롱크스로 밀려들었다. 서서히 인종 갈등이 시작됐고, 1964년 인종 폭동으로 이어졌다. 브롱크스 거리의 빌딩과 자동차들이 불탔고, 경찰과 유색 인종 이민자들 간에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돌과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이 장면은 브라운관을 타고 전 세계로 보도됐다.

 

Bronx is Burning”은 아직도 많은 세계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당시의 미국 주요 신문 기사 헤드라인이다. 이 후로 브롱크스의 이미지는인종 갈등, 총기 사건, 마약 중독자들이 넘쳐나는 거리가 됐다. 이때 생긴 브롱크스의 이미지로 인해 미국에서는 웬만한 형편만 돼도 브롱크스로 이주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건물주들은 정당한 세를 지불할 세입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월세는커녕 관리비도 건질 수 없었고, 건물을 유지 보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집들은 유리창이 깨진 채로 방치됐다. 수도 파이프가 터지고 난방과 전기도 끊기면서 폐허로 전락했다. 다른 나라에서 갓 이민 온, 혹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노숙자들이 그런 빈집들에 무단 점거해서 살기 시작했다. 건물주들은 노숙자들의 무단 점거를 몇 년간 눈감아 주는 대신 건물에 불을 지르도록 했고, 이를 빌미로 화재보험금을 타 손실을 보존했다. 브롱크스는 계속 불타고 있었다. 무법천지로 변해갔음은 물론이다.

 

그런 브롱크스에서 새로운 청년 문화가 꽃피고 그것이 전 세계 시장 흐름까지 바꿨다. 말이 안될 것 같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참으로 그 생리를 알다가도 모를 것이 바로 유행이고 트렌드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이 예측 불가능한 문화의 자생력과 트렌드의 생리를 민감하게 포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타깃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롱크스가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고문화 트렌드를 리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 자메이카에서 온 청년

폭력과 마약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아진 브롱크스에 DJ Kool Herc(DJ 쿨허크)라는 자메이카 청년 이민자가 들어왔다. 낯선 미국 땅에 도착한 후 자연스럽게 자메이카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살던 브롱크스로 온 것이다. 그는 음악에 미쳐 있었다. 정말로 음악을 즐겼다. 버려진 아파트 지하실에 큰 턴테이블 두 개와 대형 스피커 두 개를 설치했다. 그리고 자기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면서 함께 춤추며 노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점차 그의 아파트는 젊고 에너지가 넘쳐 음악과 춤을 즐기는 브롱크스 청년들의 메카가 됐다. 어느 날 DJ Kool Herc 는 자신과 함께 놀던 청년들을 문득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의 공간을 찾은 팔팔한 청년들은 음악의 페이스가 느려지면 금세 지루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그들이 계속 신나게 놀 수 있도록 턴테이블 두 개에 각기 다른 레코드를 끼워 놓고 가장 리듬이 빠르고 신나는 부분만 교체하며 틀었다. 한 음악에서 신나는 부분이 지나가면 바로 다른 음반의 신나는 부분으로 교체한 것이다. ‘힙합이 탄생했다. 그는 가난한 이민자에서 졸지에 전 세계 청년 문화의 트렌드를 바꾼 힙합 문화 창시자가 됐다. 당연히 브롱크스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적인 장소가 됐다. 힙합의 폭발적인 유행으로 유명해진 DJ Kool Herc 1972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 지하실에서 빠른 리듬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힙합리듬의 시작이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는내가 살던 아파트 계단으로 내려오던 중 4, 3, 2, 1층에서 모두 내가 만든 음악이 흘러 나와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한 댄스 리듬을 가진 힙합 음악은 당시 백인 청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로큰롤 음악에 공감할 수 없던 유색 인종 청년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힙합이 유행하면서 브롱크스에는 길거리마다 청년들이 커다란붐박스를 틀어놓고 빙 둘러 함께 춤을 추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이는 이후 광장이나 공원에서 둥그렇게 둘러서서 한 명이 원 안으로 들어가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그 사람보다 더 어려운 동작으로 춤을 추는 특이한 놀이로 진화했다. 그러다가 춤의 난이도를 재는 대회를 열게 됐는데 이것을 청년들의 언어로 Breaking이라고 했다. 어른들은 ‘Breaking을 하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B-Boy라고 불렀다. 지금은 전 세계 B-Boy들이 미국의 브롱크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까지 춤의 난이도로 경쟁하는 대회를 열고, 우리나라 청년 중에도 세계 비보이 대회에 출전해서 우승을 거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음악적으로도 힙합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당장 지금 한국에서도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걸그룹 노래에도힙합파트가 들어갈 정도이고, 아예 랩을 맡는 멤버가 어느 아이돌 그룹에나 존재한다. 이렇게 브롱크스 아파트 지하실에서 탄생한 힙합은 전 세계적 주류 대중음악이자 문화가 됐다.

