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 브랜드는 괴롭다. 선발주자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약하고 자원도 부족하다. 매우 가치 있는 자산을 가진 최고의 협력업체도 1등 브랜드만 찾는다. 2, 3등의 설움은 당해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하지만 비즈니스에서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선발기업을 추월하고 당당히 해당 제품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발주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어떻게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캐치업 성공을 위한 마케팅 전략을 간추린다. 또 한국 비즈니스 역사에 길이 남을 ‘10대 캐치업’ 스토리도 함께 소개한다.
CEO의 비전과 리더십: 선택과 집중
최고경영자(CEO)의 혁신적인 비전 제시와 리더십이야말로 후발기업이 선발기업을 추월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아무리 전략이 좋고 뛰어난 인재를 확보했더라도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성과를 낼 수 없다. 냉정하게 외부 위협과 기회 요인을 판단하고, 내부 여건을 점검해 어떤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CEO만이 할 수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기기 시장에서 순간의 선택은 곧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은 어느 순간 소닉블루와 결별을 선언했다. 레인콤은 리오 브랜드로 유명했던 미국 소닉블루에 주문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면서 큰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기자, 2001년 당시 레인콤 전체 매출의 75%를 차지하던 소닉과의 관계를 과감하게 청산했다. 양 사장은 “여기서 포기하면 ‘아이리버’ 브랜드는 소멸할 테니 힘들어도 우리 브랜드로 밀고 나가자”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을 소신 있게 밀어붙인 것이다. 이런 CEO의 결단은 아이리버 신화의 시작이 됐다.
락앤락도 CEO의 선택과 집중이 있었기에 성공했다. 락앤락이 선택한 히든카드는 바로 잠금장치였다. 락앤락은 ‘선택과 집중’의 원칙 아래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하지 못한 600여 개 상품 라인을 폐쇄하는 결단을 내렸다. 대신 밀폐용기 분야의 기술 개발에만 전념해 독보적인 역량을 쌓아갔다. 락앤락은 이런 전략을 토대로 4면 잠금장치 형태의 밀폐용기를 개발해 해당 카테고리에서 최고의 업체로 떠올랐다.
시장 주도 전략 추진
후발주자의 목표가 선발업체 추월이라면 과감한 시장 주도 전략을 전개해야 한다. ‘시장 주도 전략(market driving strategy)’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소비자 학습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자 기업이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전략을 말한다. 과거의 ‘시장 중심 전략(market driven strategy)’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니즈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시장 주도 전략은 소비자를 학습시키고, 과거에 없던 새로운 니즈를 발굴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소비자의 잠재 니즈에 근거한 소비자 정보를 발굴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찾아 선도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소비자의 니즈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잠재적 소비자 니즈를 발굴하고 소비자를 학습시켜야 한다. 시장의 후발주자는 경쟁에 끌려가기보다 경쟁 구도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 시장 주도 전략을 펴려면 신제품 창출, 제품의 혁신, 가치 혁신, 새로운 시장 개척 등이 필요하다.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소비자의 니즈를 무조건 따라가서는 안 된다. 소비자 경험을 새롭게 창출하고, 소비자를 학습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이트맥주다. 과거에 맥주는 보리의 숙성이 매우 중요한 경쟁 포인트였다. 하지만 하이트맥주는 이를 과감히 버리고 시장 주도 전략을 폈다. 맥주의 주성분인 물을 집중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소비자의 수요를 창출하고 학습시켰다. 이후 ‘천연암반수로 만든 순수한 맥주’라는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해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엘라스틴 샴푸도 ‘머리=피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잠재돼 있던 소비자들의 니즈를 공략했고, 새로운 방향으로 소비자들을 주도적으로 학습시켰다. 제품 및 프로세스 차별화 전략
후발업체는 무조건 달라야 한다. 선발업체의 제품이나 서비스와 다른 무언가를 제공하지 못하면 결코 추격에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캐치업 전략의 성공은 차별화로부터 시작된다. 차별화 전략은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나아가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메이션은 CD 제조 프로세스를 차별화해 데이터가 기록되는 CD 표면에 UV 코팅을 했다. 이로써 데이터 기록의 보존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차별화 전략을 추진해 선발주자를 따라잡았다. 더페이스샵은 차별화된 브랜드 전략 및 ‘적정 품질과 저가격’이라는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특히 브랜드숍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콘셉트로 선두업체였던 미샤와 차별화해 캐치업에 성공했다.
김주환
- (현) The Company of Korea 심의위원장
- 강원대 경영대학원 AMP 과정 주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