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2000년대 초반 미샤, 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단일 브랜드 매장 형태로 진출하면서 국내 화장품시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모아 파는 동네 종합화장품 매장의 매출액은 감소했고 이러한 매장을 대리점으로 삼아 영업하던 아모레퍼시픽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로 자체 유통망을 만들기로 했다. 2004년 기존 거래처이던 동네 화장품가게 중에서 목이 좋고 매출액이 높은 우량매장을 모아 화장품유통체인 ‘휴플레이스’를 출범시켰다. 아모레퍼시픽은 휴플레이스 가맹점에 인테리어시설을 지원하고 판매사원을 보냈다. 하지만 휴플레이스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제품만을 판 것은 아니었다. 휴플레이스는 전체 매출액의 60% 정도만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을 팔았고 나머지 40%는 다른 화장품회사의 제품을 팔았다. 하지만 이전 종합 화장품 매장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이 25% 정도만 팔렸기 때문에 이를 60%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모레퍼시픽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성과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7년 초 휴플레이스를 자체 브랜드 제품만 100%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체인인 ‘아리따움(ARITAUM)’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하고 프랜차이즈 출범과 관련된 전략을 세웠다. 아리따움은 프랜차이즈체인 운영과 제품 마케팅 등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적절하게 해외 선진업체와 고객, 매장 등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2013년 아리따움의 전체 가맹점 매출액은 2012년과 비교할 때 25% 증가했다.
1. 해외 선진업체를 관찰하다
아모레퍼시픽은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컨설팅회사와 협업하기도 한다. 아리따움 출범 시에는 해외 화장품업계의 베테랑 인사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객관적인 지표만으로 전략을 세우면 수치에는 드러나지 않는 소비자의 행태,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직관적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은 2008년 프랑스 화장품업체인 이브로셰(Yves Rocher)의 창업멤버 출신인 대니얼 카빌 전 부사장과 접촉했다. 그는 프랑스의 화장품프랜차이즈협회장을 지낼 정도로 화장품 유통과 마케팅과 관련 분야에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에 프랑스의 화장품 유통체인점 ‘세포라’를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세포라는 전 세계의 럭셔리 브랜드뿐 아니라 크게 알려지지 않은 각국의 화장품 브랜드를 발굴해서 유통시키는 전문 업체였다. 아리따움은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미쟝센 등 고가의 화장품을 취급하는 유통망이기 때문에 시사점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리따움팀은 프랑스의 세포라 매장을 직접 찾았다. 그런데 세포라 매장에는 고가의 화장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자체브랜드(PB)제품도 배치돼 있었다. 품질이 우수하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PB제품도 꽤 많이 전시돼 있었다. 세포라는 고가 브랜드의 제품과 비슷한 PB제품을 계속 늘리고 있었다. 매장에서 PB제품 코너의 공간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PB제품의 경우 메이크업 제품뿐만 아니라 핸드크림, 클렌징 제품 등도 많이 팔린다. 소비자들이 주로 주방, 욕실 등에 놓고 매일 사용하는 제품들이다. 제품의 겉면에는 세포라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홍보하고 친밀감에 따라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늘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PB제품은 사실 고객을 매장으로 이끄는 일종의 미끼상품 역할을 한다. 세포라의 PB제품이 전체 매장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였다. PB제품만을 담당하는 별도의 팀을 꾸려 신제품 개발에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세포라의 사례를 토대로 PB제품 전략을 세웠다. 사실 아리따움은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의 유통망이기 때문에 PB제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휴플레이스가 아리따움으로 개편될 때 기존 휴플레이스 가맹점 업주들이 미끼상품으로 활용할 저가 화장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휴플레이스의 전체 매장 중 80%는 아리따움으로 교체됐지만 나머지 20%의 매장은 아리따움으로 변경하지 않았다. 20%의 휴플레이스 업주들은 아리따움에 미끼상품인 저가 제품이 없는 것을 보고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세포라의 사례와 휴플레이스의 미합류 업주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PB제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제품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비싼 고급 화장품보다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품질 좋은 화장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소비자들이 고가와 저가의 화장품에서 품질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제품의 품질은 고가와 저가 제품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고객당 매출액을 늘리기보다는 고객이 매장을 많이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화장품은 대체로 3∼4개월을 주기로 교체한다. 연간 교체주기가 3∼4회였다. 아모레퍼시픽은 PB제품을 지렛대로 삼아서 고객의 방문을 늘릴 수 있었다. 아리따움 매장에서 PB제품의 판매량은 2008년 전체 매출액의 3%에서 2013년 15%로 늘었다. 2013년 전체 방문고객 430만 명 중 64%가 아리따움의 PB제품을 구입했다. 아리따움에서 첫 구매를 PB제품으로 시작한 사람은 전체 고객 중 45%에 달했다. PB제품 고객의 재구매율도 54%를 기록했다.
