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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개인의 AI 생산성, 집단지성으로 바꾸려면

서아영,정리=장재웅 | 450호 (2026년 10월 Issue 1)
AI 각자 활용에 머물면 ‘지능의 파편화’
조직은 인간·AI의 ‘판단 흔적’ 축적해야
Article at a Glance

AI가 개인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해서 조직의 성과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각 개인과 부서가 AI를 활용해 자신의 목표를 정교하게 최적화할수록 오히려 서로 다른 판단이 충돌하는 ‘지능의 파편화’가 심해질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개인에게 흩어진 지식과 전문성을 팀의 집단지성으로 연결하고 사람과 AI, 부서에 분산된 판단을 공동의 목표 아래 조율해야 한다. 특히 AI 시대 조직이 축적해야 할 것은 최종 답만이 아니라 어떤 근거와 가정으로 판단했고 인간이 AI의 제안을 왜 수정했는지를 보여주는 ‘판단의 흔적’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인간-AI 워크플로를 재설계하고, AI를 생산 도구를 넘어 지능의 조정자로 활용하며, 개인 산출량보다 인간-AI의 공동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기업 교육부서 역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개인의 학습과 시행착오가 조직의 기억으로 축적되고 다시 활용되도록 조직학습 시스템을 설계하는 역할로 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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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일터에 빠르게 파고들면서 개인이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PwC의 2025년 글로벌 인력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직원의 54%가 AI를 사용했다. 특히 AI를 매일 사용하는 직원들은 생산성뿐 아니라 창의성과 업무의 질도 높아졌다고 답했다.1 하지만 개인이 체감하는 변화가 곧바로 기업의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PwC의 2026년 조사에서 전 세계 CEO의 56%는 AI 도입 이후에도 매출 증가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답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 비율이 70%를 넘었다.2 AI에 대한 기대는 높지만 이를 실질적인 기업 성과로 전환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DBR은 2026년 1월 스페셜 리포트에서 이 같은 현상을 ‘AI 생산성 역설(AI Productivity Paradox)’로 다룬 바 있다.3 AI 덕분에 개인의 단위 시간당 산출량은 크게 늘었지만 조직 전체의 수익성이나 의사결정 속도는 그만큼 개선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개인이 더 많은 결과물을 더 빨리 만들어낼수록 이를 검토하고 통합하고 조율하는 부담이 커져 오히려 조직의 병목이 심해질 수도 있다. 결국 개인의 생산성 향상만으로는 조직의 성과 향상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 기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AI가 개인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만드는가’에서 ‘개인이 AI를 통해 얻은 생산성과 지식을 어떻게 조직의 성과로 전환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하게 된 것이다.


AI가 만든 또 하나의 사일로, ‘지능의 파편화’

2025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소개된 한 유통기업의 사례는 AI를 통한 부분적인 성과 향상이 조직 전체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4 이 기업은 AI를 도입한 이후 재고 부족을 15% 줄였고, 고객 서비스 응답시간은 40% 단축했으며, 마케팅 이메일의 오픈율도 25% 높였다. 부서별 KPI만 보면 AI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기업 전체의 고객만족도는 개선되지 않았고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각 부서는 AI를 활용해 자신의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했지만 고객 여정 전체는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각 부서의 AI가 만들어낸 판단과 최적화 결과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각자의 기능 안에 머물렀다는 데 있다.

AI는 기존의 조직 사일로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같은 고객을 두고 마케팅 부서의 AI는 구매 가능성이 높은 우량 고객으로 판단해 적극적인 구매를 권하는 반면 재무 부서의 AI는 신용위험이 높은 고객으로 평가해 할부나 결제를 제한할 수 있다. 각 부서가 가진 데이터와 목표만 놓고 보면 두 판단 모두 합리적이다. 문제는 이처럼 서로 다른 판단을 비교하고 조정할 장치가 없을 때 발생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계속 구매를 권유받다가 정작 결제 단계에서는 거절당하는 모순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각 부서의 AI가 자신의 목표를 정교하게 최적화할수록 부서별 성과는 높아질 수 있지만 고객 경험의 일관성은 무너지고 기업 전체의 목표에서는 오히려 멀어지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지능의 파편화(intelligence fragmentation)’라고 부르고자 한다. AI를 통해 개인과 부서의 문제해결 능력은 높아졌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식과 판단이 개인과 팀, 부서, 서로 다른 AI 시스템에 흩어져 서로 연결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기존의 사일로가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부서의 경계에 갇혀 발생하는 문제였다면 지능의 파편화는 AI가 각 부서의 제한된 정보와 목표를 정교한 판단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한다. 따라서 조직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각각은 타당해 보이지만 서로 일치하지 않는 판단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개인의 지능을 팀의 집단지성으로 전환하라

