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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AI가 유발한 급성 인지 피로와 회복 전략

김수열,정리=이규열 | 445호 (2026년 7월 Issue 2)
AI 산출물 검토에 지쳐 ‘브레인 프라이’ (Brain Fry)
잦은 쉼표 ‘마이크로 브레이크’ 제도화를(Micro Break)
Article at a Glance

AI가 사람의 일을 덜어 인지적 여유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최근 연구들은 정반대의 현상을 보고한다. AI는 업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리며, ‘브레인 프라이(Brain Fry)’라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인지적 과부하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레인 프라이는 짧은 시간 안에 주의력과 작업기억, 실행 기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발생하는 급성 인지 피로를 뜻한다. 이러한 현상의 핵심 원인은 AI에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AI의 결과물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수정하며 감독해야 하는 데 있다. 여러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생성하는 방대한 결과물을 평가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인간의 인지 부담은 커지고 24시간 이어지는 AI 협업 환경에서는 뇌가 회복할 시간마저 점점 줄어든다. 고성과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더 열심히 버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AI 시대에는 일하는 방식과 업무 구조 자체를 조직이 설계해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지 노동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어주는 ‘마이크로 브레이크(Micro Break)’를 업무 과정에 포함하고 구성원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일의 리듬을 설계하는 조직적 장치가 중요하다.



새해 첫날, 한 개발자가 수십 개의 AI 코딩 에이전트를 동시에 부리는 오픈소스 플랫폼을 공개했다. 에이전트들은 놀라운 속도로 소프트웨어를 조립해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초기 이용자의 소감은 뜻밖이었다. 도무지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한 스트레스가 느껴졌다는 것이다.1

이 장면은 더 이상 일부 개발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케터는 AI가 쏟아낸 카피를 검수하고, 기획자는 AI가 만든 초안과 요약을 끝없이 검토하며, 관리자는 여러 개의 에이전트가 동시에 진행하는 작업을 모니터링한다. 분명 일은 더 빨리 처리된다. 그런데 퇴근 무렵이면 머릿속이 윙윙거리고, 안개가 낀 듯 집중이 흐려지며, 의사결정 속도는 느려진다.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었다. AI가 인간을 일로부터 해방시키고 한가하게 해줄 것이란 기대와 약속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생산성 도구는 역설적으로 가장 빠르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고성과는 조직의 설계에서 비롯되며 그 설계의 책임 역시 리더와 조직에 있다. AI가 약속했던 인지적 여유가 왜 현실에서는 인지적 과부하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보고 과열된 인지를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 함께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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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을 줄여준다는 약속, 현실은?
신종 과부하, ‘브레인
프라이’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의 아루나 랑가나탄 교수와 싱치 매기 예 연구원은 2025년 4월부터 12월까지 약 8개월간 200명 규모의 미국의 한 기술 기업을 관찰했다. 자기 보고 설문에 의존한 기존 연구와 달리 연구진은 생성형 AI를 자발적으로 도입한 현장에 직접 들어가 일하는 방식이 실제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추적했다.2 결과는 AI가 생산성을 높인다고 믿는 AI 낙관론자들의 예측과 달랐다. AI는 일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진이 살펴본 거의 모든 직무에서 일의 강도와 양을 강화했다.

연구진은 이를 ‘일감 잠식(Workload Creep)’이라 불렀다. 개별적인 과제는 분명 더 빨리 끝났지만 그렇게 아낀 시간은 깊은 사고나 휴식을 위해 쓰이지 못했다. 그 빈자리는 곧바로 더 많은 일로, 그것도 본래 직무와는 다른 종류의 일로 채워졌다. AI가 복잡한 기술적 과제의 진입 장벽을 낮추자 사람들은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영역까지 스스로 손을 뻗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AI로 인한 인지적 과부하를 호소하는 이들일수록 새로운 일을 더 자발적으로 찾아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됐으니 스스로 일을 늘린 것이다. 일을 줄이려고 들인 도구가 일을 늘리는 엔진이 된 셈이다. 그리고 늘어난 일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산출물을 ‘만드는’ 노동이 아니라 AI가 만든 산출물을 ‘검토하는’ 노동이었다.

