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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처럼 닥쳐오는 빅뱅파괴자

래리 다운즈(Larry Downes) | 138호 (2013년 10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3 3월 호에 실린 액센츄어 고성과 연구소 특별 연구원 래리 다운즈(Larry Downes)와 동 연구소 글로벌 연구 관리 이사 폴 F. 누네스(Paul F. Nunes)의 글 ‘Big-Bang Disruption’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13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똑똑한 경영자라면 누구나 파괴적 혁신으로부터 비즈니스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셉 L. 바우어(Joseph L. Bower)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1995년에 <하버드비즈니스리뷰>파괴적 기술 :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좇아서(Disruptive Technologies: Catching the Wave)’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후 약 20여 년 동안 발표된 수많은 경영 연구 자료는 기업들에 자사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며 저가 제품을 선호하는 새로운 고객을 사로잡은 후 점차 고가 시장으로 이동해 좀 더 고급스러운 제품을 원하는 고객마저 낚아채려 하는 신생기업을 경계할 것을 당부해 왔다. 이런 파괴자가 모습을 드러내면 기성업체들은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파괴자를 인수해 버리거나 파괴자가 갖고 있는 신기술을 포용하는 경쟁 기업을 자체적으로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이와 같은 파괴적 혁신 전략 모형에는 맹점이 있다. 이 모형은 파괴자가 가격이 낮고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앞세워 가장 수익성이 낮은 세그먼트를 공략하는 전략을 채택한다고 가정한다. 즉 파괴자가 이런 전략을 선택하기 때문에 기성업체가 신제품 개발에 돌입해 자체적으로 차세대 제품을 개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톰톰(TomTom), 가민(Garmin), 마젤란(Margellan)과 같은 내비게이션 제조업체에는 이런 조언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스마트폰에 사전 탑재돼 있는 무료 내비게이션 앱은 내비게이션 업체들이 판매하는 독립형 기기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성능도 우수하다. 뿐만 아니라 iOS와 안드로이드(Android)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탄탄한 플랫폼 덕에 클라우드를 통해 새로운 버전이 자동으로 배포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앱의 성능 또한 지속적으로 개선된다.

 

이런 경우, 같은 업계에서 활동하는 경쟁업체나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기업이 파괴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신기술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시장의 하위 세그먼트에 진입한 다음 치밀한 계획에 따라 좀 더 규모가 큰 고객 세그먼트를 파고드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들은 단 몇 주 만에 변화를 수용한다. 비단 가장 수익성이 낮은 고객이나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고객만 파괴 세력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세그먼트의 소비자가 동시에 무리 지어 떠난다.

 

이런 종류의 혁신은 규칙을 변화시킨다. 신기술의 등장으로 성숙 단계에 접어든 제품이 설 자리를 잃고 제품수명 주기가 점차 짧아지는 현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품 라인 전체(시장 전체)가 하룻밤 새 새롭게 생겨나거나 완전히 파괴된다. 파괴자가 갑자기 등장해 순식간에 모든 곳을 점령해버린다. 일단 파괴가 시작되면 맞서 싸우기 힘들다.

 

필자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는 파괴 세력을빅뱅 파괴자(big-bang disrupter)’라 부른다. 빅뱅 파괴자는 혁신가에게 딜레마를 안기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만큼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필자들은 지난 15년 동안 파괴적인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현재는 널리 용인되는 통념을 거부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중산업조사(multi-industry survey)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필자들은 빅뱅 파괴가 계획이나 의도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빅뱅 파괴는 관례적인 전략 방향이나 보편적인 시장 수용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 기성업체가 빅뱅 파괴를 견뎌내는 방법에 관한 근거는 아직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필자들은 기성업체가 빅뱅 파괴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몇 가지 전략 원칙을 제안하고자 한다.

 

전혀 다른 유형의 파괴

 

빅뱅 파괴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빅뱅 파괴가 정도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종류의 측면에서 좀 더 전통적인 혁신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빅뱅 파괴는 기성 제품에 비해 저렴할 뿐 아니라 좀 더 창의적이며 다른 제품 및 서비스와의 통합 수준이 좀 더 높은 편이다. 또한 요즘은 빅뱅 파괴 중 상당수가 제품 정보에 대한 고객의 접근성이 높아졌으며 제품 정보에 기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고객의 능력이 개선됐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다.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텀블러(Tumblr)의 시대에는 인터넷상의 유행(혹은(meme, 문화 구성 요소)’)이 단 며칠 만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기기에서 광고 배너가 뜨는 앵그리버드(Angry Birds) 게임을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되자 단 24시간 만에 다운로드 횟수가 100만 건을 넘어섰다. (사용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인해 개발업체의 서버가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다운로드 횟수가 훨씬 늘어났을 수도 있다.) 이후 7개월 동안 누적 다운로드 횟수가 2억 건을 넘어섰다.

