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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Bestselling Author: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교수

자본주의 체제의 전제는, 끝없는 성장. 행복의 새 기준 못 만들면 심각한 위기 올 것

조진서 | 204호 (2016년 7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역사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과 산업혁명 등 3가지 주요 혁명을 거쳐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특히 과학과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데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힘이 컸다고 말한다. 지구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힘까지 얻게 된 지금, 인류 앞에 놓인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물질적 성장에 걸맞게 개개인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는가. 행복이란 것을 제대로 정의할 수조차 있는가.

2.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없이 경제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가.

3. 생명공학이 인류를 초월하는 신인류를 만들어줄 것인가.

 

 

2016 3, 구글이 만든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4 1로 제압하자 온 국민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됐다. 때맞춰 한국을 방문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 때문에 인간 수십억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며 생명공학으로 개조된 새로운 형태의 인류가 출현할 것이라 주장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등 유명인들과의 대담도 이뤄졌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은 격이다.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는 한국에서 상반기에만 18만 권이 팔렸고 지금도 여전히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랭킹에서 10위권을 오가고 있다.

 

 

 

 

 

하지만 <사피엔스>의 인기를 단순히 타이밍을 잘 맞춘 덕분으로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원래부터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2011년 이스라엘에서 출간된 이래 43개 언어로 번역됐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렸던 하라리의 강연에는 약 2700명이 모였고, 14만 명이 온라인 생중계를 시청했다.1 한국에서도 KAIST의 뇌공학자 김대식 교수를 비롯해 다수의 유명인들이 한국어판 출간 전부터 이 책을 추천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이 책이 다룬 수많은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알파고 열풍 때문에 오히려 책의 진가가 가려진 측면도 있다. 부제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인류의 간략한 역사)’가 말하듯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인공지능 시대까지 인류사를 총괄적으로 조망한다. 역사학뿐 아니라 생물학과 공학, 각종 사회과학의 지식이 재미나게 결합돼 있다. 그중엔국가는 실체 없는 픽션일 뿐이다등의 충격적인 해석도 있다.

 

 

하라리는 예루살렘의 헤브루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헤브루대 역사학 교수다. 전공은 중세사지만 관심 분야를 거시적인 역사로 넓혔다. 예를 들어인간의 생물학적인 특성이 역사의 흐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인간과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인류는 과거보다 더 행복해졌는가등의 주제를 연구한다.

 

 

지난 4월 한국 방문 당시 하라리는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질문 상당 부분이 알파고와 인공지능 이야기였다. 이번 DBR 인터뷰는 당시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 특히 그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과거와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인터뷰는 2차례 e메일로 진행됐다. 아직 책을 사지 않았거나 책을 샀더라도 책장에 꽂아만 두고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사피엔스>의 장별 내용을 요약 소개한 후 저자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장별 내용 요약

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우리는 아프리카 동쪽 지역에서 발생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종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일한 인류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동시대에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네안데르탈인이 번성했고 동아시아에는 호모 에렉투스라는 종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교접도 했다. 현재 인류의 DNA에는 사피엔스 외에도 이런 다른 인종의 DNA가 약간씩 섞여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으로 북상하며 다른 종들을 몰아냈다. 12000년 전에 지구의 유일한 인류로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지식의 나무

 

특별할 것이 없었던 사피엔스 종의 지구 정복은 약 7만 년 전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 덕분이다. DNA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픽션’, 즉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믿게 되는 성향을 갖게 됐다. 픽션을 믿게 되면서부터 대규모의 그룹으로 일하고 싸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른 인류나 동물의 경우 최대 100∼150명의 그룹을 형성하는 게 고작이지만2 픽션을 믿는 사피엔스는 수천, 수만, 혹은 수억 명이 동질감을 느끼는 그룹을 형성할 수 있다. 종교, 국가, 기업이 대표적인 픽션이다. 예를 들어 푸조라는 자동차 회사는 프랑스의 법률체계 안에서 존재하는 픽션이다. 푸조의 전 직원이 사고로 사망하고 모든 공장이 문을 닫는다 해도 프랑스 사람들이 푸조라는 픽션을 계속 믿어주는 한 새로운 직원을 뽑고 새로운 공장을 만들어 회사는 금세 다시 일어설 수 있다.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이 시절의 사피엔스는 떠돌아다니며 수렵, 채집을 하며 먹고 살았다. 동물과 식물, 버섯류를 골고루 섭취했으며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해도 충분했다. 수렵채집 시대의 유골을 분석해보면 이후 농업시대의 유골들보다 키도 크고 영양상태도 좋다. 농사를 짓지 않으니 흉작 걱정도 없고, 음식이 떨어지면 이동했다. 가축을 키우지 않으니 전염병도 없었다. 다만 부족의 이동에 방해가 되는 어린이와 노약자에게는 무자비했다. 건강한 동안에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즐겼다고 볼 수 있다.

