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Thinking - 한샘 \'키친바흐\' 김윤희 수석 디자이너 인터뷰

“주부들을 관찰했죠, 밀착카메라로 부엌을 디자인하고픈 욕망을 읽었어요”

126호 (2013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조은영(연세대 사회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부엌’에디자인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그동안 부엌은 그저 재료를 다듬고 씻어서 먹을 만한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작업장이었다. 아름다움과 합리성을 덧입혀 만족을 얻어내는 대상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부엌을 예쁘게 꾸밀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름다운 부엌은 당장 주로 사용하는 주부의 자존감을 높인다. 따로 놀던 식구를 불러 모은다. 서로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 꼭 필요한 기능만 두는 저가 보급형 가구에 초점을 뒀던 한샘이 디자인과 효율성 모두에 신경을 쓰는키친바흐를 출시한 것은 이런 배경과 맥을 함께한다. 한샘 키친바흐의 김윤희 수석 디자이너를 만나 어제와 오늘, 한국과 다른 나라의 부엌이 지니는 특징과 차이, 그리고 그것들에 접근하는 방법을 들었다.

 

사실 부엌 디자인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발달한 분야는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가정에 아름다운 부엌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IMF 관리체제가 시작되기 전 한샘의 최고가 라인으로유로가 있었다. 오븐이나 냉장고 등 기본적인 가전까지 포함해서 1500만 원 정도였다. 지금 기준에서도 싼 가격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비싼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런 부엌이 판매됐다.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부엌에 투자하고 꾸미려는 수요가 분명 존재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런 수요가 싹 사라졌다. 부엌에 투자할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진 셈이다. 한샘은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았는데밀란 화이트라는 효자 상품 덕분이었다. 이 상품은 아예 ‘2.4m 150만 원을 카피로 내세워 꼭 필요한 요소만으로 짜임새 있고 저렴하게 작은 공간을 채워 넣는 것을 메인 콘셉트로 했다. 고가 제품이 안 팔려 쌓여갈 때 저가 제품이 대거 팔리면서 위기에도 잘 버틸 수 있었다.

 

위기가 지나가고 경제가 조금씩 회복돼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가 제품을 내놓기는 어려웠다. 회사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많이 팔까를 고민했지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보자고는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주택을 아름답게 꾸미고 인테리어에 돈 쓰는 일이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지던 때였다.

 

‘키친바흐’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부엌이 단지 음식을 만들고 배고픔을 채우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모이고 대화를 나누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일이다. 사실 준비를 시작하면서 사내 반발이 컸다. 회사 입장에서는 저가 제품을 대량으로 파는 편이 수익 면에서 훨씬 낫다. 고가 제품을 만들려면 그만큼 연구를 많이 해야 하고 투자금액도 커진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대부분 업체들은 저가 제품을 만들어 많이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고가 프리미엄 제품을 원하는 중산층 이상 고객은 해외에서 수입한 제품을 찾았다. 이렇게 시장이 양분돼 있을 때 고가 시장을 공략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설득력을 지니기 어려웠다. 최소한 국내 업체들끼리의 경쟁에서는 이미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고 새로 부딪쳐야 할 해외 경쟁사들은 쟁쟁했다. 투자금액이 컸고 성과를 얼마나 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굳이 진출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많았다. 사내 의견이 엇갈릴 때 결단을 내린 것은 최고경영진이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디자인은 최고경영자의 안목과 의지가 중요하다.