 

브롱크스가 전 세게 트렌드를 바꾼 문화는 또 있다. 독특한 그래피티 문화다. 카리브해 연안의 어촌은 전통적으로 집이나 배에 밝은 색의 독특한 문양을 그려 가족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이곳 흑인 주민들의 뿌리, 서아프리카의 오래된 문화이기도 하다. 200여 년 전 노예선의 도착지였던 이곳에 정착한 이들이 그들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흑인 청년들을 통해 이 문화는 브롱크스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빈손으로 온 이들 이민자에게 천연 염료를 만들 재료는 물론 색칠할 수 있는 배나 집도 없었다. 그러나 브롱크스에는 운행 시간이 끝난 뉴욕 지하철들이 집결하는 차고지가 있었다. 이민자 청년들은 스프레이 페인트를 구해 지하철 차고지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고향 어부들이 선호하는 초록색, 분홍색 등이 어우러진 강렬한 색감으로 자신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접한 미국 특유의 만화 스타일에 소수민족의 분노를 표출하는 욕설과 문구 등을 적절히 배합해 차고지에 세워 놓은 지하철 외벽을 가득 채우는 그림을 그렸다. 1970년대 뉴욕 지하철은 대부분 이런 색다른 느낌의 그림들로 뒤덮였다. 이 청년들은 처음에는 지하철, 나중에는 다리 교각, 버려진 부두, 무너져가는 집 등 빈 공간만 찾으면 스프레이 페인트들을 들고 나가 거대한 벽화를 그려댔다. 이것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승화했고, 지금은 우리나라의 한강다리 교각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뉴욕 브롱크스의 가난한 이민 청년들이 이처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래피티라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창조한 것이다.

 

 

3) Urban Culture, 비즈니스를 바꾸다

브롱크스 청년들이 만들어낸 힙합, 비보이, 그래피티 등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 ‘Urban Culture’는 전 세계 비즈니스에 엄청난 변화를 촉발했다. 예컨대 Hip Hop Wear라는 새로운 패션의 유행이 서구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돼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헐렁한 청바지마리테프랑소아저버붐을 일으켰다. 이러한 문화 트렌드를 제대로 포착한 신생 패션 벤처기업 Fubu는 힙합 트렌드가 최고 절정에 이르렀던 1998년 한 해에만 38000만 달러(한화 약 41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힙합 문화는 단순히 청년들의 복식 문화만 바꾼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걸음걸이, 춤 스타일도 완전히 뒤집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 연예 기획사의 경우 미국에 한인 교포들이 많은 점을 이용해 일본보다 먼저 Hip Hop Style을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에 접목시켰고, , 보아 같은 한류 스타들을 만들어 냈다. 또한 이것을 발판으로 오늘날 한국 문화 사업의 기반을 이루는 K-Pop이라는 스타일을 창조해 전 세계로 한류 바람을 전파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가 자신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회사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1980년대 단정한 미국 부르주아 패션인프레피룩으로 인기를 끌던 토미힐피거는 스키를 즐기는 미국 중산층 백인 청년들을 타깃으로 패딩 재킷을 내놓았다. 그런데 회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흑인 레퍼들 사이에서 그 패딩이 인기를 끌게 됐고, 회사가 원하지 않는힙합 브랜드로 재포장됐다. 그런데 토미힐피거는 자신의 상품이 원하는 타깃이 아닌 엉뚱한 계층에게 팔려 나가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염려했다. 공공연히 그 우려를 말하고 다녔던 것 같다. “나는 흑인과 아시아 갱스터 같은 놈들이 내 옷을 입을 줄 알았다면 아예 옷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종차별적인 폭언을 쏟아냈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백인과 흑인 고객층 모두 잃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한때 폴로 랄프로렌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토미힐피거 브랜드는 이미지가 크게 추락하고 경쟁에서도 밀리게 된다.