 

 

 

4. 대홍수

 

사피엔스는 발을 내미는 곳마다 환경 대재앙을 불러왔다. 근현대뿐 아니라 원시시대에도 그랬다. 호주 대륙에는 과거 24종의 대형 동물이 살았지만 약 45000년 전 사피엔스가 도착하자 캥거루 빼고 다 죽었다. 북미와 남미대륙 역시 사피엔스가 건너간 지 2000여년 만에 대형 포유류 47종 가운데 34종이 사라졌다. 800여 년 전에는 마오리족이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도착해 토종 대형 동식물들을 대부분 멸종시켰다. 이제 지구엔 오직 사피엔스와 사피엔스가 키우는 가축들만이 번성하고 있다.

 

 

 

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2000년 전 농업혁명이 시작됐다. 수렵채집을 그만두고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치며 살게 됐다. 당장은 안정적인 식량원을 확보한 것 같았지만 생활수준은 오히려 나빠졌다.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흉작에 취약해졌고, 가축으로부터 전염병도 옮았다. 땅의 소유권과 잉여생산물을 놓고 벌어지는 폭력도 늘었다. 잉여 식량은 농부 본인의 생활환경을 개선시키는 데 사용되지 않고 엉뚱하게도 인구의 증가와 유한계급(有閑階級)의 출현을 가져왔다. , 농업혁명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족의 번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어떻게 보면 사피엔스가 쌀과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 쌀과 밀이 사피엔스를 이용해 지구를 정복했다고 볼 수 있다.

 

 

 

6. 피라미드 건설하기

 

농사 때문에 한곳에 모여 사는 인간 집단의 규모가 커지자 이들이 믿는 픽션의 스케일도 커졌다. 과거엔 수백 명 단위로 부족의 신이나 부족장을 섬겼다면 이젠 수만, 수백만 명이 따를 수 있는 종교와 국가지도자와 이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푸조라는 회사, 프랑스라는 국가, 천부인권이라는 사상, 유로화라는 화폐 등이 모두 이렇게 사피엔스의 집단 환상에 의해창작된 제도(imagined order)’. 이제 개인의 힘만으로는 이런 가상의 제도에서 탈출할 수도 없다. 만일 푸조의 CEO가 어느 날부터 푸조라는 픽션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정신병원에 갇힐 것이다. 그의 말이 옳다 해도.

 

 

 

7. 메모리 과부하

 

인간은 기억력의 한계를 넘기 위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글이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 인간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유로운 상상과 연상에서 점차 멀어졌다.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이제는 글이나 숫자로 표현하기 쉬운 방식으로만 생각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장 극단적인 예다. 인간이 프로그래밍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밍 언어에 맞게 인간 사고가 바뀌고 있다.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인종 차별, 남녀 불평등, 빈부격차 등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별 이유 없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흑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차별을 받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낮고, 그래서 그의 자식도 차별을 받는다.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또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유를 신체적 우위나 공격성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남성들 가운데서도 힘을 잘 쓰고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적 지위가 낮다. 이처럼 역사엔 별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역사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고 믿지 말라.

 

 

 

 

 

 

 

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농업혁명 이후 인간 집단이 믿는 신화와 픽션들은 좀 더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며 이른바문화가 됐다.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 문화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거대한메가문화들이 번성하고 있다. 화폐, 제국주의, 종교가 그것이다. 특히 화폐의 힘이 가장 강하다. 미국 문화를 증오하던 빈 라덴도 미국의 화폐인 달러만큼은 매우 좋아했다.

 

 

 

10. 돈의 향기

 

화폐, 돈은 교역과 부의 저장을 편리하게 해준다. 낯선 사람들끼리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내미는 돈은 신뢰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돈을 신뢰할수록 그 돈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신뢰가 돈을 만들고 돈이 신뢰를 만든다. 물론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의 경계는 상황에 따라 흔들리기도 한다.

