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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 CTS

‘성장 가능한 실패’ 설계하다…
개발협력 혁신한 코이카 CTS 10년

지희수,이한규 | 432호 (2026년 1월 Issue 1)
베트남 경제에서 농업은 여전히 핵심 산업이다. 202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약 11.86%를 차지하며, 전체 고용 인구의 4분의 1이 농업에 종사한다. 문제는 생산량이 늘수록 환경 부담도 커진다는 점이다. 비료 사용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토양에 남은 질소가 산성화를 유발하고 수질 오염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친환경 비료 사용을 장려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작물 생장을 포기한 채 환경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 틈새에서 한 스타트업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작물은 잘 자라되, 토양에 잔류하지 않는 비료’라는 목표를 설정한 플랜트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기술 기반 개발협력 프로그램인 CTS의 지원을 받아 해법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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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코이카(KOICA)


베트남 농업 바꾸는
한국 스타트업 ‘플랜트너’의 도전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신정우 플랜트너 대표는 창업에 앞서 해외 봉사로 한 달가량 머물렀던 베트남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시장 조사를 진행하며 신 대표가 설정한 목표는 명확했다. 작물 생장에는 기여하면서도 토양에 잔류하지 않는 친환경 비료를 만드는 것이었다.

신 대표는 친환경 비료 개발 아이디어만 들고 CTS에 지원했고, 가능성을 인정받아 ‘Seed 1’ 과정에 선정됐다.

신 대표는 CTS 프로그램 참여 경험에 대해 “1년 동안 여러 지원을 받았지만, 결정적인 건 자금 지원이었다”고 말했다. 초기 스타트업은 수익 없이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기업이 자금 부족으로 사업을 중단한다. CTS는 Seed 1 단계에서 최대 4억 원, Seed 2 단계에서 최대 7억 원의 자금을 지원한다. 플랜트너 역시 CTS 지원을 통해 기술 개발과 사업 모델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플랜트너가 지원 기간 동안 가장 집중한 것은 PoC(Proof of Concept), 즉 현지 실증이었다. 비료는 국가별·지역별 토양 특성에 따라 성능이 크게 달라진다. 하나의 시제품을 완성하더라도 현지화 과정이 필수다. 베트남 현지에 약 100평 규모의 시험 농지를 조성한 뒤, 33평에는 농민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비료를, 다른 33평에는 베트남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비료를, 나머지 33평에는 플랜트너의 친환경 비료를 투입했다. 이후 매주 토양을 채취해 토양 상태를 분석하고, 작물 생장도를 비교했다. 수박·배추·두리안 등 베트남 주요 작물별로 생장을 최대화할 수 있는 비료를 개발하는 데 약 1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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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너는 친환경 유기질 비료를 개발 및 공급하고 있다. 출처 : 플랜트너

최근 플랜트너는 CTS Seed 2 단계에도 선정됐다. 기존에는 베트남의 ‘성(省)’ 단위로 시장을 제한해 실증을 진행했다면 이제는 메콩 델타 전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신 대표는 “수혜 농가 수가 이전보다 20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민첩함으로 ODA 한계 극복
코이카의 ‘CTS 프로그램’

CTS는 KOICA가 운영하는 혁신적 개발협력 프로그램(DIP)의 세부 사업 중 하나다. DIP는 공적개발원조(ODA)에 민간 기업의 기술과 사업 모델을 결합한 구조로 설계됐다. 정부 주도의 전통적 ODA가 문제 해결 자체에 집중해 왔다면, DIP는 민간 기업의 혁신성을 활용해 문제 해결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중 CTS는 주로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으나, 현장에서 이를 시험할 기회가 부족한 기업들이 주요 참여 대상이다. 초기 기업은 대기업이나 공공 주도의 방식보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고, 현지의 세부적인 문제에 맞춘 솔루션을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CTS는 단계별 지원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Seed 0 단계에서는 예비 창업자와 창업 스타트업이 ODA 기술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지원을 받는 단계다. 현지 조사 기회와 멘토링, 피칭 교육 등을 통해 예비 창업자가 필요한 기본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다. Seed 1 단계에서는 기술 개발과 소규모 현지 실증을 진행한다. 사업당 최대 4억 원의 지원금도 동반된다. Seed 2 단계는 기술개발을 마친 아이디어의 시범사업화 단계다. 넓은 범위의 시범 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검증하며 사업 당 최대 7억 원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TIPS 연계형 프로그램은 Seed 1과 2가 통합된 패스트 트랙으로, 현지 실증과 기술 사업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며 사업 당 최대 11억 원을 지원한다.