 

누가 트렌드 리더인가?

1) 애플과 블랙베리

트렌드 리더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고를 때 가격과 기능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그 상품을 누가 쓰고, 입고, 소지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구입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훨씬 높다. 예컨대 오늘날의 애플 스마트폰은첨단기술을 아는 지적인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토대로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세계 주요 도시의 매장 앞에서 새벽부터 긴 줄을 지어 기다렸다가 경쟁적으로 구매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실 이미 애플의 상품들은 50대 이상의 미국 시골 주부들까지도 들고 다니는 낡은(?) 브랜드에 속한다. 그런데도 아직 청년층들이하다며 선호하는 이유는 원래 애플을 사용하던 트렌드 리더들의 이미지 때문이다. 애플 아이폰은 수염이 덥수룩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히피족들과 록커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 세상을 앞서가는 반항자이자 트렌드 리더들이 즐겨 사용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이미지가 각인됐다. 그래서 상당히 오래된 제품인 애플 스마트폰은 오늘날까지도세상을 앞서 가는 반항자들의 상징이며 그래서 여전히 젊고 쿨 한 이미지로 고객들의 충성도를 유지하고 있다.그에 비해블랙베리는 처음부터 금융회사나 대기업에서 세계 곳곳을 넘나들며 출장 다니는 비즈니스맨들에게 회사가 지급하는 휴대폰으로 출발했다. 당연히 젊고 쿨 하고 재미있는 이미지보다 사회적으로는 잘나가기는 하지만 빈틈없고 수직적이며 답답한 사람들의 소유물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각종 영화에서는 반복되고 딱딱한 일상에 질린 대기업 직원들이 숨 막히는 사내 분위기를 참을 수 없을 때 블랙베리폰을 내동댕이치고쿨 하게 사표 내는장면에 사용되곤 한다. 첫 상품을 누가 사용하는가는 이처럼 두고두고 상품의 고정 이미지로 굳어지고 소비자들의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의류회사 토미힐피거가 자기 상품을 기꺼이 애용하기 시작한 소비자들이 가까운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 트렌드 리더들이 될 것인지를 예측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그들을 무시해 아예 회사의 미래까지 망친 반면 FUBU는 힙합 문화의 세계화에 힘입어 트렌드 리더들을 사로잡으며 오히려 자체 브랜드의 기반을 탄탄하게 닦았다. 마케팅은 실제 내 물건을 쓸 사람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철학을 대표할 수 있는 트랜드 리더 그룹들을 제대로 포착해서 먼저 사용하게 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해 상품을 무난하고 보편적인 소비자들에게 두루 팔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창의적인 상품을 만들어 놓고도 세계적인 트렌드 리더 그룹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아 트렌드 리더들을 활용한 마케팅을 하지 못해서 일 것이다.

 

마케팅은

실제 내 물건을 쓸 사람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철학을

대표할 수 있는 트랜드 리더 그룹들을

제대로 포착해서 먼저 사용하게

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일 수 있다.

