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잠룡이 비룡 되는 6단계의 과정

314호 (2021년 0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주역에서는 잠룡이 비룡이 되기까지 여섯 단계의 성장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날아오르고자 하는 기업과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첫째,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근신하는 잠룡의 단계다. 둘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현룡의 단계다. 이때 인재 발굴과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셋째, 역량 강화의 단계로 자강불식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넷째, 공격적인 마케팅과 기업공개 등 과감한 움직임으로 도약하는 단계다. 다섯째, 비룡의 단계로 다시금 유능한 인재 등용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여섯째, 비룡이 명심해야 할 지침으로 과욕을 부려 선을 넘어선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잠룡(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으로 태어난다. 그렇다고 모두가 비룡(하늘을 나는 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잠룡의 시기를 슬기롭게 잘 견딘 사람은 비룡이 돼 하늘을 훨훨 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뜻을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기업에도 잠룡의 시절이 있다. 이 시기를 잘 통과한 기업은 비룡이 돼 글로벌 시장을 누비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로컬 마켓에서조차 날개를 펴보지 못한 채 도태되고 만다. 잠룡은 어떻게 비룡이 되는가? 주역 중천건괘가 그 비결을 일러 준다.

중천건괘는 주역 64괘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괘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아래위로 중첩돼 있는 것이 중천건괘인데, 천지창조와 생장의 원리를 밝히고 있는 괘다. 양효() 여섯 개로 구성돼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중천건괘는 우주가 탄생할 때 있었던 빅뱅처럼 팽창하려는 기운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충만한 양기를 받아 자연은 생명의 싹을 틔우고 성숙한 모습으로 도약한다. 돋아난 식물의 줄기는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날갯짓을 배운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유아기를 거쳐 어른으로 성장한 동물은 강건한 모습으로 들판을 누빈다. 주역에서는 이러한 성장의 과정을 여섯 단계로 구분해서 단계별 행동 지침을 일러 주는데 이 수칙을 잘 따르면 비룡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낙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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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에서 비룡으로

첫 번째는 잠룡의 단계인데, 이 시기에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근신해야 한다. 주역에서는 이를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고 표현한다. 물(勿) 자는 영어에서 ‘Never’에 해당된다.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정도의 권고가 아니라 절대로 하지 말라는 강한 부정문이다. 용(用)은 쓸 용 자인데 사람을 고용한다는 의미의 용이 아니라 스스로의 움직임, 즉 행동이나 몸가짐을 뜻한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데이터를 근거로 조언하건대 잠룡의 시절에는 몸을 바짝 낮추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처신이라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잠룡 시절의 한신(중국 한(漢)나라 초의 무장)은 동네 깡패들의 가랑이 밑을 기면서 바짝 엎드려 지냈다. 그때 만일 한신이 욱하는 심정으로 깡패들과 맞장을 떴더라면 초한지의 영웅 한신도, ‘배수의 진’이라는 유명한 병법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갈공명도 비룡이 되기 전 잠룡 시절에는 일체의 나댐을 삼갔다. 유비가 그를 세 번 찾아왔지만 제갈공명은 모두 사양했다. 겸양이 아니라 잠룡 시절의 맵(map)대로 한 것이다. 잠룡 시절의 제갈공명은 땅에 바짝 엎드려 있었던 와룡(臥龍)이었다. 세종은 아버지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태종이 죽을 때까지 몸을 숨겼다. 장인이 역모의 수괴로 몰려 사사를 당하고, 장모는 노비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등 처가가 풍비박산 났지만 세종은 비정할 정도로 침묵했다. 그때 만일 사사로이 연민의 정을 앞세워 태종에게 맞섰더라면 세종은 비룡이 되기 전에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에게도 잠룡의 시절이 있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지만 본격적으로 이름을 드러내기 전에 그들은 창고 안에서 바짝 엎드려 지냈다. 창고는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잠룡 시절 숨어 있었던 연못이었다.