 

 

 

11. 제국의 비전

 

대부분의 세계인은 제국인이다. 중국의 한()족 대부분은 사실 과거엔 소수민족이었다. 한족에 차차 점령당하고 완전히 동화돼서 이젠 스스로를 한족이라 부른다. 과거 로마제국도 그렇게 주변 민족을 로마인으로 동화시키며 확장했다. 근대 제국주의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비록 독립했을지언정 유럽식 사회제도와 사고방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구 전체가 제도와 사상을 공유하는 단일 글로벌 제국이 되고 있다. 글로벌 엘리트들과 사업가, 학자, 엔지니어들은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서로 뭉친다.

 

 

 

12. 종교의 법칙

 

인류 역사엔 유일신교나 다신교처럼 신을 믿는 종교도 있고 불교나 도교처럼 사람의 수양을 중시하는 종교도 있다. 이들의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한편 현대에는 사람을 숭배하는 종교, 즉 인본주의가 새로운 종교로 떠올랐다. 인본주의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자유적 인본주의는 개인의 인권을 숭배한다. 둘째,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인류의 공존을 중시한다. 마지막, 진화적 인본주의는 인간이 더 우수한 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화적 인본주의의 대표주자는 히틀러였다.

 

 

 

13. 성공의 비결

 

왜 어떤 국가와 어떤 종교는 번성하고 다른 것들은 소멸하는가. 이런 질문에 정답은 없다. 기독교가 번성한 건 우연일 수도 있고, 과학 혁명이 서구에서 시작된 것도 우연일 수 있다. 역사가 반드시 인류의 이익을 위해 발전하는 것만도 아니다.

 

 

 

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지난 500년간 인류의 모습은 엄청나게 변했다. 결국 지구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힘까지 갖게 됐다. 과학혁명 덕분이다. 예전에는 인간이 과거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갈구하지 않았다. 현재에 만족하며 살았다. 500여 년 전부터 이런 태도가 달라졌다. 인류 스스로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더 많은 것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문명이 진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과거의 지식인은 플라톤이나 공자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대의 지식인은 아인슈타인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자신의, 그리고 인류 전체의 무지(無智)를 인정한 것이 과학혁명의 시작이다.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서양의 과학정신과 제국주의는 함께 발전했다. 둘 다 지식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채우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같다. 15세기 이전의 세계지도를 보면 유럽인들이 모르는 곳도 상상해서 종이를 꽉 채우게 그려놓았지만 16세기 이후의 지도를 보면 자신들이 확실하게 아는 지역만 그려놓고 나머지는 공백으로 놓아둔다. 나중에 그 공백 지역을 탐험해서 정복하겠다는 의지다. 이런 정복욕이 학문에도 발휘되면서 과학혁명이 시작됐고 유럽이 동양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16. 자본주의 교리

 

유럽의 제국주의와 과학혁명은 자본주의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유럽의 세계 진출과 식민지 운영은 국가가 아니라 영국 동인도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같은 기업 차원에서 시작했다. 국가와 기업이 손을 잡고 아편전쟁 같은 일도 벌였다. 이런 자본주의의 핵심은 신용(credit)과 대출이다. 은행은 들어온 예금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해주고, 사업가는 대출받은 돈으로 사업을 일으켜 돈을 갚고 사업을 더 확장한다. 이런 선순환이 생기려면 새 사업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신뢰가 필수적이다. 즉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대출도, 신용도, 자본주의도 무너진다.

 

 

 

 

 

 

17. 산업의 바퀴

 

과학 덕분에 인류는 에너지와 자원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됐다.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됐다. 그래서 기업과 국가는 사람들이 필요한 이상으로 더 많이 구매하고 소비하도록 재촉한다. 과거에는 부유한 지배계층이 대부분의 소비를 했고, 피지배계층은 돈을 아끼며 살았다. 현대의 소비자주의(consumerism)는 이와는 정반대다. 지배계층은 주로 투자를 하고, 피지배계층이 주로 소비한다.

