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 멀티 페르소나 현상과 조직의 대응

다양한 직종에서 자아실현 ‘N잡러’ 열풍
본업, 덕질, 사이드잡… 무경계 직업 정체성 추구

307호 (2020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터에서의 모습일 것이다. 특히 회사와 나를 분리해 다양한 부캐를 만들거나 퇴근 후 덕질에 몰두하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은 더 이상 신기하거나 낯선 광경이 아니다. 문제는 조직이 이런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원들은 회사 밖에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부캐를 만들어 ‘N잡러’가 되거나 다양한 취미 활동을 통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조직은 여전히 외부로 발현되는 직원들의 페르소나 찾기를 내부에서 실현해 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탈산업화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촉발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를 회사가 강제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 결국 기업의 적절한 대응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 재택근무 조치가 해제되면서 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하는 날, 국내 한 대기업 40대 팀장인 K 씨는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회사 로비에 도착하니 시계는 어느덧 8시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는 ‘에어팟’이 꽂혀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만난 거래처 임원의 푸념이 떠오른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건 아닌데, 딱 9시부터 퇴근 전까지야. 얼마나 칼 같은지 몰라. 글쎄 9시 전에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도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 같아. 서로 분명히 얼굴을 본 것 같은데 그냥 계속 음악에 심취해 있거나 핸드폰만 쳐다보면서 인사 한번 안 해.” K 팀장 역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는 얼굴을 몇몇 만났지만 애써 그들과 눈을 맞추는 것을 피했다. 선배로서 먼저 후배에게 인사하기 쑥스럽기도 하고 혹시나 괜히 출근 시간 전에 아는 척했다가 “우리 팀장 ‘꼰대’야”라는 뒷말을 들을까 걱정도 됐기 때문이다. K 팀장은 일견 직장 상사를 굳이 사무실 밖에서 마주치기 싫은 직원들의 심리가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조직 내 분위기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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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례는 필자가 외부 미팅에서 들은 경험담을 각색한 것이다. 물론 이 사례를 근거로 ‘모든 젊은 세대가 9시 전에는 회사에서 직장 상사를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다만 위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요즘 직장인들은 회사와 자기 자신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직장인들은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며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현재의 직장인들은 회사와 나를 독립적인 관계로 보고 정규 근무시간(9 to 6)에만 회사에 소속돼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직장인들의 달라진 사고방식을 뒷받침하는 최근의 설문 조사가 있다. 지난 3월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5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중 77.6%, 즉 네 명 중 세 명 이상이 직장에서 회사에 맞는 ‘가면’을 쓰고 일한다고 응답했다. 또 회사원 가면을 언제 쓰는지 묻는 질문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라고 답한 사람이 40.6%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40대 이상 직장인(71.2%)보다 MZ세대에 속하는 30대(78%)와 20대(80.3%)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젊은 세대일수록 회사에서의 자아와 회사 밖에서의 자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한 TV 광고는 회사 안에서는 조용한 막내 사원이 퇴근 후에는 조깅 모임의 리더로 180도 변신하는 모습을 그려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직장인의 가면을 쓰고 퇴근 후에는 직장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 주어진 역할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현대 직장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올해 화두로 떠오른 ‘멀티 페르소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의 의미와 사회적 현상