 

수많은 산업에서 새롭게 등장한 여러 제품과 서비스 또한 앵그리버드 게임과 마찬가지로 기성업체들에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교육 분야에서 활동 중인 캠퍼스북렌털스(CampusBookRentals)와 칸아카데미(Khan Academy)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라디오 및 음반 부문에서 활동 중인 판도라(Pandora)와 스포티파이(Spotify), 음성 전화 및 영상 전화 부문의 스카이프(Skype)와 페이스타임(FaceTime), 휴대전화 신용카드 결제 부문의 스퀘어(Square) 등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들이 이런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수용하는 것은 시장 정보가 거의 완벽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바일 기기는 고객이 어디에서건 다양하고 전문화된 데이터 소스를 검색해 최고의 가격과 품질, 곧이어 새롭게 등장할 제품과 서비스를 찾아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즉 사용자들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옐프(Yelp),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아마존(Amazon), 그 외 사용자가 직접 작성한 리뷰 내용이 포함된 무료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원하는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빅뱅 파괴가 주는 충격파는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차원을 훨씬 능가한다. 예컨대, 스마트폰 앱은 음식이나 자동차를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요식업체들은 요즘 비즈니스를 확장하기 위해 온라인 예약, 고객이 직접 작성한 리뷰,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제공되는 쿠폰, 위치 기반 서비스 등을 활용한다. 자동차의 경우, IT가 정교한 계기판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IT가 자율 주행 자동차를 제어하게 될 수도 있다.하지만 기성업체들이 직면하는 최대의 과제는 빅뱅 혁신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빅뱅 혁신은 기성업체가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와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기존 기술을 결합해 매우 뛰어난 가치 제안을 내놓는다. 빅뱅 파괴자가 기성업체를 아예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빅뱅 파괴자는 고객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성업체와 같은 방법을 활용하지 않는다. 빅뱅 파괴자는 기성업체의 제품 라인을 평가한 후 단기적인 우위를 얻겠다는 희망을 품고 약간 더 나은 가격, 혹은 성능이 약간 더 우수한 제품을 내놓을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다. 빅뱅 파괴자는 대개 기성업체의 비즈니스와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로 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기대를 품고서 고객에게 근사한 무언가를 선보인다.

 

예컨대, 디지털 화상 기술이 소비자 사진 촬영 부문을 처음 파고들었을 당시 디지털 화상 기술 개발업체들은 필름 산업을 파괴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디지털 화상 기술로 인해 필름 산업이 파괴됐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은 2000년에 고품질 GPS 데이터를 기밀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클린턴 대통령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지도 제작업체들이 좀 더 나은 내비게이션 도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한 탓이 아니었다. GPS 데이터를 활용하면 좀 더 나은 내비게이션 도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지도 제작업체가 아니라 일부 전자업체였다.

 

 

혹은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어떻게 서적 비즈니스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베조스는 엄청난 숫자의 SKU(a small, shippable, product; 크기가 작고 배송 가능한 제품) 와 지배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소수의 중간 상인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다수의 판매자가 활동하는 안정적인 공급망으로 이뤄진 분화 시장(fragmented market)에서는 전자 상거래가 지당한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조스가 서적을 취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출판 부문에 조예가 깊어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서적이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서적이 베조스가 활용하고자 하는 도구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는 기업은 기성업체의 허를 찌를 수 있다. 이런 기업들은 단순히 좀 더 신속한 전략 개발과 실행, 좀 더 효과적인 운영에 대한 욕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혁신과 전략, 시장 접근방법을 향한 욕구를 만들어낸다.

 

3개의 파괴적인 특징

 

시장 진입에 성공한 빅뱅 파괴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빅뱅 파괴자들은 부담 없는 개발, 자유로운 성장, 제약 없는 전략 등 3개의 결정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빅뱅 파괴자들은 이 같은 특징을 토대로 시장에 연이어 놀라움을 선사한다.

 

부담 없는 개발. 규모가 크건 작건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모든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제품 개발자들은 요즘 밤 늦게까지 한자리에 모여 흔히해커톤(hackathon)’이라고 알려진 활동에 참여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 며칠 만에 어떤 종류의 신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장난 삼아 하는 활동이다. 혁신가들은 기성 비즈니스를 파괴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기성업체가 파괴되는 것은 부수적인 피해에 불과하다.

