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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활용전략

FTA는 신사업의 보물지도

안덕근 | 26호 (2009년 2월 Issue 1)
지난해 12월 18일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한 이후 난장판이 된 국회 모습이 여러 차례 보도됐다. 필자는 금융위기 난국을 헤쳐나기도 바쁜 우리가 처한 서글픈 현실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확실한 것은 조만간 한·미 FTA 비준이 완료될 것이며, 이는 우리의 기업 환경을 전격적으로 바꾸는 촉매제로 작용하리라는 점이다.
 
많은 한국 기업은 한국이 지금까지 리히텐슈타인·아이슬란드·미얀마 등과 FTA를 체결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FTA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우리 기업도 이제는 한·미 FTA가 야기하는 기업 환경의 전격적인 변화에 대해 인지하고 대처해야 한다. 한·미 FTA는 비단 한미간의 교역증가 효과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의 FTA 타결 여부를 가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FTA 현황과 한국 기업의 현실
국제 통상체제의 틀을 마련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1995년에 설립된 이래 상품뿐 아니라 서비스 무역에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WTO 체제 아래에서 무역자유화를 더욱 진전시키기 위해 발족된 도하 협상 합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오히려 FTA 체결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효된 FTA 수는 약 200개다. 특히 WTO가 설립된 1990년대 중반부터 FTA체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FTA가 발효되면 회원국 간 자유무역이 이뤄지고 무역이 증가하므로 기업은 쉽게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비회원국 입장에서는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업 환경에 처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최근까지도 FTA에 관한 한 WTO 체제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 축에 들었다. 때문에 우리가 체결한 FTA로 인한 경제적 혜택보다는 다른 국가들 간의 FTA 타결에 따른 피해를 주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와 교역구조가 유사한 일본이 멕시코와 체결한 FTA는 우리 기업에 상당히 많은 피해를 줬다.
 
멕시코와 일본의 FTA는 2005년 4월 1자로 발효됐다. 첫 해에 멕시코 정부는 닛산·혼다·도요타 등 일본산 자동차 5만2000대에 대해 무관세 수출을 허용했다. 2011년부터는 멕시코 시장에서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전면적인 무관세 교역도 이뤄진다.
 
멕시코는 이미 2005년 1월 1부터 멕시코 현지에서 생산되고 있는 4개 일본 업체의 완성차 생산대수의 10%에 대해 무관세 수출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약 8만2000대의 일본산 자동차가 추가로 무관세 수출 효과를 누렸다. 멕시코는 이미 미국·유럽연합(EU)과도 FTA를 맺고 자동차 관세를 10% 수준 이하로 인하했다.
 
반면에 멕시코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비회원국에는 도리어 관세를 50% 인상했다. 이에 따라 2004년 9.4% 증가한 한국의 대 멕시코 승용차 수출은 2005년 0.9% 증가로 증가율이 대폭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대 멕시코 수출은 14.8%에서 60.1%로 급증했다. 물론 당시의 원화 절상이라는 요인을 무시할 수 없지만 경쟁국의 FTA 체결로 인한 한국 승용차 산업의 타격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주는 예다.
 
FTA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멕시코 시장에서 볼피해는 이미 FTA 타결 전부터 가시화된 상태였다. 멕시코 정부는 2004년 1월 1부터 FTA 비회원국들로부터의 타이어 수입 관세를 23%에서 90%로 인상했다. 이로 인해 2003년 12월까지 멕시코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던 한국산 타이어의 수출은 사실상 중단됐다.
 
2003년 12월 21일 금호타이어를 선적하고 부산항을 출발한 한진해운 소속 선박은 싣고 간 컨테이너를 통관시키지도 못하고 2004년 1월 12 국내로 회항했다. 그 일주일 전 한국타이어도 12월에 수출한 타이어를 국내로 반송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한국산 타이어의 멕시코 시장 점유율은 2위에서 11위로 추락했다.
 
FTA 환경의 변화
한국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고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첨단 산업의 주력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한·미 FTA를 준비해 왔다. 현재 한·미 FTA의 비준 현안을 두고 국회에서 한바탕 충돌이 벌어졌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하루빨리 비준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으로의 수출 증가 외에도 다양한 파급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EU FTA를 포함한 후속 FTA를 순조롭게 체결하기 위해서도 한·미 FTA 타결이 시급하다.
 
무역에 의한 단기적 실익만을 따진다면 12개 신규 가입국을 포함하여 27개 회원국을 가진 EU와의 FTA가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다. 한·미 FTA의 비준이 늦어지면서 2008년 말까지 협상 타결을 장담한 EU 역시 우리와의 FTA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
 
한·미 FTA,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더욱 유리한 입장에서 일본과의 FTA 협상을 추진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중국과의 FTA도 가능해진다. 이 밖에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인도,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걸프협력기구(GCC), 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 다른 많은 국가와의 FTA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리 무역의 80% 이상이 FTA 회원국들과 이뤄질 것이다. 세계 각국의 FTA 체결 경주에서 꼴찌 수준으로 뒤처져 있는 한국이 한·미 FTA, 한·EU FTA에 의해 대외 경제 환경을 가장 빨리 개선하는 국가로 바뀐다는 의미다.
 
