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ACRJ Case Study

재밌게 스시 먹기, 지루한 러시아를 휘젓다

안드레이 파니브라토프 | 127호 (2013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아시안케이스리서치저널(ACRJ)>의 케이스스터디 ‘Russian Restaurant with Japanese Cuisine Makes Foreign markets’ Selection: The Case of Two Sticks’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진선(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00년대 초, 러시아에는 일본 열풍이 불었다. 일식당은 비 온 뒤에 버섯 자라듯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고 일본 영화도 인기를 끌었다.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개업한 일식당 드베 팔로치키(Dve Palochki, ‘두 개의 막대기(젓가락)’이라는 뜻)도 이런 일본 열풍의 결과물이었다.

 

이 회사는 가벼운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 체인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08년까지 도시 관광 중심가와 상업/주거 지역에 20곳의 드베 팔로치키가 문을 열었다. 매일 4000명이 넘는 손님들이 이 체인을 찾았고 일인당 평균 450루블( 16000)을 지불했다. 모든 지점은 휴일 없이 24시간 영업했다.

 

드베 팔로치키는 일본 요리를 판매했지만 일본 레스토랑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 고객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른 일식집들과는 달랐다. 독특한 매장 분위기와 독창적인 광고 캠페인을 조합한 자신들만의 마케팅 전략을 확립했다. 2008, 이 회사는 5년 안에 러시아 내 주요 도시들에 300개가 넘는 새 지점을 열고 해외에도 진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드베 팔로치키의 마케팅 담당자인 야코프 팍(Yakov Pak)은 지점을 확장하면서도 서비스 품질은 동일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해외 진출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창업

2002년 말, 레스토랑 사업가인 예브게니 카돔스키(Yevgeny Kadomsky)와 미하일 테벨레프(Mikhail Tevelev)는 독특한 분위기의 일식집을 열기로 했다. 그들의 의도는 전통적인 일식당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계획 단계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매장 내부에 탁 트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일식집과의 공통점이라고는 메뉴 정도였다. 매장 내부를 넓게 열어두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음식은 단지 대화를 더욱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기 위한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었다. (그림 1)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드베 팔로치키의 독특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쌍둥이 화장실이다. 이는 레스토랑 화장실에는 변기가 최소한 두 개는 있어야 한다는 정부 규정에 대한 즉흥적인 해결책이었다. 창업자들은 공간이 좁아 한 칸밖에는 들어가지 않을 화장실에 두 개의 변기를 어떻게 놓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한 칸 안에 두 개의 변기를 설치했다. 이론적으로는 두 사람이 한 칸의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같이 일을 보거나다른 어떤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이는재미’와자유로운 해석이라는 이 레스토랑의 콘셉트에 맞춘 것이었다 (이후 생긴 다른 체인점에도 이 같은 쌍둥이 화장실이 상징적으로 하나씩 만들어졌다).

 

드베 팔로치키 본점은 2003년 중반에 문을 열었다. 바로 그날 밤부터 고객들로 가득 찼다. 회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새로운 지점들을 개업하며 성공을 이어나갔다.

 

드베 팔로치키는 창업자들의 첫 번째 사업은 아니었다. 그들은 트렌디한 카페, 클래식 레스토랑, 클럽, 패스트푸드 레스토랑과 같은 다양한 형식의 가게들을 실험해왔다. 그들은 드베 팔로치키의 성공에 힘입어 다른 사업을 접고 여기에만 완전히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의 월 평균 방문자는 15만 명이었고 총매출은 3000만 달러( 330억 원)에 달했다.

 

시장 상황

2000년대 중반, 러시아의 레스토랑 산업은 연평균 20%에서 30%가량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대도시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임대료가 너무 높아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각 도시의 오래된 중심가(다운타운) 지역은 임대료도 높았고 기존 식당들과의 경쟁도 치열했다. 따라서 새로 생기는 체인들은 새로 생긴 상업지구(업타운) 쪽으로 지점을 확대하는 편을 택했다. 쇼핑센터의 푸드코트들이 수익을 많이 내는 지역이었다.

 

수도인 모스크바에 처음 일식당이 생긴 것은 1990년대 초였고 본격적인 일식당 붐은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엔 약 300곳의 일식당과 스시바가 모스크바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약 100곳의 일식당이 있었다. 2009년에는 그 수가 3배가량 증가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대략 300, 모스크바에는 1000곳의 일식당이 손님을 맞았다. 이들은 연간 약 2억 달러( 2200억 원)에 이르는 시장을 형성했다.