 

 

2) 트렌드 리더에 대한 잘못된 인식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갖고 있는트렌드에 대한 이해 19세기 유럽인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19세기 유럽인들은문화란 교육 수준과 경제 수준이 높은 백인 귀족 엘리트들이 만든상위 문화가 폭포처럼 단계적으로 하위 계층으로 퍼지는 것으로 봤다. 다시 말하면 귀족과 부유층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중산층이 귀족 문화를 흉내내며 익히고, 서민층이 중산층의 문화를 다시 흉내내고 배우면서, 라이프 스타일의 유행과 소비 트렌드가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개념은 19세기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제국주의자들이 가졌던 선입견이었다.우리나라도 일본의 지배를 통해 이런 문화 개념을 갖게 됐다. 1980년대 이전까지 국제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던 우리나라는 당시 기준으로 100여 년 전 개화기와 50여 년 전 일본 제국의 통치과정에서 들어온 이러한 문화 개념에 익숙해졌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19세기, 유럽 귀족들의 문화가 전 세계인들의 이상과 모델이던 시절의 마케팅 방법을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출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도귀족’ ‘팰리스’ ‘살롱’ ‘노블같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사라진 구시대의 개념들을 즐겨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다. 우리의 많은 기업인들은 지금도주 소비층이강남 패션’ ‘청담동 며느리 룩’ ‘대치동 엄마같은 사회 부유층들의 문화를 따라갈 것을 전제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먹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마케팅 방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여전히선진과 후진’ ‘상위와 하위문화가 존재한다는 구시대적 문화 트렌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장년과 노년층에게는 잘 통하지만 그 이상의 소구력이나 파급력은 없다는 얘기다. 국제적으로주머니사정이 좋은 해외 선진국 시장과쿨 함을 찾고가치소비를 즐기는 국내의 새로운 고객층에게는 외면당한다. 최근의 젊은 층이 국내 기업이 설정해 놓은프리미엄제품에 열광하기보다 자신들만이 아는대세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해외 직구에 나선 현상이 바로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마케팅은 중요한 비즈니스 활동이면서 동시에 문화 활동이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문화에 대한 정확한 개념부터 정립해야만 사업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새 트렌드가 무조건 상위 계층에서 하위 계층으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점을 처음 깨달은 것은 아마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시작된 소위 Urban Culture가 국내로 들어와 ‘X-세대의 등장이라는 특이한 문화 현상과 소비 트렌드가 나타난 이후부터일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로 뉴욕 브롱크스에서 유행이 시작된 힙합 문화가 들어와개성강한 자아의식으로 무장한 청년 소비층이 탄생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상위 계층의 문화를 따라 하던 앞 세대와는 전혀 다른 소비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기업인은 물론 많은 학자들까지도 당황스럽게 만든 건 곧바로 등장한오렌지족이었다. ‘외국 물먹은 개성 강한 소비층이 등장하자 관련 기업에서는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고민은 시작됐지만 제대로 깊어지진 못했다.당시 미국 교민사회와 유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봇물처럼 쏟아져 국내로 들어온 이국적이고 특이한 의상, 소비 문화와 인생관은 일반적인 X세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반은, 그리고 기업인들은 이들을 보편적 한국인과 다른 특이한 그룹으로 치부하고 이들의 파격적인 소비 행태를 비뚤어진 행각으로만 보면서오렌지족(-마치 이들이 한국인과 다른 하나의 민족이듯)’이라고 폄하했을 뿐 국내 소비 시장의 트렌드 변화의 조짐이라는 점을 감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은 거대한 한국 사회 변화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로 우리나라에도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새 트렌드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펑크족, 힙합족, 여피족, 보보족, 딩크족 등 당대의 핵심 트렌드는 항상 ‘∼이라는 형태로 표현됐다. 이것이 일종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국내 언론과 기업들은 이러한 새로운 소비층의 욕구에 맞춰 상품을 생산해 내지 못했고, 한국의 마케팅 문화 역시 발전과 성장의 큰 기회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오렌지족현상과 같이소비가 상위 계층에서 하위 계층으로 흐르지 않고 국경 없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같은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뻗어 나가는’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문화 양상을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이를 생소하게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러한 소비 패턴이 정착돼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새로 등장한 세대 혹은 집단이 경제권을 쥐고 주 소비층으로 성장하자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에서도 국산 제품이 밀려나고 외제품 소비가 급격히 늘었다. 국내 신문과 잡지는 이들의 외제 소비를 과소비, 사치, 허영이라고 싸잡아 비난했지만 현실적으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간파해내지 못한 국내 기업의 입지는 그런 외침들이 무색할 정도로 좁아져 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결국은 해외 직구 바람까지 휘몰아쳐 일부 기업들은 정부가 이를 막아주기를 바라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층은 정부 규제가 있더라도 직구를 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뿐이다. 최근 국내의 한 경제신문은 내년부터 현대차의 국내 점유율마저 사상 최초로 40%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국내 소비자들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 파악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3) 문화 전파의 새 모델 Hub-Spoke System으로