각 단계는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액셀러레이팅을 통해 기업이 사업을 실행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비즈니스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KOICA 관계자는 “CTS는 기술의 완성도를 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해당 기술과 모델이 현지 여건에서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구조”라며 “실증 과정에서 실패 가능성도 전제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간 ‘위플랫’
현장 통해 문제 새로 정의

위플랫은 Seed 0부터 Seed 2까지 CTS 전 단계를 밟은 기업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시범 사업 등을 진행했지만, 처음부터 개발협력 사업을 목표로 회사를 설립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물관리 현장에서 일해온 핵심 인력들은 구조적 한계를 체감해 왔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누수율은 체계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에 ‘지능형 누수 관리 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이미 개발한 상태에서 CTS에 참여했다. 그들은 기술이 개발협력 현장의 제도적·운영상 제약 속에서도 실제로 적용 가능한지, 나아가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 검증이 필요했다.

위플랫은 시장 조사부터 시작했다. 누수율이 높아지면 수도사업소의 재정은 악화되고, 이는 다시 시설 투자와 인력 교육 부족으로 이어진다. 결국 누수는 더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시민, 특히 물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이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인프라 노후와 예산·인력 부족으로 선진국형 해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려웠다.

Seed 2 단계 수행 과정에선 여러 인도네시아 도시를 직접 방문해 이야기를 들었다. 현지 상수도공기업(PDAM) 관계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누수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전문적인 누수 탐사 기준과 교육 체계가 부재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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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랫이 인도네시아에서 CTS Seed 2 사업 대상지자체의 상하수도공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 현장. 출처 : 위플랫

이에 위플랫은 누수 문제를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공공서비스 신뢰의 문제로 인식했다. 기본적인 운영 체계와 인프라의 부재가 더 큰 문제였다. 이에 문제 정의를 ‘누수 탐지 기술 부족’이 아니라 ‘누수 관리 산업과 운영 구조의 부재’로 재설정했고 사업화 방향성도 새롭게 잡았다. 위플랫 관계자는 “현지와 함께 실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며 “CTS가 제공한 사업 구조 덕분에 목표와 성과를 단계별로 점검할 수 있었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지 스스로 검증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위플랫은 직접 누수음 데이터를 함께 듣고, 탐사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고, 작은 성공 사례를 반복적으로 공유하는 등 PDAM 직원들과 신뢰를 쌓았다. 현재 현지 파트너, 수도사업소, 협회와의 관계 등을 바탕으로 누수저감 모델을 함께 설계하며 사업을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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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랫 지능형 누수 관리 시스템의 누수 점검 및 모니터링 과정. 출처 : 위플랫


10년간의 실험과 성과 통해
글로벌 난제 해결에 기여할 것

CTS는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문제를 더욱 세밀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필요성에서 출발해, 지난 10년간 예비 창업가와 스타트업을 개발협력 현장에 연결해 왔다. 지금까지 총 139개의 기업이 참여했다. 처음에는 참여 파트너 수가 10개에 불과했으나, 2025년 공모에서는 신규 파트너가 32곳으로 확대됐다. 서동성 코이카 기업협력사업팀 팀장은 “전체 프로그램 예산, 개별 사업 규모, 참여 파트너 수 등 모든 양적 기준에서 10년 전과 비교해 큰 폭의 성장을 이룩했으며, 향후 몇 년간 이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CTS가 단기적인 프로그램에서 글로벌 ODA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정상적으로 종료되지 못하거나, 종료됐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경우도 다수 있다. 그럼에도 장기적이고 다각화된 소통을 통해 최적의 합의점을 찾고, 참여자 모두가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다는 평가다. 코이카는 이런 경험들이 앞으로 CTS가 더욱 효과적인 사업 모델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코이카는 CTS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DIP 전담 조직을 강화하고, 해외사무소 및 유관 부서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했다. 각 부서 간의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프로그램 운영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목표다. 또한 정기적인 파트너 간담회와 성과 공유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등 유망한 기업들과의 협력과 성과 공유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서 팀장은 “CTS는 기술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개발협력 패러다임의 변화를 상징한다”며 “특히 초기 창업 기업들이 현지 문제 해결의 핵심 주체로 떠오르는 현상은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이카가 모든 기술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변화하는 기술과 다양한 의견과 수요를 빠르게 연결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랜트너와 위플랫 사례는 이런 접근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농업과 상수도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도 문제를 정의하고 현장에서 실증하며 사업화 가능성을 점검하는 과정은 유사하게 진행됐다. 기술은 일부일 뿐, 실증 가능한 구조가 핵심이다.

서 팀장은 “지난 10년은 다양한 시도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는 단계”라며 “앞으로 기업협력과 ODA의 목적성을 재확립하고, 안정적인 존립을 위해 프로그램을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업 지원과 ODA 관점의 균형을 이루는 성과관리 체계를 확립해, 궁극적으로 글로벌 난제 해결과 개발효과성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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