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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tting the 'Relationship' Back Into CRM

고객관계관리? ‘최고의 우정’을 나눠라

수전 포니어 | 84호 (2011년 7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11년 봄호에 실린 보스턴대 경영대학원 수전 포니어 부교수, 시몬스 경영대학원 질 에이버리 부교수의 글 ‘Putting The ‘Relationship’ Back Into CRM’을 번역한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관리자들은 관계 마케팅(relationship marketing)에 매료돼왔다.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성이 높은 맞춤형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에 매력을 느낀 기업들은 거래의 가치를 양적으로 보여주는 고객관계관리(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했다. CRM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가트너(Gartner Inc.)가 실시한 연구 결과 관리자의 75%가 다음해에 CRM 투자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1  하지만 대부분의 CRM 시스템은 고객의 수익성 기여도에 따라 고객을 분류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접근방법이 손익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을 일대일 관계(one-to-one relationship)로 전환시키는 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 경제학과 비용을 바탕으로 하는 일차원적이고 기업 중심적인 고객 수익성 관리 방안으로 변질돼버렸다. 고객의 수익성만을 관리하면 고객이 기업 및 브랜드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나가며 그런 방식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고객 관계의 민감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많은 기업들이 CRM 시스템을 활용해 매출 기여도는 낮은 반면 응대 비용이 높은 고객을 찾아내 제거해버리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들은 최근 900명의 고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설문조사에서 30%의 응답자가 상업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기업에 의해 관계를 정리 당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필자들은 이런 조사 결과를 보고 ‘기업들이 고객의 구매 데이터나 마케팅 비용의 효율성 분석을 그만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만큼 어리석진 않다. 대신, 필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CRM 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고객평생가치(customer lifetime value)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제한될 수 있으며 고객 관계의 상황이나 잠재력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장 기본적인 CRM 프로그램인 충성도 프로그램(loyalty program)은 관계와 관련된 현실에 대처하거나 관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CRM 프로그램이 고객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들어두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CRM 프로그램으로 인해 비용은 높고 가치 창출 기여도는 낮은 고객이 생겨나는 건지도 모른다. 어떤 말로 설명을 하더라도 많은 기업들이 택하고 있는 CRM 방식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
 
급진적인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관리자가 CRM에서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돌아보고 자신이 가치 창출 및 가치 파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한다면 얼마든지 중대한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 (‘관계에 새로운 관심을 쏟기 위한 노력’ 참조.) CRM에서 ‘R(관계)’ 부분에 관심을 집중하면 좋은 관계를 더욱 개선시키고 나쁜 관계도 바로잡을 수 있다.
 
   연구 내용
필자들은 본 연구의 초석이 되는 브랜드 관계에 개입하고 있는 소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3개의 정성적 데이터 세트를 수집했다. 이를 포함한 6개의 연구가 필자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 연구 데이터는 피팟(Peapod)의 고객을 상대로 실시한 22건의 인터뷰를 통해 확보했다. 피팟은 온라인 식품 쇼핑 배달업체로 네덜란드의 다국적 식품회사 로열아홀드(Royal Ahold)가 소유권을 갖고 있으며 매사추세츠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스톱앤숍(Stop & Shop)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필자들은 피팟의 소비자들과 브랜드 간의 관계를 추적하기 위해 2년에 걸쳐 총 4회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 번째 데이터 세트는 10회의 중대한 사건 관련 인터뷰인데 자동차, 의류, 하드웨어 소매업체, 통신 서비스 업체, 신용카드, 미용실, 호텔, 식당 등 다양한 제품 및 서비스 브랜드와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했다. 온라인 연구 패널을 활용해 18세에서 65세에 이르는 9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설문 응답자들에게는 자신이나 지인이 고객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 적이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세 번째 데이터 세트는 매사추세츠에서 유명 디자이너가 제작한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아웃렛 업체 필린스베이스먼트(Filene’s Basement)의 오랜 고객이었으나 응대 비용이 너무도 높아 결국 고객 지위를 박탈당한 인물에 관한 사례 연구를 통해 확보했다. 연구 내용을 보강하기 위해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관계를 양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도 사용했다. 앞서 공개한 연구 자료에서 설명한 것처럼 필자들은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를 소비하는 고객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브랜드 관계를 구분하는 52개의 측면을 찾아냈다. 필자들은 인간 관계 및 브랜드 관계에 관한 각종 연구에서 확인한 여러 관계 중 무작위로 18개의 관계(최고의 친구, 적수, 학대 당하는 배우자, 어릴 적 친구 등)를 선정한 다음 225명의 성인에게 18개의 관계 중 자신이 경험한 4개의 관계에 관한 사례를 들려줄 것을 요청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52개의 측면에서 각 브랜드 관계를 평가했다. 다차원척도법(multidimensional scaling)을 통해 7개의 특성 변수가 브랜드 관계에 대한 평가 결과의 편차에 78%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브랜드 관계 평가 결과에서 상당한 편차를 초래한 특성 변수는 1) 협동적이고 조화로운지, 아니면 경쟁적이고 적대적인지, 2) 감정적이며 이미 투입된 요소를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기능성을 중요시하는지, 3) 강하고 심층적인지, 아니면 약하고 피상적인지, 4) 동등하고 균형이 잡혀 있는지, 아니면 편향돼 있고 위계적인지, 5) 장기적인지, 아니면 단기적인지, 6) 상호의존적인지, 아니면 독립적인지, 7) 융통성이 있고 자발적인지, 아니면 억지스럽고 강제적인지 등 7가지다. 필자들은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와 위 요인들을 활용해 다양한 관계의 형태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고객관계관리에서 ‘관계’ 부분에 다시 초점을 맞추기 위한 노력
필자들은 소비자가 브랜드 및 기업과 맺고 있는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초기 관계,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관계, 종료된 관계를 대변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뷰 및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구 내용’ 참조) 필자들은 연구를 통해 흔히 사용되는 CRM 기법이 실패로 돌아가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를 찾아냈다. 첫째, 기업들은 고객관계라는 것이 비단 소비자와의 관계일 뿐 아니라 사람(다양하고 복잡한 삶을 사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CRM 프로그램은 구매 정보를 바탕으로 운영될 뿐 좀 더 깊은 관계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반영돼 있지 않다. 둘째, 관계라는 것은 그 형태와 규모가 다양하다. 따라서 기업들은 단순히 고객의 충성심을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유형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관계의 유형이 다르면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달라진다. 따라서 관리자들은 관계의 유형에 맞춰 CRM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들은 관계가 쌍방향으로 이뤄지며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가 발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관리자들은 수익성이 높은 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내로 시선을 돌려 고객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역동적으로 변하는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는 데 실패해 상당한 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관계가 끊어지곤 한다.
 


