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은 기본적으로 승자와 도전자의 경쟁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만큼 경쟁은 중요하고, 이기기 위한 전략과 관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경영학에서는 승자를 위한 전략적 관점은 많지만, 도전자를 위한 전략적 관점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1등 업체는 하나뿐이고 도전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데도, 후발주자의 전략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어떻게 하면 도전자는 1등과 싸워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 거의 유일하게 도전자, 다시 말해 후발주자의 전략을 다룬 연구가 있는데, 그것은 1998년 샹커와 그 동료들이 쓴 ‘후발주자의 이점(Late Mover Advantage)’(Shanker, Carpenter & Krishnamurthi,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이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의 내용은 매우 큰 통찰을 준다. 이 글에서는 샹커 등이 논의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 내용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분석해 시장 내 후발주자, 즉 도전자가 고려해볼 만한 전략적 대안들을 살펴보겠다.
1등 따라잡기 전략의 핵심은 혁신
‘후발주자의 이점’의 핵심을 간추리면, 후발주자라 하더라도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1등이 만들어놓은 이점을 한번에 가져갈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후발주자에게 어떤 조건이 갖추어지면 1등이 만들어놓은 이점을 한번에 가져갈 수 있을까. 결론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혁신성(innovation)’이 핵심이다. 시장 내 후발주자가 선도자보다 높은 혁신성을 가졌다고 소비자들이 지각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완벽한 차별적 경쟁 우위(competitive advantage)가 생기기 때문에 6가지 차원에서 1등을 압도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 이 6가지 차원은 ‘브랜드 성장률’ ‘경쟁 제품의 확산에 끼치는 영향력’ ‘시장 잠재성’ ‘마케팅 비용 투자에 대한 효율성’ ‘반복 구매율’ ‘경쟁 제품의 마케팅 비용 투자에 대한 효율성’이다. 연구팀은 미국 시장 내 담배와 관련된 실제 데이터를 구해 회귀분석으로 시장점유율, 예측된 경쟁 강도 등을 분석했다. 복잡한 연구 절차가 진행됐지만 거두절미하고 간단히 정리하면, 후발주자가 혁신성을 확보할 때 1등 업체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는 어떤 것이 ‘혁신적’인가 하는 것이다. 제품에 어떤 내용이 추가되면 혁신적으로 인지될까?
혁신성의 원천은 제품이 아닌 소비자 결핍
후발주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소비자의 ‘결핍’을 찾고 해결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작 본인 스스로도 잘 모를 때가 많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전에 깨닫지 못한 소비자의 결핍을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해주면 사람들은 놀라고, 기억하며, 구매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구글은 기존 경쟁자였던 야후 등이 포털 내에서의 정보 제공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다양한 사이트를 검색해 제대로 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 최초의 브랜드다. 다시 말해 올바른 검색을 요구하는 시장의 결핍을 야후 등이 무시하고 있을 때, 이를 찾아내 해결했다. 구글이 나올 당시 미국에서는 야후가 검색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야후는 다른 검색 엔진들과 마찬가지로 복합 포털 사이트를 지향하고, 초창기에 나온 검색 엔진을 이용해 카테고리 내에서 정보를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발주자였던 구글은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즉 기존 검색 엔진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진 새로운 검색 엔진을 만들었다. 야후 등의 검색 서비스가 포털 내 자료를 살펴 보여주는 것과 달리, 구글은 거의 모든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신뢰성 높은 자료를 찾은 뒤 그 중요도를 구분해 화면에 표시해줬다. 결과적으로 보다 신뢰할 만한 내용이 화면 상단에 먼저 나타나게 됐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구글의 가치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입소문의 핵심은 ‘무엇이든 다 아는 구글’이었다.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무엇이든 다 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시장에서의 핵심적 결핍을 해결해줬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구글은 2001년 드디어 가장 많은 소비자가 사용하는 최고의 검색 엔진이 됐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구글이 단기간 내 최고 브랜드가 된 것이다. 구글은 소비자 결핍을 찾아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을 뒤집어라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을 뒤집어야 한다. 상식의 반대를 건드리면 혁신성이 증가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이아몬드를 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를 보지도 않고 구매할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과 다이아몬드는 궁합이 맞지 않고, 적합하지도 않다고 여겨져왔다. 이런 통념을 과감히 깬 업체가 온라인 보석상 블루나일이다. 이 회사는 1999년 설립된 온라인 보석 전문 판매점으로, 불과 10년밖에 안 됐지만 현재 매출 규모는 세계 3위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석 전문점 티파니에 약간 뒤지는 매출 규모다. 티파니의 역사가 170년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 성장 속도는 대단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평균 가격이 2700달러인 데 반해, 블루나일의 평균 판매 가격은 5500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거의 2배 수준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블루나일은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것일까. 블루나일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재고 비용과 간접 비용을 줄여 경쟁자보다 평균 35% 저렴한 가격에 보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블루나일은 매장도 없고 시애틀에 사무실 하나만 있다. 또 외곽 지역에 작은 창고 하나만 갖고 있으니 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든다. 물론 보증 시스템을 철저하게 갖췄고, 배송 과정에서도 100% 안전을 책임진다. 제품 품질은 보증이 되고, 배송은 안전하며, 값도 싸니 입소문이 저절로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손님이 몰리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다이아몬드를 살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하지만 블루나일은 온라인에서는 다이아몬드를 팔 수 없다는 상식을 뒤집어보고 경쟁자와 전혀 다른 포지셔닝을 했다. 이런 측면에서 제품 속성의 반대를 건드리는 것은 혁신성을 높이는 아주 훌륭한 방법 중 하나다.
신병철
- (현) 브릿지컨설팅 대표 (Brand Consulting Agency)
- 숭실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2005~현재)
- 고려대 경영대/경영대학원,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 외국어대학교 경영대등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