지능의 파편화를 극복하려면 AI 활용의 초점을 개인에서 팀으로 넓혀야 한다. 개인이 AI를 통해 얻은 지식과 통찰이 다른 구성원의 전문성과 결합돼 팀 전체의 문제해결 능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이 ‘집단지성’이다.5 집단지성이란 단순히 여러 사람의 지식을 합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지식과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개인이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집단이 더 잘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크리스토프 리들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AI 시대 팀의 집단지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 ‘집단적 주의(collective attention)’ ‘집단적 추론(collective reasoning)’을 제시한다.6

첫째, 집단적 기억의 핵심 질문은 ‘지금 이 문제를 아는 사람 혹은 AI는 어디에 있는가’다. 이는 조직 구성원이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공유하는 일종의 집단 기억 체계인 트랜잭티브 메모리 시스템(TMS, Transactive Memory System) 개념과 맞닿아 있다. TMS의 핵심은 모든 구성원이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다. 대신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who knows what)’를 서로 알고, 필요할 때 적절한 사람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분산된 지식이 연결될 때 팀은 하나의 ‘집단 인지체계(group cognition)’처럼 작동할 수 있다.

AI가 팀의 실질적인 구성원으로 들어오면 집단적 기억의 범위도 넓어진다. 이제 팀이 알아야 하는 것은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뿐 아니라 ‘누가 또는 어떤 AI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Who-or which AI-knows what?)’다. AI가 중요한 지식에 접근하거나 이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 AI의 지식과 전문성 역시 팀의 TMS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7 예컨대 엔비디아(NVIDIA)는 반도체 칩 설계에 특화된 생성형 AI ‘ChipNeMo’를 개발해 내부 설계 데이터와 기술 지식을 활용한 엔지니어링 지원에 적용하고 있다.8 이를 통해 엔지니어들은 내부 설계 데이터와 기술 지식을 활용해 설계 관련 질문에 답을 얻고 문제해결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처럼 AI 시대의 집단적 기억은 인간과 AI에 분산된 지식과 전문성을 필요한 순간에 찾아 연결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한다.

둘째, 집단적 주의의 핵심 질문은 ‘지금 우리 팀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다. 모든 구성원이 항상 같은 문제에 주목할 필요는 없다. 평상시에는 각자 필요한 업무에 집중하되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부서 간 판단이 충돌하는 순간에는 관련 구성원의 주의를 같은 문제에 모을 수 있어야 한다. AI는 회의와 온라인 논의를 요약해 핵심 결정과 후속 과제를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모든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도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도록 돕는 비동기적 조정(asynchronous coordination)을 지원할 수 있다. 반대로 중요한 순간에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고 빠진 쟁점이나 상충하는 의견을 찾아내 구성원의 주의를 핵심 문제에 모으는 동시적 조정(synchronous coordination)을 지원할 수 있다.

실제로 블록체인 분석기업 난센(Nansen)은 많은 논의가 공개 슬랙(Slack) 채널에 쌓이면서 구성원들이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겪었다. 이후 슬랙 AI의 채널 요약 기능을 활용해 각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핵심 이슈를 빠르게 파악하도록 했다. AI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넘치는 정보 속에서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선별해 팀의 제한된 주의를 더 효과적으로 배분한 것이다.9

셋째, 집단적 추론의 핵심 질문은 ‘서로 다른 판단 기준과 가정을 어떻게 드러내고 조정할 것인가’이다. 같은 문제를 논의하는 팀에서도 구성원마다 판단 기준과 우선순위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마케팅은 고객 반응과 시장점유율을, 재무는 수익성과 위험을, 연구개발은 기술적 완성도를 우선할 수 있다. 각자의 관점에서는 모두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논의가 이어지면 구성원들은 같은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답을 찾게 된다.

AI는 이때 서로 다른 관점과 암묵적인 가정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의 의견과 논의 기록을 분석해 우선순위가 충돌하는 지점을 찾아내고 “이 우선순위는 팀의 공동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판단은 어떤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투자자, 재무책임자, 최종 사용자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대안을 검토하도록 함으로써 팀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각지대와 잠재적 갈등을 미리 확인하도록 도울 수 있다. AI의 역할은 팀을 대신해 정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판단의 전제와 충돌 지점을 보여줘 더 나은 공동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팀의 집단지성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하라