첫 번째 원칙: 고객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것 현대의 CRM 시스템은 고객을 ‘소비자’로 바라보며 고객의 구매 기록을 감시하고 고객 응대 비용을 계산한다.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 교차판매 가능성, 고객평생가치 등의 수치는 기업 의제(company agenda)를 발전시켜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경제적인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이런 수치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기업이 상대하는 고객이 인생을 살아가다가 의미 있는 브랜드와 맞닥뜨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구매 데이터 및 인구 통계 데이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시스템과 개별 소비자가 느끼는 기분, 개별 소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개별 소비자의 행동 방식 등을 고려하는 시스템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구매 데이터와 인구 통계 데이터를 수집하면 구매자(purchaser)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relationship)를 구축하려면 그 구매자가 구매를 하도록 유도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정보를 확보하는 것과 그 정보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건 다른 문제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복잡한 생각을 조그맣고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정보 속에서 의미(meaning)를 찾아내려면 정보의 조각들을 좀 더 크고 관념적인 덩어리로 조합해나가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정보와 의미는 서로 어긋나는 경향이 있다. 즉,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전후 맥락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보가 있을 때에는 전후 맥락이 불필요한 존재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IT 전문가들이 설계한 현재의 CRM 시스템은 정보 관리에 최적화돼 있다. 브랜드가 고객 개개인의 삶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가는지를 해석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CRM 시스템을 활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궁금하다면 인터넷을 통해 식료품을 판매하는 로열아홀드(Royal Ahold)의 자회사 피팟(Peapod)이 50세의 여성 고객 브렌다(Brenda)를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보자. 브렌다는 인근의 대학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며 학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딸이 죽은 후 홀로 남겨진 손자의 후견인으로 활동하는 등 무척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피팟은 브렌다가 바쁜 삶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너무도 중요한 존재였다. 브렌다가 온라인상에서 필요한 식료품을 주문하면 남편이 인근에 있는 가게에서 식료품을 받아 집으로 가져왔다. 브렌다는 열흘 남짓한 간격으로 새로운 식료품을 주문했다. 피팟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한 지 2달이 되자 브렌다는 피팟의 서비스에 ‘중독’됐고 다른 매장에서 일절 식료품을 구매하지 않았다. 브렌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움을 주겠다는 일종의 계약과 같았다. 서비스가 제대로 진행되기만 한다면 내게 주어진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해내면서도 손쉽게 식료품을 구매해 냉장고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브렌다가 피팟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후 피팟과 브렌다 간의 우호적인 관계가 갑자기 끝나버렸다. 피팟이 사전 공지도 없이 식료품 배송 정책을 변경했다. 피팟은 식료품을 배송 받으려면 브렌다가 자택에서 30분이나 더 떨어진 곳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 가야 한다고 통보했다. 브렌다가 배송 정책이 변경됐다는 사실을 맨 처음 발견한 때는 새벽 1시였다. 당시 브렌다는 온라인상에서 필요한 식료품을 주문하려 하고 있었다. 브렌다가 주문서를 작성하자 피팟의 웹사이트에는 ‘요청 처리 불가’라는 메시지가 떴다. 브렌다는 ‘배신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브렌다는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팟이 느닷없이 규칙을 바꿔버린 셈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그런 기업들과 같은 태도였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문을 닫아버려 일을 하러 출근한 직원들을 당황시키는 그런 기업 말이다.” 브렌다는 가까운 곳에서 식료품을 배송 받는 게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피팟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브렌다는 이미 온라인상에서 피팟 측에 방대한 양의 개인적인 데이터를 제공해왔고 피팟에 수차례 연락해 자신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구체적인 상황들을 설명해왔다. 브렌다가 한층 커다란 분노를 느낀 이유는 피팟이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할 계획을 갖고 있으면서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항상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수화기를 들어 내게 전화를 걸지 않은 이유가 뭘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그런 식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후 브렌다는 다음 구매 시에 사용할 수 있는 25달러짜리 쿠폰을 받았다. 브렌다는 모욕감과 동시에 실망감을 느꼈다. 브렌다는 당시 자신이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묘사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다니.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도록 대처를 해야 마땅하거늘. 피팟 측이 모든 걸 망쳐놓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해.’”
 