이 새로운 소진 상태에 대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연구진은 ‘브레인 프라이(Brain Fry)’라는 이름을 붙였다. 줄리 베다드 등 BCG 헨더슨연구소 연구진은 다양한 직무와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 근로자 1488명을 조사하고 ‘AI 도구의 과도한 사용 또는 감독으로 인해 자신의 인지 용량을 넘어선 정신적 피로’를 브레인 프라이로 정의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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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확실했다. AI를 단순히 일을 대신 처리하는 용도로 쓴 사람들에 비해 AI의 결과물을 높은 수준으로 검토·감독한 사람들은 정신적 노력을 14% 더 들였고, 정신적 피로를 12% 더 느꼈으며, 정보 과부하를 19% 더 경험했다. AI를 활용하는 근로자 일곱 명 중 한 명(14%)이 브레인 프라이를 호소했고, 산출물의 양이 많고 검수가 끊이지 않는 마케팅 직군에서는 그 비율이 26%까지 치솟았다. 눈앞에 안개가 끼거나 머리가 윙윙거리는 느낌은 컴퓨터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야 가까스로 해소됐으며 집중을 못해 사소한 실수가 늘었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브레인 프라이가 번아웃과는 다른 현상이라는 점이다. 번아웃이 수개월에 걸쳐 누적되는 만성적·정서적 소진이라면 브레인 프라이는 주의력과 작업기억, 실행 기능이 단시간에 한계까지 소모되면서 나타나는 급성 인지 피로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번아웃이 서서히 닳아가는 마모라면 브레인 프라이는 과열된 엔진이 갑자기 출력이 떨어지는 현상에 가깝다. 짧고 강도 높은 인지 노동 뒤 찾아오는 일종의 ‘정신적 숙취’인 셈이다. 이 구분은 단순한 용어 차이가 아니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번아웃이 업무량과 자원 배분, 조직 운영 방식의 근본적인 재설계를 요구한다면 브레인 프라이는 과도하게 높아진 인지 부담을 주기적으로 낮추고 뇌가 회복할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업무 설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왜 AI는 우리의 뇌를 과열하나?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AI 관리하기


1) AI 감독 부담

흥미롭게도 브레인 프라이의 원인은 ‘AI를 많이 쓰는 것’ 자체가 아니다. BCG 연구가 짚은 핵심 기제는 따로 있다. 단순히 AI에 일을 맡기는 위임만으로는 뇌가 타버리지(Fried) 않는다. 브레인 프라이의 주범은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등 감독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AI가 단순·반복 과제를 대신 처리해줄 때는 오히려 번아웃 점수가 낮아졌다. 문제는 사용량이 아니라 감독에 대한 부담이었다.

이는 인지공학에서 오래전부터 경고해온 ‘자동화의 역설(Ironies of Automation)’ 현대판이다. 1983년 인지공학자인 리산 베인브리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심리학과 교수는 같은 제목의 논문에서 이미 이 문제를 예견했다.4 시스템이 자동화될수록 인간에게 남겨지는 일은 가장 까다로운 부분, 즉 기계가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예외를 감시하고 판단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40년도 더 전에 제기된 자동화의 역설은 AI 시대가 도래하며 현실이 됐다. 마케터는 AI 카피를 검수하고, 엔지니어는 거대언어모델(LLM)이 짠 코드를 점검하며, 기획자는 AI 요약의 사실관계를 일일이 확인한다.

