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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은 디자인, 성능도 좋다

박영춘 | 19호 (2008년 10월 Issue 2)
소비자가 상품을 찾는 이유가 진화하고 있다. 지난날에는 제품의 기능이 중심이었다면 최근 들어 사용자의 편의성과 경험적 가치를 강조한 디자인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요즘 주목해야 할 현상 가운데 하나는 소비자들이 제품의 편의성과 같은 성능을 생각하기 이전에 제품이 제시하는 아이디어 자체를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빨간색 소화기 vs 디자이너 소화기
미국의 대형 DIY 매장인 홈디포에서는 ‘홈 히로(Home Hero)’라고 불리는 25달러짜리 소화기를 팔고 있다. 이 제품은 전형적인 빨간색 소화기에서 탈피한 디자이너 소화기다.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 상을 수여한 화려한 이력과 전문가들의 호의적인 평가가 따라다닌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막상 이 제품의 성능이 우수한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이 제품이 부엌에 잘 어울리는지, 얼마나 멋있는지만 열심히 이야기한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이 제품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소화기 디자인의 형태가 지난 100여 년간 바뀌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기존 소화기의 디자인이 워낙 보기에 흉물스럽기에 새로운 디자인은 그 자체로 신선해 보인다. 가능하다면 숨기고 싶어 하는 기존 소화기와 달리 성능에 상관없이 새로운 디자인이 맘에 들어서 소화기를 많이 구매해 집안에 비치한다면 디자인이 그만큼 화재 예방과 안전에 기여하는 셈이다.(사진 비교)
 
더스트버스터 청소기 vs 카림 라시드 청소기
1980년대 미국에서 선보인 소형 충전식 청소기 ‘더스트버스터’는 실용성과 편리함을 앞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청소기는 단번에 블랙앤드데커를 소형가전 업체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더스트버스터의 장점은 작고 가벼워서 원할 때 꺼내 쓰기 쉬운 편의성이다. 당시로서는 외형은 아름답지 않았지만 슬림하고 적합한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기능이 중요했기 때문에 스타일과 상관이 없이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수많은 유사 제품이 등장했으며, 요즘에도 이런 형태의 비슷한 제품들이 계속 팔리고 있다.
 
그런데 요즘 새롭게 등장한 소형 청소기가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하고 미국 레드데블이 제조한 이 청소기는 월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실제 기능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청소기는 다소 불편하다. 균형도 잘 안 맞고, 손에서 미끄러지기 쉽다. 그런데도 이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는 단지 보기에 예쁘기 때문이다.(사진 비교)
 

 
경험 디자인, 사용자 중심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패러다임이 강조되는 시대에 아직도 스타일을 개선하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 시대에 뒤처진 발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인지과학 분야의 저명한 도널드 노먼교수는 “보기 좋은 것이 성능도 좋다”고 주장한다. 또한 보기 좋은 디자인은 소비자가 쉽게 버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 환경의 디자인적 속성을 지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소비자는 제품을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에 열광한다. 어디에 놓을 수 있고, 어떤 환경에서 쓰일 수 있는 것인가를 제품 성능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제품의 스타일에서 느껴지는 아이디어 자체가 소비자를 사로잡는 중요한 발상이 된 것이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스타일만 멋있게 디자인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멋있는 디자인이 결국 환경과 안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잘 팔리는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뉴욕 파슨스대 제품디자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디자인학교(SADI) 제품디자인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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