   관계에 새로운 관심을 쏟기 위한 노력
기업은 고객 가치에 대한 사고 방식과 고객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을 재정의해 고객 관계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기존의 CRM 기법에 포함돼 있는 일부 요인에 변화를 주면 중요하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고객 개개인이 처해 있는 전후 사정이 고객의 브랜드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전후 사정에 관한 문맥적인 단서들이 흩어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한 관심을 쏟는다면 얼마든지 그 단서를 활용해 한층 튼튼한 관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다. 물론 문맥적인 단서를 활용하려면 기업이 적절한 ‘데이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CRM 예산을 갖고 있는 기업은 구매 데이터를 수집·관리하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비용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차별적인 우위를 확보하려면 강력한 데이터를 다량 확보해 고객의 요구 및 기대, 브랜드가 고객의 삶에 도움을 주는 방식에 관한 좀 더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래를 하는 동안 고객이 보내오는 미묘한 신호를 포착한 다음 그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해석해야 한다.2  메인주에 위치한 소매업체 엘엘빈(L.L. Bean),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등의 기업들은 고객과 상호작용을 할 때 대화 내용을 메모로 남겨 고객이 처한 포괄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로 활용하도록 서비스 담당자들을 훈련시킨다. 엘엘빈의 서비스 담당자들은 고객이 제공하는 구체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고객이 구매를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제공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자신의 아들이 신발을 험하게 신는다는 얘기를 하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쇼핑 시에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다.) 메리어트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 소유의 리츠칼튼(Ritz-Carlton) 호텔은 ‘미스티크(Mystique: 신비롭다는 뜻을 갖고 있음)’라는 시스템을 통해 룸 서비스 쟁반에 남겨진 과일의 종류에서부터 감기 초기 증세에 이르기까지 고객에 관해 관찰 가능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3  고객과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서비스 관련 상호작용이나 매장 방문 등을 통해 구매자의 행동을 추적할 때 고객에 관한 문맥적인 데이터를 습득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면 고객의 요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고객관계관리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진정한 이해를 원한다면 구매와 소비에 국한되는 통찰력을 개발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이해를 원한다면 해당 고객이 갖고 있는 포괄적인 감정 상태에 공감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특정한 경험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이해해야 한다. 피팟의 서비스를 이용한 또 다른 고객 버지니(Virginie)의 사례를 살펴보자. 버지니는 식료품 쇼핑을 너무 싫어해 이따금씩 주방에 쌀 한 톨조차 없을 때도 있는 30대 초반의 전문직 독신 여성이다. 버지니는 온라인에서 식료품을 주문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매력적’이라는 단어로도 표현이 부족할 만큼 굉장했다고 얘기한다. 피팟을 발견한 후 머지않아 버지니는 매주 식료품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버지니는 프라이버시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이 먹을 식료품을 골라 들고 집으로 배달을 오며 이따금씩 자신이 구매한 제품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게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피팟이 버지니에게 제공한 인센티브는 버지니의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피팟은 이따금씩 ‘쇼핑을 하신 지 제법 됐군요. 25달러 할인 쿠폰을 보내 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어느 날 식료품을 배달하러 온 사내가 화장실을 좀 쓸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버지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버지니는 피팟이 자신과 피팟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암묵적인 규칙을 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팟은 버지니의 감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규칙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피팟의 소비자 조사에서 버지니가 우려하는 부분이 다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버지니는 피팟 측에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직접 표현한 적이 없었다. 피팟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버지니가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버지니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버지니는 필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몇 차례나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버지니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지 않았던 건 피팟이 버지니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선도기업들은 고객이 걱정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면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고객의 숨겨진 우려를 파헤치기 위해 혁신적인 시장 연구 방법을 활용한다. 위스콘신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오토바이 제조업체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은 할리 라이프스타일대로 살아가는 전문 민족지(誌) 연구가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자사 중역들에게 현장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고객의 경험에 관한 심도 깊은 통찰력을 직접 체험할 것을 요구한다.4  P&G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심도 깊은 은유적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특허 시장 조사 도구인 ZMET를 활용한다.5  ZMET의 서술적인 분석 기법은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준다. 고객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들도 있다. 예를 들어 시맨틱웹(semantic Web·차세대 지능형 웹) 응용 프로그램들은 지능형 에이전트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사내의 CRM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수집한 정보와 외부에서 웹이 수집한 정보를 탐색한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할 생각을 갖고 있는 관리자라면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서 고객의 삶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 원칙: 충성심 너머로 시선을 돌릴 것 현재 기업들이 사용하는 CRM 시스템은 고객의 유형이 다양하며 모든 부류의 고객이 똑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비용과 평생 가치를 기준으로 시장을 세분화해 애초에 고객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투입(inputs)이 아니라 관계의 결과(outcomes)를 중심으로 전략을 구축하는 우를 범하는 기업이 많다. 연구를 통해 고객은 브랜드와 다양한 유형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6  필자들은 총 18종류의 브랜드 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를 제작했다. (‘브랜드 관계 조망’ 참조.) 무척 돈독하고 영구적인 관계가 있는 반면 피상적이고 덧없는 관계도 있다. 감정적인 요구나 사회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좀 더 기능적인 면에 치중하는 관계도 있다. 권력의 측면에서 봤을 때 관계가 위계적인 경우도 있고 평등한 경우도 있다. 관계의 분위기가 긍정적인 경우도 있고 부정적인 경우도 있다. 브랜드 관계의 범위는 무척 다양했다. ‘최고의 우정’, ‘중독’, ‘바람 피우기’ 등 감정적으로 강력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 관계의 종류 역시 다양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충성스러운 ‘브랜드 결혼(brand marriage)’ 관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편협하게 브랜드 결혼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브랜드 특성에 가장 적합한 관계 유형에 집중하고 해당 관계 유형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면 점진적으로 가치를 높여가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들은 연구를 통해 각기 다른 여러 관계 유형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잠재력을 발견했다. 잠재력을 실제 수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각 관계의 기저에 깔려 있는 계약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관계 계약은 관계의 규범 및 조건을 설정하는 토대가 되며 관계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계약의 유형에 따라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자원의 양이 달라진다. 따라서 계약이 경제적 보상을 지배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필자들은 9개의 상업적 관계를 둘러싼 계약에 대해 연구를 해보았다. 감정적인 측면을 따져보면 ‘최고의 우정’과 ‘결혼’은 비슷한 점이 있지만 관계 규칙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결혼은 주위 환경이 어떠하든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사회적 지지를 받는 계약이다. 반대로 최고의 우정은 상호 이익을 기준으로 하며 자발적인 관계다. 결혼의 기반은 헌신과 사랑, 정절이지만 최고의 우정은 친밀함과 호혜를 기반으로 삼는다. 결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장벽을 세우고 그 안에서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런 행동은 우정의 핵심 원칙에 위배된다.
 