 

스시바는 러시아의 패스트푸드 산업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 중 하나였다. 가게를 여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업에 7만 달러( 7800만 원)가 들어가 커피숍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일반적으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서는 총 50㎡에서 200( 15∼60)의 공간이 필요했고 평균 투자 비용은 ㎡당 900달러에서 1500달러( 100∼160만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스시바의 초기 투자액은 적은 편이었다.

 

이렇게 적은 초기 투자액은 일본 요리의 특성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일식집은 미니멀리즘과 금욕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인테리어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또 일본인 조리사는 개점 초기에만 고용했다. 러시아인 조리사들에게 약 한 달간 스시 만드는 법만 가르쳐주면 됐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스시 요리사는 오직 고급 일식당에서만 필요했다. 각각의 요리를 조리하는 데는 평균 10분이 소요됐고 요리의 가격은 비용의 2배 정도로 책정됐다. 일식의 인기는 대단했다. 평균적으로 스시바 한 곳에서 하루에 250㎏가량의 생선과 쌀을 소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식당은 3가지의 카테고리로 분류됐다. ‘키도’ ‘와사비’ ‘긴노타키와 같은 고급 레스토랑과플라네타 스시’ ‘드베 팔로치키같은 중간 가격대의 식당, 마지막으로유라시아’ ‘야포샤와 같은 저가 레스토랑이었다. 드베 팔로치키의 매니저 야코프 팍은러시아인들은 스시바와 일식당 사이의 차이를 잘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음식의 질이 차별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독창성이었다. 모든 식당의 음식과 서비스의 질이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러시아인들은 미국인이나 유럽인처럼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다. 그들은 질보다는 가격을 기준으로 식당을 선택하곤 했다.

 

드베 팔로치키의 마케팅 전략

메뉴의 가격대는 중간 수준이었지만 드베 팔로치키는 스스로를 고급 레스토랑으로 포지셔닝하고 쇼핑몰의 푸드코트에는 입점하지 않았다.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매출의 60% 이상은 단골 고객들에서 나왔다. 다른 식당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빙을 담당한 종업원들과 매장의 분위기였다. 회사는 직원들끼리 서로 강한 유대관계를 갖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도록 했다. 채용 절차에는 지원자들의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인터뷰와 테스트 같은 많은 절차들이 포함됐다.

 

광고 역시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했다. 새로 개업하는 드베 팔로치키 지점을 알리는 옥외광고는 휴대폰 문자메시지처럼 채워졌다. 그중 대부분은 운전자들을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여기서 드베 팔로치키까지 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당신은 여기서 중립기어를 놔도 드베 팔로치키에 미끄러지듯 도착할 수 있다와 같은 문장들이었다.

 

옥외광고와 더불어 드베 팔로치키의 독창적인 마케팅 아이디어 중에는 인접한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붙이는 작은 광고 전단도 있었다. 포스터에는 각 층의 입주업체들이 소개돼 있어 엘리베이터 이용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니폼 역시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마케팅팀은 통합된 드베 팔로치키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되 무미건조하고 천편일률적인 것은 지양하는 유니폼을 만들고자 했다. 동일한 유니폼이지만 종업원의 개성이 묻어나야 했다. 이를 위해 각 종업원이 셔츠 뒷면에 자기만의 문구를 쓰도록 했다. 고객이 주문을 하면 종업원은 등을 돌려 자신이 만든 슬로건을 보여주었다.

 