사실 상위 계층이나 부유층의 문화가 소비 트렌드를 리드하는상위 문화자리에서 물러나기 시작한 시점은 꽤 오래 됐다. 이미 그 조짐은 19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영국의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댄디문화가 첫 포문을 열었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돈과 사회적 직위나 명성이 아닌 멋 내기 정도에 따라 신분이 나뉠 것을 예견했다. 어느 날 오스카 와일드는 한 귀부인의 파티 초대에 응하기 위해 터벅터벅 자갈길을 걷고 있었다. 평상시 그의 열렬한 팬이던 한 재벌이 화려한 마차를 타고 지나치다가 오스카 와일드 곁에서 잠시 마차를 멈추고유명한 스타가 걸어 다니면 안 된다며 마차에 오르도록 했다. 와일드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가볍게 마차에 올랐다. 그런데 재벌의 마차를 얻어 타고 달리던 오스카 와일드는 도착지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마차 주인에게 마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당신을 마차에 태워준 내가 왜 굳이 여기서부터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느냐고 되묻자 와일드는나 같은 멋쟁이가 당신처럼 촌스러운 차림을 한 사람과 같은 마차를 타고 도착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일 순 없지 않느냐라고 태연하게 반문했다고 한다.당시의 와일드는 무일푼이었다. 마차 빌릴 형편이 안 돼 자갈길을 걸어서 파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패션 스타일과 말투, 걸음걸이, 먹는 것, 소집품 등 모든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며 따라 하고 있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리더였다. 그가 만든댄디라는 유행 트렌드는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몇 십 년에 한 번씩 새로운 유행으로 부활하고 있으니 그가 문화와 소비 트렌드를 리드하는 힘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마도 그런 자신의 파워를 느낀 오스카 와일드였기에자기 멋 부리기로 계급을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 것은 아니었을까?

 

 