 

트위터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2006년에 진행된 해커톤에서 출발한 트위터는 2007년에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콘퍼런스에서 초라하게 상업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트위터 개발자들은 동시에 여러 사용자에게 기본적인 문자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신기술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실험이었다. 현재 트위터의 활성 사용자(active user) 숫자는 2억 명이 넘고 하루 동안 오고 가는 트윗 횟수는 5억 건에 달한다. 트위터는 뉴스/정보 생태계에서부터 인기 없는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동요시키고 있다.

 

최소한의 투자만으로 갑작스런 성공을 거둔 트위터 사례는 빅뱅 혁신의 중요한 측면을 강조한다. 즉 빠른 속도로 성숙하며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기술 플랫폼상에서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는 저비용 실험이 빅뱅 혁신의 토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빅뱅 혁신은 예산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개발 단계가 시작되기 전에 심사를 받지도 않는다. 비용이 낮고 기대 수준이 높지 않으면 기업가가 부담 없이 아이디어를 시장에 선보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수 있다.

 

트위터처럼 빅뱅 혁신은 비용이 거의, 혹은 전혀 들지 않으며 즉시 사용 가능한 구성요소를 토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Netflix), 훌루(Hulu), 스카이프를 비롯한 OTT(over-the-top)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기존의 가정용 인터넷 연결망과 누구든지 사용 가능한 음성 영상 압축 프로토콜을 활용해 케이블 업체와 전화 업체의 묶음 채널 선택 서비스 및 음성 서비스에 맞선다. 이와 같은 새로운 도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와 동시에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의 전략 계획을 좌절시킨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개발한 기술을 적절히 결합하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이 가장 성공적인 혁신가가 될 수도 있다.

 

 

파괴적인 기술을 만들어내고 실제 활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혁신가들은 단시간 내에 인기를 증명해 보이지 못하는 원형을 포기하는 등 투자자에게 별다른 위험을 안기지 않고도 얼마든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실험할 수 있다. 이런 실험은 대개 시장에서 직접 진행되며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주기 진행 속도가 빠른 모바일 기기를 토대로 하는 개방형 플랫폼이 실험에 사용된다. 자체적인 사업 기반이 없어도 얼마든지 새로운 비즈니스를 선보일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이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 컴퓨터 프로세싱,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데이터 저장, 통신 용량 등을 모두 실시간으로 임대하거나 구입할 수 있다. 이처럼 기이한 빅뱅 파괴자 세상에서는 수십 개의 신제품을 내키는 대로 내놓은 다음 어떤 것이 인기를 끄는지 가만히 지켜본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벤처캐피털 투자가 그렇듯 대부분은 완전한 실패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만 성공하면 엄청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자유로운 성장. 빅뱅 파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제품수명주기를 무너뜨린다. 에베렛 로저스가 고안한 종형 곡선은 혁신가, 초기 수용자, 초기 다수 수용자, 후기 다수 수용자, 지체자 등 5개의 고객 세그먼트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험 사용자(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와 그 외 모든 사람 등 단 2개의 세그먼트가 존재할 뿐이다. 빅뱅 파괴 수용 곡선은 점점 직선에 가까워지고 있다. 즉 줄곧 위로 치솟다가 포화 상태에 도달하거나 새로운 파괴가 등장하면 빠른 속도로 급락하는 것이다. (그림 1)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 1991년에 발표한 저서 <캐즘을 건너(Crossing the Chasm)>에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할 때는 철저한 계산을 통해 적절한 시기를 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로 인해 무어가 주장하는 방식대로 철저한 계산을 통해 마케팅 전략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어는 초기 수용자를 공략하는 전략에서 초기 다수 수용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전략으로 건너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제프리는 두 집단 간의 격차를 틈, 혹은 골을 뜻하는캐즘(chasm)’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하지만 빅뱅 파괴는 시장에 등장한 순간부터 모든 세그먼트를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 아이패드(iPad)가 시장에 등장했을 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비단 노트북을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백만장자들도 하나같이 아이패드를 갖고 싶어 했다.

 

새로운 제품수명주기는 개발, 배치, 교체 등 3개의 기본적인 단계로 간소화할 수 있다. 새로운 제품수명주기는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 1965, 인텔(Intel)의 공동 설립자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컴퓨터 용량이 매년 2배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새로운 제품수명주기의 진행 속도가 무어가 예측한 속도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이제 엄청난 양의 컴퓨터 용량이 2배씩 증가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파괴 속도의 급격한 증가세에 불을 붙인다. 제프리의 제품수명주기가 아니라 고든 무어의 법칙이 속도를 결정한다.