실리콘밸리의 업무용 AI 플랫폼 기업 글린(Glean)은 AI를 실제 업무에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인간이 수행해야 하는 눈에 띄지 않고 보상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을 ‘봇시팅(Botsitting)’이라고 명명했다.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AI가 알아야 할 맥락과 정보를 입력하고 결과물을 검토해 오류를 바로잡는 등의 모든 과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글린이 디지털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국, 영국, 호주의 정규직 근로자 6000명을 조사5 한 결과, 작업자들은 매주 평균 6.4시간을 봇시팅에 소비하고 있었다. 사실상 하루치 근무시간을 AI를 어르고 달래며 돌보는(Sitting) 데 쓰는 셈이다. 작업자들이 AI와 상호작용하는 전체 시간 중 37%가 봇시팅에 사용되며 이는 AI를 사용해 실제 작업물을 생산하는 시간(36%)보다 더 많았다. 가장 높은 피로도를 유발하는 활동으로는 주당 1.7시간을 할애하는 디버깅이 꼽혔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제를 찾아 프롬프트나 모델을 바꾸며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AI를 감독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AI가 생성한 결과를 계속 확인하고 오류를 찾아내려면 높은 수준의 집중력과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심은 무뎌지고 AI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렀는지 내부 논리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AI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려주지 않는 오류는 결국 사람이 직접 찾아내고 책임져야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AI는 인간의 전문성을 대신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정작 AI의 결과를 제대로 검토하려면 전문성이 여전히 필요하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수록 사람에게 요구되는 판단력과 비판적 사고는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내는 일과 다른 사람이 만든 결과물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토하는 일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인지 노동이다. 특히 후자는 지속적인 집중과 오류 탐색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신적 피로를 더 빠르게 누적시킬 수 있다.

글린의 보고서 역시 봇시팅이 조직에서 업무 평가, 보상과 연계되는 업무로 인식되지 않을 경우 작업자들로 하여금 심각한 소진을 유발할 수 있으며 봇시팅을 자주하는 직원들은 이직을 준비할 확률이 73% 더 높다고 지적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성과가 높은 고성취 AI 사용자들이 봇시팅에 할애하는 시간은 약 40%로 일반 사용자(33%)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AI 감독이 작업자에게 유발하는 인지적 비용과 그 대가는 고성과자에게 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심지어는 이들이 조직을 이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AI가 스스로 추론하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여러 에이전트를 동시에 관리하는 AI 오케스트레이션(AI Orchestration)이 조직과 구성원이 길러야 할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글린의 조사에서는 봇시팅이 발생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도구의 난립(Tool Sprawl)’을 지목했다. 응답자 중 77%의 작업자가 매주 여러 개의 AI 도구를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데 작업자들은 시스템 간 통합 장치 역할을 맡으며 똑같은 맥락을 도구마다 반복해서 설명하고 엇갈린 결과물을 중재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BCG 연구에서도 AI 도구를 하나에서 둘로 늘릴 때는 생산성이 올랐지만 셋을 넘어서면 생산성은 오히려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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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I 감독 부담의 전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사실은 AI 감독에 대한 책임과 그에 따르는 인지적인 부담이 개인을 넘어 그룹과 조직의 다른 구성원에게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명 ‘워크슬롭(Workslop)’의 전파다. 행동과학 연구소인 베터업랩스(Better up Labs)와 스탠퍼드대 소셜미디어랩 공동 연구진은 ‘겉보기에는 괜찮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과제를 의미 있게 진전시키지 못하는 생성형 AI의 작업물’을 워크슬롭이라고 명명했다.6 AI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됐는데 문제는 일부 직원이 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다음 프로세스로 넘긴다는 것이다. 글린은 이처럼 작업자가 제대로 검증하지 않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 있게 책임질 수 없는 생성형 결과물을 여과 없이 배포하거나 제출하는 행위를 일종의 배설 행위로 비유하며 ‘봇쉿팅(Botshitting)’이라고 규정했다.

