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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생각하지 않는 조직의 결말

김현진 | 445호 (2026년 7월 Issue 2)
요즘 회의실에선 “잠깐만요, AI한테 물어볼게요”라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나옵니다. AI가 요약한 회의록을 읽고 문장을 다듬어 메일을 보냅니다. 기획의 첫 단추부터 함께 끼우다 보니 이제 AI는 단순한 참고 도구가 아니라 회의실 내 엄연한 ‘보이지 않는 참석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기묘한 풍경도 목격됩니다. 올해 초 미국에서 수십 개의 AI 코딩 에이전트를 협업시키는 오픈소스 플랫폼이 공개되자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쏟아지는 결과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되레 스트레스가 느껴졌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비슷한 시기, 대학 강의실에선 한 학생이 고작 400자짜리 강의 평가를 쓰려고 200자가 넘는 프롬프트를 쥐어짜고 있었습니다. 직접 쓰면 몇 분 걸리지 않을 글인데도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AI에 통째로 넘겨버리는 데 익숙해진 탓입니다.

한쪽은 AI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뇌가 과열되고, 다른 한쪽은 생각하는 귀찮음을 떠넘기며 사고의 근육을 잃어갑니다. 학계에서는 전자를 ‘브레인 프라이(Brain Fry)’, 후자를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은 바로 이 두 가지 딜레마 사이에 서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일찍이 “정보의 풍요는 주의력의 빈곤을 낳는다”고 경고했습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진짜 귀해지는 건 정보가 아니라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주의력입니다. AI가 결과물을 무한 복제해 내는 지금, 이 통찰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한국은 생성형 AI를 가파른 속도로 도입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빠른 속도’는 언제나 우리의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빠른 도입 자체가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AI를 쓰면서도 ‘얼마나 깊이 사유할 수 있는가’에서 갈립니다. 업무 현장에서 AI 의존증이 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지쳐갑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검증하고 감독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인지적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판단과 사유까지 AI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고민하고 부딪히며 성장할 기회는 사라집니다. 이제 기업의 고민은 AI를 ‘언제’ 도입할 것인가를 넘어 구성원의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의 단계로 이동해야 합니다.

결국 해답은 ‘조직의 설계’에 있습니다. 루틴한 업무는 AI에 맡기더라도 진짜 문제를 정의하고 맥락을 읽어 전략을 짜는 일은 인간이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AI가 1초 만에 답을 내주더라도 구성원들이 함께 토론하고 치열하게 고민할 ‘생각의 여백’을 남겨둬야 합니다. 평가 기준 역시 AI 사용량이나 작업 속도가 아닌 오롯이 ‘사고의 질’로 측정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인간다움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으며 거대한 악(惡)보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thoughtlessness)’를 경계했습니다. 기술이 우리 뇌의 기능을 대신하기 시작한 지금, 진정한 테크 리더십은 더 고도화된 AI 인프라를 갖추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AI를 도구로 지휘하되 끝까지 질문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배우는 ‘생각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습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AI가 일상이 된 시대, 눈앞의 생산성에 가려진 ‘조직의 사고력과 숙련도’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민하는 경영자들과 교육 담당자들의 우려 어린 목소리를 담아 기획됐습니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몸이 퇴화하듯 생각의 과정을 외주화하면 조직의 뇌도 멈춥니다. 무엇을 AI에 넘기고, 무엇을 끝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사수할 것인가. 그 결정적 경계를 설계하는 현명한 조직의 해법을 이번 호에서 함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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