 

이제 더 이상 마케팅 캐즘을 건너는 것이 파괴적 혁신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대신, 혁신가들은 총체적으로 반복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다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올바른 길에 접어든다. 이런 현상은 현재의 제품 및 서비스와 밀접하게 연계된 기업들에 한층 커다란 어려움을 안긴다. 실패로 끝난 실험은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이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근거처럼 보인다. 실제로, 과도하게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엄청난 규모의 실패 사례가 등장할 때마다 소비자들은 극적일 정도로 뛰어난 무언가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품는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Magnavox Odyssey, 가정용 게임기), 애플이 출시한 뉴턴(Newton, 태블릿 컴퓨터), 냅스터(Napster, 디지털 음악), 베타맥스(Betamax, 가정용 동영상 녹화), 1세대 전기 자동차처럼 매혹적이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사례를 떠올려보기 바란다. 기술 비용이 하락한 덕에 적절한 해결책을 활용할 수 있을 무렵이 되면 소비자들의 욕구도 완전히 달아오른다. 이때가 되면 기성업체들이 뛰어들기에는 너무 늦다. 이제 시장이 달아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선두업체들의 뒤를 따르는 전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작위로 진행되는 실험, 완전한 실패 등은 전략, 혹은전략적 중심축(strategic pivot)’의 변화가 다급하게 필요하다는 최고의 경고 신호일 수도 있다. 전쟁터에 비교할 수 있다. 아군 진지 가까운 곳에 탄환이 떨어졌다는 것은 적군이 혼란에 빠졌다거나 적군에게 목표물을 명중시킬 역량이 없다는 신호가 아니라 적군이 정확한 위치를 조준해 폭격을 쏟아붓기 전 아군 진지를 겨냥(포탄을 한 발 한 발 쏘며 표적을 공격)하고 있다는 뜻이다.

 

잘못된 신호와 변화를 거부하는 본능적인 태도가 더해지면 치명적인 덫이 형성된다. 예컨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파일 공유 서비스 냅스터가 2001년에 소송에 휘말려 모든 서비스를 중지하자 음반업계 경영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사의 시간에 맞춰 디지털 음원 유통 부문에 서서히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2001년 초에 아이튠즈(iTunes)를 시장에 선보였고 아이튠즈를 발판 삼아 지속적인 음악 재창조 산업에서 시장 우위를 확보했다. 냅스터는 소송에서 졌지만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음악 서비스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전자책 리더기의 경우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2007년에 전자책 리더기 킨들(Kindle)을 선보인 아마존은 소니, 소프트북(SoftBook) 등이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도 실패를 맛본 10년의 세월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다. 1세대 킨들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저장 공간, 배터리 수명, 디스플레이 기술을 제공했다. 하지만 아마존은 가상의 개인 서재에서 매끄럽게 책을 꺼내 읽고 다시 집어넣을 수 있도록 전용 무선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겼다.

 

아마존이 이뤄낸 진정한 혁신은 주류 고객이 적절한 기술 조합을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사의 강력한 브랜드와 고객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용자들이 첫째 날부터 방대한 양의 서적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킨들을 출시한 것이었다. 2007년에는 전자 서적 판매가 저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자 서적이 전체 서적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전자 서적은 출판 공급망의 모든 연결 고리를 완전히 휘젓고 있다.

 

제약 없는 전략. 빅뱅 파괴자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경쟁 전략에 관한 모든 지식을 뒤엎는다. 마이클 트레이시(Michael Treacy)와 프레드 위어시마(Fred Wiersema) 1995년에 발표한 <레드오션을 지배하는 1등 기업의 전략(원제: The Discipline of Market Leaders)>에서 기업은 자사의 전략 목표를 3개의 가치 규율(value discipline) 중 하나와 일치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트레이시와 위어시마가 제안한 3개의 가치 규율은 저가(운영상의 탁월성), 지속적인 혁신(제품 리더십), 맞춤형 제품(고객 친밀성)이다. 트레이시와 위어시마는 하나의 가치 규율을 선택하지 못하면혼란에 빠지고 만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역시 유사한 출발점을 제시했다. 포터는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 3개의 포괄적 전략을 활용할 수 있으며 하나 이상을 동시에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핀볼의 몰락

핀볼(pinball)의 쇠퇴와 몰락은 빅뱅 파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례다. 한때 번성했던 핀볼 산업은 단 몇 년 만에 완전히 파괴됐다. 오늘날 30개가 넘는 산업들이 몰락을 맞이하고 있듯이 핀볼 산업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수많은 미국 도시들이 수십 년 동안 핀볼 기계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자 핀볼 기계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전자 부품이 기계 부품을 대체하자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 흥미거리를 원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점차 늘어났고 독립형 아케이드라는 새로운 유통 경로는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아케이드 핀볼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이 넘쳐났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이 되자 핀볼 산업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Pong) 초기 버전을 비롯해 초창기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에는 핀볼의 몰락을 초래할 만한 요소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초창기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들은 단순했으며 핀볼을 실질적으로 대체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핀볼 제조업체와 핀볼 애호가들은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1978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가 출시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에는 조잡하게 묘사된 외계인이 등장한다. 줄지어 늘어선 외계인들은 화면 속에서 전자 드럼 소리에 맞춰 가차 없이 앞으로 밀고 나가며 줄이 바뀔 때마다 행진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이 게임은 이상하게도 중독성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묘사한 완벽한 비유와 같았다. 침략은 계속됐다.