두 번째는 현룡(見龍)의 단계다. 잠행을 끝내고 세상에 나가 서서히 이름을 알리는 시기가 현룡 단계인데 주역에서는 이때 가장 중요한 행동 지침이 네트워킹이라고 말한다. 중천건괘의 효사에 나와 있는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현룡재전(見龍在田),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다. ‘현룡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뜻인데, 밭(田)은 현룡이 자신을 드러내는 세상을 상징한다. 기업으로 말하면 시장이다. 물건을 시장에 출시하면 그것이 잘 팔릴 수 있도록 하는 홍보 전략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텐데 주역에서는 그보다 인적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利見大人)고 조언한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들 가운데 유난히 공동 창업이 많았던 점을 보면 세상에 몸을 드러낼 시점인 현룡의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인재의 발굴과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주역의 가르침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역량 강화의 단계다. 현룡이 됐다고 곧바로 비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이 역량 강화의 단계다. 주역의 괘사에서는 이를 자강불식(自彊不息)이라고 표현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의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실력을 연마하고 기술력을 축적해야 한다는 의미다. 세종은 잠룡과 현룡 시절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 성군의 길을 닦았다.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에도 3년이라는 자강불식의 단계를 거친 후 비로소 공표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컴퓨터를 시장에 내놓기 전에 하드웨어의 디자인을 수십 번 고쳤다. 소비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회로기판의 디스플레이도 세심하게 다듬은 후 최상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렇게 출시된 애플컴퓨터는 자체 완결적인 구조를 가졌다는 시장의 평가를 얻었고, 애플은 마침내 비룡이 될 수 있는 준비를 완벽하게 갖췄다. 여물지 않은 상태로 세상에 몸을 성급하게 드러냈다가는 비룡이 되지 못한다. 정치인들 가운데는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비룡이 되려다 낙마한 잠룡이 수두룩하다. 넷스케이프나 야후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실리콘밸리의 기업 가운데도 그런 변곡점을 통과하지 못해 비룡이 될 기회를 놓친 기업이 여럿 있다. 넷스케이프는 여물지 않은 브라우저를 출시했다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왕좌를 빼앗겼고, 야후도 결함을 가다듬지 않은 검색 엔진을 세상에 선보였다가 완벽한 알고리즘을 장착한 구글의 검색 엔진에 정상을 내줬다.

네 번째는 도약의 단계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조건이 성숙됐으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업에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기업공개 등을 통해 사세를 확장하는 단계가 이 시기다. 주역에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과감하게 연못을 박차고 나와 비상하라고 조언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비룡이 되지 못한다. 용의 형상을 다 그려놓고도 마지막 남은 눈동자에 점 하나를 찍지 못해 승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태종 이방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과거에 합격할 정도로 성리학에 해박했고 무예도 출중했다. 이숙번과 하륜 등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도 갖췄다. 그러나 이성계와 정도전이 어린 세자를 후계로 지명, 그의 앞길을 막았다. 갈등하던 이방원은 마침내 연못을 박차고 나오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방원은 과감하게 정도전과 세자를 제거하고 스스로 비룡이 되기 위한 길을 닦는다. 칼을 빼 들어야 할 순간, 그가 우유부단하게 망설였더라면 신생 국가 조선은 신권이 왕권을 압도하는 허약한 국가로 전락했을 것이고 조선 왕실의 계보도 바뀌었을 것이다. 한신에게도 비룡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책사였던 괴철이 천하삼분지계를 내세워 한신에게 도약을 시도하라고 조언했지만 한신은 망설이다가 끝내 기회를 잡지 못했다. 기업공개 시점에서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을 창업한 CEO들은 도약의 길을 택했다. 기업을 공개하면 자신들의 경영권이 약화될 수도 있지만 그들은 비룡이 되기 위해 과감하게 연못에서 뛰쳐나오는 변화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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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을 위한 조언

근신, 파트너십 구축, 역량 강화, 도약이라는 네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면 마침내 잠룡은 비룡이 된다. 하지만 비룡이 됐다고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비룡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비룡이 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비룡의 자리를 잘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 수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주역의 다섯 번째 지침은 유능한 인재 등용이다. 효사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비룡재천(飛龍在天),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다. ‘비룡이 하늘에 있을 때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뜻이다. 이견대인은 현룡 단계에서도 나왔는데 비룡 단계에서 또 나온다. 왕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보필할 인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이 문구가 반복해서 등장한 것이다. 태종이 승하한 후 세종은 마침내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는 군주가 된다. 굴신과 인고의 세월을 견딘 후 스스로의 몸짓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비룡이 된 것이다. 세종은 비룡이 된 후 과감한 인재 등용으로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정적이었던 황희를 영의정에 기용해 국정을 총괄하게 했고, 문인 출신인 김종서를 국방 분야의 최고책임자로 발탁했으며, 노비 출신인 장영실을 과학기술 분야의 수석 엔지니어로 특채했다. 비룡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 4군 6진 개척, 과학기기 발명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황희, 김종서, 장영실과 같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혁신적인 용인술 덕분이었다.

중천건괘의 마지막 효인 여섯 번째 단계에는 비룡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행동 지침 하나가 나온다. 항룡유회(亢龍有悔). 너무 높이 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의미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던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도움으로 소원을 이루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해 한순간에 추락한다. 이카로스에게 레드라인이 있었듯이 경제계의 비룡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도 하나 더 가지기 위해 레드라인을 넘는 기업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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