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맥킨지쿼털리>에 실린 ‘Developing Winning Products for emerging markets’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자동차 제조업체 A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며 매우 경쟁이 치열한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상용 트럭을 개발한 후 대대적인 축하를 받으며 시장에 출시했다. 이 트럭은 좀 더 오랫동안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운행과 유지보수 비용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A사의 경영진은 트럭 이용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트럭 주인에게 많은 이윤이 돌아가고 결국 자사에도 좀 더 많은 이윤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판매 실적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인도에서는 열악한 도로 상황과 인프라가 자동차가 가장 효율적인 속도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현지 제품들과 비교하더라도 A사의 트럭 가격은 경쟁력이 있는 편이었다. 선진국에서 판매되는 차량과 비교하면 가격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자들은 자산 이용률이 높아질 가능성만 믿고 그만한 비용을 투자하려 들지 않았다.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장난 삼아 인도시장에 진출한 서투른 다국적 기업에 관한 이야기일까? 천만에. A사는 인도에 본부를 둔 회사였다. 물론 다국적 기업들이 현지 기업들보다 이런 식의 실패를 겪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A사의 사례는 빠르게 변화하는 신흥시장에서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준다.
인도의 또 다른 자동차 회사 B사도 비슷한 시기에 A사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A사의 트럭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된 B의 상용차는 인도 시장의 특성에 맞게 제작됐다. 정체가 심각한 인도의 도로 위에서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기량이 적고 저렴한 엔진이 장착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B의 상용차 역시 실패를 면하지 못했다. 신뢰할 수 없는 트럭이라는 부당한 평판이 문제가 됐다. B는 결국 이윤 극대화를 위해 권고 중량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많은 양의 화물을 적재한 트럭 소유주와 운영자들이 문제지 자사의 차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과적 차량에 장착된 엔진이 출시 후 2∼3년 만에 줄줄이 고장 나자 고객들이 분노했고 결국 차량 판매가 급감했다.
이런 사례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신흥시장(고객이 극도로 가격에 민감하며 까다로운 환경)에 내놓을 제품을 설계하고, 개발하고, 제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제품 개발 접근방법을 재검토하고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해 접근방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업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필자들은 이런 프로세스를 ‘가치 설계(design to value)’라 칭한다. 가치 설계는 전통적인 방법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 고객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전달할 방법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여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또한 아직까지 그 어떤 조직도 이와 같은 도전과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품 개발에 앞장서는 선도기업들이 활용하는 관행을 살펴보면 신흥시장에서 극단적인 경쟁과 씨름하는 기업들에 도움이 될 만한 3개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향후 10년 동안 신흥시장 내의 소비가 세계 경제 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서둘러 적응해야 할 필요성 또한 나날이 커질 것이다.1
1.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라
신흥시장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신흥시장 내의 경쟁 역시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탓에 고객 통찰력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고객 통찰력을 확보하기는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부실한 인프라, 방대한 거리,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고객 세그먼트로 인해 전통적인 정보 수집 접근방법(민족지학적 연구나 포커스그룹 등)을 활용하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 소모가 뒤따르게 됐다. 따라서 최고의 기업들은 고객의 요구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그 어떤 기회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기회조차 놓치지 않는다.
충돌 워크숍(collision workshop·고객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공급자, 마케터, 제품 엔지니어, 기타 회사 대표 등이 참석)도 도움이 된다. 충돌 워크숍은 고객에 관한 통찰력을 신속하게 생성하고 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로-테크 방법을 제안한다. 또한 충돌 워크숍은 기업이 차후에 좀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토론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회의는 벨랩(Bell Labs), IBM의 왓슨리서치그룹(Watson Research Group) 등 R&D 부문 선구 조직들이 공식적이고 종합적인 R&D 실험실을 통해 확보하는 통찰력을 좀 더 저렴하고 탄력적인 방식으로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이 잘 알려진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충돌 워크숍의 중요한 목표는 평소에 서로 상호 작용하지 않는 기능 조직 대표들을 한데 모아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사고 습관에 도전하는 것이다.2
충돌 워크숍을 통해 얻은 통찰력은 매우 유용할 수도 있다.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아시아 시장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 C사는 휠 비즈니스 부문에서 새로운 틈새시장을 찾기 위해 충돌 워크숍을 활용했다. C사의 한 마케터는 승용차 관련 제품에 대해 논의하던 중 어느 고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C사의 휠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마케터는 지나가는 말로 슬쩍 언급했지만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엔지니어는 마케터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엔지니어들은 반직관적인 제안서를 내놓았고 C사는 엔지니어들이 제출한 제안을 수정한 후 이들이 제안한 휠(무게를 줄이고 연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좀 더 높은 등급의 강철로 만든 휠)을 채택했다. 새로 도입한 강철은 값이 좀 더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바퀴 제작에 투입되는 철강 양이 줄어든 탓에 총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대규모 통신/데이터 서비스 공급업체 D사는 규모가 작은 2, 3급 도시에 위치한 B2B 고객들이 대도시에 위치한 고객과 어떻게 다른지 논의하기 위해 충돌 워크숍을 활용했다. 마케팅 전문가와 가격 전문가가 제품 엔지니어와 협력해 논의를 하던 중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대도시에 위치한 비즈니스 고객들에게는 약 100%에 가까운 네트워크 가동을 보장하지만 중소도시에 위치한 고객에게는 네트워크 가동 시간이 약간 부족할 수도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일부 고객들에게 가격 할인을 제공할 수도 있는가’라는 질문이 곧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D는 논의를 통해 2급 도시에서 활동하는 일부 고객을 상대로 가격을 깎아줄 수 있으며 가격 인하를 단행할 경우 해당 시장에서 매우 높은 경쟁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D는 다른 네트워크 구조, 자사의 표준형 네트워크-스위칭 장비를 재설계해 좀 더 간편한 장비를 만들어 활용하면 고객 응대 비용을 4배 줄일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기업이 생각을 뒤집는 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방법은 전통적인 경쟁상대 외의 다른 기업을 통해 설계 관련 아이디어를 확보하는 것이다. 저가를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는 전자제품 제조업체 E는 자동차 업계에서 사용되는 도색 기술을 연구해 자사의 선풍기 도색 기술을 향상시켰다. 그때까지는 E의 경영진은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를 앞세워 자본 대신 노동력을 투입하는 쪽을 선호하는 등 항상 기술적인 방안에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동차 회사들이 사용하는 접근방법을 활용하면 페인트 한 겹의 두께를 미리 정해놓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생각을 바꿨다. 결국 페인트 비용이 4% 절감되자 새로운 장비에 투입되는 비용보다 많은 돈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농사 장비 제조업체 F는 자사가 경쟁하고 있지 않은 다른 차량 카테고리로 눈을 돌려 신형 저가 모내기 기기에 장착된 갈고리 장치를 좀 더 단순하고 저렴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냈다. F는 이런 생각을 다른 제품에도 적용해 또 다른 저가 제품 라인에서 비슷한 수준의 개선을 이뤄냈다.
신흥시장에 맞는 특징을 찾아내고 우선순위를 정하려면 질서가 필요하다. 그림으로 살펴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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