처음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팩맨(Pac-Man)을 비롯한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들이 좀 더 많은 아이들을 아케이드로 끌어들이는 등 핀볼 비즈니스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1993년에는 핀볼 기계 판매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1994년에 빅뱅 파괴가 도래했다. 1994, 소니(Sony)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에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가정용 게임 콘솔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을 출시했다. 아케이드 핀볼 기기 가격은 최대 7500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수백 개의 게임을 지원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은 299달러에 불과했다. 소니는 순식간에 수백만 대의 플레이스테이션을 팔아 치웠다. 단기간 내에 아케이드 영업이 잇따라 중단되자 핀볼 판매는 급감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단 하나의 제조업체를 제외한 모든 핀볼 제조업체가 문을 닫고 말았다.

 

 

발리스(Bally’s)에서 라이선스 책임자로 일했던 톰 니먼(Tom Nieman)가정용 비디오가 마침내 시장에 출시되자 진짜 고난이 찾아왔다. 이제 젊은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사회적 교류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핀볼 시대의 종말을 초래했다고 이야기한다.

빅뱅 파괴의 모든 요소가 이 사례에 포함돼 있다. 가정용 게임 콘솔이 아케이드 기계와 경쟁 중이라는 경고 신호조차 등장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파괴가 진행됐다. 소니는 혜성같이 등장해 가격, 혁신, 고객 친밀성 등 모든 전략적 차원에서 핀볼을 무너뜨렸다. 이런 효과는 게임 시장 내 저가 세그먼트뿐 아니라 게임 산업 공급망 전반에서 관찰됐다.

주요 핀볼 제조업체 중 지금껏 핀볼 게임기를 제작하는 업체는 스턴(Stern) 하나뿐이다. 스턴은 향수를 자극해 소비를 유도하는 새로운 가정용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윌리엄스(Williams)는 비디오 슬롯 머신을 택했으며 발리스는 게임 시장에서 탈피해 카지노, 헬스 등 완전히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다. 나머지 핀볼 제조업체들은 모두 망했다. 

 

 

 

하지만 빅뱅 파괴자들은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빅뱅 파괴자들은 좀 더 낮은 가격으로, 좀 더 뛰어난 성능을 제공하고, 좀 더 뛰어난 맞춤형 제품이나 서비스를 앞세워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빅뱅 파괴자들은 처음부터 3개의 가치 규율 모두를 기준으로 주류 제품과 경쟁한다.

 

어떻게 좀 더 뛰어난 성과를 내는 동시에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가능할까? 컴퓨터의 역량이 나날이 빨라지고 저렴해지며 마이크로칩의 크기가 나날이 작아진다고 예견한 무어의 법칙이 여전히 핵심 동인이다. 하지만 이제는 컴퓨터의 역량을 세계적인 규모로 배치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저렴한 모바일 기기에 전달할 수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발생하는 3개의 주요 비용을 고려해 보자. 첫 번째는 부품 비용과 제조 비용, 두 번째는 내장 기술 및 지적 재산권으로 인한 비용, 세 번째는 부담해야 할 개발 비용이다. 오늘날의 기술은 모든 비용을 지속적이면서 극적인 방식으로 한꺼번에 낮춘다. 따라서 과거에 사용됐던 열등한 기술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다.

 

 

고객들 역시 이런 효과에 이미 익숙해진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저렴해지고 성능은 우수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업체들은 단순히 가격과 매출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상황하에서는 기존의 전략을 좀 더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다시 기존의 우수 고객에게 집중하거나 좀 더 뛰어난 품질이나 좀 더 낮은 가격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면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전혀 벌지 못할 수도 있다. 좀 더 엄격하게 전략 초점을 유지하려 들면 뒤이어 다가오는 파괴의 물결을 놓치게 된다.