일단 페르소나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따라서 멀티 페르소나는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꾸어 쓰듯이 상황적 필요와 역할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다층적 자아상을 의미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은 “건강한 페르소나는 한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에게 다양한 역할을 요하는 현대사회에서 멀티 페르소나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사회적 요구에 반응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장소와 역할에 맞게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일터를 살펴보면 하나 이상의 다양한 직업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가 하나 이상의 경제적인 활동으로 연결돼 발현될 때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N잡러’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분명히 일과 나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일터에서 주어진 사다리를 타고 쭉 올라가는 것만이 정답이었다고 한다면 현재는 사다리가 아닌 정글짐에서 다양한 모듈을 조합하면서 나의 주체성과 내 안의 다양한 직업적 흥미와 능력을 바탕으로 나만의 정글짐 모듈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그림1) 이를 진로 심리학1 에서는 ‘프로티언 커리어(Protean Career)’2 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테우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프로테우스는 몸의 형태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일과 취향의 경계도 점점 모호해지면서 취미로 하던 덕질이 내 새로운 업이 되기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했던 일이 본업으로 바뀌기도 한다. 즉, 경계가 사라지고 유동적인 멀티 페르소나에 바탕을 둔 다양한 직업 정체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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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만 멀티 페르소나가 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다양한 정체성이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연결돼 나타나면 ‘덕질’이나 취향 기반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져 ‘취미 부자’로 표출되고 있다. 한 사람이 SNS에 계정을 여러 개 만들어서 다양한 자신의 정체성을 여러 사람에게 표출하는 것이 좋은 예다. 실제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다양한 SNS 플랫폼을 통해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든다. 나의 멋진 모습만 보여주는 오픈 계정, 힘들고 찌질한 나의 모습도 올리는 나만 보는 계정, 취향 기반으로의 다수의 타인과 나누는 계정 등 각기 다르게 운영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글로벌웹인덱스(GlobalWebIndex)의 시장 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 중 98% 이상이 SNS를 이용하고 있으며 한 사람당 평균 7.6개의 계정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Z세대의 경우 평균 두 개 이상의 다계정을 운영하면서 계정별로 상반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정체성을 표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3

멀티 페르소나는 2020년 일터에서 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일까?

멀티 페르소나 현상에 대한 분석은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심리적,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내가 여기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일단 경제적 측면을 살펴보면 “내가 여기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해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한 가지 직업 정체성을 넘어 다양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필요를 촉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서구 사회에서는 나의 직업이 나의 이름이 될 정도로 직업적 정체성과 안정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하다 은퇴하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현실적이지 않다.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여겨졌던 직종들까지 위기를 맞고 있다. “내가 여기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제 더 이상 말단 직원이나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직원들이 스스로에게 자조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다. 대기업의 임원들도, 잘나가는 중견 회사원들도, 패기와 열정에 찬 신입 직원들도 문득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모두의 질문’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이 같은 위기감은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특히 나의 일자리가 머지않아 로봇이나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막연한 걱정이 많은 직장인을 짓누른다. 또 만에 하나 정말 운이 좋아 AI에 대체되지도 않고, 인원 감축 폭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년까지 한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은퇴 후 남은 인생이 너무 길어진 것이다. 은퇴 후 남은 30∼40년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이래저래 걱정이 된다.

인간 수명 증가, 직업 안정성 감소 등으로 인해 현재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사이드잡’을 고민하거나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본업 외 다수의 직업을 가진 ‘N잡러’4 의 등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가속화 덕분에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 기반의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은 본업 이외의 부업 선택의 폭도 넓혀주고 있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아예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직업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여배우이면서 복싱 선수, 군인이면서 트로트 가수, 직장인이면서 유명 유튜버, 투자가이면서 작가와 라디오 DJ 등을 하는 식으로 N잡러들은 계속 진화 중이다. 물론 이 조합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각자의 관심 분야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요컨대, 다양한 기술의 발달과 백세시대, 불안정해진 경제적 상황에 따라 이제 한 가지 주어진 일만 하기에는 우리 모두가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것이 멀티 페르소나 현상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2. 한 번뿐인 인생, 나다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다고 멀티 페르소나(다중 직업 정체성) 현상이 단지 외부적인, 혹은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생겨났다고 볼 수 있을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현상들은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깝다. 설사 본인 스스로 알아차리고 있지 못할지라도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이왕 한 번뿐인 삶, 나다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내면의 욕구가 반영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면 다양한 직업적 활동이나 취미 활동을 통해 분리되고 파편화된 나의 모습이 아니라 통합된 나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와 노력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주로 기술 혁명으로만 초점을 맞춰 조명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힘의 분산화, 다양화, 개방적 공유 등의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 바로 ‘인간다움을 향한 회복’ ‘자기다움으로의 회귀’와 같은 욕구가 있다.5

