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오타쿠
‘오타쿠’란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오타쿠는 1980년대 일본에서 ‘SF나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팬’을 지칭하는 용어로 생겨났다. 지금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이외의 분야에도 적용돼 ‘자신의 취미에 강한 고집을 가진 사람’이라는 폭넓은 뜻으로 쓰인다.
오타쿠란 말 자체는 SF 및 애니메이션 팬들이 서로 상대를 부를 때 ‘댁은(お宅(たく)は)…’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당시에는 이 호칭에 약간의 모멸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었다. 오타쿠라 불리는 마니아들이 패션에 무관심하고, 주로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며,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서투르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어감은 많이 사라지고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또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됨에 따라 ‘골수팬’을 뜻하는 용어인 오타쿠도 해외로 널리 퍼져 나갔다.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일본어 그대로 ‘Otaku’가 통용된다.
오타쿠가 하위문화(sub culture)의 일부였던 시기부터 그 문화를 접해온 필자들에게는 요즘의 이런 현상들이 매우 감개무량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타쿠의 의미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과 대만에서는 ‘집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TV에 빠진 젊은 층’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오타쿠란 ‘고집’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말로,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미국에서는 ‘망가(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문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는 존경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타쿠가 주는 시사점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오타쿠를 ‘성숙한 소비 사회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하고, 객관적 시점에서 분석을 시도해왔다. 그 결과 오타쿠의 소비 메커니즘이나 심리적 성향, 행동 원리가 주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먼저 오타쿠의 소비 성향은 한마디로 ‘무조건 소비를 해버리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한 정보기술(IT) 소매점의 고객 조사에서 ‘연간 1000만 엔 이상을 사용하는 계층’이 존재하며, 그들의 숫자 또한 만만치 않은 정도(몇 명이 아니라 몇십 명)라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사람들이 놀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계층이 있다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오타쿠들은 ‘필요한 품목을 전부 갖추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특정 작품이나 제품이) 좋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평가 기준이 있다’ 등의 심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오타쿠는 돈의 소비뿐만 아니라 시간의 소비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로 인터넷 게임에 빠진 게임 오타쿠는 일본에서도 드물지 않다. 이런 게임 오타쿠는 전체 이용자의 3% 정도지만, 일본 네트워크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2004년에 실시한 생활자 실태 조사1
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출현율’이 약 3.6%, 즉 27명 중 1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소비 성향과 다른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치라 할 수 있다.
한국 오타쿠와 일본 오타쿠의 차이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오타쿠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실제 오타쿠라 불리는 사람의 특징도 다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차이는 ‘지식의 깊이’에 있다.
한국에서의 오타쿠는 아직까지 비평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보다는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을 말한다. 즉 전문가보다는 마니아 성격이 강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한 가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의 층이 엷으며, 많은 사람이 특정 주제에 흥미를 잃으면 쉽게 다른 콘텐츠로 눈을 돌린다.
이런 차이는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다. 일본은 문화 소비의 전통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더 오래됐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대중이 문화를 소비할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된 시기가 일본보다 많이 늦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를 왕성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형태도 아직 상대적으로 덜 보편적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문화의 소비보다는 인터넷 등을 통한 ‘공유’라는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문화를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은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만의 독특한 오타쿠 문화를 파생시킬 가능성을 크게 한다. IT 산업의 급성장으로 야기된 한국의 인터넷 사용은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오타쿠 문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오타쿠 연구 기반의 새 마케팅 프레임워크
소비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소비자의 기호는 급속하게 다양화·전문화된다. 이제는 4P 프레임워크(framework)로 대표되는 기존의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으로는 더 이상 시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