할리데이비슨은 오랫동안 고객과의 결혼을 통해 고객의 브랜드 충성심을 키워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의 경영진은 최고의 우정을 구축하는 게 좀 더 적절하고 전략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고의 우정이 할리데이비슨의 문화를 정의하는 형제애(brotherhood) 정신과 좀 더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로 고객 응대 수칙이 새로 쓰여졌고 할리데이비슨의 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수칙에 따라 고객을 상대했다. ‘친구는 동등하다. 권력이나 지배력에 따라 계층이 결정되는 지배구조를 지지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결코 상대방을 잘 모르겠다거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비추어서는 안 된다. 그런 뜻을 보이면 우정의 기반이 되는 친밀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친구가 비밀리에 공유하고자 하는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친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기꺼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7 할리데이비슨의 새로운 지침은 직접 마케팅 방식에서부터 제공되는 프로그램, 지역사회 현장 담당자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 개발 중인 고객 데이터베이스의 유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필자들은 연구를 통해 다른 범주의 관계에 대한 규범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최고의 고객’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며 기업이 자신을 특별하게 대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부류의 고객들은 편향된 방식으로 관계의 가치를 환산해 자신이 실제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브랜드와 ‘바람 피우기’에 해당되는 관계를 갖고 있는 고객들은 높은 수준의 감정적인 보상이 유지되기를 기대한다. 기업들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객의 흥분감을 지속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면 ‘파트너’의 범주에 속하는 고객은 자신과 기업 모두에 도움이 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타협을 하고 협상을 한다.
 
