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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홀라크라시 시대의 승진

승진이 신분 상승인 시대 지나‘ 새로운 역할 부여’로 재정의돼야

장은지 | 234호 (2017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산업화 이후 현대 기업조직에서 ‘승진’은 ‘보상’과 함께 직원에 대한 통제 및 동기부여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조직구조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승진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을 특징으로 하는 홀라크라시 도입을 검토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홀라크라시에서 승진은 ‘새로운 역할 부여를 통한 변화’로 그 의미가 바뀐다. 또 조직의 변경이 상시로 이뤄지기에 승진을 대체하는 ‘역할 변경’과 ‘성과 누적’ 역시 수시로 이뤄진다. 홀라크라시는 결코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그러나 ‘큰 그림’을 먼저 그려 본 뒤, 각 기업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도입을 추진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여건이 안 되면 사내 스타트업 조직에서 먼저 시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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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가상의 한 사례

대기업 건설사에 다니는 김 과장은 내년 초 차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입사 후 꼬박 12년 만이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승진 연한에 따른 평범한 진급이다. 물론 그가 빠른 승진에 대한 의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가끔 ‘발탁 승진’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빠르게 올라갈수록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하는 눈들이 조직 내에 많아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승진한 이들은 회사의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평범한 이들보다 오히려 조직을 일찍 떠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김 과장은 평소 회사가 원하는 적정한 속도에 맞춰 튀지 않고 평균적인 승진을 해나가는 것이 길게 살아남는 방법이라 믿어 왔다.


그는 6개월 전 진급 교육도 이미 이수했다. 사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올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승진 대상자를 위해 연말에 팀 내 상대평가 고과를 몰아주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후배들이 ‘차장님’이라고 부를 거란 생각을 하면 은근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입사 후 10년 넘는 경력을 쌓았지만 직급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종종 느끼기도 했다. 이제 차장이 되면 좀 더 독립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위에는 더 큰 책임을 지는 ‘부장’이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부장이 된 선배들은 실무에서 손을 반쯤 놓고 차장들이 올리는 결재 서류를 검토하는 역할만 하고 대부분의 업무는 차장들이 이끌고 있다. 그만큼 차장의 역할이 크다는 얘기다. 또한 과장일 때에는 임원과의 접촉도 많지 않다 보니 매번 중요한 정보에서 배제된다는 기분이었는데 차장으로서 팀장에 보임되기만 하면 윗선에서만 공유되는 고급 정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김 과장은 며칠 전부터 들려오는 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내년부터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직급 체계를 줄이고 임원 이하 직원 호칭을 전원 ‘매니저’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물론 호칭과는 별도로 내부적인 직급 밴드(Band)와 연봉 체계는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하지만 일단 작년에 들어온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매니저로 불린다고 하니 뭔가 대단히 억울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앞으로는 과장급 직원에게도 팀장을 맡길 수 있다는 방침도 들려왔다. 이는 과장부터 부장까지의 직급 체계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 안 그래도 스펙부터 남다른 데다 위에도 할 말은 하고 사는 젊은 사원들을 보며 종종 위기감을 느껴온 터다. 모두가 매니저인 조직에서 업무를 맡다 보면 자신은 능력 있는 과장/대리급 직원들에게 금방 자리를 내주고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별다른 능력 없이 나이만으로 부장까지 버텨온 선배들도 많은데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김 과장은 답답해졌다.



전통적 승진의 개념이 사라진다?

산업화 이후 현대 기업조직에서 ‘승진’은 ‘보상’과 함께 직원에 대한 통제 및 동기부여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회사는 승진을 통해 직원들의 업무 성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해주면서 성과를 독려해왔다. 직원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 업무에 몰입하면서 자의적·타의적 동기부여를 할 수 있었다. 승진을 한 직원들은 조직에 대한 강력한 로열티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눈앞의 승진 가능성’이나 ‘승진 제안’을 통해 조직원의 이탈을 막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승진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점이 왔다. 승진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승진 제도를 필요로 했던 조직구조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구조의 변화에는 크게 3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피라미드형 위계조직에 대한 반성’이다. 빠른 가치사슬의 재편, 파괴적이고 변칙적 진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기존 수직적, 위계적 조직이 가진 대응력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최근 많은 대기업들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면서 직급 및 호칭 파괴 등의 뉴스들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앞서 제시한 사례 속의 ‘김 과장’ 같은 처지에 놓인 직장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인구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인구 절벽과 고령화 사회 도래로 인해 노령 인력이 그대로 조직에 잔존하는 상황에서 젊은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조직에서 ‘위로의 이동(Moving Up)’을 의미하는 승진의 기회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이미 승진 적체 현상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연공급 중심의 호봉제 및 승격 개념의 직급 승진제를 폐지하고 직책 중심으로 제도를 개편, 상위 직책 T/O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승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정책들이 모색되고 있다.

세 번째 요인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1 의 등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직업’에 대한 개념이 크게 바뀌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 시장(Job Market)’ 자체가 변하고 있다. 기존 노동시장은 기업이 직원들과 정식 계약을 맺고, 채용된 직원들을 활용해 고객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였다면 긱 이코노미에서는 기업이 그때그때 발생하는 수요에 따라 단기적으로 계약을 맺는다. 2015년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이를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는 결국 과거 대자본, 거대 소비시장, 노동력 중심의 대량 생산 등이 만들 수 있던 산업경제 시스템 자체가 바뀐다는 걸 의미한다. 앞으로는 소자본, 특화시장, 자동화, 개인화 기반의 디지털 경제로의 변화가 가속화할 것이다.2 즉, 단순히 불황 때문에 계약직 근로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직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확산되면서 채용 시스템 자체도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조직에 속해 평생을 헌신하면서 승진을 거듭해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기업 직장인’은 과거 직업인의 전형적 모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조직에 속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찾아다니는 전문가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유연한 형태의 근로를 영위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계약 기반 개인공헌자(Individual Contributor)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조직은 상시적인 피라미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고정비용을 지출하기보다는 가변적이고 유연한 형태로 변신을 꾀할 것이다.