과거 패러다임의 변화를 간단히 살펴보면 산업화 시대 이전에는 가내수공업이 대세였다. 그 때문에 한 사람이 하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일을 작은 단위로 나누는 분업화가 이뤄졌다. ‘효율성’이라는 구호 아래 대다수의 개인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위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수동적인 부품으로 전락했고, 조직의 위계에 따라 획일화돼 갔다. 이런 분업화를 바탕으로 대량 생산 체제는 생산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되면서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반면에 의미를 찾기 힘든 수준으로 잘게 쪼개진 업무로 인해 개인들은 자신의 일에서 스스로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 연결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우리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잘 살펴보면 많은 직원이 하나의 큰 업무를 잘게 쪼개서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세분화된 분업화 모델을 가지고 있어서 일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느끼는 데 한계가 있다. 이렇게 작은 단위로 나눠진 제한된 업무를 하면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일과 삶을 자연스럽게 분리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고 대신 일과 삶의 명확한 분리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퇴근 후 삶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최근 워라밸 열풍이나 퇴사 콘텐츠의 인기 등은 일 외의 것에서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 모델이 인간에게 물질적 부와 함께 정신적 피폐를 동시에 안겨줬다는 사실은 분업화된 업무들로 인해 내가 가진 나다움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나 이해가 결여되고 자신과의 연결성이 약해지면서 생겨난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직된 시스템 안에서 조직의 부품처럼 일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역량 있는 개인들은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하고 ‘나다운 일’을 하고자 시도한다. 즉, 조직의 업무와 적절히 밸런스를 맞추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일과 활동을 통해 내 안의 다양한 정체성을 발견하고, 수용해서 통합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은 조직문화가 위계적이고 경직돼 있을수록 그 조직의 구성원은 주체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다양한 모습과 능력들을 발견하고 발휘하기가 쉽지 않게 되고 점점 조직을 벗어날 궁리를 하게 된다. 이는 개인에게나, 조직에나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다.

긍정심리학6 관점에서 살펴본 통합된 진짜 자아(True Self)를 찾아가는 여정

1. 다양한 나의 모습에 대한 발견, 나의 경쟁력으로 연결되다.

다중 인격이라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많은 사람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떠올리기도 하고 영화 ‘사이코’를 떠올리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멀티 페르소나는 임상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다중 인격자와는 차이가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자아가 완전히 분리돼서 통제가 안 되거나 자신의 다른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멀티 페르소나를 잘 인지하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응적으로 개발하면서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의 키울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누구나 내면에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삶에서 얼마나 이를 알아차리고 개발하고 표현하며 살아가는가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나를 한 가지 모습으로 규정하고 그 틀 안에서 평생을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다양한 나의 페르소나를 잘 탐색하고 개발하고 펼쳐 나가기도 한다. 획일적인 틀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벗어나 내가 가진 멀티 페르소나를 인정하고 수용해주는 것은 심리적으로 통합된 자아를 키우는 일이 된다. 통합된 자아를 내가 인식하는 것은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진짜 자아(True Self)’, 즉 진정한 나를 알아가고 나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많은 철학자가 끊임없이 질문했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과도 연결이 된다. 진짜 자아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생 동안 다양한 맥락 속에서 내 안의 멀티 페르소나들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추정해보고 스스로 확인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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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를 통해 건강한 멀티 페르소나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 2]의 아래쪽에 진짜 자아가 존재하고 있다. 이 참 자아는 ‘본연의 나(Authentic Self)’를 말한다. 심리학의 주요한 이론 중의 하나인 대상관계이론에 큰 영향을 미쳤던 영국의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도 진짜 자아와 거짓 자아(False Self)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진짜 자아는 꾸미지 않은 본연의 자아를 이야기하는 반면, 가짜 자아는 방어적인 마스크를 쓴, 진짜 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기대와 사회적 기대에 맞추거나 순응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자아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짜 자아를 알아가는 것은 내 안의 색채가 다른 다양한 페르소나들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추정하고 스스로의 확인해갈 수 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상황과 역할에 맞는 가면이 필요하다. 또 사람에 따라 가면의 수는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면의 종류나 개수가 아니다. 어떤 가면을 쓰는지 혹은 몇 개의 가면이 있는지가 아니라 그 가면과 참 자아의 연결 정도(선)가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한지가 중요하다. 어떤 가면들은 나의 진짜 자아와 연결고리가 튼튼해서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하고 부담 없는 가면인 경우가 있다. (가면 1) 그럴 경우 나는 그 역할을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 만약 현재 하고 있는 일이 하면서 즐겁고 보람되고 크게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다면, 운 좋게도 나는 일터에서 1번에 해당하는 가면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갑자기 스스로 원하지 않고 나의 진짜 자아와 잘 어울리지 않는 가면이 주어지기도 한다. (가면 2) 그 사회적으로 주어진 가면이 참 자아와 거리감이 멀면 멀수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이 된다. 그 가면이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진짜 자아와의 괴리감이 커질수록, 그리고 그 가면을 써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게 된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심리적으로 불편한 상태에 계속 노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심리적 불편감으로 인해 일에 완벽히 몰입하기도 어렵고 결과적으로 생산성이나 결과도 좋지 않게 된다.