 

 

 

18. 끝없는 혁명

 

산업혁명과 함께 수많은 혁명이 이어졌다. 철도가 발명되고 철도시간표를 짜게 되자 인류는 시계를 통일하고 서로 시간약속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지역사회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국가와 시장의 힘이 커졌다. 소비자들은 소비활동에 따른 연대감을 느낀다. 동시에 지구상에는 폭력이 줄고 평화가 늘어났다. 20세기는 인구 대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였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문명의 발전과는 별개로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에는 별 발전이 없다. 진흙집에 살든, 펜트하우스에 살든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양은 세로토닌 등 두뇌의 호르몬 분비에 달려 있다. 이런 호르몬은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느낄 때 나오는데, 그 사회적 의미라는 것 자체가 환상인 경우가 많다. 인간의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한 것은 바로 불교다. 서양에서는 불교 사상의 핵심을외적인 성공이 아니라 내적인 행복을 추구하라로 잘못 이해해왔다. 불교의 진짜 가르침은내적인 감정 상태에도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지금까지의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자연의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 스스로 인간을 설계할 수 있는 생명공학의 시대가 열렸다. 7만 년 전의 인지혁명처럼 인간 뇌의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지능이나 다른 기능이 크게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듯 사피엔스는 새로운 슈퍼 휴먼의 세계를 미리 짐작해볼 수도 없다. 무엇이 됐든 그 존재는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사상, 종교, 성별과 같은 구분과 무관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새 인류의 출현과 함께 사피엔스의 종말은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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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업이라는 픽션, 돈이라는 픽션

 

 

 

당신은 사피엔스가 픽션을 믿는다는 점에서 다른 유인원들과 다르다고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픽션에는 종교, (화폐), 그리고 기업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이런 신화를 진심으로 믿는 것인가, 아니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믿는 척 하는 것인가. 예들 들어 어떨 때는 특정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바로 기업이라고 여기지만, 또 어떨 때는 기업은 실체가 없는 하나의 브랜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신화를 믿을 때와 믿지 않을 때를 편의에 맞게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닐까?

 

 

 

픽션과 현실의 경계가 아주 날카롭게 갈려 있지는 않다. 인간은 인지적 부조화의 상황이나 서로 충돌하는 두 논리를 함께 받아들이는 데 깜짝 놀랄 정도로 능하다. 또 자신의 믿음을 부분화시키는 데도 능하다. 예를 들어 병원에 가면 우리는 인간이 유전자와 호르몬의 조종을 받는 생물학적인 기계라고 믿는다. 그런데 병원을 나와서 법원에 들어가면 갑자기 우리의 믿음이 바뀐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많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믿는다. 그런데 그들은 동시에 신과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악마의 존재도 믿는다.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떨 때는 기업이 실체가 있는 존재라고 믿지만 어떨 때는 그것이 단순히 법적인 픽션(legal fiction)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냐에 달려 있다. 만일 당신이 구글의 실체에 대해 철학적인 토론을 벌이면 대부분의 토론 참가자들은 구글이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법적인 픽션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토론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 사람들은 법인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대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글 직원들은 자신들이구글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실 이런 태도는 국가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업처럼 국가도 법적인 픽션이다. 중국, 한국, 일본, 이스라엘은 모두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픽션 스토리다. 국가는 우리 인간의 집단적인 상상 속에,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속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픽션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심지어 국가를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죽을 각오도 돼 있다.

 

 

 

 

 

 

 

 

유발 하라리 교수

 

 

 

당신은 돈이 인간이 가진 가장 보편적인 픽션이라고 말했다. 빈 라덴도 미국 달러는 좋아한다는 예를 들기도 했다. 요즘 중국이 글로벌 슈퍼파워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경제가 미국만큼 커지면 위안화도 달러만큼의 신화적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달러가 가진 선발주자의 이점이나 다른 요인이 있을까?

 

 

 

어떤 화폐의 힘은 그것이 속한 경제의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화폐에 갖고 있는 신뢰의 양에 달려 있다. 금이나 은, 종이로 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신뢰로 돈을 만든다. 사실 깊게 생각하면 돈이 곧 신뢰다. 달러 지폐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달러 지폐의 가치는 사람들이 이 종잇장을 낯선 사람에게 전달했을 때 그 낯선 사람이 나에게 바나나나 쌀을 줄 것인지는 신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정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하려면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보다 커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인들이 중국 정부가 자국의 화폐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중국의 경제적 힘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다.

 

 

 

강력한 신화(myth)를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강력한 신화를 만들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내가 굿코인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화폐를 만든다 하자. 비트코인과 비슷하지만 좀 더 앞선 기술이라고 치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굿코인을 쓰게 하려면, 내 굿코인이 안정적인창작된 제도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강력한 신화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기관들이 그것의 존재를 믿을 때 생겨난다. 아주 멍청하고 말도 안 되는 신화라 하더라도 충분한 수의 사람이 믿어주기만 하면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사실 많은 종교적 신화의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기독교 성경은 의심할 만한 이야기들과 비과학적인 오류들로 가득 차 있지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그것을 믿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법정에서는 증인이 성경 위에 손을 올려놓고 진실을 말하겠다고 맹세한다. 픽션과 신화와 오류들로 가득한 책 위에 손을 올려놓고 진실을 말하겠다고 선서하는 모습은 참 믿기 어렵지 않은가!