 

사실 키친바흐는 최고급 재질만 사용해 초대형 부엌을 럭셔리하게 꾸며보자는 콘셉트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우리나라 가구에서 부엌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담당하는 역할이 달라지고 있는데 이런 흐름에 대응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라인을 출시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부엌의 중요성이 커졌고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만큼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행히 CEO가 이런 의도를 이해하고 시도를 격려했고 덕분에 팀을 꾸려 실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키친바흐는 출발부터 ‘40평대, 4개 이상에 거주하는 40대 이상 주부를 타깃으로 했다. 제품을 구상하면서 타깃층에 해당하는 주부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살펴봤다. 20대 결혼할 때는 20평대 집에서 시작한다. 이때 부엌은 별로 중요한 공간이 아니다. 둘이 사는 집은 작기도 하고 전세일 때가 많아서 애착을 갖고 꾸미기 쉽지 않다. 아이를 하나둘 낳는다. 아이들이 크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고 부부는 열심히 모아 30평대로 이사한다. 이때까지도 부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부엌은 그저 남편과 아이를 먹이기 위해 종종거리며 다니는 곳이지 인테리어의 대상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은 토하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소파나 멋진 장식장에 욕심낼 겨를이 없다. 40∼50대가 돼서야 비로소 집을 꾸미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이 즈음 비로소 내 집을 갖는 가정도 많다. 아이들이 웬만큼 성장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면서 더 멋진 집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때는 주부에게 공허감이 밀려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진 남편은 주말에도 나가야 할 때가 많고 머리 굵어진 아이들은 집에 붙어 있지 않는다.

 

우리는 아름다운 부엌이 이런 주부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비싸고 화려하게 꾸며야 한다가 아니라 주부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편하고 세련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 기본 콘셉트였다. 또한 아름다운 공간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부엌을 단지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는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차 한 잔 하면서 여유를 느끼기도 하고 조용히 책을 보기도 하고 남편과 와인을 마실 수도 있는 모임과 친목의 공간으로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한국 여성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많이 연구했겠다.

기본적으로 부엌을 만들 때는 타깃 소비자층을 선정해 24시간 관찰한다. 타깃 범위에 들어가는 고객을 컨택해서 양해를 구하고 부엌에 관찰 카메라를 단다. 주부가 부엌에 들어와서 움직이는 전 과정을 녹화한다. 어떻게 진입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엇을 어디에서 꺼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조리하고, 어떻게 먹는지 등 동선과 행동을 일일이 파악한다. 설문조사도 한다. 하지만 랜덤하게 하지 않고 주로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한다. 실제 타깃에 해당하는 고객들만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포커스 그룹에 해당하는 가구를 골라서 한 번에 30곳 정도 방문해 그 집에 있는 모든 부엌 물품을 조사하기도 한다. 밥공기는 몇 개 있고 수저는 몇 개 있으며 냄비는 어디에 보관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인구적, 사회적으로 달라지는 큰 흐름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전업 주부가 많았지만 지금은 맞벌이 가구 비중이 크다. 혼자 사는 가구도 많다. 가구 형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따라 부엌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관련 시장이나 해외 변화를 계속 모니터링한다. 우리나라 주택시장 동향이나 모델하우스 변화 등도 본다. 오래 전 아파트와 최근 지어진 아파트는 구조나 형태가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한 집에 방이 3개라면 3개가 모두 방이었지만 지금은 방 중 일부를 드레스룸이나 서재로 특화해서 짓는 집이 많다.

 

부엌은 단지 부엌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들어가 다른 공간들과 어우러져야 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사용할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집 안팎의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부엌 자체도 달라진다. 시대가 가면서 부엌도 많이 변했다. 이전 부엌은 철저하게 기능 위주였다. 요리하고 설거지하기 편하면 좋은 부엌이었다. 지금은 음식을 만들고 씻는 행동 외에 다른 많은 일들이 부엌에서 이뤄진다. 수납공간이 늘고 식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한국형 부엌만의 특징이 있다면.

서양 부엌과 한국 부엌은 크기와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요리 종류가 다르고 프로세스가 다를 뿐 아니라 부엌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다르다. 일단 양식에는 굽는 요리가 많다. 이른바불의 요리들이다. 그래서 부엌의 중심은 오븐이다. 서양 부엌에 들어가면 엄청난 크기의 오븐이 주방 한가운데 놓여 있을 때가 많다. 반면 우리나라에는물의 요리들이 많다. 요리할 때 물 사용이 잦다. 갈비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한국의 많은 요리들은 재료를 씻고 다듬은 후 마지막에 한번 가열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불은 제일 나중에 한 차례 사용될 뿐이고 대부분의 작업은 거의 씽크대 주변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서양 부엌에는 오븐이나 가스레인지가 엄청나게 크고 씽크대는 아주 작은데 비해 한국 부엌에는 오븐이나 가스레인지는 한쪽 구석에 놓이고 씽크대가 상대적으로 크게 중심부에 놓인다.

