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항공사의 청렴문화
편집자주
DBR이 서울대 경영대학과 함께 서울대의 임원 교육 과정(주임 교수 안태식 교수)인 ‘서울대 CFO 전략과정’의 최신 경영 사례들을 연재합니다. 국내외 유명 기업 임원들로 구성된 서울대 CFO 전략과정 교육생들은 총 6개월의 교육기간 중 각자 회사에서 겪은 경험과 강의를 통해 배운 지식을 접목, 자사의 경영 사례들을 공유합니다. 이때 발표된 사례 중 한국 기업에 많은 도움을 줄 만한 내용을 엄선해 DBR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기업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 담긴 이 코너를 통해 기업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세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한국공항공사의 청렴도 점수가 왜 이렇습니까?”
“죄송합니다. 내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손종하 한국공항공사 감사실장에게 2008년은 매우 힘든 해였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가 65개 공기업에 대해 실시한 청렴도 평가에서 한국공항공사는 58등으로 최하위권이었다. 정부의 공기업 기관경영평가를 위한 현장실사 면담 인터뷰에서 손 실장은 한국공항공사의 청렴도가 낮은 이유를 물어보는 경영평가 위원들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감소 등에 대한 질문에는 당시 심각했던 금융위기 등 경제가 안좋아서라고 ‘핑계’댈 수 있었지만 청렴도와 관련해서는 금융위기가 원인이 될 수 없었다.
2008년 큰 충격을 받은 한국공항공사는 그해 8월 취임한 성시철 사장을 필두로 청렴 문화 확산을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우선 외부전문가와 내부직원이 함께 청렴도 하락 원인을 분석했다. 부패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를 청렴도라는 이슈에 대한 전사적인 공감대 부족으로 보고 ‘이해·공감·참여를 통한 청렴 문화 정착’을 중요 과제로 정해 단계별 청렴정책을 추진했다. 2009년 청렴인식 창출기, 2010년 청렴문화 정착기, 2011년 청렴문화 확산기를 목표로 정하고 실천력을 높이기 위해 청렴문화지수를 개발하고 청렴 시스템도 구축했다.
2009년부터 3년 넘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한국공항공사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 2009년 9.48, 2010년 9.56으로 2년 연속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데 이어 2011년에도 청렴도 우수기관으로 지정됐다. 올해는 국민권익위원회가 700여 개 공공기관 중 청렴도와 청렴문화가 우수한 한국공항공사 한 곳만을 최초로 청렴선도기관으로 선정했다.
손종하 실장은 “2008년에는 ‘한국공항공사 왜이러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 이제는 ‘한국공항공사의 비결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2008년 당시 청렴 활동을 잘하고 있다고 해서 초청해 강연을 들었던 기관에 이제 우리가 가서 사례를 소개할 때면 엄청난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DBR은 서울대CFO전략과정과 공동으로 한국공항공사의 청렴문화 정착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주요 시사점을 도출했다.
청렴 이슈화를 통한 인식 제고
한국공항공사는 2007년도에 최초로 청렴도 평가를 받게 됐고, 이때 점수는 9.15점으로 60개 기관 중 37등으로 중위권 수준이었다. 2008년도 평가에서는 부패사례가 당해연도 동안 3건 발생해 8.07점을 기록, 65개 공기업 중 58등인 최하위권으로 전락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한국공항공사는 그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원인을 조사해본 결과, 청렴에 관한 제도를 갖추는 것에 앞서 ‘청렴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구성원들이 갖도록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다 할 만한 반부패 청렴제도가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또 조직 말단 직원들이 관행적으로 향응을 거래처로부터 제공받는 것으로 나타나 제도 개선과 함께 엄정한 처벌을 할 필요도 있었다.