 

휴대용 내비게이션 도구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 보자. 지도 제작은 소수의 기업과 비영리 자동차 동호회가 지배하는 성숙 단계의 산업이었다. 맵퀘스트(MapQuest), 야후 맵스(Yahoo Maps) 등 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료 인터넷 사이트에서 경쟁이 시작됐다. 그런 다음, GPS 위성 데이터를 토대로 실시간 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음성으로 방향을 안내하는 독립형/내장형 기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빅뱅 파괴를 이뤄낸 것은 전통적인 형태의 내비게이션 장치와 경쟁을 벌일 의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기기, 즉 스마트폰이었다. 구글 맵스 내비게이션(Google Maps Navigation) 앱은 고급형 GSP 기기가 보유한 사실상 모든 기능을 제공한다. 게다가 비용은 전혀 들지 않는다. 무료로 제공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앱을 하나 추가하기만 하면 된다. 구글 맵스 내비게이션은 지금까지 수백만 대의 스마트폰에 설치됐으며 계속해서베타출시 상태로 남아 있다.

 

구글 맵스 내비게이션은 3개의 가치 규율 모두를 기준으로 독립형 GPS 기기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 맵스 내비게이션이 비용 리더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구글 맵스 내비게이션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재출시된다. 이런 특성상 구글 맵스 내비게이션은 선도적인 혁신가로서의 지위도 갖게 됐다. 또한 구글 맵스 내비게이션은 휴대전화 주소록, , e메일, 옐프를 비롯한 각종 앱과 빈틈없이 통합돼 있기 때문에 고객 친밀성의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따라서 몇 해 동안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던 GPS 기계 산업이 급격한 하락세를 맞이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비게이션 앱이 출시된 지 2년 만에 가민의 시가총액은 70% 급락했다. 톰톰의 시가총액은 무려 85%나 줄어들었다.

 

빅뱅 파괴를 견뎌내는 방법

 

빅뱅 파괴는 여러 산업의 규칙을 잇따라 새로 쓰고 있다. 하지만 새로 쓰여진 규칙 역시 또다시 파괴의 물결이 찾아올 때까지만 유효할 뿐이다. 적응할 만한 시간이 거의 없는 셈이다. 빅뱅 파괴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대담한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다.

 

15년 전,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저서 <혁신가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서 기성업체들에 신규 진출기업이 저가 시장 고객을 공략하는 현상을 산업 변화의 초기 징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텐슨은 이런 현상을 남아 있는 시간이 다하기 전에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을 활용해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크리스텐슨은 연구를 통해 파괴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대응 방안을 실험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든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행운이 뒤따르면 자사가 보유한 기존 인프라와 규모의 우위를 활용해 신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고 신속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었다.

 

이 과정 중 어떤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가능하긴 했다.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빅뱅으로 인해갑작스런 몰락을 맞게 될 가능성을 고려해 보면 자체적인 대안을 개발할 만한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운영 중인 비즈니스의 규모가 경쟁에 도움이 될 정도로 신속하게 반응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수직 통합 공급망이 아니라 가상 통합 공급망을 통해 빅뱅 파괴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클라우드 인프라를 통해 빅뱅 파괴가 진행되고 배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속도가 빠르지만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자원을 토대로 진행되는 경쟁에 뛰어들면 기성업체의 운영 자산은 갑작스레 부채로 변질된다.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혜성과 충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성업체들이 빅뱅 파괴를 견뎌내고 번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4개의 전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빅뱅 파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라. 생존을 위해 경고 신호를 포착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초기 실험은 대개 실패로 끝난다. 따라서 갑작스레 떠나버린 저가 세그먼트 고객들이 보내는 익숙한 신호를 결코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급격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경쟁기업보다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보기에 무작위처럼 보이는 실험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를 해석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회사 안팎에서 통찰력을 토대로 명확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선지자를 찾아내 아무런 부담이 없는 개발에서 비롯된 소음을 걸러내야 한다. 모든 산업에는 이런 능력을 지닌 소수의 선지자가 있게 마련이다. 선지자들의 뛰어난 예측 능력은 천재성과 업계 내부 상황에 대한 완벽한 몰입을 토대로 한다.

 

필자들은 드라마에서 중요한 비밀을 폭로해 이야기 진행을 돕는 등장인물을 본떠 이런 선지자를진실을 말하는 사람(truth teller)’이라고 칭한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찾아내기는 쉬울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경쟁과 변화의 일선에서 근무하는 직원, 즉 고위급 경영진보다 한참 직급이 낮은 직원일 수도 있다. 아예 자사 직원이 아닐 수도 있다. 오랜 고객, 벤처캐피털리스트, 산업 분석가, 공상 과학 소설가 등도 얼마든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 언제 귀를 기울여야 할지 파악하기는 훨씬 더 힘들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별스러운 경우도 많다. 또한 이들의 명쾌한 태도가 오만함이나 완고함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Steven Job)와 같이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 인물, 빌 게이츠(Bill Gates), 앨런 케이(Alan Kay),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등 기술 부문의 유명 인사들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소득과 지출 패턴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토대로 도요타(Toyota)에 렉서스(Lexus) 출시를 권유한 유키야스 도고(Yukiyasu Togo)를 들 수 있다. 도고는 도요타의 운영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으며 뛰어난 혜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고급 브랜드에 투자하도록 도요타를 설득하기 위해 투자를 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압박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통찰력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형태로 전달될 수도 있다. 누구에게, 언제 귀를 기울여야 할지 익혀야 할 뿐 아니라 어떻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도 배워둬야 한다.