그러나 팀의 집단지성만으로 여러 팀과 부서 사이의 파편화까지 저절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하나의 팀이나 부서 안에서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 팀이 AI를 활용해 더 나은 판단을 내리더라도 서로의 정보와 의사결정이 연결되지 않으면 기업 전체에서는 여전히 부분 최적화에 머물 수 있다. 팀의 집단지성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하려면 사람과 부서, AI에 흩어진 지식과 판단을 공동의 목표를 중심으로 연결하고 조율해야 한다. 크리스 존슨 페레이라 하버드대 교수와 조던 통 위스콘신대 교수는 이를 ‘지능의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of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10 AI는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전문성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고 여러 부서에 흩어진 지식과 판단을 연결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인간은 여기에 AI가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운 현장의 제약조건과 암묵지, 전략적 맥락을 더한다. 저자들의 표현대로 핵심은 ‘의사결정을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자동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60일 뒤 관세가 오를 예정이라 재고를 미리 확보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해보자. 구매부서는 공급업체의 추가 공급 여력을, 물류부서는 창고 여력을, 재무부서는 운전자본 부담을, 영업부서는 향후 수요를 판단해야 한다. 어느 한 부서도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이때 지능의 오케스트레이션이 필요하다. 각 부서의 AI가 공급 가능 물량과 창고 여력, 자금 부담, 수요 전망 등 흩어진 정보를 연결하면 기업은 부서별 판단을 따로 취합하는 대신 여러 제약조건을 동시에 고려해 대안을 비교할 수 있다. 인간 리더는 여기에 AI가 충분히 포착하기 어려운 현장의 맥락과 전략적 판단을 더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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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와 인간이 같은 분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강점을 결합하는 것이다. 구매 AI가 계약과 과거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공급업체에 추가 생산 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하자. 하지만 구매 담당자는 최근 공급업체와 직접 대화하면서 경쟁사들도 관세 인상에 앞서 주문을 늘리고 있어 실제로는 추가 물량 확보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수 있다. 데이터에 아직 담기지 않은 현장의 맥락이다. 따라서 인간의 역할은 AI와 경쟁하듯 별도의 분석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가 알지 못하는 정보와 맥락을 판단에 보태는 데 있다. 페레이라 교수와 통 교수가 인간에게 “AI의 판단에 동의하는가?”보다 “AI가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가?”를 물으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결국 조직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사결정을 AI에 넘기는 능력이 아니다. 사람과 AI, 여러 부서에 흩어진 지능을 필요한 문제에 연결하고 각자의 강점을 결합하는 능력이다. 이런 역량은 새로운 AI 시스템 하나를 도입한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의 기억체계, 인간과 AI의 역할,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까지 함께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다시 설계해야 할까?


AI와 함께 학습하는 조직을 만드는 네 가지 설계 원칙

개인의 AI 활용을 팀의 집단지성과 조직의 성과로 연결하려면 AI를 더 많이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AI의 업무 흐름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판단과 경험을 조직의 학습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다음 네 가지 원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개별 업무를 자동화하지 말고 인간-AI 워크플로를 설계하라

AI 도입의 단위를 개별 업무에서 엔드투엔드(end-to-end) 워크플로로 확장해야 한다. 즉 AI가 특정 업무 하나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다음 단계와 담당자에게 어떻게 이어져 최종적인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되는지까지 전체 흐름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AI가 어디까지 독립적으로 처리하고,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개입하며, 어떤 조건에서 업무를 인계할 것인지(handoff rule)를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제품 출시 과정을 생각해보자. 시장분석 AI가 고객 데이터와 경쟁사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 콘셉트와 수요예측을 제안하면 그 결과는 연구개발 AI의 기술적 타당성 검토와 재무 AI의 수익성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요예측의 신뢰구간이 지나치게 넓거나 과거 데이터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기술적 타당성과 수익성 분석이 상충하는 경우 또는 기존 전략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장기회가 발견되면 AI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제품책임자에게 판단을 넘기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인간은 시장의 맥락과 전략적 우선순위를 고려해 콘셉트를 수정하거나 추가 분석을 요청하고 그 판단은 다시 다음 AI 분석의 입력이 된다.