 

 

 

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화폐는 객관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 금화나 종이지폐나 디지털 비트코인을 먹거나 마실 수는 없다. 하지만 한계치 이상의 사람들과 기관들이 특정 화폐를 신뢰하고 사용하게 되면 (그것이 달러든, 비트코인이든)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 화폐의 가치를 유지시키려 한다. 당신이 말한 가상의 굿코인이 그런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강력한 기관(정부, 대기업, 심지어 범죄 카르텔)이 그것을 도입하고 지원하게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화폐가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환상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요즘 비트코인의 가치는 상당 부분 범죄조직들의 열정적인 지원에서 비롯된다. 내가 비트코인으로 대금 지급을 받을 의지가 있는 이유는 1년 후에도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7년에도 범죄조직들이 비트코인에 갖고 있는 기득권 때문에 그 가치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디지털 화폐가 반드시 나쁘다거나 범죄에 연관돼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나 구글, 아마존처럼 완벽하게 합법적인 기관도 디지털 화폐를 도입할 수 있다. 아마존이 아마코인이라는 전자지폐를 발행하고 아마존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에서 아마코인을 법적인 통화(legal tender)로 받아준다면 곧 아주 성공적이고 인정받는 디지털 화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화폐의 가치는 아마존이라는 회사의 건전함과 안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영화스타트랙에서 그리는 미래처럼 화폐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나. 만일 화폐도 없고, 물리적 폭력도 없다면 인간이 노동력을 모으거나 자원을 배분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돈 없이 성공한 사회는 구성원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아주 작은 사회들뿐이다. 예를 들어 오래전 수렵채집 부족들은 화폐가 없어도 아주 잘 살았다. 부족원들이 개인적으로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150명 이상과는 개인적으로 친해지기 어렵다. 그러니 그 이상의 큰 사회는 낯선 사람들끼리도 신뢰를 형성할 수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이 된다. 돈은 인간이 만든 가장 효율적인 상호 신뢰 시스템이다. 아마도 미래에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이 인간들을 아주 잘 파악하게 돼 돈 없이도 낯선 사람들 간에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우린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이 돈의 필요성을 줄여준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그런 일이 가능할까. 자원을 경제 안에서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배분하는 데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 공산주의자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을 말하는 건가.

 

 

 

자원을공정하게분배한다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빅데이터 알고리즘이 충분히 효율화되면 그것이 인간들을 대신해 경제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려줄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 간의 화폐 거래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물론 어떻게 돈 이외의 방법으로 사람들 간의 신뢰를 구축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돈보다 훨씬 좋은 방법을 갖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돈은 낯선 사람과 신뢰를 쌓는 데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당신의 가게에 손님이 들어온다. 당신은 그 손님을 만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지만 그 손님이 들고 있는 달러 지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또 신뢰하고 있다. 반대로 당신이 당신의 딸이나 당신의 어머니와 거래를 할 때는 달러 지폐를 쓸 필요가 없다. 만일 어떤 알고리즘이 자기가 아주 잘 아는 다른 어떤 알고리즘과 거래를 하려고 한다면 돈이 없이도 그들 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어머니가 신뢰를 쌓는 데 돈이 필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에서 당신은 현대인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 특정 상품이나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된 습관인가. 과거 수렵채집 사회에서 딸기를 유독 좋아하는 한 인간이 있었다면 딸기를 좋아하는 다른 부족 사람을 만났을 때 아이폰 사용자들끼리 느끼는 것 같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소비라는 행위는 인류의 역사와 시작을 같이하지만 소비자 부족(consumer tribe)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현상이다. 수렵채집사회의 인간은 소비성향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지 않았다. 내가 블랙코브라 부족에 속하는지, 아니면 마운틴 라이언 부족에 속하는지가 내가 딸기를 좋아하는지보다 훨씬 중요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간은 점점 더 소비형태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채식주의자인지, 환경주의자인지, 저스틴 비버의 팬인지 등은 자신이 무얼 사고, 무얼 사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석기시대에 비해 물리적 환경이나 이웃, 가족에게 약하게 연결돼 있다. 수렵채집사회의 인간이 소비했던 물건과 서비스의 99%는 자신 스스로에게서, 혹은 부족 안에서 나왔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개인이 소비하는 물건과 서비스의 99%가 시장에서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구매인가, 아니면사용인가? 누군가 저스틴 비버의 티셔츠나 구찌 가방을 직접 사지 않고 남에게 선물로 받았다고 할 때도 그 소비자 부족의 일원이 됐다 생각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돈을 낸다는 행위가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것인가.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선물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도움이 경제 시스템 내에서, 사회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이웃이 집을 짓는 걸 도와주거나 밭에서 수확하는 걸 도와주곤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선물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작다. 내 집을 짓는 데 이웃이 와서 도와주거나 내가 회사 일을 하는 데 이웃이 찾아와 도와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것에 대가가 따른다. 그러니 소비자 부족에게는 돈을 내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미래