브랜드 관계 조망
필자들은 225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다양한 유형을 보여주는 지각도(perceptual map)를 제작했다. 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총 7개의 특성 변수, 즉 1)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지, 2) 상징적인지, 아니면 기능적인지, 3) 강한지, 아니면 약한지, 4) 균형이 잡혀 있는지, 아니면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지, 5) 장기적인지, 아니면 단기적인지, 6) 독립적인지, 아니면 상호의존적인지, 7) 자발적인지, 아니면 제한적이고 강압적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총 18종류의 브랜드 관계를 보여주는 이 지도는 사람과 브랜드 간의 관계가 갖고 있는 다양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제 1사분면(고객의 충성심을 구축한다고 얘기할 때 대부분의 관리자들이 집중하는 부분)에도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6개의 브랜드 관계 유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위와 같은 관계의 범주를 생각했을 때 선도기업들은 고객과의 관계를 좀 더 수익성이 높은 방식으로 협상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첫째, 관리자들이 고객 포트폴리오 내의 관계 유형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다양한 유형의 관계에서 가치 창출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찾고자 할 때 CRM 소프트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원재료가 되는 고객 데이터는 제한적으로 도움이 될 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매출 잠재력이 낮은 고객에게 할당되던 자원을 좀 더 수익성이 높은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사용하는 차원에서 그칠 뿐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단순하다. 실제로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고객 포트폴리오 내에 있는 관계의 유형 및 각 유형에 해당되는 고객의 상대적인 숫자를 파악해야 한다. 이런 정보가 있어야만 어떤 관계에 집중할지 선택하고 각 고객과 맺고 있는 계약의 세부적인 규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프로그램 및 상호작용에 관한 규범을 설계해 유지 및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자원을 할당할 수 있다.
 


세 번째 원칙:쌍방향 관계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 시장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기업들은 성공적인 고객 관계에 대한 공을 자사의 것으로 돌리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고객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을 제거하는 것은 관계 마케팅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사실 필자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어려운 부분은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동안 필자들이 경험한 것을 미뤄볼 때 오늘날 상업적인 관계 중 상당 부분은 갈등으로 얼룩져 있으며 대부분의 기업들은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잽싸게 고객을 비난하고 나선다. 좋은 역할이건 나쁜 역할이건 기업이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CRM 시스템이 효과적이다.
 
인정을 하건 하지 않건, 많은 기업들은 부지불식 간에 고객의 나쁜 행동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통신업계는 서비스 업체를 변경하는 고객에게 현금이라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피팟의 경우 배송 스케줄에 관한 규칙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고객의 수가 점차 늘어나자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마지막 순간에 배송을 취소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배송 시간을 미리 지정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피팟은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었고 고객 응대 비용도 증가했다. 미국 최대의 가전 소매업체 베스트바이(Beset Buy)는 이와 같은 고객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자사가 고객의 나쁜 행동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되돌아봤다.8  자사의 관행을 돌아보던 베스트바이는 마진이 낮은 제품을 다량 구매해 되파는 고객, 물건을 반품한 다음 똑같은 제품을 한층 저렴한 중고 가격으로 재구입하는 고객, 인터넷을 뒤져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을 찾아낸 다음 베스트바이의 최저가 약속을 들먹이며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 등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베스트바이 경영진은 이런 행동들에 대해 고객을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은 베스트바이의 가격 중심 판촉, 매장 정책, 판매 전술이 소비자들의 그런 행동을 부추긴 꼴이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베스트바이는 제품 믹스를 수정해 마진이 낮은 미끼 상품(loss leader)을 덜 강조하고 미끼 상품에 집착하는 고객을 떨어낼 수 있도록 판매 홍보 전략을 수정했다. 베스트바이는 소비자의 권리를 남용하는 고객의 이름을 홍보용 우편물 발송 목록에서 제거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을 상대하게 될 가능성을 줄여나갔다. 베스트바이는 사람들이 자사의 환불 방식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환불 정책도 수정했다. 베스트바이는 현재 자사 정책의 빈틈을 노리는 부도덕한 소비자들을 상대하기보다 다양한 고객과 수익성 높은 협력 관계를 구축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기업이 잘못된 관계에 대한 책임이 자사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전히 모든 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고객이 항공편 결항으로 중요한 회의나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돼도 항공사 측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항공사는 고객이 하루 전에 비행기를 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약이 들어 있는 고객의 수화물을 분실한 경우에도 항공사는 그렇게 중요한 약이라면 고객이 기내 수화물에 넣어 두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9  하지만 이와 같은 기업의 사고방식이 골치 아픈 문제를 낳기도 한다. 관리자들이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고객이나 기회주의적인 고객을 단속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어떤 고객이 주로 단속의 대상이 될까? 역설적이게도 우호적인 관계를 키워나가기 위해 CRM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 기간 많은 공을 들였던 바로 그 고객들이 단속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들은 이런 현상을 ‘최우수 고객의 덫(best customer trap)’이라고 부른다. ‘최우수 고객’은 플래티넘급 고객을 성배(Holy Grail)나 다름 없는 존재로 여기는 CRM 프로그램으로 인해 생겨난 존재다. 기업이 실적이 우수한 고객에게 할인과 관심, 특별 처우를 제공하고 규칙을 어길 수 있는 권한을 주기 때문에 최우수 고객이 생겨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최우수 고객의 요구와 기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들은 상대하기에 너무 버거운 고객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최우수 고객이 수익을 갉아먹기도 한다. 경영진이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물어 고객을 벌하는 기업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최우수 고객의 덫이다.
 