세 번째 가면은 참 자아와 점선으로 연결돼 있다. 가면 3은 상황에 의해 주어진 가면이 두 번째 가면처럼 나와 연결점이 전혀 없을 경우에 가면을 잘 관찰하고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맞도록 수정이 가능한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나와의 연결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가면이 나에게 딱 맞는 경우가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연결점을 찾아 나가는 자세와 능력이 중요할 수 있다.

네 번째 가면은 우리가 취미로나 혹은 우연한 기회로 새로운 가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가면의 시작은 나의 참 자아와 가는 연결선으로 연결돼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는 내가 원한다면 다양한 추가적인 활동을 통해 그 연결성을 강화해 나갈 수도 있다. 이런 강화의 과정을 거쳐서 나의 다양성을 높여줄 수 있는 경우, 또 하나의 페르소나가 탄생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페르소나들이 잘 발현되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림에서 점선으로 표현된 것처럼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유연한 자아가 필요하다. “나는 못 해” “나는 재능이 없어” 등 나에 대한 스스로의 고정관념이나 사회적으로 여러 외부 요인에 의해 부여되는 고정화된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의 자아는 유연해진다. 즉, 외부의 획일화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고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나의 가능성을 한정 짓지 않고 내가 가진 내 안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허용해줄 때 건강한 멀티 페르소나들은 하나둘 싹을 틔우고 올라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림 2]의 오른쪽에 보면 ‘마음챙김 관찰자 및 디렉터’의 눈동자가 있다. 역시 나의 페르소나 중 하나인데 메타 인지처럼 조금 더 상위 레벨의 페르소나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을 심리학 이론에서 살펴보면 대상관계이론에 ‘관찰하는 자아’라는 개념이 있다. 관찰하는 자아는 “객체로서의 자아를 성찰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를 의미한다.7 관찰하는 자아라고 이해해도 무방하지만 관찰자 앞에 ‘마음챙김’8 이라는 용어를 붙인 것은 그냥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내 안의 모습들을 평가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기준의 틀에 빗대어 비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바라봐 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내 안에는 선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 싫은 모습, 취약한 모습, 부족한 부분도 다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나와 같이 입사한 동료가 나보다 먼저 승진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고 질투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럴 때 이런 감정이나 나의 질투하는 모습을 “잘 교육받은 성숙한 내가 그러면 안 돼”라고 부정하거나 부정적인 나의 모습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의 모습도 “그렇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때 스스로를 잘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내 안의 멋지고 잘난 모습뿐만 아니라 나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알아차림과 수용이 생기게 되면 타인이 처한 맥락이나 환경, 역할을 고려해서 그 사람이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공감 능력은 다변화하는 미래 사회에서 더욱더 중요해질 리더의 자질과 역량이기도 하다.