 

파괴적인 혁신에 잘 대처할 수 있을 때까지 파괴적 혁신의 진행 속도를 늦춰라. 파괴자를 인수할 준비가 되거나 자사가 직접 개발한 제품을 앞세워 경쟁에서 승리할 준비가 될 때까지 파괴자가 발명품을 통해 돈을 벌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최고의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빅뱅 파괴의 자유로운 성장에 불이 붙으면 빅뱅 파괴를 중단시킬 수 없다. 하지만 빅뱅 파괴를 개발한 사람들이 돈을 벌지 못하도록 만들 수는 있다. 대다수의 빅뱅 파괴자들은 초창기에 제품을 무료로 제공해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얻는다. 가격을 낮추는 방법, 장기 계약을 체결해 고객을 묶어두는 방법, 경쟁상대의 계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광고 회사, 그 외의 기업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방법 등을 활용하면 빅뱅 파괴자가 수익을 얻는 시기를 지연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곳에서 자사의 생존 자산을 활용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비디오 게임의 등장으로 핀볼 기계 시장에서 파괴가 시작되자 핀볼 기계 제조산업 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윌리엄스 일렉트로닉스(Williams Electronics, 현재는 WMS)는 가정용 게임에 뛰어들었다가 아케이드 기기로 진로를 수정했다. 그 후 WMS는 게임기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고 하이테크 부문인 슬롯머신 산업에 진출했다. WMS는 현재 슬롯머신 산업에서 번성하고 있다. WMS는 신기술과 관련해 자사가 무엇을 알아둬야 할지 파악한 다음 경쟁해야 할 혁신기업의 숫자가 적은 새로운 비즈니스에 신기술을 적용했다.

 

출구에 가까이 다가가고 신속한 탈출을 준비하라. 오랫동안 성공적이었던 전략조차도 갑자기 뒤집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비즈니스를 급격하게 수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고위급 경영진의 몫이다.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상대와 경쟁하려면 기존 시장에서 즉각 벗어나 한때 자사에 많은 가치를 안겨줬던 자산을 처분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성업체들은 대차대조표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회계 방식은 전문 지식, 브랜드, 특허, 기타 무형자산의 가치를 파악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빅뱅 파괴와 맞서 싸울 때는 이런 것들이 기존 자산 중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버리지 말아야 할 유일한 자산일 수도 있다. 자사에 이런 자산이 있으며 이런 자산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은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다른 자산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빅뱅 파괴가 시작되면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지기 전에 불필요한 기술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가 초래할 위험에 대비할 목적으로 향후에 일정한 가격을 받고 공장을 매각하기로 계약을 체결한다. 공장을 짓기도 전에 계약부터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역사를 지닌 뉴욕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NYSE)를 인수할 계획을 발표한 원자재상품거래소 인터콘티넨탈익스체인지(IntercontinentalExchange·ICE)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금융 거래 방식이 물리적인 방식에서 전자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뉴욕증권거래소라는 브랜드 자체가 잔재 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빅뱅 파괴자의 등장이 임박해지면 기성업체들은 자사의 M&A 전략을 냉정하게 재평가해야 한다. 고객이 신기술로 옮겨가기 시작하면 우아한 퇴장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일단 고객의 이동이 시작되면 기껏해야 급매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보더스그룹(Borders Group)은 결국 인수되지 못했다. 보더스는 저가와 뛰어난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운 온라인 경쟁업체와의 대결에서 실패한 수많은 오프라인 소매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청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경쟁에서 패한 업계 선도업체가 특허 포트폴리오의 가치와 손에 쥐고 있는 현금을 더한 것이 곧 자사의 가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결국 파산을 맞이한 사진업계의 대형업체 코닥(Kodak) 역시 최근에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새로운 유형의 다각화를 시도하라. 경기를 타는 순환주기적 산업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항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다각화를 활용해 왔다. 산업 변화의 주기성이 약화되고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비즈니스를 보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지필름(Fujifilm)은 오랫동안 필름 비즈니스 부문에서 패자로 기억돼 왔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 기술의 등장으로 필름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후지필름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나노 기술에서부터 평면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부차적인 기술을 토대로 하는 필름 이외의 제품과 서비스로 적극 전환한 덕이었다. 일례로, 후지필름은 사진이 바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화학 공정을 수정해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톰톰은 지난 6월에 애플과 모바일 지도 서비스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자동차 내비게이션 시스템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직접 혁신을 선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쉽게 확장하고 실험할 수 있으며 단기간 내에 규모를 늘리고 줄일 수 있는 플랫폼을 바탕으로 미래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빅뱅 파괴자가 수익을 내는 기간이 짧을 수도 있다. 또한 다른 누군가가 자사보다 앞서 파괴를 시도하기 전에 자사가 직접 새로운 파괴를 추구할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 아마존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마존은 여러 비즈니스로 구성된 하나의 집합이라기보다 시장 상황의 변화에 맞춰 자사가 보유한 무형 자산(전자 비즈니스 분야의 전문 지식, 수천 개의 다른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뛰어난 효율성, 소프트웨어 가상 현실화 부문에서의 선도적 입지)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기술 플랫폼이다. 아마존은 서적뿐 아니라 온갖 것을 판매하며 제3자 재판매업자에게 핵심 기술을 대여한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은 자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업으로부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를 아웃소싱 받아 이들에게 온라인 소매 및 클라우드 컴퓨팅 부문의 전문 지식을 제공한다.