따라서 기업은 각 워크플로에서 세 가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AI가 어디까지 독립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어떤 조건에서 인간의 검토와 판단을 요청할 것인가? 인간이 보완하거나 수정한 판단을 후속 업무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2. AI의 답이 아니라 ‘판단의 흔적’을 조직의 기억으로 남겨라

이처럼 인간이 보완하거나 수정한 판단을 후속 업무에 반영하면 현재의 워크플로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이 개인의 대화 기록에만 남는다면 다음에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은 같은 검토와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즉 개인은 학습했지만 조직은 학습하지 않은 것과 같다. 따라서 AI 시대의 지식관리는 정보를 저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개인과 조직 곳곳에 흩어진 지식과 경험을 다른 구성원이 다시 찾아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이미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LG CNS는 생성형 AI 기반 지식관리 서비스 a:xink Search를 통해 조직 내부에 축적된 사업 방법론, 프로젝트 경험, R&D 산출물, 기술 노하우 등을 임직원이 자연어로 검색하고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인과 특정 부서에 흩어져 있던 지식을 AI를 통해 다른 구성원이 다시 찾아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인의 경험을 조직의 재사용 가능한 지식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기업은 ‘인간-AI 전문성 지도(human–AI expertise map)’를 구축할 수 있다. 기존의 문서와 지식을 검색하는 것을 넘어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람과 지식, 문서, 데이터, AI가 어디에 있는지 연결해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해외시장 진출을 검토한다면 현지 경험을 가진 직원, 과거 유사 프로젝트 자료, 관련 고객 데이터, 시장분석에 특화된 AI를 함께 찾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모든 지식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누가 또는 어떤 AI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필요할 때 찾아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지식과 전문성을 찾아 연결하는 것만으로 조직이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제시한 최종 답만 남기면 다음 사람은 그 답이 어떤 조건에서 유효한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따라서 AI 시대에 조직이 축적해야 할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과 AI가 판단을 만들고 수정해온 과정이다. 필자는 이를 ‘판단의 흔적(decision trace)’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기존의 지식관리가 ‘조직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저장하고, TMS가 ‘누가 또는 어떤 AI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연결한다면 판단의 흔적은 ‘그 지식이 어떤 근거와 가정을 거쳐 판단으로 만들어지고 수정됐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인간이 AI의 제안을 수정하거나 기각한 이유까지 남겨야 그 판단과 시행착오가 조직의 학습 자산이 될 수 있다.

판단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직원에게 또 하나의 행정 업무가 돼서는 안 된다. 별도의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기보다 회의와 온라인 협업 기록, AI의 분석 결과, 결재 과정에서 이미 생성되는 정보를 활용해 AI가 판단 기록의 초안을 자동으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회의 AI는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결론과 주요 근거, 가정, 이견과 남은 불확실성을 추출하고, 업무 시스템은 사용된 데이터와 문서, AI의 초기 제안과 수정 이력을 연결할 수 있다. 의사결정자는 승인 단계에서 이 기록을 확인하고 AI가 포착하지 못한 현장 맥락이나 수정 이유만 보완하면 된다.

확인된 판단 기록은 관련 프로젝트와 업무 주제, 참여자, 사용된 데이터와 함께 조직의 지식관리 시스템에 저장한다. 이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면 구성원은 조직의 AI에 자연어로 질문해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AI는 과거의 최종 결론뿐 아니라 당시 사용된 근거와 가정, 남아 있던 불확실성, 인간이 AI의 제안을 수정한 이유를 함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과거의 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판단 조건이 현재 상황에도 적용되는지를 검토해 새로운 의사결정에 참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AI 대화를 보존할 필요는 없다. 기록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학습 가치가 높은 판단을 찾기 어려워지고 맥락이나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과거 기록이 잘못 재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서 간 판단이 충돌한 사안, 인간이 AI의 제안을 수정하거나 기각한 사안, 불확실성이 높았던 사안, 향후 반복될 가능성이 큰 사안처럼 조직의 학습 가치가 높은 판단을 선별해 남겨야 한다.

3. AI를 지능의 조정자로 활용하라

오늘날 기업에서 AI는 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코드를 만들고, 콘텐츠를 생성하는 생산 기술(production technology)로 사용된다. 그러나 팀과 조직의 집단지성을 높이려면 AI의 역할을 한 단계 확장해 사람과 지식, 데이터, 다른 AI를 연결하는 ‘조정 기술(coordination technology)’로 활용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인간-AI 전문성 지도’가 ‘누가 또는 어떤 AI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조직의 지도라면 조정 기술로서 AI는 이 지도를 활용해 ‘지금 이 문제를 누구에게 연결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즉 조직에 전문성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의 문제에 필요한 전문성을 찾아 실제 업무 흐름에 투입하는 것이다.

시스코(Cisco)의 기술지원 조직이 한 사례다. 시스코의 기술지원센터(TAC)는 연간 1600만 건에 이르는 고객 문의를 처리한다.11 특히 대규모 장애나 보안 취약점이 발표되는 시점에는 문의가 급증해 TAC 팀 전체가 압도되고 대응 속도가 느려지는 상황이 반복됐다.12 시스코는 AI를 기술지원 업무 전반에 결합해 고객의 요청을 분석하고 필요한 조치를 파악한 뒤 반복적이고 익숙한 문제는 직접 처리하고 복잡하거나 새로운 문제는 분석한 내용과 함께 인간 전문가에게 인계하도록 했다. 인간 전문가는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파악하지 않고 AI가 정리한 맥락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필요한 지점부터 개입할 수 있다.