또한 관찰자의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응을 잘할 수 있는 행동으로 연결시켜주는 디렉터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마음챙김 관찰자 및 디렉터’라고 표현했다. 즉, 마음챙김 관찰자를 잘 수련하고 단련해 내 안의 멀티 페르소나를 잘 이해하고 나의 필요와 맥락에 맞게 멀티 페르소나가 건강하게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잘 디렉팅한다면 나의 참 자아를 온전히 경험하고 활용할 수 있게 돼 스스로 원하는 삶의 모습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게 된다. 즉, 본질적인 나(True self)를 잘 알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나의 다양성이 잘 발현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잘 맞는 가면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행동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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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차원에서 멀티 페르소나를 확장하는 방법

내가 가진 멀티 페르소나를 잘 인지하고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내 스스로 나를 이해하는 범위가 확장되고, 참 자아와의 연결성이 강해지면서 나와의 견고한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파편화된 느낌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 나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활력이 생기고 집중력과 능률이 오른다. 심리적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한곳으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통합된 자아를 경험할 수 있는 멀티 페르소나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스스로가 직업적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틀, 이를테면 나이, 성별, 교육적 배경, 사회적 지위 등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탐색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즉, 스스로가 나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열린 생각과 마음을 바탕으로, 내 안의 ‘참 자아’가 표출될 수 있는 다양한 가면을 탐색하도록 자유도를 높여주는 활동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남자가 이런 걸 어떻게…” “신입 사원이 이런 걸 어떻게…” 혹은 “회사 대표인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등 우리 사회는 역할이나 지위에 따라 상당한 사고와 행동의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아직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가 적고 획일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것이 때때론 적절할 수는 있지만 나의 멀티 페르소나를 탐색해 나가기 위해서는 윤리와 법의 선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는 조금 더 사고와 행동을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때 마음챙김 관리자의 눈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사회와 조직이 요구하는 강박적 사고나 당위성에서 벗어나 내가 조금 더 하고 싶고 원하는 것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내 안의 다양성 키우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 시작점에 서서 못하는 것, 혹은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접고 유연한 마음으로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과거 해보지 않은 일들에 도전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을 정해진 틀에 가둬놓고, 스스로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인간의 행동과 사고는 공간과 맥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라”라는 말처럼 우리가 어떤 조직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나의 행동과 사고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익숙한 일상의 공간과 맥락에서는 늘 보던 나의 모습만 만나게 된다. 만약에 새로운 나의 모습을,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나 맥락에 노출시켜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개인은 맥락에 따라 주류의 경험을 하기도 하고 비주류의 경험을 하기도 한다. 상담심리학의 중요 과목 중 하나인 다문화 수업에서는 의도적으로 나와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노출해서 관점을 확장시키고 비주류의 경험을 하게 한다. 때로는 비주류(minority)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맥락이 주류로서 보지 못했던 더 많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모습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마음챙김 관찰자를 잘 훈련해서 활성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양한 맥락 속에서 혹은 새로운 일을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무조건 평가하려 하지 말고 참 자아와 내 새로운 모습이 어떻게 연결이 돼 있는지를 유심히 잘 관찰해보는 것이다. 유명한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말한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이 심리 상담에서 타인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에게도 이른바 ‘자기 자비(Self- Compassion)’가 필요하다. 부족하고 결핍돼 있는 나의 모습도, 보기 싫은 부끄러운 나의 모습도 평가의 눈이 아니라 자기 자비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자기 자비를 바탕으로 한 마음챙김 명상훈련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음챙김 관찰자 및 디렉터가 나에게 잘 맞는 페르소나를 잘 선택하게 하는 것, 그리고 수정이 필요하다면 능동적으로 어디를 수정하고 고쳐야 하는지 잘 파악해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배우의 타고난 장점이 잘 살아나도록 그때그때 배역의 특징이나 대사를 유연하게 바꿔줄 수 있는 영화감독처럼 말이다.