매사추세츠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전설적인 소매체인이며 현재는 심스(Syms Corp.)의 소유인 필린스베이스먼트에서 ‘최우수 고객의 덫’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필린스베이스먼트(Filene’s Basement)가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과 마주하게 된 건 사실 싸고 질 좋은 물건을 찾아 다니는 쇼핑객의 천국이라는 필린스베이스먼트의 독특한 브랜드 포지셔닝 때문이었다. 필린스베이스먼트의 구매 정책은 구할 수 있는 제품이 얼마나 많고 제품의 크기가 얼마나 다양하건 한정된 수량의 제품만 구매한 다음 여러 매장에 제품을 분산해 판매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세트의 접시를 여러 매장에서 나누어 팔기도 했다. 필린스베이스먼트의 독특한 판매 방식 때문에 고객들은 원하는 제품을 발견하면 다른 매장에서 세트를 구성하는 나머지 제품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 즉시 구매를 한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다른 매장에서 나머지 제품을 발견하지 못하면 반품을 한다. 필린스베이스먼트는 미리 정해둔 날짜가 되면 자동으로 가격이 인하되는 가격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들의 광적인 구매 행위를 더욱 부추겼다. 노르마(Norma)라는 여성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십만 달러를 지출한 필린스베이스먼트의 오랜 단골이었다. 어느 날 노르마는 필린스베이스먼트의 관리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와 한 통의 공식 서신을 전달받았다. 전화와 편지의 내용은 노르마의 필린스 베이스먼트 매장 출입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노르마는 수십 년 동안 필린스베이스먼트의 최우수 단골 고객으로 대접을 받았다. 필린스베이스먼트의 CRM 데이터베이스에서 최우수 고객으로 분류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인사이더 클럽(Insider’s Club)’ 회원 자격과 특가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고 특별 판매 행사에 초청도 받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노르마의 이름만 들어도 노르마가 누군지 알 정도였고, 일부 직원들은 노르마와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기도 했다. 노르마는 심지어 일부 직원들의 가족까지도 알고 지냈으며 직원의 자녀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다. 일부 직원들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는 개인적으로 위로를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르마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필린스베이스먼트의 경영진은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노르마가 연간 수백 개의 제품을 구매하고 수천 달러를 지불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노르마는 구매한 제품 중 상당수를 반품했다. 노르마는 필린스베이스먼트에서 구입한 제품을 집에서 입어본 후 몸에 맞지 않거나(필린스베이스먼트 매장에는 탈의실이 없다) 함께 사용할 마땅한 그릇을 찾지 못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반품을 했다. 경영진이 보내온 서신에는 ‘지속적인 불만 제기’가 원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필린스베이스먼트 매장에 있는 그 무엇도 노르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부연설명도 곁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노르마는 불만을 제기한 게 아니었다. 노르마는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르마는 매장의 판매직원들보다 자신이 필린스베이스먼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 원활한 재고 처리를 돕기 위해 제품 진열에 관한 조언을 제공하기도 했다.
 