시스코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기술지원 케이스의 89%에 AI 자동화가 관여하고 있으며 제품 교환·반품 처리의 50%가 완전 자동화됐고 케이스 해결 속도도 2~4배 빨라졌다.13 그러나 이 사례의 의미는 자동화 비율 자체에만 있지 않다. AI가 문제를 분석해 적절한 인간 전문가에게 연결하고, 인간이 새로운 원인과 해결책을 더해 문제 해결을 완성하는 조정 구조를 구축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다시 조직의 지식으로 축적된다면 개별 문제의 해결은 조직 차원의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

4. 개인의 산출량이 아니라 인간-AI의 공동 성과를 측정하라

조직을 바꾸려면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AI 시대에도 직원들을 산출량, 업무 속도, 처리 건수 같은 기존 생산성 지표만으로 평가한다면 개인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AI 생산성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 개인의 KPI는 좋아져도 팀의 학습이나 조직 전체의 성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 오히려 보상받을 수 있다.

최근 HBR에 소개된 AI 시대의 성과관리 연구는 이러한 왜곡을 막기 위해 성과를 (1) 인간의 기여, (2) AI의 성과, (3) 인간-AI 시스템의 공동 성과라는 세 층위로 나눠 측정할 것을 제안한다.14 첫째, 인간의 기여 부분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단순한 산출량보다 AI의 한계를 판단하는 능력, 동료와 팀의 성과를 높이는 오케스트레이션 역량, 새로운 AI와 업무 방식에 적응하는 학습 속도를 평가에 포함해야 한다. 둘째, AI의 성과도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I의 정확성뿐 아니라 결과를 추적할 수 있는지, 결과가 도출된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지, 자신이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을 적절한 인간에게 인계하는 능력(handoff)을 평가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AI가 함께 일했을 때 실제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보는 것이다. AI를 활용한 직원의 산출물이 두 배가 됐는지보다 팀 전체의 재작업이 줄었는지,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졌는지, 고객 경험이 개선됐는지를 봐야 한다. 특히 인간의 개입이 AI의 오류를 발견하고 맥락을 보완해 결과를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인간과 AI의 상호보완성을 평가할 수 있으며 이는 중요한 성과 지표가 될 수 있다. 기존의 개인 중심 KPI를 그대로 둔 채 협업과 집단지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구성원의 행동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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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 배우는 조직으로

AI가 개인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살펴봤듯이 더 생산적인 개인이 많아진다고 해서 저절로 더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부서가 각자의 업무를 AI로 최적화하는 데 머문다면 오히려 지능의 파편화가 심화될 수 있다. 개인이 AI를 통해 얻은 지식과 통찰이 다른 구성원의 전문성과 결합돼 팀의 집단지성으로 발전하고 다시 여러 팀과 부서에 흩어진 인간과 AI의 지능이 조직의 공동 목표를 중심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AI의 생산성 효과는 조직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 교육부서의 역할도 바꾼다. AI가 개인에게 필요한 지식과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대에는 교육부서가 더 많은 교육과정을 만들고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교육부서가 해야 할 일은 개인의 학습이 조직의 학습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직원이 AI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얻은 판단과 시행착오 가운데 무엇을 조직의 지식으로 남길지 정하고 그 지식을 다른 구성원이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또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람과 데이터, AI를 찾아 연결하고, 인간의 새로운 판단이 다시 조직의 지식과 AI에 반영되는 학습의 환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부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조직’에서 ‘조직학습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조직’으로 역할을 넓혀야 한다. 교육의 성과를 몇 명이 과정을 수료했고,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로만 평가해서도 안 된다. 개인이 얻은 지식이 다른 구성원에게 얼마나 재사용됐는지, 팀의 재작업과 시행착오가 줄었는지, 더 나은 공동 판단으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AI가 개인의 학습 비용을 낮춰줄수록 교육부서의 경쟁력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조직이 어떻게 함께 배우게 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 서아영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로 현재 경영원장과 경영연구소장, 경영대학 부학장을 맡고 있다. 성균관대에 부임하기 전 홍콩시립대(City University of Hong Kong)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인간-AI 협업, AI 창의성, 게이미피케이션, 확장현실 등 디지털 기술이 개인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국제학술지 『Information Technology & People』의 공동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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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장재웅

    정리=장재웅 jwoong04@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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