이에 따라 공사는 우선적으로 대대적인 의식개혁에 나섰다. 성시철 사장, 박재홍 상임감사위원 등 공사의 최고 리더들은 연간 수십 회에 걸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원들 앞에서 청렴실천 의지를 피력했다. 또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부터 금품수수 시 자진사퇴하겠다는 청렴사직서약서를 제출했다. 외부청렴전문가를 포함한 반부패 청렴추진단 구성 및 운영, 한국공항공사 청렴의 날 선포, 감사실 내 청렴전담 조직 신설 등 체계적이고 강력한 청렴 정책도 추진해나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부 반발도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나는 깨끗하고 투명한데 왜 부패한 직원 취급하면서 별 필요없는 교육을 받으라고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임원들은 청렴 문화 정착에 대한 직원들의 오해를 없애고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일방적인 전달식 강의 외에 교육 시간의 절반을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김석균 감사실 청렴TF 팀장은 “산꼭대기 5명밖에 없는 항공무선표지소(항공기 등대 역할을하는 장비 : VOR(VHF Omni-directional Radio Range)가 설치된 곳)까지 임원이 직접 찾아가서 청렴 교육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사 결과 본사의 영향이 직접 미치기 힘든 소규모 지방 사업장에서 주로 부패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전국 곳곳까지 임원이 직접 다니면서 직원들과 얼굴을 맞대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임원들은 이를 실천했다. 개개인들부터 청렴하고 윤리적으로 살자고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는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신입사원부터 간부직원까지 대상별로 ‘평생청렴학습시스템’을 구축하고 부서별 클린 코치를 육성하기 위해 청렴전문가 과정을 신설했다. 특히 간부급 청렴교육을 의무화하고 팀장급 이상 간부 125명에 대한 청렴도 평가를 실시해 간부들부터 청렴활동을 솔선수범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또 전국적으로 분산된 사업장의 특성을 살려 사업장별 청렴리더인 분임행동강령책임관 16명과 사업별 청렴담당자 109명을 선임해 자율적인 부패통제가 가능한 청렴조직을 구축했다. 매년 분임행동강령책임관에 대해 임명장을 수여하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상임감사위원과 핫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지역의 청렴 멘토 역할을 한다. 그동안 시설공사 등 부패발생 개연성이 컸던 분야에 대해서는 사업별로 청렴담당자(청렴지기)를 임명해 시공업체와의 청렴서약 집행, 부패발생 감시 등 청렴지킴이 역할을 하게 해 부패 발생을 예방하고 있다.
청렴문화지수 개발
한국공항공사는 점차 싹트기 시작한 청렴문화를 어떻게 가꿔나갈지 고민했다. 특히 실천 활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청렴 실천 수준을 측정, 평가, 관리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측정 및 평가 기준이 필요했다. 왜 근무 시간 중 청렴교육에 시간을 뺏겨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잘한 직원과 팀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못한 직원들에게는 불이익을 주어야 실천력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청렴문화지수를 개발했다.
청렴문화지수는 한국공항공사의 총 87개 팀에 대한 청렴수준을 측정하는 제도이다. 청렴실천 활동결과 및 제도개선 실적을 평가해 실천력을 높이기 위해서 도입했다. 잘한 사람은 내부경영평가와 연계해 성과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했다. 승진심사 때도 청렴 활동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청렴활동에 열심인 직원은 가점을 받고, 청렴도가 낮은 직원은 보직을 옮기는 등 불이익을 줬다. 매년 청렴문화지수 측정을 통해 3개 부서와 3명에 대해 포상하고, 추진노력이 부족한 팀은 내부경영평가에 감점을 주는 등 상벌을 엄격히 했다. 내부경영평가 비중은 2010년 이전 6∼8점(100점 만점)에서 2011년부터 12점(100점 만점)으로 확대시켜 청렴도의 중요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만약 금품수수나 향응을 제공받는 등 위법사례가 적발되면 20∼30%씩 점수가 깎여 최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소속부서장의 실천의지 점수도 0점 처리된다.
불공정하다는 시비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대부분의 지표는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일부 정성적 평가는 외부 전문가에게 평가를 맡겨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 또 지속적으로 직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지표를 보완하고 있다. 분기별 평가결과를 청렴문화 게시판에 공개하고, 이를 통해 직원들이 소속 팀이 달성한 점수를 사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오류가 있을 때는 즉시 수정도 가능하다. 청렴문화지수를 통해 성과를 측정하고 실천활동을 모니터링하면서 우수한 활동은 청렴문화게시판을 통해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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