 

파괴는 이미 진행 중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빅뱅 파괴를 포착할 수는 없다. 빅뱅 파괴를 중지시킬 수도 없다. 빅뱅 파괴를 극복할 수도 없다. 옛날 방식의 파괴는 혁신가에게 딜레마를 안겼다. 하지만 빅뱅 파괴는 혁신가에게 재앙을 안긴다. 또한 모든 산업에서 활동하는 경영자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빅뱅 파괴를 두려워하며 식은땀을 흘리게 될 것이다.

 

빅뱅 파괴자의 등장은 기술 집약적인 기업이나 정보 집약적인 기업에 특히 더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산업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1800년대 말부터 수많은 버전의 전기 자동차를 목격해 온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기 자동차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생기업에서부터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전기 자동차를 선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초기 수용자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있다. 최근 충전 속도가 빨라지고 좀 더 신뢰할 만한 배터리가 출시되는 등 오직 전기만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자동차의 핵심 기술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동차 업계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빅뱅이 진행 중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결제 방식 또한 신용카드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할 태세다. 어쩌면 지금 현재 결제 서비스 부문에서 지배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업체 외의 다른 업체가 내놓은 앱이 승자가 될지도 모른다. 케냐의 엠-페사(M-Pesa)를 비롯한 혁신적인 지불 서비스들이 개도국 시장에서 단기간 내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선진국에서도 적절한 방안이 제대로 결합되기만 하면 혁신적인 지불 서비스가 단기간 내에 커다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규제로 인해 경쟁이 제한되는 산업에서조차 엄청난 규모의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빅뱅 파괴자의 압력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는 민영화와 온라인화 바람이 거세다. 이는 곧 공공 교육기관들이 교육기관의 핵심적인 역할이랄 수 있는 교육 서비스를 가시적으로 개선시키는 기술에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의료기관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환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애써 외면한 채 원격 의료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규제가 엄격한 택시 시장 및 리무진 시장은 우버(Uber, 고객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차량 서비스를 주문하고 대금을 지불하며 휴대전화에 장착된 위치 서비스를 이용해 차량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를 비롯한 새로운 자동차 서비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전문 서비스 산업, 제조, 유통, 소매 등 성숙 단계에 접어든 수많은 산업 세그먼트에서 이미 초기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바 있다. 현재 실험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규모를 키우기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파괴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빅뱅 파괴가 등장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빅뱅 파괴에도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 빅뱅 파괴는 부담 없는 개발, 자유로운 성장, 제약 없는 전략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재빨리 익히는 기업에 엄청난 잠재력을 선사한다. 좀 더 역동적이고 불안정할 뿐 아니라 좀 더 수익성이 높은 무언가가 자사의 기존 비즈니스를 대체하게 될지도 모른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다. 다시 말해서, 여리고 작은 목소리가 아니라 커다란 함성과 함께 변화가 시작된다.

 

번역 |김현정 translator.khj@gmail.com

 

 

래리 다운즈(Larry Downes)는 액센츄어 고성과 연구소(Accenture Institute for High Performance)의 특별 연구원이다. 다운즈의 최신작으로는 <파괴의 법칙, The Laws of Disruption, 베이직 북스, 2009)>이 있다. F. 누네스(Paul F. Nunes)는 액센츄어 고성과 연구소의 글로벌 연구 관리 이사이며 곡선 뛰어넘기, Jumping the S-Curve,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출판부, 2011)>의 공동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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