워크슬롭을 넘겨받은 동료나 상사는 당혹감을 느끼며 이러한 결과물을 전달한 상대방의 역량, 창의성, 신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베터업랩스-스탠퍼드대 소셜미디어랩이 미국 내 정규직 근로자 115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가 지난 한 달 동안 워크슬롭을 받은 적이 있으며 업무 중에 받은 자료의 약 15.4%가 워크슬롭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워크슬롭을 받을 때 53%는 짜증, 38%는 혼란, 27%는 불쾌감을 느꼈다. 나아가 42%는 그 동료를 덜 신뢰하고, 37%는 그 동료의 지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워크슬롭을 한 건 처리하는 데 평균 1시간 56분이 소모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구성원이 1만 명인 조직이라면 연간 900만 달러 이상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한편 글린의 조사에서는 워크슬롭을 전달하는 작업자의 행동 기제를 파악할 수 있다. AI 사용자의 약 69%가 직장에서 봇쉿팅을 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으며 AI 헤비 유저일 경우 봇쉿팅을 할 확률이 64% 더 높았다. 성능이 뛰어난 AI를 사용할수록 AI에 대한 신뢰와 의존이 커져 봇쉿팅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과에 대한 편향적인 귀인(Attribution)이 봇쉿팅 행위를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잘하면 내가 잘한 것이고, 못하면 AI가 못한 것이라는 식의 해석이다. 생성형 AI로 만든 결과물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응답자의 40%는 AI를 비난했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응답자는 29% 불과했다.

특히 하버드대 연구진은 시팅과 쉬팅, 즉 자신이 만든 AI 결과물은 물론 남이 만든 AI 결과물까지 감독하는 일을 동시에 떠안는 중간관리자가 가장 큰 부담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7 글로벌 컨설팅 기업 두 곳의 파트너, 매니저, 주니어 컨설턴트를 대상을 반구조화된 인터뷰 18건을 진행한 연구진은 중간관리자의 하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출근과 동시에 그는 새로운 프롬프트와 AI 활용법을 익히며 하루를 시작한다. 고객 미팅에서는 조직의 AI 활용 전략을 설명해야 하고, 오후에는 AI가 생성한 보고서와 분석 결과를 검토하며 오류를 찾아낸다. 동시에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 컨설턴트를 지도하고, 파트너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피드백이 타당한지 판단해야 한다. 자신이 익힌 AI 활용 노하우를 정리해 팀원들과 공유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AI 도입이 본격화되고 경기 불확실성으로 구조조정이 이어진 2024년 이후 이러한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인력이 줄어든 조직에서 중간관리자는 더 많은 구성원을 관리하는 동시에 AI 도입과 활용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핵심 역할까지 맡게 됐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중간관리자의 업무 몰입도는 2023년 30%에서 2025년 22%로 모든 직급 중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8

이에 대해 하버드대 연구진은 다른 직급과 달리 중간관리자는 AI 도입으로 인한 ‘역할 상승(Role Elevation)’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AI가 반복적이고 기초적인 업무를 대신하면서 주니어 컨설턴트는 단순 자료 조사나 문서 작성에서 벗어나 데이터 분석과 전략 회의 등 고부가가치 업무를 맡게 됐다. 파트너 역시 기존 방법론을 적용하는 역할을 넘어 AI가 생성한 결과를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향으로 역할이 확장됐다. 반면 중간관리자의 업무는 줄어들지 않았다. 기존의 프로젝트 관리와 인력 관리에 더해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토하고, 팀원들의 AI 활용을 코칭하며, 산출물의 품질을 관리하는 새로운 책임까지 떠안게 됐다. 즉 개인뿐만 아니라 팀의 AI 성과를 위한 봇시팅도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된 것이다.

AI를 바라보는 임원과 업무 담당자의 인식 차이 역시 중간관리자의 부담을 키운다. BCG 조사에 따르면 임원은 업무 담당자보다 직원들의 AI 도입 의지를 훨씬 높게 평가했으며, 직원들이 AI 도입에 적극적일 것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임원이 업무 담당자보다 약 두 배 높았다.9 이러한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은 결국 중간관리자에게 돌아간다. 중간관리자는 AI가 만든 결과물이 신뢰할 만한지 검증하고, 주니어 구성원이 여전히 직접 수행해야 할 업무의 범위를 판단하며, AI를 활용한 산출물을 고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조직 차원의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전환기에는 이러한 판단과 조율을 팀 단위에서 중간관리자가 직접 수행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모든 역할이 기존 업무에 더해졌다는 점이다. 중간관리자는 이전과 같은 관리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AI를 학습하고, 새로운 활용 방식을 실험하며, 그 경험을 팀 전체에 확산시키는 역할까지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추가적인 노력은 상당수 조직에서 성과 평가나 보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3) 업무 경계의 소멸

UC 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연구진은 AI로 인한 인지적 과부하를 키우는 또 하나의 축으로 ‘경계의 소멸’을 꼽았다. 우선 업무의 경계가 흐려졌다. 지식의 공백을 메우는 AI 덕분에 과거에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할 수 있었던 일을 개인이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AI의 도움을 받아 마케터가 코딩을 하고 엔지니어가 음악을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엔지니어들은 구성원들의 바이브 코딩을 지도하거나 각 부서에서 AI로 만든 결과물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부담이 늘었다.