2. 멀티 페르소나를 우리 조직과 사회의 경쟁력으로 이끄는 힘, 다양성에 대한 존중

코로나19 여파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가중돼는 시대, 많은 조직이 미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혁신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표면적인 변화가 아닌 조직의 근본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근본 체질 개선은 조직의 딥 체인지(Deep Change, 근본적 혁신)와도 연결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직의 딥 체인지는 뛰어난 기술력이나 메가 트렌트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직원들로부터가 아니라 직원을 바라보는 리더의 근본적인 관점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변화를 기대하기에 앞서 직원들을 바라보는 리더들의 관점 변화가 우선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직원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평가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꽃피울 수 있는 공간이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리더십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통제하고 지시하는 관리자 역할에서 구성원들이 일터에서 개개인이 가진 고유성을 바탕으로 최상의 플레이를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관찰하고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즉 필요한 물과 햇빛을 제공하며 병충해 및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가드너 역할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9

그 안에 바로 조직의 멀티 페르소나로 표현될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혁신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체적인 예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미래 조직의 경쟁력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성은 크게 조직 내 다양성과 개인 내 다양성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조직 내 다양성이 어떻게 미래 경쟁력과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구성원의 다양성을 넘어 개개인의 조직 내 구성원들의 멀티 페르소나를 활성화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1) 조직 내 다양성이 가지는 힘에 대한 인식

최신 연구들을 보면 조직 내 구성원의 다양성이 얼마나 그 조직의 생산성과 혁신성을 높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한 예로,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최근에 ‘Why Diversity Matters’10 라는 보고서를 통해 경영진의 성 다양성 수준이 상위 25%인 기업들은 하위 25%인 기업들보다 세전 영업이익률(EBIT Margin)이 평균 21% 높게 나왔음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은 특히 미래 신사업 기회 발굴 및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보이고 있다는 결과들이 다수의 연구에서 발표되고 있다.

다양성에는 외부적으로 보이는 인종 및 성별 등도 있지만 전공 다양성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내 대부분의 대기업 IT/전자 회사 직원의 80%가 공대 출신으로 이뤄져 있는 반면 애플은 공대 출신이 55%이고, 커뮤니케이션 학과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과학 전공자와 철학 전공을 포함한 인문계 출신이 나머지 4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이 비이공계 출신 비율을 높인 이유에는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대학의 초대 학장인 예일대 경영대학원 학장 출신 조엘 포돌니(Joel Podolny) 교수의 영향이 컸다. 포돌리 학장은 2008년 애플에 합류하면서 “회사에 엔지니어 출신들만 모아 놓으면 서로 생각하는 방식도 비슷하고 아는 지식의 종류도 흡사해 다양한 아이디어나 참신한 제안들이 나오기 힘들다”며 엔지니어 비율이 어느 정도일 때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오는지 시뮬레이션을 진행했고 그 결과 55%라는 숫자를 얻었다.11

이처럼 조직 구성원의 인종 및 성별, 전공별 다양성을 높이는 일이 조직의 혁신과 생산성, 그리고 나아가 미래 경쟁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돌아봤을 때 옳은 결정이라는 의식이 커지면서 미국의 혁신 기업에서는 전통적인 재무지표를 넘어 조직의 다양성 지표가 이제는 그 조직의 잠재 성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심리학자 관점에서도 이러한 다양성 지표가 미래 경쟁력에는 점점 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은 조직을 ‘다름’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만들어서 개개인이 가진 다양한 역량 개발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실제로 조직에서 다양한 구성원과 함께 일할 때 내가 가지고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다양한 모습이 더 활성화되고 발현돼도 ‘안전’하다는 의식적, 무의식적 신호들을 받게 되면서 나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회사’의 기준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인지 여부가 연봉이나 복지 이상으로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다양성을 자극하고 활성화하는 조직문화는 그 기업의 경쟁력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사고방식에 노출되면서 얻는 통찰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창의적인 사고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때 다양한 소스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분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창의적,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핵심 성장 동력인 회사일수록 조직의 다양성 지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2) 개인 내 다양성 높이기 : 직원들의 멀티 페르소나를 활성화하는 방법