필자들은 연구를 통해 나쁜 고객보다는 나쁜 고객 관계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필린스베이스먼트 경영진은 노르마 사례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데는 자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필린스베이스먼트의 직원들이 특별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노르마는 필린스베이스먼트 측의 인정과 관심을 기대하게 됐다. 필린스베이스먼트는 공식적으로 할인 행사를 하기 전에 노르마에게 할인 가격을 제시했고, 제품을 매장에 내놓기도 전에 노르마에게 제품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관리자들은 노르마가 제안하는 매장 운영 개선 방안을 적극 수용했다. 노르마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모든 직원들이 노르마에게 특별하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필린스베이스먼트의 공식적인 정책이 노르마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필린스베이스먼트가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해 노르마의 우월한 입지를 확인시켜 주자 노르마는 점차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됐다. 노르마를 플래티넘급 고객의 반열에 올려놓은 필린스 베이스먼트가 조금씩 노르마를 응대 비용이 높은 고객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노르마는 수익성이 낮아서 나쁜 고객이 된 것이 아니다. 노르마의 수익성이 낮아진 건 필린스베이스먼트가 노르마와 협상한 관계의 종류로 인한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노르마의 경우 응대 비용이 높아진 건 노르마와 필린스베이스먼트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필린스베이스먼트는 자사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필린스베이스먼트의 경영진이 만들어낸 기대치 때문에 문제가 생겨났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 후 필린스 베이스먼트의 경영진은 새롭고 좀 더 현실적인 관계를 도출해내는 데 실패했다. 노르마를 상대할 때마다 필린스베이스먼트의 직원들에게는 관계의 궤도를 수정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필린스베이스먼트는 노르마의 요구 앞에 머리를 조아렸고 결국 불균형한 관계가 더욱 강화됐다. 다시 말해서 필린스베이스먼트가 노르마에게 관계의 조건을 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것이다. 필린스베이스먼트는 노르마와의 관계가 악성 관계로 변질돼 새로운 관계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변화하는 관계의 규칙에 관심을 가지면 사전에 나쁜 관계가 형성되는 걸 방지하고 문제가 있는 관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다.
 
고객 관계에 내재돼 있는 가치 공개: 청사진
1980년대에는 많은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우위를 얻기 위해 브랜드 자산 구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은행, 통신업체, 신용카드 회사 등 다양한 기업들이 풍부한 고객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된 1990년대에는 고객 자산 확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우선시됐다. 고객 관계의 가치를 극대화할 계획을 갖고 있는 기업은 고객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 및 측정하는 방식을 재정의해야 한다. 개별 고객의 매출을 극대화하고 응대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관계자산(relationship equity: 고객이 대표하는 전체 관계 포트폴리오의 옵션 가치)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수익성에 좀 더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 관리자들은 CRM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헌신적이고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는 고객에서부터 좀 더 짧은 ‘바람 피우기’를 즐기는 고객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계 범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계 자산을 관리하려면 고객 관계 포트폴리오 분석, 관계 포트폴리오 전략 개발, 관계 유형별 전략 설계, 관계의 건전성 및 성과 추적 등 4개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고객 관계 포트폴리오 분석 첫 단계는 고객이 기업과 맺고 있는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관계를 분류하는 작업이다.10  일부 기업들은 민족지학 및 심층 인터뷰 기법을 동원해 고객이 제품 범주나 특정한 브랜드에 할애하는 심오한 의미를 포착해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사건 인터뷰를 통해 고객 관계의 규칙을 파악하고,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고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설문조사를 실시해 참가자들에게 관계 요구, 관계 동기, 관계 차원, 강력한 요인, 좀 더 일반적인 관계 개요 등을 중심으로 브랜드 평가를 요청하면 기업이 자사 브랜드의 관계 계약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11  지각도 작성 기법을 활용해 브랜드와 범주 내에서 브랜드 관계 유형을 표시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각도를 활용하는 목표는 다양한 고객 유형에서 나타나는 관계 패턴을 파악하고 관계 유형을 기반으로 시장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지각도 활용 목적은 개별 고객을 위한 맞춤형 관계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동일한 이유 때문에 특정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로 구성된 의미 있는 관계 기반 고객 집단을 찾아내고 구축하는 것이다.
 