개인이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뿐만 아니라 동시에 관리하는 과업의 수도 늘었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리서치 에이전트에게 자료 검색을 요청하고, 결과물이 나오는 동안 문서 정리 에이전트에게 보고서 형식에 맞게 데이터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사이사이 고객과 동료의 요청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디자인 에이전트의 활용법까지 연구한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이 개인의 인지와 성과, 감정, 웰빙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돼 왔다.10 인간의 뇌는 여러 목표를 완벽히 동시에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 멀티태스킹은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우 빠르고 반복적으로 주의를 전환하는 ‘작업 교차(Task Interleaving)’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처럼 작업 사이를 오가면서 뇌에는 새로운 작업 규칙과 맥락에 맞게 인지 과정을 재구성하는 ‘전환 비용’이 발생한다. 작업의 교차는 전구를 켜고 끄는 것처럼 즉각적이고 구별적이지 못하다. 한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채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면 이전 작업에 대한 주의가 머릿속에 잔류(Attention Residue)하며 작업들이 서로를 방해하게 된다. 이때 작업 수행 속도가 느려지고 오류가 늘어나기 쉽다. 그뿐만 아니라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은 더 낮고 스트레스 수준은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AI의 도입으로 업무의 범위와 관리해야 할 AI 에이전트가 늘어남에 따라 구성원들은 자칫 효율적으로 보이는 멀티태스킹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인지적 자원뿐만 아니라 성과, 감정, 웰빙에까지 과부하의 늪에 빠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업무의 경계만 흐려지는 것이 아니다. AI 시대에는 일과 생활의 경계도 무너지기 쉽다. 사람들은 24시간 여러 종류의 에이전트를 동시에 돌려야 한다는 압박에 놓인다. 에이전트는 잠들지 않는다. 에이전트를 관리하는 작업자는 자연스럽게 에이전트의 업무 리듬을 따라간다. 일과 일상의 경계는 흐려지고 인지적으로 회복할 틈은 사라진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에이전트를 ‘방치할 수 없다’는 감각은 퇴근 후에도 마음 한쪽을 일에 묶어둔다.


AI 활용 역량=기술 숙련도?
주의력 관리-회복 능력까지 AI 역량


여기서 우리는 ‘AI 활용 역량’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조직은 AI 역량을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 숙련도쯤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브레인 프라이가 알려주는 진실은 좀 더 복잡하다. AI 시대의 핵심 역량은 실제 AI를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의력을 어디에 배분할지 관리하는 능력, 성급한 판단을 유예하고 검토의 깊이를 조절하는 능력, 무엇보다 ‘회복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능력까지 포괄한다. 즉 개인의 손끝 기술을 넘어 주의력 관리, 판단 유예, 휴식 자율성, 회복 루틴까지 포함하는 조직 차원의 역량으로 봐야 한다.

이 관점은 직무요구-자원 모형(Job Demands–Resources)과 노력-회복 모형(Effort–Recovery model)이 오래전부터 말해온 바와 정확히 맞닿는다. 노력-회복 모형에 따르면 업무 요구에 동원된 심리·생리 시스템은 그 요구가 멈춘 뒤 일정한 회복 기간을 거쳐 기준선으로 돌아온다.11 회복의 기회가 반복적으로 박탈되면 시스템은 기준선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다음 요구를 맞이하고 부담은 누적된다. 자원보존이론(Conservation of Resources) 역시 고갈된 자원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를 스트레스의 핵심으로 본다.12 AI는 바로 이 회복의 기회를 구조적으로 잠식한다. 빨라진 작업 속도가 회복의 빈틈마저 새로운 과업으로 메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도 구조적이어야 한다.


