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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

후계문제 등 ‘역린’ 건드린 재상은 몰락 1인자 영역 침범 말고 자신의 역할 찾아라

김준태 | 172호 (2015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2인자의 자리는 참으로 어렵다. 때론 1인자만큼 혹은 그 이상의 권력을 누리기도 하지만 살얼음판 같은 권력 위에서 잠시 흔들리면 곧바로 오명을 쓰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다. 조선 재상들 가운데실패한 2인자를 살펴보면 다음 네 가지 중 하나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오너 기업이 많은 현대 한국의 현실에서 2인자 위치에 있거나 그 자리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살펴봐야 할 내용들이다.

 

1) 평판 관리에 실패했다. 2) 조정 능력이 부족했다.

3) 1인자의 역린을 건드렸다. 4) 1인자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편집자주

기업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질수록 CEO를 보좌해줄 최고경영진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집니다. 리더의 올바른 판단과 경영을 도와주고 때로는 직언도 서슴지 않는 2인자의 존재는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명재상들 역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군주를 보좌하며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조선시대 왕과 재상들의 삶과 리더십에 정통한 김준태 작가가조선 명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을 연재합니다.

 

 

지난 10회의 연재를 통해 우리는 조선의 역사를 수놓은 뛰어난 재상들에 대해 살펴봤다. 물론 재상을 지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이들처럼 훌륭했던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부귀를 탐하고 권세를 휘두른 사람이 있었고 무능하게 자리만 지킨 사람도 있었다. 군주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하거나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는 트러블메이커도 있었다. 이런 유형들이야 그 자체로 함량미달이니 더는 논의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재능과 경륜이 분명 있었으면서도 실패한 재상들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DBR 창간 7주년 특집호에서는실패에서 배우는 교훈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에 대한 복기를 통해 오늘날의 2인자들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 평판 관리 실패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위치에 있는 재상에게평판은 매우 중요하다. “‘총명예지(聰明叡智)’하여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재상이 된다는 옛말처럼 평판은 재상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를 반영하는 것으로 임금이 재상을 발탁해 백관을 통솔하고 정책을 총괄하도록 위임하는 이유가 된다. 만약 재상이 다른 신하들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도덕적인 결함을 보이게 되면 재상으로서의 권위를 세울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업무를 해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세조의 즉위와 함께 영의정에 오른 정인지(鄭麟趾, 1396∼1578)는 당대의 대학자였지만 정승으로서는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1
그는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비웃음을 샀다. 우선 단종을 지켜달라는 세종의 고명(顧命)을 저버리고 세조의 왕위 찬탈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정인지는지조를 잃은 선비라는 오명을 얻는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판 관리에 실패한 것이었다. 정인지와 함께 세조를 지지한 신숙주도 배신자라고 불린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는 엄격한 수신과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명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이에 비해 정인지는 정승이 된 후 재산을 증식하는 일에만 몰두했는데 성종이 그를삼로오경(三老五更)’2 에 봉하려고 하자 신하들은장리(長利·사채)를 놓고’ ‘이익을 탐해 쌓아둔 곡식이 썩어 갈정도인 그를 그렇게 예우하는 것은 나라의 망신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3 뿐만 아니라 그는 술로 인해서 잦은 구설수에 올랐다. 단순히 주정을 부리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임금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임금을라고 부르기까지 했다.4 자칫 극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정인지는 다른 신하들로부터 전혀 존중을 받지 못한다. 세조 또한 정권 출범을 지지해 준 원로공신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우했을 뿐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젊은 시절 태종으로부터대임을 맡길 만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집현전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세종의 정치를 훌륭히 보좌했던 그가 막상 재상이 돼서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평판관리는 개인과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요소 모두에게 필수적인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이 소비자들로부터 부정적인 평판을 얻으면 기업이 가진 역량과 상관없이 매출에 악영향이 오고 정부로부터 규제를 받는 등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개인의 경우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형성뿐 아니라 직위에 따른 권위, 업무 능력에 대한 신뢰, 승진, 채용, 이직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재상과 같은 2인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1인자의 경우 자신이 곧 오너이거나 구성원들의 총의(주총 등)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제도적, 실질적 권력이 보장되지만 2인자는 다르다. 대부분 1인자의 선택에 의해 2인자가 되는 그들은 자질과 능력도 따라야겠지만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한다면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2인자의 자리에 아예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평판은 아래에서의 공격과 위에서의 견제로부터 2인자를 지켜주는 방패가 된다. 구성원들의 여론이 그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 아티클에서 소개한 것처럼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원익이 정적들의 거센 공격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계속 중용된 것이 그 예다.

 

 

 

2. 조정(調停) 능력의 부족

 

재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조정능력이다. 원래 조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다양한 생각과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공동체를 위해 통합된 힘을 이끌어내는조정(調停)’과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조정(調整)’이 그것이다. 후자는 경영의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혼선과 중복에 따른 낭비를 막고 역량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상의 역할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바로 전자다. 흔히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념의 충돌이나 입장 차이로 인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권위가 개입돼 조정을 해야 한다. 최고지도자인 군주가 여기에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그 다음가는 권위를 가진 재상이 조정자의 임무를 맡는 것이다. 더욱이 조정에는 국정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안목도 요구되기 때문에 정부의 주요 직책들을 거치며 행정 경험을 쌓아온 재상의 경륜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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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태akademie@skku.edu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김준태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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