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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스토리텔링에 민감하다

정재승 | 37호 (2009년 7월 Issue 2)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남들에게 들려주길 좋아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길 좋아한다. 이야기에 웃고, 울고, 공감하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한다. 이야기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드물다.
 
<퀴즈쇼>의 작가인 소설가 김영하는 이를 ‘설동설’로 표현한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지동설),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주장이다. 생각해보라.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인류는 이집트를 탈출했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사랑해 자신의 모든 걸 내주기도 했다.
 
인간이 이야기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이유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우리의 뇌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인간의 내적 동기는 대부분 스스로에게 들려줄, 동기의 틀을 결정하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심리학자들은 믿는다. 이야기가 없다면, 인생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건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교훈을 얻고, 감정을 공유하며, 삶의 변화를 만든다. 뛰어난 리더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만들거나 가진 사람’이다.

인지심리학자인 로저 섕크와 로버트 아벨슨은 이야기가 지식 축적의 핵심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뇌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는 ‘이야기를 저장하는 영역(episodic-memory region)’이 존재한다. 이곳은 운동을 기억하는 영역(자전거를 타는 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과도 뚜렷이 구별된다.
 
이 중 가장 기억 지속 시간이 긴 건 ‘운동 기억’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름이나 단어 같은 ‘맥락 없는 기억’들보다 훨씬 오래간다. 우리가 두 단어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기억하는 이유다. 이야기가 덧붙여지면 기억을 쉽게 인출하고, 더 오래 저장할 수 있다.
 
이야기 기억’은 용량도 엄청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뇌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나 어린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는 최근에 들은 이야기보다 더 오래 남는다. 노인의 머릿속에 주로 옛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이유다. 치매 환자들이 가장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기억도 바로 ‘어린 시절 이야기’다.
 
이야기는 사람 사이의 관계 혹은 제품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 2006년 오틀리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더 많이 읽는 대학생일수록 사회적 능력이 더 뛰어났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로 유명하다. 그가 쓴 ‘사랑은 이야기다: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론’에 따르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들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들은 함께 나눈 일련의 기억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과 결혼의 가치를 확인한다. 스턴버그 박사에 따르면, 결혼의 성공 여부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공동의 ‘이야기’ 형태로 반복되면서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주는가에 달려 있다.
 
특별한 이야기는 평범한 제품을 한순간에 특별한 걸로 바꾼다. 대표적 예가 프랑스의 고급 생수 ‘에비앙’이다. 에비앙을 판매하고 있는 다농에 따르면, 에비앙의 역사는 ‘예수의 기적’을 연상시킨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의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 에비앙에 신장결석을 앓던 후작이 요양을 하러 왔다. 어느 날 마을 주민으로부터 ‘약효가 있는 우물물이 있다’는 귀띔을 받고 그 물을 구해 마신 후 신기하게도 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는 이 우물물의 정체를 탐구했다. 그 결과 알프스의 눈과 비가 15년에 걸쳐 녹고 어는 과정을 통해 매우 깨끗하고 미네랄도 풍부한 물로 정화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물 주인은 이를 전해 듣고 우물물을 팔기로 결심했다. 1878년 처음으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아 상업화한 물이 바로 에비앙이다. 그러나 속지 마시라. 원래 신장결석은 아무 물이나 많이 먹으면 돌이 빠져나가 낫는 병이다. 혹자는 맥주를 진탕 마시기도 한다. 어쨌든 ‘에비앙 효과’는 사실 없는 셈이다. 어쨌든 이 놀라운 스토리텔링은 미네랄이 많아 맛도 밍밍한 에비앙을 단숨에 세계적인 ‘먹는 샘물’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문학 비평가 로널드 토비아스는 인간이 좋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패턴을 20개로 나눴다. 탐색, 모험, 추구, 구출, 탈출, 복수, 수수께끼, 경쟁, 약자, 유혹, 변질, 변형, 성숙, 사랑, 금지된 사랑, 희생, 발견, 비참한 과잉, 상승, 하강. 그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이 20개의 근본 플롯 패턴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품에도 모험, 유혹, 금지된 사랑과 같은 이야기를 덮으면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제품에 덧붙여진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와 맞물린다. 뛰어난 이야기는 작품의 주인공과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일으키면서 제품에 대한 각별한 선호를 유발한다. 이러한 상태를 ‘이야기 도취(narrative transport)’ 현상이라고 부른다. 200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자 멜라니 그린은 저널에 발표한 논문 ‘담화 과정(Discourse Processes)’에서 ‘독자가 이야기에 매료되는 건 현실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것을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에 대한 함의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강한 파급력을 가진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강한 파급력을 갖는 이유는 이야기가 마치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퍼지기 때문이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사회적 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졌다. 따라서 다른 구성원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워져 구성원에 관한 정보를 확산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받게 됐다.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옛날부터 이야기는 정보를 습득하고 대인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도구였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성향’이 항상 존재했다는 뜻이다.
 
1997년 영국 리버풀대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의 실험에 따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공장소에서 말하는 시간의 65%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우리는 정말 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가.
 
마케팅이 입소문(word-of-mouth)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할 때 이야기만큼 효과적인 도구도 없다. 사람들은 제품의 이름, 특징, 성능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제품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쉽게 기억한다. 남들에게 빠르게 전할 수도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이야기가 없는 삶이 지루하듯, 이야기가 없는 제품은 매력 없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기 바랍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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