정리해보면, 기업조직들은 이제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 미래 변화에 따른 적응과 생존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가 수평적 조직, 유연한 조직으로의 이동을 꾀하고 있다. 이는 불가피한 변화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래의 수평적 조직에서는 승진이 사라질 것인가? 만약 승진이 사라진다면 직원을 어떠한 유인으로 동기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승진의 형태가 가능한가?



홀라크라시 조직에서 ‘승진’제도의 미래를 보다.

미래 조직이 어떠한 모습을 갖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현재의 거대하고 촘촘한 위계적 피라미드 조직은 궁극적으로 작은 아메바형 기능조직들로 분절된 수평적 조직으로 변할 것이라는 관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산업의 종류나 비즈니스 모델, 기존 기업문화 등에 따라 이러한 조직 수평화의 속도와 형태는 매우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수직적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자포스처럼 홀라크라시(Holacracy)를 도입해 극단적으로 수평적인 조직을 실험하는 사례도 있다.

미래의 수평적 조직에서는 승진이 사라질까? 승진이 사라진다면 직원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좋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홀라크라시란 1967년 영국의 문학가인 아더 쾌슬러(Arthur Koestler)가 쓴 심리철학서 에서 따온 용어다. ‘자율적(Autonomous)이고 자급자족의 단위(Self-sufficient Unit)면서 더 큰 전체에 의존적인 단위로 이뤄진 시스템’을 의미한다. 조직 차원에서는 관리자 직급을 없애고 상하 위계질서보다는 조직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의 합의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의 형태를 일컫는 용어다. (그림 1)

홀라크라시는 기본적으로 ‘역할’에 기반을 둔 ‘서클(Circle)’이라는 단위 조직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서클은 기존 피라미드형 부서 조직과는 다른 형태의 수평적이고 자율적 조직이다. 서클은 기능이나 프로젝트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구성될 수 있으며 조직원들은 하나 또는 복수의 서클에서 역할을 맡고 이에 따르는 책임과 권한을 수행한다. 또한 자율적으로 정해진 거버넌스 프로세스와 미팅을 통해 의사결정을 수행한다. 전통적 조직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역할 수행자’가 조직 하부에 따로 있고, 위로 갈수록 관리 및 의사결정의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것과 크게 비교된다. 홀라크라시 서클에서는 실행자와 의사결정자가 일치한다. 따라서 비효율을 최소화할 수 있다. 홀라크라시는 개인의 자율과 책임감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 운영 시스템으로, 경쟁과 승진을 통해 조직을 통제하고자 하는 과거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홀라크라시 조직에서 승진은 어떤 형태로 이뤄질까? 전통적 조직과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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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전통적 조직에서의 승진은 ‘수직적으로 상위 포지션으로 움직이는 것(Moving Up)’을 의미하는 반면 홀라크라시 조직에서 승진은 ‘새로운 역할 부여를 통한 변화’를 의미한다. 사실 일반적인 기업 조직에서 개인의 업무에 대한 JD(Job Description·직무기술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조직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JD를 작성하지만 정작 작성된 JD는 부정확하기도 하고, 잘 업데이트되지도 않으며, 실제 당사자가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경우도 생긴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 개개인의 이력이나 경험에 따라 업무가 자연스럽게 재구성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홀라크라시 조직 내의 역할은 JD로 규정되지 않고 ‘실제 수행하는 업무’를 통해 정의된다. 사람들은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서클들에 참여하며 능력에 따라 하나 또는 복수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홀라크라시 조직에서는 자발적인 동기를 통해 복수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그 성과가 누적됐을 때 자연스럽게 조직 내에서의 영향력이 확대되는데, 이러한 역할 변화가 새로운 형태의 ‘승진’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전통적 조직에서는 보통 실행에서 한발 물러나 의사결정의 권한만을 따로 보유하는 형태로 승진이 이뤄지지만 홀라크라시에서는 의사결정과 실행이 항상 같이 움직인다. 이는 전통적 조직과 홀라크라시를 가르는 큰 차이다. 전통적 조직에서는 관리자들이 넓어진 범위의 조직을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하느라 실행에서 멀어져도 된다는 명분을 얻는다. 이러한 권한은 위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포지션을 지속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의사결정은 항상 윗선의 관리자 몫이 된다. 반면 홀라크라시 조직 내의 권한은 팀과 역할을 맡은 직원에게 철저히 배분돼 있다. 의사결정은 실행 단위에서 그때그때 이뤄지는데 주간 실행전략미팅(weekly tactical meeting), 매일매일 일과 전 시행하는 스탠드업 미팅(Daily stand-up meeting)에서 즉각적이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의사결정은 규정된 회의의 목적과 범위, 방법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서클 및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 자체도 거버넌스 미팅(governance meeting)에서 다수의 의견 조율을 통해 조정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의 역할과 책임을 제어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생겨나는 맹목적 복종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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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은지 | -(현)이머징(Emerging Leadership Interventions) 대표
    -모니터그룹, 액센추어 등 글로벌 전략 컨설팅 펌에서 컨설턴트
    -맥킨지 서울사무소 맥킨지리더십센터장

    chang.eu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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