 

수납도 차이가 크다. 서구에는 파스타, 밀가루, 파슬리 등 건식 식재료가 많다. 팬트리라는 대용량 수납장이 주로 사용되는데 와이어 망으로 칸이 짜여 있어 마른 재료들을 얹어둘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양념이나 액체류 등 무거운 식재료가 많기 때문에 와이어에는 올려둘 수 없다. 김치냉장고도 우리나라에 특화된 제품이다.

 

키친바흐를 디자인할 때는 이런 점들을 고려했다. 한국인의 체형이나 동선, 음식의 특성 등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를 반영했다는 의미다. 다른 제품과 달리 부엌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가 쉽지 않다. 키친바흐가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그 대상은 그나마 음식 문화가 비슷한 중국이나 일본 정도일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으로는 갈 생각이 없다. 다만 중국이나 일본도 같은 동양권이기는 하나 요리의 특성이나 사람들의 성향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는 꼼꼼한 관찰과 분석이 필수다. 중국은 워낙 볶거나 튀기는 요리가 많기 때문에 가스레인지를 특화해야 한다. 불 사용이 잦고 기름을 많이 쓰기 때문에 아일랜드 식탁처럼 오픈된 작업대는 넣을 수 없다. 기름과 냄새를 빨아들이는 후드도 크기 자체가 한국과 다르다. 모터의 크기와 기름을 흡수하는 필터가 다르고 빨아들인 기름을 받아내는 별도의 통이 큼지막하게 있다. 일본은 집이 작기 때문에 부엌에 할당되는 공간도 작다.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어야 하므로 무엇보다 효율성이 우선된다. 지진이 많은 나라인 만큼 지진이 났을 때 수납장이 열려서 쏟아지지 않도록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일본은 에너지 사용량에 굉장히 민감하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서랍식 냉장고가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20년 전부터 서랍식을 사용했다. 냉장고는 문을 열고 닫을 때 전력 소모가 큰데 필요한 곳만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들어두면 그만큼 전력 사용이 줄어든다. 공간적 제약이나 에너지 절약 면에서 특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관찰의 힘이다. 옷은 안 어울리면 안 입으면 되고 마음에 안 드는 가전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설계된 부엌은 어디 갖다 버릴 수도 없고 쉽게 바꿀 수도 없다. 세밀하게 관찰하고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키친바흐 디자인의 기본적인 콘셉트는 무엇인가.

키친바흐를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는 이곳의 이름을 DBEW라고 지었다. Design Beyond East and West를 줄여 만든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은 서구식 문화가 많이 들어왔다. 이미 우리는 침대에서 자고 식탁에서 먹는 등 서구식 생활 방식에 익숙하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 서양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21세기에 부뚜막 부엌을 가져다 놓는 것도 어색하다. 서양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도 맞지 않고 동양식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풀릴 문제도 아니다. 동양도 서양도 아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디자인이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을 꼼꼼히 관찰한다.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디자인이 그들을 편하게 느끼게 하는지를 본다. 다만 그 뿌리는 한국적인 어떤 것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공간의 절반에는 식탁을 배치하고 절반은 좌식으로 만들어두는 식당은 한국에만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구식의 어떤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한국식을 여전히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이 DBEW 건물도 그런 의미에서 지었다. (편집자주: DBEW 연구소는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마을 끝자락에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동양의 문화를 연구한다고 하면서 강남 한복판에 고층 빌딩을 짓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다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들어앉아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사람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국적 미는 어디서 포착하는가.