야코프 팍은 개개인의 슬로건이 힘들게 일하는 종업원 스스로에게 동기부여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게임적인 요소들을 도입해 구성원들의 사기를 자연스럽게 올리고 싶었습니다. 종업원들이걸리지만 않으면 마약도 상관없다’ ‘탈영병’ ‘모든 사람은 다르다와 같은 재미난 슬로건을 유니폼에 쓸 수 있게 해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고객과 종업원의 의사소통에 감정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고객 앞에 서있는 사람은 단지 종업원이 아니라 하나의 개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종업원들은 개인 슬로건뿐 아니라 유니폼의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2008 5, 회사는이주자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설문지에 응답한 고객들 중 추첨을 통해 스칸디나비아로 철새를 관찰하는 여행을 보내주는 프로모션이었다. 이는 드베 팔로치키의 이미지를 홍보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드베 팔로치키의 슬로건이전통을 넘어, 거리를 넘어였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인기를 끌자 드베 팔로치키는 아예하늘을 난다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회사를 리브랜딩했다. 젓가락을 상징하던 두 개의 막대기를 슬쩍 겹쳐놓아 마치 새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림2) 옥외광고에는 날고 있는 사람이 묘사된 그래픽이 들어갔다. 웹사이트의 배너, 라디오 광고,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와 같은 잡지에 실리는 스폰서 기사 등 여러 광고가 이 캠페인을 지원했다. 2008 10, ‘이주자프로젝트의 기자회견에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드베 팔로치키는 또한 공공 행사에도 참여했다. 2008, 상트페테르부르크의 ‘300주년 기념 공원에 드베 팔로치키 거리가 만들어졌다. 새로 체인점이 문을 열 때마다 드베 팔로치키는 이곳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수도 모스크바로 진출하다

드베 팔로치키는야포샤에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문을 연 두 번째 일본 요리 체인이었다. 이제 이 회사는 모스크바 진출을 노렸다. 본사는 모스크바 시장 진출이 (러시아의 방대한 국토 안에서) 지역적 확장을 하기 위한 테스트라고 생각했다. 모스크바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다른 도시로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확장할 생각이었다. 본사에는 회사의 존재감이 해마다 두 배가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회사 이름부터가두 개의 막대기였다. 실제로 2009년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 체인 수가 12개에서 25개로 늘어났다.

 

사실 모스크바는 이미 경쟁이 치열한 도시였다.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스시와 롤을 제공하고 있었고 심지어 일식집도 아닌 곳에서도 스시를 팔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임대료도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50%가량 높았다. 다행히 음식의 평균 가격 또한 두 배 이상이었다.

 

2년 동안에 10여 곳의 체인을 연다는 계획으로 회사는 모스크바 시장의 여러 제약조건들을 꼼꼼하게 조사했다. 높은 임대료도 문제였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회사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받지 않고 모스크바에서도 직영으로 체인을 운영하기로 했다. 자칫하다 이미 자리를 잡은 회사의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새롭게 모스크바에 개업한 두 지점에 각각 100만 달러( 11억 원)가 투자됐다. 각각 250석이 들어가는 넓은 공간이었다. 인테리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체인들의 단순하고 간결한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고 종업원들은 셔츠에 개인 슬로건을 붙였다. 몇몇 새로운 요소들도 덧붙여졌다. 한 체인점은 천장에 비행기 모형을 달아 두고 실시간으로 비행기의 이륙과 착륙 시간을 표시하는 큰 패널 또한 가지고 있었다. 대형 스크린에 전통적인 일식당 특유의 헤엄치는 물고기 영상 대신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이 보여졌다.

 

해외 확장 계획

2008년 무렵 드베 팔로치키는 자신들의 사업 모델이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대도시 시장에 잘 먹힌다는 것을 깨달았다. 러시아 국내에는 그러한 도시들이 10개 정도 있었다. 본사는 예카테린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에 두 지점을 열며 첫발을 내딛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주변 국가들 또한 면밀히 조사했다. 첫 해외 진출 예정지로 우크라이나의 키예프가 고려됐다. 세 곳에 지점을 동시에 열기 위한 투자 계획이 세워졌다. 동시에 스웨덴으로의 확장 또한 계획했다. 경영진은 스톡홀름을 방문해 현지 사업가들과 여러 번의 미팅을 진행했고 채용과 법무를 맡을 대행사들도 접촉했다.

 

하지만 꼼꼼한 조사 결과, 드베 팔로치키는 두 나라 모두 진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선 우크라이나는해외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스웨덴의 경우 높은 투자 비용과 일본 요리에 대한 대중의 낮은 관심이 문제였다.

 

하지만 해외진출이라는 아이디어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대신 우선 순위를 다시 짜는 작업에 들어갔다. 서유럽과 중국이 새로운 타깃으로 정해졌다.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첫 목적지는 런던이었다. 스시에 대한 영국인들의 수요는 점차 늘고 있었다. 2000년대 말 런던에는 300곳이 넘는 일식당이 있었고 영국의 일본 요리 시장은 연간 5억 파운드( 8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드베 팔로치키는 영국에서 아시안 음식을 파는 중가 레스토랑 시장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할 것이라 예측했다. 런던에서 일반 식당과 고급 식당, 그리고 비교적 저렴한 식당 간의 비율은 러시아와 비슷했다. 이들은 중가 세그먼트를 노렸다. 또 런던에 아시아 식당이 많지만 일본 요리만 파는 식당은 1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고무적이었다.