2019년 가트너의 글로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터에서 다양한 업무 경험에 대한 기대가 충족될 때, 직원들의 생산성이 올라가고 이직률은 낮아졌다.12 요즘 직원들, 특히 MZ세대들은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고 수용받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시대가 빨리 변하는 만큼 살아남기 위해 성장에 대한 욕구도 높다. 조직이나 일터가 그 심리적 욕구를 수용해주지 못할 경우, 구성원들은 일터 밖으로 관심과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쏟기 시작한다. 일터 밖에서 비싼 돈까지 내가며 독서토론에 참여하며 자기 계발을 하거나 자신이 가진 다양한 역량과 정체성을 발견하고 높이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 에너지를 일터에서 발현될 수 있도록, 일터에서 다양한 자신의 멀티 페르소나가 자라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주면 조직은 다시 활력과 생기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조직 내 우리 직원들의 멀티 페르소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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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구성원들이 자신의 다양성을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터 만들기

“네가 가진 다양한 역량과 모습들을 드러내도 괜찮아”라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일터에서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터에서의 심리적 안전감이란 내가 잘하는 부분뿐만 아니라 부족한 부분까지도 나의 동료와 상사에게 드러낼 수 있는 정도를 이야기한다.13 내가 가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상대방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팀원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곧 심리적 안전감의 요지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을수록 참 자아와 나의 직장인 페르소나와의 연결성은 굵고 튼튼해진다. 즉, 진짜 나와 직장인의 가면 사이의 나를 통합시켜주고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면이 무겁고 불편한 가면이 아니라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즐거운 역할 가면이 된다. 예를 들면, 심리적 안전감이 낮으면 회의 중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가도 아는 척하고 넘어가거나 재미없는 상사의 이야기에 재미있는 척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내가 맡은 일이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 않고 잘할 자신이 없는데 자신 있는 척, 동료나 상사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데 동의하는 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척하는 행동은 ‘진짜 나’와의 연결성을 약하게 만들어 직장에서 유독 피로감을 증가시키고 내 일에도 몰입도나 생산성에 큰 방해물이 된다.

내가 가진 진짜 모습과 의견들이 평가적인 시선이 아닌 존중받고 온전하게 수용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일터에서 다양한 나의 멀티 페르소나를 하나둘씩 꺼내게 된다. 심리적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일터와 문화를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조직원들의 멀티 페르소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요하지만 조직의 규모와 현실적인 어려움의 정도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단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의 활용(Safety Zone) : 조직의 규모가 너무 커서 전체적으로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일단 척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공간(Safety Zone)을 회사 내에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독일어 중에 ‘놀이(Spiel)’와 ‘공간(Raum)’을 합친 슈필라움(Spielraum)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뜻한다.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로운 생각을 마음껏 해보고 표현해볼 수 있는 슈필라움 같은 공간을 통해 직원들이 활용해보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혹은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직원들이 관찰하는 자아를 잘 훈련해 자기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직장 내 심리적으로 안전한 휴먼 네트워크 형성(Safety Network):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는 것은 공간도 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더 크다. 즉, 평가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양한 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일터에 있는가, 없는가는 직원들의 직업 만족도나 신뢰 형성에도 큰 영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14 하지만 심리적 안전감을 모든 관계에서 경험하게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조직 내 직원들이 마음을 터놓고 평가에 대해 너무 의식하지 않고 소통하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의 소그룹을 형성하도록 도와주거나 리더들에게 ‘평가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훈련’ 등을 실시해서 각 직원들이 적어도 핵심 리더나 주변 동료들과는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② 근무 유연제를 넘어서 업무 유연제로의 단계적 실험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전공이나 커리어상 전문 분야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성공하는 사례들을 종종 본다. 화장품 업계 최고 혁신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쿠션’을 개발한 사람도 제품 개발자가 아닌 마케팅 담당 직원이었다. 즉, 우리에게는 주 업무 외에도 기획자, 리더, 제품 개발자 등등의 다양한 모습이 있고 발전시키기에 따라 주 업무 이상으로 좋은 결과물들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드러내고 표현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성이 보장된 조직에서는 더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로 다양한 부캐가 등장할 수 있으며, 이는 회사의 신사업 혹은 신제품 아이디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사례들이 생각보다 많은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근무 유연제를 넘어 업무 유연제를 고려해봐야 하는 이유다. 많은 회사에서 근무 유연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근무 유연제는 일하는 물리적 시간에 한정된 것이다. 조금 더 구성원들의 일하는 경험을 확장하고 위와 같은 혁신 사례나 아이디어들이 조직 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무 유연제를 넘어 ‘업무 유연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업무 유연제’는 조직 구성원 개인이 주어진 자신의 분야를 넘어서 아이디어나 함께하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그 아이디어들을 팀이나 조직에 역 제안할 수 있는 제도를 이야기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들이나 팀장이 직원들의 제안을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무시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창의적으로 디자인하고 제안할 수 있도록 열린 사고와 유연한 관점으로 지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 현실적으로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전문적인 영역이 나누어진 기업일수록 업무를 유연하게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는데 기업의 규모와 분야의 특성에 따라 업무 유연제 비중을 조절해나가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험적으로 먼저 각자의 조직의 상황을 고려해서 기본 본 업무를 80%로 유지하고 20% 선에서 구성원들에게 주 업무 이외에 해보고 싶은 업무 파트에 대해 역제안을 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 보는 방법은 직원들의 다양한 역량 개발과 멀티 페르소나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20%든, 10%든 업무를 구성원이 직접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리더가 개개인이 가진 다양성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이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공유한 채로 회사의 성장과 나의 다양한 역량 개발과 성정을 계획해보도록 하는 것은 조직과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각자의 개인이 가진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에 대한 존중과 심리적 지원은 우리의 일터가 분업화에 따라 하나의 역할만 반복해서 수행하는 기계적인 업무 활동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재능과 역량을 가진 통합적인 인간으로의 업무 활동으로 그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을 넘어 번영으로