20세기 트렌드의 특징은 돈보다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고 그것을 추종하게 만드는 트렌드가 시장을 주도하게 됐다는 점이다. 20세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대량 생산 제품을 거부하고 예술가들이 수공으로 만든 가구나 주전자 같은 생활용품들도 예술 작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비엔나 공방이 큰 인기를 모았다. 이 트렌드는 오늘날까지공방물건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만들었다. 1950년대에는 화물 기차를 얻어 타고 미국 대륙을 종단 또는 횡단하며 길의 낭만을 노래했던 미국 개척 시대의 소설가 캐루악과 그를 둘러싼비트닉족등이 새로운 트렌드의 리더들이었다. 비트닉족이나 길거리족들은 한참 후에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대학을 중심으로 돈 없이 전국을 일주하는무전 여행족그룹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돈 많은 귀족이나 부자들이 문화와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것 자체에 인생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재벌이나 귀족들까지 따라 하게 만드는 새로운 트렌드 리더들로 부상했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라는 구시대적 문화 개념을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바꾸지 못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골프, 스카치 위스키, 고급 외제 자동차, 서양식 음식점, 고층 건물들을앞서가는 문화라며 따라 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미국의 빌 게이츠는 청바지를 입었고, 스티브 잡스는 히피 철학에 빠져 있었으며, 뉴욕 요식업자 쟝-쥬르지는 베트남 전통 음식을 연구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세계 시장 경쟁에서 헤매게 된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19세기의 유럽인들이 문화가 폭포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믿었다면 20세기의 서구인들은 문화는 부챗살처럼 몇 개의 중심점에서 사방으로 퍼진다고 믿었다. 앞서도 말했듯 트렌드는 이제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4개의 글로벌 A레벨 도시(파리, 런던, 뉴욕, 도쿄)의 각양각색, 각계각층의 리더들로부터 퍼져나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도시들의 최신 유행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다른 도시와 국가들의 기업은 한발 늦게 그 트렌드의 영향을 깨닫고 급하게 뒤쫓게 된다. 하지만 그때쯤 되면 유행의 방향은 다시 바뀌고, 트렌드 리더와 그들을 활용하는 사업가들은 계속 디자인적 선점을 유지하게 된다. ‘Chase-and-Flee’라 불리는유행의 경제전략화현상이다.예컨대 뉴욕의 거대 건축 디자인 사무실, 파리와 거대 패션·요식 업체와 도쿄의 만화(망가) 업체, 런던의 국제 에너지 인프라 기반 산업체들과 금융사들은 자기 도시의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트렌드를 계속 실험적으로 사업에 적용해 경쟁력을 만들어 낸다. 이 글로벌 A 도시들의 힘은 이런 사업과 예술의 유기적 협력을 활성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새로운 트렌드를 전 세계로 전파할 수 있는문화 문지기(Cultural Gatekeeper)’가 됨으로써 계속 유지된다. 다시 말하면 글로벌 A 도시들의 문화 트렌드는 뉴욕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NBC, MTV 같은 텔레비전 스테이션, 파리의 강력한 문인집단과등의 패션 잡지, 런던의 금융 신문, 도쿄의 만화와 캐릭터 같은 문화 상품들을 통해 ‘선진’ 문화를 따라 하려는 서울 같은허브도시로 전달된다. 서울에서 다시 한국 시장에 맞게 응용된 파리지앵, 뉴요커, 런던 또는 도쿄 스타일들이 서울의 텔레비전과 잡지, 신문 등을 타고 광주, 대전, 부산 같은로컬 허브 시티로 전달되고 그곳에서 아주 시골에 사는 최종 소비자까지 실핏줄처럼 연결된다. 예를 들어, 패션에 관심이 높은 대구의 소비자들이 서울에서 만든 국내 드라마 캐릭터들의 최신 패션을 따라 했다고 치자. 서울의 드라마 캐릭터의코디’들은 아마같은 프랑스 출판사가 내놓은 잡지의 화보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보통 이런 잡지의 화보를 창작하는 사진가들과 편집장들은 가난한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최신 예술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화보를 만든다.이것을 잘 간파하고 있는 창의적인 인재들은 자기들의 트렌드를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A레벨 도시들로 몰려들며 이 도시들은 이미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일종의 세계의트렌드 공장을 형성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가 골프, 스카치 위스키, 럭셔리 카, 귀족 스타일이라는 19세기 문화를 간신히 좇아가고 있을 때세련됨이란 이미 얼마나 부유한 소비생활을 하느냐가 아니라얼마나 실험적인 글로벌 A 도시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비슷한가로 평가되고 있었다. (‘DBR minibox’ 참조.) 다시 말하면 아직 신선한 미학적 코드를 가진 상품이 세련된 것이고, 너무 많이 반복, 응용, 인용돼서 신선함을 잃고익숙해진스타일은 ‘키치(Kitsch)하다아니면오리지널하지 않다(unoriginal)’라는 말로 폄하하는 시대가 우리도 모르는 새 이미 진행됐던 셈이다.1

 

 

DBR Mini Box

글로벌 A 시티 문화 사례: Parkour

프랑스에는 1980년대부터 Parkour라는 독특한 스포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Parkour란 뛰기, 구르기, 공중제비 같은 여러 동작으로 도심의 빌딩과 주차된 자동차 등 장애물을 뛰어넘는 스포츠의 일종이다. Parkour는 원래 식민지 베트남에 주둔한 프랑스 군인들의 유격 훈련인 Parcoursd’obstacle에서 나왔다. 다비드 벨이라는 젊은이가 자신의 몇몇 친구들과 만들어낸 신종 스포츠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차이나(IndochineFrancaise: 베트남의 옛 이름) 식민지 주둔군이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트남 군대식 유격 훈련을 시켰던 것 같다.

