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성과공유제
편집자주 ※이 기사의 작성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성진원(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잘 녹지 않는다는 소재는 다 써봤다. 고온에 가장 잘 견딘다는 고가의 초경합금인 인코넬 재질을 써보고 이중관도 사용해보고 용접도 해봤다.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시도해 봤는데 모두 실패였다. 섭씨 1500도가 넘는 용광로와 직접 접촉을 하는 기계 장치의 수명을 늘리는 건 그만큼 어려웠다. 2년 동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자 삼우에코 이찬석 상무(2004년 당시 부장)는 고온에 잘 견디는 소재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삼우에코는 용광로 안에 미세한 석탄가루(미분탄)를 뿌려주는 역할을 하는 장비인 랜스(Lance)를 포스코에 납품하는 기업이다. 제철은 기본적으로 석탄을 가공해서 만든 코크스와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뜨겁게 가열해서 쇳물을 뽑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처음에 넣은 코크스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때때로 용광로에 미분탄을 넣어줘야 한다. 미분탄을 넣어주는 긴 파이프 같이 생긴 것이 바로 랜스다. 용광로 옆에 난 구멍(풍구)으로 산소와 함께 미분탄을 넣어준다. 미분탄이 깊숙하게 제대로 투입되면 쇳물 생산량도 늘어난다. 그런데 랜스는 용광로에 고정돼 있어 항상 고온의 열에 노출돼 있고 쇳물과 직접 접촉하기도 해서 끝이 쉽게 마모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약간 기울어져 있는 랜스의 각도 문제로 미분탄을 넣을 때 제대로 투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마찰이 생기는 바람에 용광로의 풍구도 손상이 잦았다. 그래서 랜스는 105일만 지나면 못쓰게 되곤 했다. 이 상무는 갖은 노력을 다 해봤지만 결국 어떤 소재로도 105일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혁신은 작은 생각의 차이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발상의 전환을 해봤다. 랜스가 꼭 용광로 옆에 고정돼 있을 필요가 있을까. 미분탄을 투입할 때만 용광로에 접근하게 만들면 안 될까. 그래서 삼우에코는 포스코의 도움을 받아 랜스 전후진 장치를 개발했다. 보통 때는 용광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가 미분탄을 투입할 때만 용광로에 다가가는 움직이는 랜스를 만든 것이다. 이 장치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미분탄이 용광로 안에서 확산도 잘 됐다. 삼우에코는 시행착오 끝에 랜스의 수명을 105일에서 519일까지 늘릴 수 있었다. 미분탄의 정확한 투입으로 원가절감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삼우에코는 포스코의 동반성장 프로그램인 성과공유제에 따라 이듬해인 2005년 성과보상금으로 4억 700만 원을 받았다. (그림1)
300만 평에 이르는 제철소는 극한의 환경이 존재하는 곳이다. 쇳물은 만드는 1500도가 넘는 용광로가 모든 생산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포스코와 협력업체들은 끊임없이 이런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고 장치의 수명을 늘리고, 외국 제품을 국산화하며, 재료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포스코가 협력업체들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고 엄포를 놓아서가 아니다. 성과공유제(Benefit Sharing)라는 좋은 ‘당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협력업체들은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과제를 제안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고 성공하면 보상을 받는다. 포스코는 협력업체들의 시도를 전폭 지원한다. 협력업체들에게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는 거대한 실험실과도 같다.
가장 효과적인 동반성장 방법 - 성과공유제(Benefit Sharing)
성과공유제는 포스코가 2004년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처음 도입한 제도로 중소기업과 공동으로 혁신과제를 발굴해 재료비 절감, 기계 수명 향상, 인건비 절감, 국산화 같은 성과가 나오면 중소기업에 현금 또는 단가 보상을 해주거나 장기 공급권을 주는 제도다. 특히 포스코는 개선활동을 통해 이룬 성과의 50%를 3개 년간 중소기업에 현금보상하고 장기 계약권을 부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선 과제를 진행할 때 제철소 현장 적용 가능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시제품 테스트 비용도 지원한다. 성과공유제에 참여한 중소기업은 포스코의 협조 아래 자율적인 개선으로 체질 개선과 기술개발을 도모할 수 있고 포스코 역시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품질향상을 실현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동반성장 제도인 셈이다.
성과공유제는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이윤 목표를 초과하는 성과를 내면 그 일부를 협력업체와 나누자는 것으로 사후적인 개념이 들어가 있다. 반면 성과공유제는 협력업체가 포스코의 원가절감이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줬을 때 미리 정해진 법칙에 따라 그만큼의 금전을 협력업체에 보상해주는 방식이다. 중소기업이 부품개발,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프로세스 개선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합리적인 원가 절감을 실현하면 각각의 프로젝트별로 정산을 하기 때문에 공정하고 명확한 성과보상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쉽게 말하면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노력해서 이룬 성과에서 나오는 이익의 절반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돌려주는 것이다.
개선 과제의 제안은 중소기업이 한다. 대기업이 협력업체 위에 군림해서 부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기업들의 성과공유제가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포스코의 성과공유제가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에 의해 발굴된 개선 과제는 중소기업과 포스코 구매부서, 제철소 현장부서가 개선 과제 검토와 선정부터 시작해서 공동으로 추진하게 된다. 포스코는 과제 상시 등록부터 성과보상까지 일괄 관리하는 성과공유제 관리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며 2011년까지 801개 기업과 함께 모두 1794건의 성과공유 과제를 수행해 총 826억 원을 중소기업에 성과보상금으로 제공했다.(표 1) 또 2003년 SRM(Supplier Relationship Management) 운영팀을 신설한 이래 2004년부터 성과공유제를 추했으며 꾸준히 프로세스를 개선해오고 있다. (표 2)
포스코는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강화하기 위해 성과공유제 재원을 2010년 77억 원에서 2011년 400억 원, 2012년 500억 원 규모까지 끌어올렸으며 앞으로도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이 이룬 성과에 대한 성과보상금은 포스코 제철소 내 현장 부서가 예산을 집행하도록 했다. 각 부서들이 예산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성과공유제 사례를 발굴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 동반성장사무국 최유식 매니저는 “성과공유제 재원을 담당하고 있는 제철소 현장 부서들에게도 동반성장의 동기를 부여했다는 것이 큰 의미”라며 “재원이 있으면 중소기업의 작은 개선 아이디어에도 현장 부서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성과공유제로 연계해 추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포스코는 성과공유제를 촉진하기 위해 관련 성과를 핵심경영지표(KPI), 즉 구매담당 임원의 인사평가에도 반영하고 있다. (표 3)
포스코는 성과공유 과정에서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의 기술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대기업과 협력을 해본 많은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의 개선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다른 중소기업에 공개해 경쟁을 유도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경쟁사나 대기업에 뺐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중소기업과 개선과제 수행 전에 성과공유제 협약을 체결하면서 해당 중소기업의 승낙 없이 함부로 기술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해 기술 유출 문제를 원천적으로 예방하고 있다. 포스코와 협력업체는 과제 참여와 동시에 기술보안협약(Non-Disclosure Agreement), 윤리준수 등의 사항에 대한 전자 동의를 한다.과제수행 전 과정에서 포스코는 윤리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중소기업이 제안한 아이디어에 대한 기술보호 의무를 갖는다. 과제수행 관련 정보에 대해 쌍방 모두 비밀유지 및 다른 용도로 사용불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과제 수행결과 발생된 지적재산권은 포스코, 중소기업 공동보유를 원칙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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