복잡하고 가변적인 기업 환경
FTA 체결은 기업에 예기치 못한 경영 환경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림1>에서 보듯 한국의 최대 대미 섬유 수출 품목인 스웨터 생산업체들은 32%의 관세를 물고 미국 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은 생산비 인상으로 국내 생산을 줄이는 대신 중국 현지 투자를 통해 생산한 의류제품을 중국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수출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으로부터의 스웨터 수출은 즉시 무관세 혜택을 얻는다. 때문에 중국에서 수출하는 것이 한국에서 수출하는 것보다 32% 이상의 가격 경쟁력을 보장하지 않는 한, 이 기업에게 대 중국 투자는 불필요한 짐과 같다.
 
설사 제품을 한국에서 생산한다 해도 중국산 원자재를 활용한 단순 가공품은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원사 기준에 입각한 원산지 규정을 적용하기 때문에 원사 단계부터 한국산 원료를 사용해야만 무관세 혜택을 받는다. FTA 원산지 규정에 입각해 원사나 직물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할 것인지, 가격 경쟁력이 다소 뒤처지더라도 국산 재료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현재 국내 설탕산업은 CJ제일제당을 비롯한 3개 회사가 전담하고 있다. 설탕 시장은 세계 농산물 시장에서 농업 보조금 및 덤핑 수출 관련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국내 시장에서도 설탕 수요 업체들의 관세 인하 요구와 설탕업계의 보호 요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한국 정부는 비교적 근거리인 아시아 국가 가운데 설탕과 원당의 주요 생산국들이 모인 아세안(ASEAN)과의 FTA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 국내 설탕 생산업체들은 환율 위험과 현지 설탕의 낮은 품질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설탕 제품이 수입 설탕에 대해 충분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아세안과 FTA 논의를 제기하자마자 국내 최대 설탕 수요 업체 가운데 하나인 롯데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에서의 설탕 현지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FTA를 체결하면 설탕에 관한 현행 35% 관세가 대폭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게다가 한국 기업이 해외 현지 공장 설립을 추진할 경우 대부분의 해당 국가에서는 해외 직접투자에 관한 인센티브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때문에 설탕 수요업체에게는 해외 공장 설립이 충분히 고려할 만한 대안인 셈이다.
 
기업 대응전략
산업별로 고유한 특성이 있겠지만 FTA를 맞이하는 기업들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원료 수급 전략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3∼5년 동안에는 FTA로 인한 기업 간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급변할 것이므로 중장기보다 단기 계약을 맺고, 주문 물량도 평소보다는 다소 축소하는 등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해외 투자의 경우 FTA에 의한 시장의 상대적인 경쟁력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시장 장벽이 높은 산업의 경우 관련국의 FTA 정책 및 전망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갑작스러운 시장 상황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사업 외적인 영역에 대한 변화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한 예로 한·미 FTA에는 법률 서비스에 대한 시장 개방 조항이 들어 있다.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이 가시화된다는 의미다. 해외 영업이 많은 기업은 법률 서비스 효율화를 위해 회사 내 법무 인력을 보강할 것인지, 외국 로펌을 직접 활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한반도에는 FTA라는 태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FTA가 급속하게 확대되는 현 시점에서 우리 기업이 처한 경영 환경은 한층 더 복잡하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블루오션이라 믿고 열심히 노를 젓던 시장이 FTA라는 태풍 때문에 레드오션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시장 개방에 따라 업계 내 경쟁이 어떻게 심화할 것인지, 전·후방 산업 부문에서의 수요업체와 공급업체의 전략 변화는 어떤 식으로 이뤄질 것인지를 꾸준히 파악해야 한다. 그 후 이를 기초로 스스로의 중장기 경영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과 글로벌 경쟁 격화로 통상 전략에 관한 기업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통상 분야 전문가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안덕근 교수가 한국 기업에 꼭 필요한 주요 통상 관련 법규와 조항, 기업들의 실제 사례, 이에 대한 극복 방안 등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필자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법과대학 J.D. 및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스위스 세계무역연구소(WTI) 등에서 근무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통상협상, 통상분쟁, 통상정책 및 전략 분야에 대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WTO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개발도상국 정부 자문 활동도 하고 있다.
  • 안덕근 |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세계무역기구(WTO) 근무
    - 스위스 세계무역연구소(WTI) 근무
    -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임
    dah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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