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로봇(robot)’이라는 단어는 체코어 ‘로보타(robota)’, 곧 ‘고된 노동’에서 비롯됐습니다. 1920년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을 통해 처음 세상에 나온 이 단어는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존재’를 가리켰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차페크가 상상했던 질문을 현실 속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로봇에 과연 어떤 노동을 기대하는가.
올해 4월 베이징의 한 공원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하프 마라톤을 50분26초에 완주했습니다. 인간 세계 기록보다 7분 가까이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휴머노이드들이 교대로 150시간 넘게 쉬지 않고 택배를 분류했고, 3세대 휴머노이드 ‘피규어 03’은 옷을 개고 식기를 정리하는 일상의 장면을 선보였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라는 헤드라인이 언론을 뒤덮었지만 엄밀히 보면 지금의 휴머노이드 산업은 본격적인 생산성 경쟁보다 기대 가치를 앞세운 쇼케이스 경쟁에 가깝습니다.
현재 기업들이 공개하는 시연의 상당수는 정해진 동작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따라쟁이 AI’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김상배 MIT 기계공학과 교수는 여기서 현실적인 돌파구를 제시합니다.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진짜 승자는 금을 캐러 간 광부가 아니라 작업복인 청바지를 팔았던 리바이스와 채굴 도구인 곡괭이와 삽을 판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로봇 산업에서도 휴머노이드 완제품보다 로봇 생태계에 부품과 도구를 공급하는 ‘곡괭이와 삽 비즈니스’가 훨씬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곡괭이와 삽’은 추론형 반도체, 센서, 액추에이터, 배터리, 시뮬레이션 플랫폼처럼 로봇의 움직임과 판단, 학습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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