 

이 운동은 우리나라 청년들에게도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콩고의 란갈라어로건강을 의미하는 야마카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운동은 동네별 클럽을 잇는 점조직 형태로 발전했다. 동네 친구들이 모여 동네 안의 지형지물들을 무대 삼아 뛰고 구르고 묘기를 부리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야마카시 그룹에 가입하려면 일단 자기 동네 야마카시 그룹에서같이 뛸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인정부터 받아야 한다. 당연히 엄격한 신고식을 치러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클럽의 규칙도 엄격해서 모임 시간에 한 번이라도 늦으면 가차 없이 퇴출당한다. 해외 주둔 프랑스 군인 문화가 청소년 문화에 접목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운동 자체가 딱히 멋지거나 재미있어서 유행했다기보다는 한 세대 전 브롱크스의 Urban Culture처럼 특정 세대의 자아를 대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한 자녀 또는 두 자녀 가정이 많아진 현대사회에서 형제 없이 자란 청년들은 이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남자들끼리 몰려다니며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집안이나 학교에서도 엄격한 규율이 없이 너무 자유롭다 보니 야마카시 집단의 강한 규율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뛰어다녀야 하는 나이의 청소년들에게 아파트와 자동차 안 같은 막힌 공간이 주는 답답함을 벗어나게 해 준 것은 물론 콩고나 베트남 같은 프랑스 외인부대 주둔지의 이국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의 소수민족에게 가장 먼저 인기를 끌어 특이해 보이기도 했다. 아직은 야마카시 클럽 인구가 폭발적일 만큼 많은 나라는 없지만 전 세계 야마카시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를 알고 지내고, 유튜브를 통해 기술을 공유하며, 가끔씩번개를 쳐서 세계의 어느 한 지역에 만나 같이 뛰며 즐긴다. 그럴 만한 수의 동호인 층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그 동네에서잘나가는 영 트렌드리더역할을 한다. 파리에서 인기를 끈 이 스포츠는 프랑스 영화 사업이라는 엄청난 미디어를 통해서 전 세계의 특정 계층을 대표하는 활동으로 번져나갔다. ‘District 13’이라는 프랑스 영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끈 후 프랑스 영화를 염탐하고 모방하던 미국 영화로 스며들었다. 할리우드 영화 ‘007 카지노 로얄에서는 세계 야마카시 고수 중 한 명인 세바스티앙 후캉(Sebastien Foucan)을 제임스 본드와 추격전을 벌이는 캐릭터로 캐스팅해 젊은 유럽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문화 트렌드 리더들을 지켜보고 있던 것은 할리우드뿐만이 아니었다. 캐나다의 게임회사 Ubisoft의 히트 게임 ‘Assassin’s Creed’는 젊은 층을 겨냥한 상품인 만큼 메인 캐릭터의 여러 스킬 중에 야마카시 운동을 포함시켰다. 실제로 이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도심의 지붕과 골목 사이를 뛰어다니는 야마카시 움직임을 보고 대리 만족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야마카시 움직임을 적용한 이 게임은 합법적으로 판매한 것만 해도 7300만 장이 넘었다.