 

 

 

책에서 당신은 두 가지의 함정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농업혁명의 함정이고,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함정이다. 농업혁명은 농부들에게 단기적인 혜택은 줬지만 장기적으론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져서 좀 더 좋은 사회적, 경제적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농업혁명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계기가 과학과 산업혁명이라면, 자본주의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또 다른 과학 혹은 산업혁명일까, 아니면 피를 동반한 정치적 혁명일까. 혹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2단계로 진화해서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좀 더 만족스럽고 좀 더 잘 사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더 좋은 세상이 무언지 정의하기 전까지는 이 모든 논의는 무의미한 것인가.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경제는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행복감을 얻기 위한 방법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무언가 더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가 끝도 없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 건설됐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도록 부추긴다. 자본주의적 행복의 핵심은 삶의 질이 아니다. 삶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상황이 객관적으로 좋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계속 개선돼야만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브라질이나 한국의 경험처럼 경제가 성장하고 있을 때는 문제가 없다. 이 시기 브라질인과 한국인들의 삶의 만족도는 실제로 GDP 성장 곡선과 함께 상승했다. 하지만 1920년대와 1930년대 초기 유럽의 상황처럼 경제가 정체되면 고통이 초래된다.

 

1930년의 독일인들은 조상들에 비해 질병이나 굶주림, 살인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 1930년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보다도 잘살았다. 베를린이나 함부르크의 노동자 계층은 일제 치하 서울이나 영국 치하의 캘커타에 사는 사람들보다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1930년대 독일인들은 행복해 하지 않았다. 분노 때문에 히틀러에게 표를 던졌다. 항상 삶이 개선되리라는 희망을 갖도록 양육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 영국, 한국과 같은 나라는 예전 시대보다 훨씬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굶주려 죽을 가능성보다 비만으로 죽을 가능성이 더 높고, 전염병으로 죽을 가능성보다 늙어서 죽을 가능성이 높고, 군인이나 범죄자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보다 자살로 삶을 마감할 가능성이 더 높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알카에다의 공격에 의해 죽을 가능성보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죽을 가능성이 1000배 정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불만족스럽다고 느낀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거나 영국이 EU에서 떠나야 한다고 투표한다. ?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생활수준이 끊임없이 향상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적 행복의아킬레스 힐이다. 만일 30억 명의 중국인, 인도인, 아프리카인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미국인들만큼의 생활수준을 누려야 한다면 지구가 몇 개쯤은 더 필요할 것이다. 행복에 대한 대안적인 패러다임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는 환경적 재앙을 직면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구체제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나라들이 미래의 발전을 위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도 말한다. 중국이나 심지어 북한처럼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나라들이 미국이나 한국보다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을 받아들이기에 좋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무인자동차 시스템은 북한이 한국보다 더 빨리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북한엔 어차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도 여기 동의하는가? 아니면, 북한 같은 나라도 자본주의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가 일단 먼저 뿌리내리고 난 다음에야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인지.

 

 

 

후진성에도 분명 이점이 있다. 새로운 혁명을 가로막는 기득권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현재 스마트폰 뱅킹이나 스마트폰 헬스케어 같은 새로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시골 지역엔 은행도, 병원도 거의 없다. 그래서 스마트폰 금융거래나 스마트폰 헬스케어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의지가 높고 거기 저항하는 세력도 거의 없다. 반면 미국에서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기존 의료산업 세력이 새로운 스마트폰 헬스케어 서비스들의 도입을 막고 있다.

