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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정책과 금융위기

수요부양, 강달러 정책이 위기 원인

홍융기 | 19호 (2008년 10월 Issue 2)
서브프라임 사태로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10월 이후 증권시장은 탐욕과 공포라는 인간 심리의 양면성을 여과 없이 보여 줬다. 폭락과 반등을 지속한 지난 1년 동안 결과적으로 코스피 시가총액은 300조 원 이상 줄었고, 전 세계 증시에서는 21조 달러가 증발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이미 30%가 넘는 주식가치 하락이 진행된 이 시점에서도 아직 바닥이 드러나지 않고 위기가 지속되는 이유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자산버블 붕괴에 따른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약속했지만 실제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상황이 매우 복잡한 만큼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도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와 이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인 ‘왜 지금인가’이다.
 
낯익은 상황과 진부한 원인
적어도 학계에선 10년 전부터 여러 위험 요인에도 불구하고 불균형적인 호황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또 현 상황은 지난날 경험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가장 가까운 바다에서 10마일, 15마일 떨어진 곳도 대충 해안이라고 불렀다. 토지가 건축용지로 분할돼 10% 계약금만으로 매각됐다. 사람들은 팔고 사는 토지나 주택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대부분 매입자는 그곳에 살기 위해 그 땅들을 사지 않았다. 매물이 나오면 무조건 계약하고 자산 가치가 나날이 올라 2주 정도 지나면 상당한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땅값이 놀랄 만큼 뛰었다. 경기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전망들은 부동산 중개인들의 달변에 묻혔다. 가을에 불어닥친 최악의 허리케인 때문에 시장이 건전성을 회복할 약간의 휴지기가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다시 호경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언이 연일 이어졌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의 집값 버블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 듯한 이 글은 실제로 1954년에 출간된 ‘The Great Crash’라는 책에서 1926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휘몰아친 부동산 투기 열풍을 묘사한 내용이다. 당시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검은 목요일로 상징되는 1929년 주식시장 붕괴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사실 인과관계가 그다지 명확하진 않지만 곧바로 이어진 1930년대 대공황은 자산버블 붕괴에 의한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시장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자주 언급된다.
 
현재까지의 상황 전개가 50년 전에 쓴 책에 묘사된 80년 전의 상황 전개와 섬뜩하리만큼 일치한다면 그 원인도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자 존 케니스 갤브레이스 교수는 1929년 재앙의 원인을 다음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1. 열악한 소득 분배
불균등한 소득 분배는 경제가 높은 수준의 투자와 높은 수준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자라고 더 많은 양의 빵을 사지는 않는다. 그들은 수익을 처분하기 위해 사치품에 대한 지출을 늘리거나 새로운 투자 기회 탐색에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출은 빵이나 집세에 대한 지출보다 더 변덕스럽고 변동성도 훨씬 크게 마련이다
 
2. 취약한 기업 조직
당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약점은 지주회사나 투자신탁회사의 새로운 방대한 조직에 숨어 있었다.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지주회사는 공익기업·철도·오락사업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고, 투신사와 마찬가지로 순환출자를 통해 역 레버리지에 의한 참화 위험이 있었다.
 
3. 낙후한 은행 조직
은행 조직의 당시 약점은 다수의 독립된 개별 은행에 내재해 있었다. 특정 은행이 파산하면 다른 파산을 초래했으며, 이것이 도미노 효과를 낳으며 번진 것이다
 
4. 국제 수지의 불안정
미국은 1차 대전 중 채권국이 되었으며, 수출 초과에 의한 경상수지 흑자가 10년 동안 지속됐다. 이 차액은 외국이 미국에 금을 지급하거나 미국이 새로운 해외 민간대부를 함으로써 균형을 맞췄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대미 수출 확대를 통해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해 관세를 올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으며, 이 여파로 각종 채무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고 국제 사회 전반의 궁핍을 초래했다.
 
5. 빈약한 경제지식
그 당시 경제학자나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도를 벗어나 있었음이 확실한 것 같다. 증시 붕괴 이후에 유명한 경제 전문가들은 판에 박은 듯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정부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둘 다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하였으며, 그 결과는 엄청났다.
 
80년 전에 비해 지금은 경제 규모도 커졌고, 경제 지식도 더 많이 축적됐으며, 정부도 강력한 정책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80년 전 위기의 원인으로 꼽힌 다섯 가지 요인 가운데 2008년 현재 미국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항목은 없어 보인다. 이런 새롭지 않은 원인들의 이면에는 하나의 아이러니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철칙이 숨어 있다.
 
아이러니와 불변의 원칙
지난 20여 년 동안의 세계 경제 흐름, 특히 미국의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오이디푸스의 아이러니’와 견줄 만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 그의 부모는 카테이론 산에 어린 오이디푸스를 버리지만 오히려 이것이 화근이 돼 예언이 실현된 이야기다.
 
올해 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무역수지 적자 규모나 내년 국내총생산(GDP)의 10%와 7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는 재정 적자 및 정부 부채 규모를 보면 미국경제가 생산보다 소비에 능숙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미국경제는 돈을 버는 것보다 만들어 내는데 훨씬 뛰어났으며, 강한 달러와 첨단 금융산업은 이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강한 달러, 소비 중심의 경제구조, 최첨단 금융기법은 경제사에서 두고두고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겠지만, 사실 이 전략적 선택은 오이디푸스를 산에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불길한 불황의 재발을 막고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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