관계 포트폴리오 전략 개발 관계 목록을 모두 정리하고 나면 가치 창출 극대화를 위해 어떤 관계에 집중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기업들에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자사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이 대변하는 모든 관계 유형을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할리데이비슨이 자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최고의 우정’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중요하거나 전략적으로 바람직한 소수의 관계에 집중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피팟의 관계 세분화 방식을 보면 파트너 관계, 우정, 최고의 고객 등 모두 3개 부류의 고객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문제가 있는 고객과의 관계를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켜 전체 관계 포트폴리오 자산을 늘릴 목적으로 가장 문제가 있는 일부 관계에 집중하는 방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양한 관계 유형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브랜드가 포함돼 있는 포트폴리오를 활용하는 방법도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BMW는 특정한 자동차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개인들로 구성된 고객 집단의 관계 요구를 활용하기에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고급 사양인 740 세단은 변함 없는 ‘파트너 관계’ 브랜드로 홍보하고 스포츠카 모델인 Z3 로드스터(Roadster)를 홍보할 때는 좀 더 흥미진진한 ‘바람 피우기’에 관심이 있는 고객들을 주로 공략할 수 있다. 펩시코(PepsiCo) 소유의 스낵업체 프리토레이(Frito Lay)도 스낵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해 비슷한 전략을 도입할 수 있다. 가령 치토스(Cheetos)는 ‘비밀 연애’로, 뷰글스(Bugles)는 ‘어린 시절 친구’로 홍보할 수 있다. 프리토레이는 관리자들을 이런 종류의 관계 중심적인 사고에 노출시키기 위해 회사 차원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12  관리자들은 경제적인 수익성에 반대되는 개념인 관계 유형별로 고객을 분류해 관계의 실질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CRM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관계 유형별 전략 설계 효과적인 CRM을 위해서는 관계의 기본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전략에는 기업이 관리 중인 관계의 다양성이 반영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CRM을 위한 전략을 세울 때에는 각 고객 유형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관계 유형별로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이 무엇이며, 있으면 좋긴 하지만 전반적인 관계의 건전성에는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규칙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사항을 기록해 둬야 한다. 고객 관계에 관한 규칙은 기업의 재무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규칙이 비용을 증가시키고 어떤 규칙이 매출을 확대시키며 기업과 고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규칙을 만드는 게 가능한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려면 최고의 관계와 최악의 관계를 역설계해 고객 관계가 성공, 혹은 실패한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정보를 활용하면 긍정적인 관계를 강화하고 새로운 관계 확장을 장려하며 문제가 있는 관계를 재협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관계 현장 실험 및 민감도 실험을 통해서 서로 다른 기업의 행동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관계의 건전성 및 성과 추적 관계 가치 구축을 위한 마지막 단계는 관계를 추적하고 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혁신적인 관계 전략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의식, 구매, 재구매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전통적인 측정 방법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관계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좀 더 민감한 지표를 도입해야 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관계의 이점, 동기, 관계의 규칙 등을 평가하기 위한 질문이 반영돼 있는 추적 연구를 월간이나 연간으로 진행하는 방안이 도움이 된다. 이런 조사를 진행하면 장기간에 걸쳐 각기 다른 관계 유형의 건전성 및 수익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13  고객이 운영하는 블로그, 인터넷 게시판 등을 확인하면 고객 관계에 내포돼 있는 감정적인 요인, 고객이 느끼는 브랜드에 대한 연대감, 고객 및 브랜드의 상호의존성, 친밀감이나 헌신의 정도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고객이 제기한 서비스 불만 사항이나 온라인에 등록돼 있는 평가 내용을 확인하면 관계를 맺고 있는 파트너로서 해당 브랜드가 어떤 성과를 올리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해당 브랜드의 행동을 어떻게 간주하는지 파악하고 어떤 행동이 관계에 도움이 되며 어떤 행동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관계 포트폴리오를 감시하면 관리자들에게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를 주지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적대적인 관계의 비중이 증가하면 기업들이 개별적인 관계를 재협상하거나 새로운 홍보전을 비롯한 또 다른 접근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고객 관계의 전반적인 가치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의 고객관계관리 전략을 정의하는 표준화된 해결방안과 천편일률적인 분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관계 중심의 접근방법으로 전환하기를 원하는 기업은 먼저 마음가짐과 기존의 관행을 상당히 변화시켜야 한다. 관리자들은 고객관계관리 시스템을 통해서 수집하는 데이터의 종류를 늘리고, 자사가 관리 중인 관계 유형에 어울리는 고객관계관리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이 고객과 주고 받는 관계 관련 신호에 민감하게 대처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들은 즉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관리 방식을 버리고 관계의 장기적인 가치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객과의 관계를 다져나가기 위한 노력을 외면하는 기업은 좀 더 현명하게 고객 관계를 관리하는 기업에 귀중한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
 
번역 |김현정 jamkurogi@hotmail.com
수전 포니어•질 에이버리
 
수전 포니어(Susan Fournier)는 보스턴대 경영대학원(Boston University’s School of Management)의 부교수다. 질 에이버리(Jill Avery)는 매사추세츠 보스턴에 위치한 시몬스 경영대학원(Simmons School of Management)의 부교수다. 이 논문에 관한 의견이 있으신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52310에 접속해 메시지를 남겨 주시기 바란다. 저자와의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smrfeedback@mit.edu로 e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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