2. 가맹점 업주의 체크리스트를 관찰하다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업체의 특성상 임직원의 현장방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내부 규정(필실천 과제)에 따르면 모든 영업사원은 근무시간의 50%를 현장활동에 사용해야 한다. 임원은 근무시간의 30%가 현장활동 시간에 할당된다. 전략을 세우는 임직원들도 현장에 자주 나가서 고객의 소리를 듣는다. 필자는 2012년 12월19일 전북 전주시 소재의 한 아리따움 매장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10시20분 동네 고객 한 명이 매장에 들어왔다. 그는 1만 원 이내의 작은 미용용품 하나를 집어서 계산대에 갔다. 아리따움 회원의 경우 매장에서 전화번호 검색으로 과거 구매이력을 검색할 수 있다. 매장 업주는 고객의 구매 이력을 살피면서 고객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후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면서 무려 40만 원어치의 화장품을 팔았다. 업주는 단골이 현재 어떤 제품을 쓰고 있으며 과거 어떤 제품을 썼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또 제품의 사용주기를 고려할 때 현재 어떤 제품이 소진됐는지도 꿰뚫고 있었다. 고객의 취향을 미리 간파하고 고객에게 필요한 향수를 골라 그 자리에서 추천했다. 흥미로운 것은 고객의 반응이었다. 그는 매장 업주의 추천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소비자가 아니라 판매자가 구매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매장 업주는 고객에게 특정 제품을 꼭 구매하라고 강권하는 게 아니라 어떤 제품은 사고 어떤 제품은 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신기했다.
매장 업주는 휴플레이스 당시부터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매장을 꾸려왔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었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이 매월 가맹점 업주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인 ‘아리따움 지식인 선발대회’에서 1300여 개 가맹점 업주 중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아리따움 지식인 선발대회는 화장품 제품 및 판매와 관련된 지식을 필기시험으로 치르는 테스트다. 그는 짧은 구매이력 정도의 통계를 읽고 고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예측했다. 어떻게 보면 노하우였다. 매장 업주가 판매하는 방식을 다른 판매사원들도 배우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매장 업주는 자기 나름대로 고객에게 물어볼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종이에 적어서 하나씩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록을 가지고 고객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례는 다른 업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기적으로 아리따움의 고객관리에 대해 컨설팅을 하는 박영훈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자동차 경정비업체 엔지니어들의 경우 차제적으로 차량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고객이 들어왔을 때 정비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매출액이 60%가량 더 많아진다는 결론을 얻은 사례연구가 진행됐다고 한다. 차를 정비하려는 고객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안전예방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만으로도 차량 운전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정비를 몇 가지 더 받게 된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고객이 아리따움 매장에 들어왔을 때 건네는 말과 대처 요령이 담긴 체크리스트와 매뉴얼을 수정하기로 했다. 과거에도 고객이 들어올 때 단계별로 대처하는 매뉴얼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달랐다. 과거에는 고객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고 건성인지 지성인지 피부타입에 대해 질문했다. 이후 과거 상품과 브랜드를 중심으로 재구매를 추천했고 고객은 이에 따라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언제나 사용하던 상품을 중심으로 재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새로운 수요를 찾아내기 어렵다. 아모레퍼시픽은 고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구체적인 체크리스트를 갖추기로 했다. 고객에게 화장품 등과 관련해서 상담해주는 방식이다.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면 업주, 매장 매니저는 고객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전화번호를 통해 과거 구매이력을 확인한다. 최근 6개월 동안 고객이 어떤 제품을 구매했는지 확인한 뒤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을 고르고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런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고객의 화장품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질문 매뉴얼을 작성하고 있다. 현재 이런 방식은 일부 매장에서만 진행되고 있는데 성과가 좋아 앞으로 전 매장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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