 

 

 

하지만 후진성에도 분명한 단점이 있고, 그 후진성 자체가 좀 더 경직된 구체제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은 분명 스마트폰 뱅킹에 저항할 기득권 은행산업이 없다. 하지만 부패한 북한의 엘리트 그룹은 경제의 목줄을 조이고 있으며 법 체계를 존중하지도 않고 다른 정치세력을 용인하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스마트폰 뱅킹의 허브가 될 가능성은 낮다. 잘해봐야 전 세계 범죄자들과 테러집단들이 사용할다크넷은행 허브가 될 뿐이다.

 

 

 

심지어 범죄조직들도 신뢰를 필요로 한다. 내가 만일 멕시코의 마약왕이라고 하자. 내 돈을 스위스 은행에 넣을지, 북한의 다크넷 구좌에 넣을지 골라야 한다면 아마도 스위스를 택할 것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그의 동료들이 갖고 있는 비즈니스 감각이나 성실성보다 스위스 은행가들이 갖고 있는 비즈니스 감각과 프로페셔널리즘을 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신용(credit)’은 오늘의 파이(경제규모)와 내일의 파이의 크기 차이라고 말했다. 즉 경제의 파이가 커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신용이 생기고 대출이 이뤄진다는 말이었다. 최근 글로벌 경제의 성장률은 역사적인 평균보다는 높지만 계속 떨어지고 있다. 당신 말대로라면 인구가 줄어드는 선진국 경제의 성장률이 0으로 떨어지면 투자와 생산의 선순환 관계가 깨져서 사업가들에게 자본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다. 정말로 이런 어두운 미래가 올 가능성이 있는가.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경제 시스템뿐 아니라 정치 시스템도 무너질 것이다. 현대의 정치 역시 끊임없는 성장이라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터키든 세상의 모든 나라가 성장에 목을 매고 있다. 정치인들이 하는 약속을 지키려면 경제 성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나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서라면 전 세계 정부들과 기업들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현재의 기술을 가지고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경제 성장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경제적 재앙이냐, 환경적 재앙이냐를 골라야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경제 성장을 멈추는 것은 정치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어떤 정부도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수십 년 안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고, 인류가 그걸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구온난화 없이 경제도 계속 성장하게 할 수 있는 기적적인 과학기술을 발견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후변화와 자원 부족, 땅 부족, 환경적 재앙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매일 쓰는 종이컵 사용을 줄이는 것일까? 인구조절을 위해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캐나다나 러시아처럼 기후변화에서 안전하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이주하는 것일까?

 

 

 

개인들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는 분명 해결책을 낼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인류는 핵무기의 위협을 적절히 대처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사람들은 대규모 핵전쟁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의 시간문제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류는 국제사회 시스템을 바꿔서 핵전쟁이라는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현재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을 변화시켜서 기후변화의 재앙을 피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환경적 재앙이 닥치게 된다면 개인들의 운명은 대부분 얼마나 부유한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가 완전히 물에 잠기고 수단 같은 나라가 메마른 사막이 되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땡전 한 푼 없는 난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스위스 알프스 지역의 빌라 같은 곳으로 이사 가면 그만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주식회사제도, 유한책임제도, 증권거래소 등은 대중으로부터 큰 자본을 모아서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하기보다는 비상장회사로 남아 있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굳이 대중에게 주식을 팔아서 돈을 모으지 않아도 은행 대출이나 각종 펀드의 투자를 받기가 쉬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요즘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상장보다는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선호한다. 이런 추세를 볼 때 생산에 있어서 자본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만큼 자본이 풍족해진 사회가 됐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 기업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만 이제는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그 자본이 나온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점점 더 자본이 소수의 손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위험한 현상이다. 거기서 나오는 수익 역시 소수의 손에 집중되기 때문에 불평등은 심화된다. 이미 전 세계 최고 부자 60명의 부는 인류의 절반(35억 명)의 부를 능가한다.

 

 

기술의 발달은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수백만 명의 택시기사, 버스기사, 트럭기사는 교통시장 안에서 각자 약간씩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집단적으로는 상당한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자동주행 자동차가 인간 운전사들을 대체하게 되면 전체 교통 시장은 억만장자 몇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산업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면 다른 새로운 산업에서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과거보다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미디어 업계만 봐도 새로 생겨난 온라인 매체를 포함하면 30년 전보다 고용인구가 더 늘어났다. 미래에는 다르리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물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도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 새로운 일자리에서도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기술을 갖고 있다. 물리적인 기술과 인지적인 기술이다. 과거에는 물리적인 영역에서만 기계가 사람을 능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인지적 기술을 사용하는 직업 쪽으로 이동해왔다. 이제 인지적 기술 영역에서도 기계가 사람을 능가하기 시작한다면 사람이 여전히 쓸모 있게 여겨질 수 있는 제3의 기술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슈퍼 휴먼의 탄생과 사피엔스의 종말

