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 주최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에서 수술 집도의를 맡은 오남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분과 교수가 휴머노이드 로봇에게서 그래스퍼(의료용 집게)를 건네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래스퍼(의료용 집게) 주세요.”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인근 강의실에서 집도의가 손을 내밀자 간호사 역할을 맡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수술 도구를 집어 건넸다. 이어 집도의가 “따라와”라고 하자 내시경 카메라를 들고 있던 또 다른 로봇이 수술 도구가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고 절개 부위를 잡았다.
이날 삼성서울병원 연구진은 지난해 7월부터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오케스트라’와 함께 염소 간에서 담낭을 떼는 수술을 시연했다. 인간 집도의가 수술 보조 로봇 여러 대와 협업 수술을 시연한 건 세계 최초다.
●의료진 대신할 ‘지능형 수술 보조 로봇’ 개발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오남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가장 오른쪽)가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 3대와 협업해 염소 간에서 담낭을 절제하는 수술을 시연하고 있다. 가운데 로봇은 오 교수의 조종에 따라 수술을 집도하고 왼쪽 로봇은 간호사, 오른쪽 로봇은 보조의사 역할을 맡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현재 국내외 의료 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수술 로봇은 의사의 원격 조종으로 움직인다. 대표적인 수술 로봇인 ‘다빈치’는 집도의가 로봇팔을 움직여 수술 부위를 정교하게 절제하거나 봉합한다.
이와 달리 이번에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의료진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지능형 수술 보조 로봇’이다. 음성 명령에 따라 5종의 수술 도구를 건네거나, 내시경 카메라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등 의사를 보조하는 기능을 갖췄다. 이날 시연에서도 한 대는 간호사 역할을, 다른 한 대는 보조 의사 역할을 맡아 집도의를 도왔다.
기존 의료용 로봇처럼 원격 수술도 가능하다. 이날 시연에서 집도의를 맡은 오남기 이식외과 교수는 수술 보조 로봇을 원격 조종해 담낭관을 먼저 박리한 후, 집도의 자리로 와 두 로봇과 함께 나머지 부분을 완전히 절제하며 수술을 마무리했다. 수술에 걸린 시간은 단 10여 분이었다.
현재 수술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술 로봇의 모습. 의사가 로봇팔을 원격조종해 수술을 진행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이동이 불편한 기존 수술실 로봇의 단점도 극복했다. 기존 로봇은 부피가 크고 무거워 이동이 어렵고 전용 수술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키(160cm)가 사람과 비슷하고 몸체에 바퀴를 달아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한국 의사-로봇 협업 분야서 앞서전 세계적으로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 개발 경쟁이 한창이다. 개발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술 전후의 물류를 이송하거나 준비 업무를 담당하도록, 다른 하나는 수술에 참여해 수술기구를 다루도록 개발한다. 올해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이 병동을 다니며 약과 물품을 배달하고 수술실 간호사 업무도 수행할 수 있는 ‘누라봇’을 소개한 바 있다. 원격 조종해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 개발도 진행 중이다. 미국에선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해 살아있는 돼지를 대상으로 원격 수술에 성공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용 휴머노이드 개발은 출발이 늦었지만, 수술실 내에서 사람과 휴머노이드가 협업하는 기술만큼은 수준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규환 미래의학연구원 지능형의료로봇 연구센터장은 “의료진과 휴머노이드가 협업하는 분야에서는 한국이 앞서 있고, 앞으로의 개발에서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3곳이 이러한 협업형 보조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의료진은 수술 보조 로봇이 상용화되면 필수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를 이끌고 있는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지방의 작은 병원은 숙련된 수술 보조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며 “로봇이 상용화되면 제한된 인력으로 수술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 필수의료 인력 공백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로봇이 의료진을 보조하며 실제 수술에 투입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사람 수술에 사용할 만큼 안전성과 정확성이 검증돼야 하고, 로봇의 판단이나 동작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과 병원, 개발사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등 제도적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연구진은 2029년 첫 임상시험 실시를 목표로 남은 개발 기간 동안 기술 고도화와 함께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지 검증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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