 

당연히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트렌드 리더들이 자기들의 상품을 가장 먼저 쓰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12년 청소년 에너지 음료의 대표 브랜드 레드불은 야마카시 클럽의 존재를 발견하고 유럽의 10대들이 모여 광란의 밤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에서 열린움직임의 예술(Art of Motion)’이라는 행사에 세계 최고의 야마카시 고수 21명을 초청했다. 그들이 멋진 쇼를 보여 주자 후원했던 레드불은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 야마카시 같은 답답한 도시 젊은이들에게 해방감을 주는 트렌드 리더들이 레드불을 마신다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 정착에 큰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사례를 들어보자. 알제리 출신 동성 연애자이자 사회주의 신문 창업자의 게이 연인이던 이브 생 로랑은 검은 부츠에 청바지와 날렵한 트렌치코트라는 새로운파리 스타일을 창조했다. 사실 이브 생 로랑은 베르사이유궁전 시대의 코르셋을 조여 매고 꽃처럼 넓은 스커트를 펼친 파리지앵의 패션을 신봉하던 크리스찬디오르 패션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 것이었다. 이브 생 로랑이 그런 획기적인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남자 친구의 지인들이던 프랑스의 아트필름 제작자 고다르와 트뤼포, 화가 몬드리안 등과 어울려 다니며 그들에게 철학과 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 컸다. 결국 프랑스 화가 몬드리안이 만들어낸 어떤 삶에 대한 비전은 무려 30년이 지나 한국 여성들이 자랑스럽게 입은 점퍼나 슈트에 옮겨졌고, 그들이 그런 옷을 입고 가로수길을 활보하게 만든 셈이데 이런 문화의 동선을 이해해야만 트렌드의 원천을 발견하고 상품 제작과 마케팅에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동선은 사실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등의 트렌드 리더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모방하고 경쟁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보면 꽤나 복잡해 보인다. 예를 들어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바스키아는 뉴욕 길거리의 그래피티 예술가들과 친했고 그들의 철학과 미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브 생 로랑의 명품을 입는 사람과 그래피티 예술의 영감을 받은 할렘 힙합룩을 즐겨 입는 사람은 서로 다른 문화를 선택한 것 같아 보이지만 둘 다 글로벌 A시티라는창의력 공장에서 나오는 일정한 문화 형태를 받아들여 즐기는 것이니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니다. 이 서로 다른 트렌드를 만든 사람들은 사실 서로를 모방하고 동경하는 같은 지역에서 같이 활동하는 동일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둘 중 한 사람이 더 새로운 유행에 가까운 것도, 먼 것도 아니며, 사실은 20세기의 도시인들이 선호할 수 있는 삶의 문화적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해 뉴요커들과 파리지앵들이 내놓은 서로 다르지만 사실은 연결된 대답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받아들였을 뿐이니 이런 사람들의 동정을 잘 파악하면 트렌드의 흐름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한국 기업,어떻게 트렌드를 읽을 것인가?

오늘날 한국 기업들은 내수시장에서도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점점풍요의 사회고객으로 변하고 있는 한국 고객들의 욕구를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풍요의 사회를 사는 고객들은인생에서 무엇을 어떻게 즐기며 살아야 할지알려주는 글로벌 A 도시 사람들의 독특한 트렌드 리더를 흉내내고 싶어 한다. 국내의 청년층들이 외국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국내 기업들과 문화 조직들이 그런 소비자 기호 변화를 포착해서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건이 아닌가치관을 팔아야 하는 시대를 맞아 만약 국내 기업들이 레드불 음료 회사가 Parkour라는 새로운 스포츠를 마케팅에 이용하듯 자기들의 가치관과 자기 브랜드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대표하는 트렌드 리더 그룹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만약에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담당자가 세계의 여러 아방가르드 예술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세계 최고의 그래피티 예술가, Parkour 운동가들의 이름조차 모른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요즘 이런 그룹들이 뉴욕과 파리의 어느 동네에 살고, 어떤 옷을 입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를 모른다면, 그 기업은 21세기가 깊어질수록 마케팅과 상품 디자인과 콘셉트 잡기에 애먹을 수 있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더라도 결국 엉뚱하게 타기팅을 하다 낭패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사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트렌드 리더의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 이런 시장 변화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이 연재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의 움직임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

 

 

조승연 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을 싣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에서 주관한 국제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피리부는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비즈니스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