 

 

 

<사피엔스>에서 당신은 인간이 앞으로 더 많은 자원을 이용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며 생물학적인 한계도 깰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오직 정치적, 윤리적 장애물만이 남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방해요소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이다. 새로운 자원을 이용하는 법을 발견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이 고갈될 수 있지 않은가. 또 인간의 뇌 용량에 한계도 있을 수 있다. 100년 전의 박사과정 학생보다 오늘날의 박사과정 학생이 머리에 담아야 하는 지식의 양이 훨씬 많다. 어쩌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신이 되기엔 너무 작을 수도 있다. 수백만 년이 지난다 해서 개미가 고양이로 진화하지는 않지 않는가.

 

 

 

실제로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에 거의 이르렀다. 이 한계를 깨고 인간을 업그레이드시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인간이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다. 미래의 인간은 현재 신의 영역이라 생각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생물체를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창조하거나, 가상현실에 직접 정신적으로 접속하거나, 수명을 극단적으로 늘리거나,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하는 등이다.

 

 

 

역사상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지만 단 하나만은 그대로였다. 인간 그 자체다. 현대인은 과거 중국의 한나라 시대 사람들이나 석기시대 사람들과 똑같은 신체와 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역사상 최초로 인간 자체가 급진적인 혁명을 겪게 될 것이다. 인간 사회와 경제뿐 아니라 신체와 정신이 유전공학과 나노공학,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21세기 경제의 주요 생산물은 신체와 정신이 될 것이다.

 

 

 

흔히 미래를 상상해보라 하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진보된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그린다. 레이저 총이나 똑똑한 로봇, 광속으로 여행하는 우주선 등이다. 하지만 미래 기술의 혁명적인 잠재력은 우주선이나 무기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호모 사피엔스 그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미래에 있어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우주선이 아니라 우주선을 몰게 될 존재다. 만일 인간이 좀 더 우월한 존재로 진화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한 종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이 우리를 같은 종족으로 대접해 줄까?

 

 

 

강연과 인터뷰를 많이 할 텐데 기업인들에게 어떤 질문을 많이 받는지, 또 어떤 조언을 해주는지 궁금하다.

 

 

 

딱히 기업인에게 해줄 조언은 없다.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돈을 버는 법을 진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혼자서 계속 돈을 잘 버는 쪽을 택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돈을 버는 것보다 지식을 얻는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돈보다 지식이 많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같은 슬로건을 들고 나오는 정치인들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이 드는가.

 

 

 

경제를 이해하는 것은 돈 버는 법을 아는 것과는 별개다. 누군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고 해도 사업에서는 평범한 수준에 그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업에 필요한 협상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세금 체계를 악용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양심을 가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경제를 잘 알아야 하지만 사업에 뛰어날 필요는 없다. 정치와 비즈니스는 필요한 스킬들이 다르다.

 

 

 

서양과 동양에서 강연을 할 때 청중의 반응에 차이가 있나.

 

 

 

별로 없다. 글로벌 세상이다 보니 서양이나 동양이나 청중의 관심사항과 질문은 비슷하다. 이젠 지구상에 독립적인 나라가 없다. 모든 나라가 글로벌 경제와 글로벌 정치, 글로벌 환경에 의존한다. 우리가 가진 주요 문제들 역시 글로벌 스케일이다.

 

 

구온난화가 심각한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면? 인공지능이 직업 시장에서 인간을 대체해서 대부분의 인간이 경제적으로 쓸모없어 진다면?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을 슈퍼 휴먼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질문들은 어떤 국가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풀 수 없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글로벌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정으로 글로벌한 시각을 가져야만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극복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현대사회의 두 기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의 책 <사피엔스>는 유독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적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과학과 산업혁명은 주요 주제로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픽션에 불과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가?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명된 것이고 세상에 가져온 임팩트도 아주 적기 때문이다. 20세기 동안 민주주의는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지배적인 정치 시스템이 됐지만 이제는 그 힘을 잃고 있다. 21세기에도 민주주의가 계속 지배적인 시스템으로 남을지는 의심스럽다.그래서 세계의 정치, 경제적 역사를 다룰 때 나는 제국이나 자본주의 시장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춘다.

 

 

 

조진서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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