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ic Communication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려면 그가 ‘왜’ 그것을 주장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 협상학에선 요구(Position)가 아닌 욕구(Needs)에 주목하라고 설명한다. 포지션은 니즈의 대리인일 뿐 꼭 그것을 받아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협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니즈만 찾으면 될까? 아니다. 한방이 더 필요하다. 그건 바로 ‘협상의 꽃’이라고 불리는 창조적 대안, 즉 ‘크리에이티브 옵션(Creative Option)’이다. 이번 글에서는 창조적 대안이 무엇인지, 그리고 창조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창조적 대안(Creative Option)이란?
창조적 대안이란 양측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제3의 대안을 말한다. 정의만 놓고 보면 대단히 어려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주말에 조용히 책을 보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당신. 볕이 잘 드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청년이 당신 건너편에 자리를 잡더니 창문을 활짝 연다.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조용하게 책을 읽는 평화를 잃게 된 당신. 창문을 닫고 다시 책 읽기에 집중한다. 하지만 다시 그 청년이 창문을 연다. 살짝 화가 났지만 꾹 눌러 참고 다시 창을 닫는 당신. 그러자 상대도 얼굴을 붉히며 창문을 연다. 창을 닫고 싶은 당신과 창문을 열고 싶은 청년. 둘 사이에 무언의 협상이 시작됐다.
이 협상을 풀려면 어떤 창조적 대안이 필요할까? 일단 양측의 욕구, 즉 니즈를 알아보자. 당신의 니즈는 뭔가?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럼 상대의 니즈는? 너무 더워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공부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 ‘조용한 상태로 시원한 환경을 만드는 방법’이 바로 이 협상의 창조적 대안이다. 방법은?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면 된다. 창문을 열겠다와 닫겠다는 포지션이 부딪힌 상황에서 ‘조용함’과 ‘시원함’이라는 양측의 니즈에 집중하면 ‘에어컨 켜기’라는 새로운 해결책이 나온다.
어떤가? 너무 시시한가? 하지만 이러한 창조적 대안은 세계의 역사를 뒤바꾸기도 한다. 역사 속의 사례를 살펴보자. 1978년에 있었던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 협상이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반환 문제를 놓고 10년 넘게 지루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상황은 이랬다. 1967년, 이스라엘은 유명한 ‘6일 전쟁’을 통해 이집트 영토의 일부인 시나이반도를 빼앗았다. 뺏은 자와 빼앗긴 자 간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됐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의 평화는 너무 먼 일처럼 보였다. 보다 못한 미국이 중재에 나섰다.
캠프 데이비드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협상 대표를 부른 미국의 카터 대통령. 먼저 이집트의 협상 대표인 사다트 대통령에게 물었다. “시나이반도와 관련해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원하는 것이 뭡니까?” 이집트의 요구는 간단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뺏긴 땅 전부를 돌려받아야만 합니다.”
다음, 이스라엘의 협상 대표를 맡은 베긴 총리에게 물었다.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실 수 없습니까?” 베긴 총리가 냉정하게 답했다. “돌려 드릴 생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100% 반환은 불가능합니다. 일부만 돌려 드리겠습니다.”
‘100% 반환’과 ‘일부 반환’이라는 요구(position)가 맞붙은 상황. 중재자 역할을 맡은 사이러스 벤스 미 국무장관은 양측의 욕구, 즉 니즈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모래밖에 없는 시나이반도에 왜 그리 집착합니까?” 양측의 욕구는 의외였다. 이집트는 자존심(주권) 회복을 원했다.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에 6일 만에 국토를 빼앗긴 것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으면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 미운 털이 박힐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무마하기 위한 반대 급부로 시나이반도는 무조건 전부 차지해야만 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니즈는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시나이반도라는 완충지대가 있어야만 중동의 적대국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즉 전쟁 위협에 대한 전초 기지의 역할로 시나이반도가 꼭 필요했다.
양측의 니즈를 파악한 벤스가 창조적 대안을 내놨다. “땅은 100% 이집트에 돌려주되 시나이반도를 비무장지대로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조기 경보 시스템을 제공해 안보를 철저히 지켜준다.” ‘자존심 회복’이라는 이집트의 욕구와 ‘안전 확보’라는 이스라엘의 욕구. 이 둘을 절묘하게 충족시키는 아이디어 덕분에 양국은 전쟁터에서 낭비될 뻔한 젊은이들의 피를 아낄 수 있었다.
이처럼 크리에이티브 옵션은 꽉 막힌 협상을 풀어내는 해답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협상 워크숍을 진행할 때마다 ‘창조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이럴 때 되묻는 사람이 꼭 있다. “창조적 대안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거야 협상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하소연한다. “창조적 대안이라는 건 말 그대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이나 만들어 낼 수 있겠죠.”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협상 전문가들은 이런 생각에 대해 단호하게 “NO”라고 말한다. 창조적 대안을 만드는 데에 협상 경험이나 창의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신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 내는 ‘패턴’을 아는 게 중요하다. 수많은 성공적인 협상 사례를 분석해 보면 창조적 대안은 몇 가지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창조적 대안을 만드는 비밀을 하나씩 풀어보자.
Bet (내기 걸기)
협상을 하다 보면 나와 상대가 미래를 다르게 예상하고 이로 인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질 때가 많다. 이때 자신의 예상이 맞다며 싸우는 사람들은 협상 고수가 아니다. 양측의 서로 다른 예상을 인정하고 거기에 따라 베팅을 하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다음 상황을 한번 보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갖고 있는 당신. 사업 확장을 위해 땅을 팔기로 결심했다.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주변 시세를 확인해 보니 현재 가치는 3억 원 정도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주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해당 지역 인근에 5년 내에 지하철역이 들어설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 몇 군데 확인을 해보니 충분히 믿을 만한 정보다. 그래서 현재는 3억 원이지만 역세권임을 감안해 5억 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려는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상대는 지하철역이 들어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현재가치인 3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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