회복의 열쇠, ‘마이크로 브레이크’,
개인을 넘어 조직이 설계하라


AI가 만든 초안과 요약, 분석을 인간이 쉼 없이 검토하는 과정 그 자체가 새로운 인지 노동이라면 그 노동에도 다른 모든 노동과 마찬가지로 ‘회복’이 필요하다.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은 ‘마이크로 브레이크(Micro Breaks)’다. 마이크로 브레이크는 대체로 10분 미만의 짧은 휴식으로 정해진 휴게 시간이 아니라 과업과 과업 ‘사이’에 스스로 필요할 때 끊어주는 작은 쉼표를 말한다.13 필자가 한국의 사무직 근로자들을 10일간 매일 추적한 일기 연구에서 이러한 짧은 휴식이 그날그날의 업무 요구가 퇴근 무렵의 부정적 정서로 번지는 것을 완충해줬다.

다만 효과는 ‘무엇을 하며 쉬느냐’에 따라 크게 갈렸다. 같은 연구에서 가벼운 이완(스트레칭·산책·창밖 보기)과 동료와의 비업무적 대화는 업무 요구의 부정적 효과를 분명히 줄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독서·웹서핑·짧은 영상 시청 같은 ‘인지적 휴식’은 오히려 부정적 정서를 더 키웠다. 해석은 단순하다. 이러한 활동은 업무에 쓰던 인지 자원을 다시 끌어다 쓰기 때문에 겉으로는 쉬는 듯해도 소진된 시스템을 회복시키지 못한다. 뒤이어 콜센터 직원들의 객관적 매출 기록으로 확인했을 때도 휴식이 긍정 정서를 높이고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경로가 나타났는데 인지적 휴식이 도움이 된 경우는 그것이 진짜로 즐겁고 업무와 단절된 활동일 때에 한해서였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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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분이 AI 시대에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브레인 프라이는 본질적으로 주의력과 작업 기억을 소진시키는 인지적 피로다. 그런데 쉰다고 하면서 또 다른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같은 종류의 집중을 요구하는 인지적 과제(업무 문서 읽기, 메시지 확인, 피드 탐색)로 옮겨가면 이는 휴식이 아니라 인지적 자원에 청구되는 또 한 장의 계산서일 뿐이다. 회복이 되려면 휴식은 소진된 자원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어야 한다. 화면에서 눈을 떼 몸을 움직이고 창밖이나 자연을 바라보거나 동료와 짧게 대화하는 등 인지가 아닌 다른 채널을 여는 활동이 인지의 열을 식힌다.

원리를 알아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AI 검토 노동의 흐름 속에 회복의 쉼표를 심기 위한 몇 가지 실천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짧게 그러나 자주 쉬어야 한다. 한 번의 긴 휴식보다 인지 자원이 바닥나기 전에 자주 끊어주는 편이 회복에 유리하다. 실제로 휴식의 길이 자체는 회복과 뚜렷한 관련이 없었고 자발적으로 자주 끊는 것이 더 중요했다.15 지속적 주의를 요하는 과제일수록 휴식의 가치는 커진다. ‘지칠 때 쉰다’가 아니라 ‘지치기 전에 쉰다’가 핵심이다.

둘째, 인지의 채널을 바꿔라. 앞서 살펴봤듯 회복의 관건은 휴식의 종류다. AI 산출물을 검토하다 잠시 멈췄다면 그 시간을 또 다른 읽기·화면 보기로 채우지 말고 몸을 쓰거나 시선을 멀리 두는 활동으로 전환하라. 소진된 인지 자원과 다른 채널을 열어야 회복이 일어난다.

