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며칠 전 빌려 놓은 다큐멘터리보다는 쿵푸 영화나 십대를 겨냥한 별 볼일 없는 코미디 영화를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은 온라인 식료품매장에서 주문을 할 때 아이스크림은 오늘밤 당장 배송을 받을 수 있게 주문하면서 브로콜리를 주문할 때에는 며칠 후에나 배송을 받게 설정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의 영업/정보 관리 교수 캐서린 밀크맨(Katherine Milkman)과 두 명의 동료들은 이런 사실에 흥미를 느껴 온라인 쇼핑 패턴을 연구했다.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정말 고칼로리 디저트나 스낵처럼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때에는 즉각적인 배송을 요구하면서, 과일 야채 등 ‘필수적인’ 식료품을 주문할 때에는 주문한 날로부터 며칠 후에 배송을 받는 경향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밀크맨은 연구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식료품의 주문일과 배송일이 크게 차이가 날수록 해당 소비자가 지출한 전체 금액이 줄어들고, 주문내역 중 정크푸드 대신 농산물처럼 좀 더 건강한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밀크맨은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 소비할 식품을 주문할 때 지출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즉각적인 만족이 클수록 좀 더 자유롭게 지출을 한다.”
밀크맨은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식료품 쇼핑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구매 습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아이스크림은 곧장, 채소는 나중에: 온라인 식료품 구매 및 주문 리드 타임에 대한 연구(I’ll Have the Ice Cream Soon and the Vegetables Later: A Study of Online Grocery Purchases and Order Lead Time)’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공개했다. 이 논문은 마케팅 전문 학술지인 <마케팅 레터스(Marketing Letters)>에 실렸다. 밀크맨은 위 논문을 분석가 협회(Analyst Institute)의 토드 로저스(Todd Rogers)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맥스 H. 바제르만(Max H. Bazerman)과 공동 집필했다.
인터넷 쇼핑의 발달은 밀크맨이 소비자의 의사결정 심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 한몫 했다. 인터넷 쇼핑이 발달한 덕분에 설문조사나 각종 연구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정확하며 광범위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과거, 온라인 쇼핑의 규모는 다른 형태의 상거래에 비해 한참 뒤졌다. 하지만 2006년 온라인 쇼핑은 연 매출 1000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밀크맨은 “인터넷 덕택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결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온라인 쇼핑으로 생겨난 데이터는 연구원들이 특정한 개인 소비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소비 습관을 보이는지 추적하고 다양한 변수가 소비자의 결정에 미치는 효과를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빠른 효과 = 다른 선택
밀크맨은 여러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쇼핑 데이터가 쇼핑객들의 심리에 관한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밀크맨은 특히 인터넷 쇼핑 데이터가 소비자가 갈망하는 즐거움을 주는 품목 및 장기적인 관심사와 건강을 고려했을 때 소비자가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고’ 느끼는 품목과 관련이 있다고 예상했다. 온라인에서 다른 제품을 구매할 때와 달리 식료품을 구매할 때에 소비자들은 배달 시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온라인 식료품 쇼핑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결정으로 인한 결과가 좀 더 먼 미래가 아니라 단기간 내에 실현될 때 사람들은 좀 더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도 보면 사람들은 좀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기다리기보다는 적은 수익을 당장 손에 쥐는 쪽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또 내일 당장 봉사활동을 하는 쪽보다는 2주 후에 자선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쪽을 선택한다. 유권자들은 실행이 어렵지만 ‘반드시’ 진행해야만 하는 정책이 있을 때 그 정책이 미래에 실행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려 한다.
밀크맨은 이미 식료품과는 다른 부류인 ‘온라인 DVD 대여’ 부문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주문할 때와 ‘반드시 봐야 하는’ DVD를 주문할 때 어떻게 다른지 살펴봤다. 연구진은 과거 <어려운 영화는 외면당한다: 시간 불일치 선호도와 온라인 DVD 대여(Highbrow Films Gather Dust: Time-Inconsistent Preferences and Online DVD Rentals)>라는 논문 역시 공동 집필했다.논문에서 저자들은 소비자가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와 같은 어려운 영화와 ‘탈라데가 나이트(Talladega Nights)’라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주문했을 때, 쉬운 영화를 먼저보고 빨리 반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어려운 영화를 먼저 빌리고 쉬운 영화를 늦게 빌렸을 때에도 순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습관을 깨달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현상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