디자인은 사실 어느 한곳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보기 어렵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 한샘은 전 직원이 정기적으로 건축기행을 간다. 지방에 있는 절이나 사원을 12일 정도로 다녀오는 것인데 디자인팀은 더 자주, 더 다양하게 다닌다. 경산서원, 소쇄원, 해인사 등 우리나라의 이름난 절은 물론 중국으로도 기행을 다녀온다.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큰 도시가 아닌 지방 도시들을 주로 간다. 그런 곳들을 다니면서 곧바로 모티브를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경험들이 누적돼 아이디어로 발현된다. ‘퓨어 화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부엌은 전체적으로 흰색인데 수납장이나 싱크대 밑 서랍장 문에 세로로 엠보싱을 넣었다. 겉면이 올록볼록하기 때문에 빛을 받았을 때 음영 효과가 난다. 이렇게 설계하면 그냥 하얗기만 한 제품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살리는 것은 대표적인 동양적 미라고 할 수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에서도 모티브를 따왔다. 뒤쪽은 닫힌 공간으로, 앞쪽은 열린 공간으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뒤쪽에는 긴 수납장을 짜 넣고 앞쪽에는 서구식 아일랜드 식탁을 설치해 밖을 향해 열었다. 아일랜드 식탁은 통상보다 좁은 식탁을 허리까지 높여 보조 작업대로 사용하거나 스툴을 둬서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식탁이다. 하지만 한국 주부들은 씽크대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작업을 외부에 보이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반영해 가족을 바라보며 일할 수는 있지만 작업 과정이 완전히 오픈되지는 않도록 아일랜드 앞에 찬탁을 뒀다. 찬탁은 조선시대에 사용되던 수납장이다. 아일랜드 앞에 찬탁을 두니 수납 공간은 늘고 씽크대는 가려지는 이중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루비티브’라는 제품의 색은 옻칠에서 따왔다. 루비티크는 키친바흐 론칭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다. 갈색과 붉은색의 중간쯤 된다고 해야 할까. 요즘은 옻칠 비슷한 색이 다양한 제품에 활용되지만 루비티크가 출시됐던 때만 해도 옻칠 색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깊은 붉은 색으로 인식돼 큰 인기를 끌었지만 해외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해외 쇼에서 한번도 소개하지 않았고 해외 쇼에 초대된 적도 없는 제품이다. 그런가 하면 평상형 부엌은 좌식을 편하게 느끼는 한국인의 성향을 고려해 만든 것이다. 대부분 입식 구조로 바뀌었지만 부엌의 일부분을 평상으로 만들면 사용자들이 편하게 느끼겠다 싶어서 고안했다.

 

초반에는 건축물이나 사원에서 얻은 영감을 그대로 제품에 반영하는 데 초점을 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직접적으로 한국 또는 동양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놓고 표방하는 것은 다소 과한 느낌이 들어서 한국적인 콘셉트나 전통적인 문양 등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녹여내려고 하는 정도다.

 

앞으로 부엌은 어떻게 진화할까.

앞으로에 대한 전망은 곧 키친바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 한중일 시장을 겨냥한 부엌이다. 앞으로 유행이나 트렌드를 주도하는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즉 한중일 3국일 것이다. 이 시장의 유망성은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더라도 어쨌든 동양적인 미 혹은 동양적인 콘셉트의 경쟁력은 무한하다. 시장을 정의하는 것은 앞으로 내가 어떤 운동장에서 뛰어야 할지를 구상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동북아시아 시장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디지털이다. 부엌의 모든 기능이 버튼 하나로 작동하는 기계적인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젊은 주부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 익숙한 세대다. 디지털 라이프를 사는 사람을 위한 부엌은 어떤 형태가 돼야 할지 항상 고민한다. 세 번째는 친환경이다. 환경을 해치면서 최첨단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메커니즘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가전이나 가구는 특히 환경을 심하게 오염시키는 산업이다. 여러 가지로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제조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줄이거나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거나 버릴 때 오염을 줄이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부엌은 이 세 가지를 지향하는 형태일 것으로 전망한다. 흐름을 읽고 대응하기 위해 꼼꼼하게 관찰하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