셋째, 검토와 검토 ‘사이’에 의도적으로 쉼표를 넣어라. AI는 산출물을 끝없이 쏟아내므로 의식적으로 끊지 않으면 검토는 무한히 이어진다. 한 묶음의 검토를 마치면 다음 묶음으로 곧장 넘어가지 말고 짧은 단절을 둬 ‘심리적 분리(Psychological Detachment)’의 순간을 만들어라. 업무에서 잠시 마음을 떼는 이 경험은 회복의 핵심 기제로 알려져 있다.16

넷째, 하루의 리듬을 활용하라. 생체 리듬상 이른 오후에는 각성도가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식후 졸음이 몰려오는 이 구간에 가장 까다로운 AI 검토를 몰아넣기보다 짧은 회복 활동을 배치해 주의력을 재충전한 뒤 고난도 판단으로 넘어가는 편이 현명하다.

개인의 휴식 습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복은 결국 조직이 설계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끊임없이 켜져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개인에게만 ‘알아서 쉬라’고 하는 것은 책임의 전가에 가깝다. 실제로 미국과 한국을 대상으로 한 필자의 후속 연구에서 마이크로 브레이크가 피로 감소와 몰입으로 이어지는 효과는 구성원이 ‘쉬어도 괜찮다’는 조직의 건강 지원 분위기를 느낄 때에만 나타났다. 지지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구성원은 지쳐 있을수록 오히려 쉬지 못하고 버텼고, 그 사이를 매개한 것은 ‘쉴 수 있다’는 휴식의 자율성이었다.17 회복의 자율성은 분위기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시대, 일의 흐름을 설계하려는 리더에게 다음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AI 작업을 하루 일과의 특정 블록으로 묶어라(Batching). UC 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연구진이 제안한 해독제가 바로 이것이다. 끊임없이 AI와 비(非)AI 작업 사이를 오가는 대신 AI 검토·감독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일을 정해진 시간대에 몰아 처리하면 주의 전환 비용과 과부하를 함께 줄일 수 있다.

둘째, 명확한 AI 실천 규범을 마련하라. UC 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연구에서 관리자가 AI 도구 사용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제공했을 때 브레인 프라이는 감소했다.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이 검토할지, 검토의 깊이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모든 부담은 개인의 몫으로 떨어진다. 검토의 기준을 조직이 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인지 부하는 크게 줄어든다.

셋째, 측정 지표를 다시 보라. 토큰 소비량이나 생성된 코드 줄 수, 배포한 도구의 개수처럼 ‘활동’을 보상하는 지표는 정확히 브레인 프라이를 유발하는 방식의 사용을 부추긴다. 더 많이 돌릴수록 더 인정받는 구조라면 사람들은 더 많이 지칠 때까지 도구를 돌릴 것이다. 측정의 초점을 활동에서 ‘영향력(Impact)’으로 옮겨야 한다.

넷째, 회복의 시간을 보호하라. 에이전트는 24시간 돌아가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일과 후 사내 이메일 전송을 차단했던 폴크스바겐 사례처럼 조직은 ‘항상 켜져 있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구성원의 회복 시간을 명시적으로 지켜줄 필요가 있다. 회복의 자율성은 선언만으로 생기지 않으며 규범과 시스템으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다섯째, 리더가 먼저 멈춰라. 적게 자고 쉼 없이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과시하는 문화에서는 누구도 떳떳하게 쉴 수 없다. 리더가 회복을 일의 일부로 대하고 스스로 짧은 휴식을 실천할 때 구성원들도 비로소 죄책감 없이 인지의 열을 식힐 수 있다. 회복은 위에서부터 허락될 때 조직의 문화가 된다.

지속가능한 고성과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AI는 우리에게 전례 없는 속도를 선사했지만 그 속도를 감당할 인지적 자원은 여전히 유한하다. 운동선수가 0.1%의 기량을 위해 회복을 관리하듯 AI 시대의 일하는 사람과 조직에도 ‘의도적으로 멈추는 능력’은 사치가 아니라 핵심 역량이 된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흐름을 잠시 끊고 인지의 열을 식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AI가 아직 대신해줄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경쟁력일지 모른다.
  • 김수열

    서울대 경영학과 조교수

    필자는 미국 일리노이대 어배너-샴페인(UIUC)에서 인사관리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을 거쳐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조직행동과 인사관리를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직무 스트레스와 회복, 구성원 웰빙이며 특히 일터에서의 짧은 휴식과 회복 경험이 구성원의 활력과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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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이규열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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