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ntial Cases in Books
“사장 아들이면 다인가? 큰 데 있다가 오면 다야?”
점원 한 명만 빼고 모두 회사를 떠났다. 점원들은 1972년 저스코(JUSCO)라는 유통업체에서 6개월을 근무하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신사복 전문점인 ‘맨즈 숍 오고리상사’에 입사한 사장의 아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아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하고 불평하는 모습을 꼴불견으로 봤다. 23년째 이어온 양복점에서 직원들은 나름대로 일을 잘하고 있는데 아들이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듯 불평을 쏟으니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장의 아들은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초반의 애송이였다. 점원이 모두 나갔다. 아들은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구매에서 판매, 경리업무 등 의류매장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며 인감도장까지 넘겼다.
고생의 시작. 아들은 오전8시부터 오후9시까지 꼬박 13시간 동안 일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일은 그치지 않았다.
아들은 양복점을 물려받은 뒤 13년째 되던 1984년 ‘캐주얼’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 유니클로(UNIQLO) 1호점을 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가 2008년 발표한 일본 자산가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그는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사장이다.
유니클로 브랜드를 가진 패스트리테일링의 2012년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 증가한 약 900억 엔(1조 원 정도)에 달한다. 매출은 1조690억 엔으로 15% 늘었다. 매우 튼실한 결과다. 무엇을 판매해서 이런 성과를 가져왔을까? 패스트리테일링이라는 회사이름은 다소 낯설어도 ‘히트텍’이라는 발열내의는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다. 히트텍은 전 세계에서 3억 장 이상 팔렸다.
유니클로의 성공 요인은 회사 이름인 패스트리테일링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 생산과 판매의 빠름에 대한 이야기다. 리테일링(retailing)이라는 이름에는 의류 소매점이라는 업종에 대한 소개가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소매점은 제품을 팔아주는 역할만 한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다르다. 유니클로는 기획과 생산, 판매 등을 모두 담당하고 생산된 물건을 자체 브랜드로 판매한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앴다. 전문 용어로는 SPA(제조 직매 전문업체·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고 부른다. 야나이 사장은 “유니클로의 SPA는 모두 직접 하는 형태다. 고객의 욕구를 발굴해 상품으로 만들고 생산과 판매하는 새로운 모델이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직접 생산까지 하려고 했을까? 오늘날 기업에서 ‘속도’는 매우 중요한 경쟁무기다. 아무리 디자인 감각이 좋고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높아도 디자인 속도가 느리면 소비자에게 인정받기 힘들다.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도 시장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판매 기회를 잡기 어렵다. 야나이 사장은 ‘스피드’가 성패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또 직접 제조해야 시장의 변화속도에 따라갈 수 있다. 1991년 9월 오고리상사였던 회사명까지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으로 바꿨다.
“패스트 리테일링은 빠르게 판매한다는 뜻이죠.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얼마나 신속하게 제공할지를 고민하겠다는 것이죠.”
고객의 요구를 신속히 파악해, 신속히 상품으로 만든 뒤, 신속히 판매하겠다는 소매의 스피드화를 목표로 했다. 야나이 사장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유행에 따라 의류의 교체주기가 빠른 옷을 ‘패스트 패션’이라 부른다. 이런 생각이 유니클로의 ‘빠른 공급력’을 시도하게 했다. 아무리 상품의 질이 좋고 매장에 사람이 몰려와도 상품이 없으면 애써 매장을 찾은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야나이 사장은 1998년 6월 공급망 관리 재구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공급망(SCM·supply chain management)이란 생산에서 소비까지 일관되게 하나로 묶는 체인 시스템이다. 소매가 점포망을 체인으로 만드는 것을 수평적 체인화라고 한다면 공급망은 수직적 체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은 기획과 소재조달, 생산, 물류, 재고, 판매라는 상품의 전반적인 흐름을 유기적으로 묶으려는 것이다. 이 당시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해서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공급망 완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전까지는 전화나 팩스를 사용했기 때문에 공급망을 더 정교하게 구축하지 못했다. 공급망을 정교하게 구축하면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해서 소재를 찾고 어느 공장에서 봉제할 것인지를 조사한 뒤 신속하게 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신속 대응’이라고 한다.
유니클로의 목표는 대량의 발주를 기반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라인에 올리는 것 외에 각 공정마다 일정량의 재고를 확보한 뒤 갈색의 플리스가 부족하면 염색 단계에서 매출이 저조한 색상의 생산 예정량을 줄이고 갈색 플리스로 바꾸는 것이다. 또는 한 디자인의 매출이 좋으면 이전 공정단계의 재고를 라인에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두면 라인을 일일이 변경하지 않더라도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유니클로에서는 제휴공장과 본사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본사에서 생산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게 돼 있다. 판매 데이터를 기초로 즉시 공장으로 발주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종합상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다. 패스트(fast) 정신은 생산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야나이 사장은 “회사 내에서 ‘속전속결의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라고 항상 강조한다.