우리 안에는 다양한 모습의 내가 있다. 단지 그것을 내가 인지하고 있느냐, 못하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어떤 분야에서는 자신감 없는 나의 모습도 있고, 또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자신감 넘치는 최상의 모습의 나도 있다. 일터가 만약 내가 가진 가장 멋진 모습을 발견하고 발현할 수 있는 곳이 된다면 그 일터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일터에서는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내가 안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어진 획일적인 역할에 스스로를 끼워 맞춰왔다. 글 도입부에 설명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어폰을 낀 직장인들처럼 나와 일을 물리적인 시간으로 분리하면서까지 과도하게 방어 기제를 사용하게 되는 사례가 나온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우리의 일터가 구성원 각자의 참 자아와 연결된 최상의 페르소나를 발견하고 다양한 페르소나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안전한 실험장이자 운동장이 될 때, 그곳은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키우는 장이 된다. 퇴근 후 직장 밖에서 자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과 정체성을 발견하고 키우기 위해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나의 일터에서 발현될 수 있을 때, 일과 나의 관계는 재설정된다. 그것이 바로 기능별로 분리된 부품형 인간이 아닌 ‘통합된 나’를 바탕으로 인간의 창의성과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자기다움이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시대, 생존을 넘어 번영(From Surviving to Thriving)으로 가기 위해 우리 조직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일의 미래 모습이다.


이항심 건국대 상담학과 교수 hangshim@konkuk.ac.kr
필자는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교수를 거쳐 현재 건국대 상담심리학 전공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인 사람들의 삶과 일에서의 만족도를 높이는 사회 인지적, 환경문화적 요인들에 대한 연구로 미국심리학회(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 박사 졸업논문상을 수상했고, 2019년 국제긍정심리학회(IPPA)가 수여하는 긍정 조직 개입 챌린지(POIC, Positive Organization Intervention Challenge) 파이널 리스트를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12명의 혁신 기업 리더를 인터뷰해 행복하게 일하며 압도적인 성취를 이루는 개인과 조직의 비결을 설명한 『시그니처』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7호 부캐의 역습 2020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