 

런던에서의 도약을 위한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야코프 팍은 이렇게 말했다. “정성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런던사람들이 드베 팔로치키 브랜드를 어떻게 보는지, 또 어떻게 브랜드를 드러낼 수 있는지, 러시아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어떤지를 연구할 것입니다.”

 

우선 러시아식 이름인 드베 팔로치키(Dve Palochki)를 영국에서는 투 스틱스(Two Sticks)로 바꾸는 등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야코프 팍은 회사가 러시아에서 내세웠던자유와 독립과 같은 가치들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소비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즐거움이라는 콘셉트 역시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수정돼야 했다.

 

드베 팔로치키가 진출하고자 한 또 다른 큰 시장은 중국이었다. 중국 사회의 반일 감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요리에 대한 수요는 존재했다. 일본식 스낵바인 아지센라멘(Ajisen Ramen)은 중국에서 372지점을 운영하며 270곳을 운영하는 일본에서보다 더 인기 있었다. 일본 요리는 다른 아시아 지역의 음식들과는 달랐고, 중국의 일본 요리 시장은 아직 포화돼 있지 않았다. 드베 팔로치키는 중국 시장을 매우 유망하다고 판단했고 홍콩도 또 다른 타깃시장으로 결정했다.

 

야코프 팍은 러시아와 중국이 역사적으로 비슷한 국가적 발전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중국 시장의 전망이 더욱 좋다고 말했다. 드베 팔로치키의자유로움이라는 콘셉트가 서유럽 사람들보다 중국 사람들에게 더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야코프 팍의 판단은 옳았을까?

 

성공&실패 요인 분석: 안방 호랑이에 만족하다

드베 팔로치키는 내수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이 국제화에 실패한 좋은 사례다.

 

이 회사는 수십 개의 대형 체인을 운영하며 러시아 내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지역적 성공에 기반이 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드베 팔로치키는 러시아의 일본 요리 분야에서 비교적 선도업체라 할 수 있다. 둘째, 일식집 특유의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인테리어 비용과 같은 고정 투자비용이 낮았다. 셋째, ‘자유와 즐거움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소련과 1990년대의 혼란을 겪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드베 팔로치키는 커지는 중산층을 공략했다. 전통적인 시내 중심가뿐 아니라 상업-거주지역에 체인점을 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과 좋은 기업 이미지, 숙련된 직원, 규모의 경제라는 장점을 살려 러시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해외 진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처음 고려했던 우크라이나 시장은가치 있는 국제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아고려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스웨덴과 영국 시장 역시 고정비와 변동비 측면에서 높은 투자비용이 요구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무형자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레스토랑 체인의 이미지는 요식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유럽에서, 심지어 중국에서도 러시아 회사가 일본 요리를 팔면 환영받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경영진의 선택이 전략적인 접근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드베 팔로치키는 해외에 어떠한 계열사도 설립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해외 시장 진출 계획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해외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초기단계부터 모든 것을 세심하게 계획해야 한다. 사회문화적 거리, 국가적 위험, 시장의 불확실성, 시장의 크기나 성장성, 회사의 해외 시장에 대한 경험, 제품과 회사의 규모와 같은 여러 요소들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이다. 만약 드베 팔로치키가 그들이 진출하고자 하는 현지 시장의 기업가들과 만나 협상하기 전에 이러한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했다면 그들은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구소련 국가들과 발트 3,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이 드베 팔로치키에는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 이 국가들의 시장과 국민들의 성향이 러시아와 더 비슷하고 이들 국가에서는 일식 산업이 아직 포화상태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하지만 경영자들이 이런 시장을 외면하는 한 드베 팔로치키는 국내 시장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해외 시장에 급히 진출하는 것보다는 경영진이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예카테린부르크와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러시아 내 다른 도시로 먼저 확장하는 것이 더 전망이 좋다. 초기 투자비용이 낮을뿐더러 일식에 대한 충분한 수요 또한 지니고 있고 향후 해외 진출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파니브라토프

안드레이 파니브라토프(Andrei Panibratov)는 상트페테르부르크주립대(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교수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