둘째 이야기인 ‘회의의 빠름’으로 넘어간다. 유니클로가 기적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시기였던 2000년 어느 대형 무역상사 간부는 유니클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유니클로를 보면 엄청난 긴장감과 스피드가 느껴진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패스트 리테일링’의 사내회의는 정해진 시간 5분 전에 시작된다. 그 시간이면 모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야나이 사장이 회의에 늦는 사람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정착된 기업 문화이기도 하다.
회의에 늦는 사람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지만 회의에 늦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약속을 어기는 행위다. 그는 이런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면에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도 깔려 있다.
‘5분 전 정신’은 유니클로 사람들이 ‘꿈이 있는 회사는 일찍 시작하고 준비가 잘된 회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비전이 보인다는 말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므로 신이 나서 남보다 부지런하게 일한다.
“약속을 했으면 그 전에 미리 완료하는 실행 마인드를 습관화하라”는 야나이 사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출발시간에 1초라도 늦으면 열차를 탈 수 없다. 준비한 모든 시간과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다. 더욱 바람직한 것은 그전에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평소 ‘5분 전 정신’을 철저하게 견지해야 한다. 오전8시에 회의를 하기로 했다면 오전7시55분에는 출석해야 한다. 그 이전에 배포된 자료를 모두 읽고 숙지해야 한다.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미리 운동장에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실전게임에서 부상을 당하지 않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5분 전 정신’은 승리의 한 방식이다.
5분 전 회의 시작은 또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10명이 참석하는 회의에 한 사람이 10분을 늦어서 회의를 시작하지 못한다면 시간 손실이 얼마나 될까? 10분이 아니라 10명의 10분을 곱한 값인 100분이다.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 손실을 가져온다. 회의 10분 지각을 마냥 용서할 수 있을까? 모두 10분 일찍 와서 회의의 내용과 결론을 예측하고 적어본다면 사실 회의시간이 늘어지는 것을 얼마든 방지할 수 있다.
약속시간 5분 전에 회의를 시작해서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인지 모른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유니클로 회의실에는 의자가 없다는 점이다. 모두 서서 회의를 한다. 그러다 보니 회의는 10분이면 끝난다. 늘어지는 회의가 없다. 또 회의실은 대부분 투명 유리로 돼 있어서 회의실 외부를 오가는 사람들도 내부에서 회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의 내용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일에 대한 자극과 회사의 역동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쪼그라드는 조직의 특징 중 하나가 회의 시간에 옳다, 그르다 등 편 가르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실행으로 이어지는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기 때문이다. 회의란 방법을 찾는 것이다. 또 아이디어를 키우는 것이다. 지식을 공유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사람이 성장할 수 없는 조직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유니클로의 서서 하는 회의에는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깔려 있다. 유니클로 회의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생각 없이 일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야나이 사장은 “발언하지 않는 사람은 다음 번 회의부터는 참석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셋째 이야기는 ‘생각의 빠름’에 대한 것이다. 직원들은 유니클로에서 엄청난 것을 배웠다고 하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유니클로에 들어오니 최고의 선배들이 있었다. 선배들에게 리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항상 세 종류의 시간이 흐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는 현실을 보고 생각하는 머리, 즉 현재의 시간을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음 시즌을 생각하는 머리다. 다음 시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능력이다. 세 번째는 1년 후를 생각하는 머리다.”
조직에서 압축 성장을 하거나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 머릿속에 몇 가지 시간축이 동시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금 해야 할 일을 적절하게 찾아서 하고 다음 시즌을 생각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준비한다. 또 연간 단위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움직인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현재의 시간이 흐르고 다음 시즌의 시간이 흐르며, 또 1년 후 시간이 흐르고 있다. “우선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부터 배운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생각한다. 유니클로에 와서 생각하는 힘이 많이 커진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리더뿐만 아니라 똑똑한 직원들은 1년 전 시즌을 생각하면서 일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고객들은 1년 전에 구입한 옷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판매하는 옷을 그것들과 어떻게 코디해서 입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일한다.”
압축의 시간, 3개의 시간이 동시에 흐르는 빠름이 여기 존재하는 것이다. 또 생각의 빠름은 동시에 횡축으로도 움직인다. 영업부서 측면에서, 기획이나 설계 부서 측면에서, 시공이나 현장 부서 측면에서, 고객 응대나 서비스 직원 부서 측면에서 등 다양한 흐름 축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검증을 한다. 승패의 결과는 여기에서 갈린다.
‘빠름’ ‘빨리빨리’…. 이런 단어는 누구의 대명사였는가? 어쩌면 우리는 빠름의 경쟁력에서 유니클로에 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산과 판매의 빠름, 회의의 빠름, 생각의 빠름. 3가지 빠름 이야기를 들려주는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한국인에게 한국의 특징을 다시 빠르게 회복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 같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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