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결제·실행 마찰 없애 AI에 위임 일상화
韓기업, 작은 위임부터 설계해 신뢰 쌓아야
Article at a Glance
중국 소비자는 AI 에이전트에 일상을 맡기는 데 거부감이 거의 없다. 이 차이는 모델 성능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결제, 선택, 실행의 마찰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며 쌓아 올린 ‘위임의 준비도(delegation readiness)’에서 비롯된다. 결제를 맡길 수 있게 되자 판단을 맡겼고, 판단을 맡기자 행동 전체를 위임했다. 그 결과, 중국에서 AI 에이전트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익숙한 위임의 연장선이 됐고 한번 습관으로 굳은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 ‘습관의 해자(habit moat)’가 됐다. 강한 데이터 규제를 안고 여러 앱을 오가며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조합하는 한국 특유의 ‘군도형’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한국 플랫폼 기업은 중국의 슈퍼앱 구조를 그대로 모방하기보다 위임의 경로를 구축하는 현실적인 설계 전략을 택해야 한다. 대화창을 생활의 입구로 만들고, 작은 위임부터 단계적으로 설계하고, 반복의 질을 측정하며 습관 형성을 추적해야 한다.
2025년 중국 항저우의 한 차(茶) 음료 체인점. 필자는 줄을 서지 않았다. 아니, 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매장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의 QR 코드가 눈에 들어왔고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니 위챗 미니 프로그램이 열렸다. 메뉴를 고른 뒤 당도, 얼음 양, 토핑 등 커스터마이징 옵션을 선택하고 위챗페이로 결제했다. 매장에 들어선 후 메뉴 선택부터 주문, 결제까지 걸린 시간은 단 40초였다. 그 사이 옆자리의 한 중국인 직장인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스마트폰에 음성으로 명령해 같은 음료를 주문했다. 이런 행동이 그에게는 그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인 듯했다.
필자가 이 장면에서 충격을 받은 이유는 기술의 첨단성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주문 시스템이 있다. 차이점은 ‘마찰의 부재’였다. 중국 소비자는 앱을 찾고, 계정을 만들고, 결제 수단을 등록하고, 사용법을 학습하는 일련의 마찰을 이미 수년 전에 통과했다. 그에게 새로운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익숙한 일상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이 관찰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왜 중국 소비자는 AI에 자신의 일상을 맡기는 데 이토록 거부감이 적을까? 반면 왜 한국 소비자는 여전히 새로운 AI 기능을 앞에 두고 ‘한번 써볼까 말까’ 고민할까? 이 차이는 AI 기술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 디지털 생태계가 체계적으로 축적해 온 ‘마찰 제거(friction elimination)’의 역사에 답이 있다.
마찰 계수: 위임의 심리학을 다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