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4. 위기의 ‘100년 기업’에서 배우다

100년 우등생 GE, 변화 적응 못해 휘청
리더십을 통해 본 성장과 위기의 여정

294호 (2020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현재 여러 미국의 장수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출 감소, 비즈니스의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다. 100년 넘은 기업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기업이 있다. 바로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GE는 식스시그마와 품질 관리, 재무 기반 성과지상주의, 포트폴리오 기반 다각화 전략,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전략, 주주가치 우선주의 등 경영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많은 핵심 개념을 창조해 내거나 실무에 도입해 결과를 입증한 전무후무한 회사다. 그런데 ‘언제나 1등 기업’이었던 GE가 수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GE의 위기에는 권위적인 리더십, 경직된 조직 구조, 산업 변화에 둔감한 대응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GE는 장수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과 험난한 여정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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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이 최근 CEO를 교체했다. 실적 부진이 이유다. 보잉은 주요 기종 중 하나인 737 맥스의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2대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코카콜라는 건강을 생각해 탄산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감소하면서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줄고 있고 유통업체 메이시스는 온라인 쇼핑몰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향후 3년간 미국 전역에서 125개 매장의 문을 닫기로 했다. 3M은 1월 15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고, 포드자동차는 다른 자동차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내연기관과 전기차, 차량 소유와 서비스 이용의 패러다임 변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지난해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오남용에 책임이 있으니 5억72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크고 작은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 기업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장수 기업이라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기라성 같은 장수 기업 중 금융 기업과 석유 기업을 제외하고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 기업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유명 장수 기업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지난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GE(1892년 설립)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GE는 언제나 1등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 중 1917년부터 1987년까지 70년 동안 시가총액 평균 성장률이 시장 평균을 웃도는 기업은 GE와 코닥뿐이었다. 또 1917년과 1967년, 2017년 시장 가치 기준으로 미국의 상위 50위 기업 리스트에서 3번 모두 50위 안에 들었던 기업은 GE와 통신사 AT&T 두 곳뿐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 중에서도 GE는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장수 기업이었다. 그랬던 GE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미국을 대표하는 우량 기업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에서도 111년 만에 쫓겨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GE는 얼마 전 타계한 잭 웰치 전 회장 때부터 인수합병(M&A)으로 기업의 성격을 바꿔왔다. CEO가 국내로 치면 대기업 오너 수준의 결정권도 갖고 있었기에 CEO의 성향이 곧 기업의 경영 전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CEO의 의중에 따라 사업 확장이나 비즈니스 전략이 크게 달라졌다. 리더십에 따라 사업의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의 장수 기업을 상징하는 GE의 흥망성쇠를 리더의 전략과 리더십을 중심으로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GE의 케이스스터디를 통해 타산지석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보자. 우리 기업이 100년 이상 생존하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리더십 요소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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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의 역사

GE는 세계적인 복합 제조업체로 1892년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에디슨제너럴일렉트릭과 톰슨휴스턴이 합병해 설립됐다. 에디슨이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백열전구부터 시작해 라디오와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대부분의 가전제품을 처음 개발했다. 기압이 낮은 높은 고도에서 고출력을 내는 현재 비행기 엔진의 원형과 X선 촬영기,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 등 다양한 의료 영상진단기술을 개발한 것도 GE다.

사업 부문은 그동안 여러 차례의 M&A, 자산매각, 구조조정을 통해 바뀌어 왔는데 현재는 전력(파워), 신재생에너지, 항공, 헬스케어, 캐피털이 주요 사업이다. 석유와 가스, 운송(철도), 조명 등은 최근에 위기를 겪으며 손을 뗐고, 가전 부문은 2016년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다.

GE는 워크아웃, SWOT 분석, 전략 계획(Strategic Planning) 등 경영 기법을 만들어 현대 기업 경영의 모범이 돼 왔으며 경영 효율성 도구인 6시그마를 대중화했다. 수많은 능력 있는 관리자를 길러내 인재 사관학교로 불리며 연수원이 위치한 크로톤빌은 인재 양성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GE는 최근 위기를 겪기 전까지 100년이 넘은 미국의 장수 기업 중 최고의 기업으로 여겨졌다.

잭 웰치: 주주가치, 효율성에 집착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추앙받는 잭 웰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웰치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지상 최고의 목표를 삼았고 그 개념을 대중화시켜서 모든 기업이 주주가치에 목을 매게 만들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주주가치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DBR 293호 ‘세기의 경영인 잭 웰치가 남긴 것’ 참고.) 그는 정리해고와 연례 평가제도로 조직원들을 경쟁시켰고 효율성 극대화에 힘쓰면서 조직을 ‘몸에 지방은 하나도 없고 근육만 있는 헤비급 챔피언’처럼 만들었다. 웰치의 주주가치 극대화 전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건 GE캐피털이었다. GE캐피털은 원래 GE의 비싼 제품을 소비자들이 할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만들었다. 이렇게 금융업에 발을 들이면서 GE는 기업 어음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미국 경제에 금융이 차지하는 부분이 늘어날수록 GE캐피털이 GE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났다. GE는 더 이상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만 돈을 버는 제조기업이 아니었다.

금융업은 제조업보다 달콤했다. GE캐피털은 웰치 때에 이르러서 GE의 사금고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GE캐피털의 좋은 실적은 GE 전체를 빛나게 만들었다. 웰치는 이를 이용해 GE의 어려운 부분을 잘 감췄다. 분기별 실적발표 때가 되면 돈을 이리저리 옮기기도 했고 거대 프로젝트의 이자를 조정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감췄다. 조정된 이자는 실적 발표 후 원상 복귀했다. 완전한 불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공격적인 회계 방식이었던 건 분명하다. 이런 ‘재무 공학’을 통해 GE는 항상 시장의 예상에 맞거나 그를 뛰어넘는 좋은 실적을 발표했다. GE의 장부상 모습은 실제 모습보다 보기 좋았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와 GE의 주주, 투자자들은 이런 GE의 모습을 사랑했다. 주가는 계속 올랐다.

하지만 GE캐피털에 대한 의존도 때문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거의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간다. GE캐피털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단기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기업어음 상환에 어려움이 생겼고 GE 전체가 흔들렸다. 후임인 제프리 이멜트는 CEO 취임 직후부터 GE캐피털 의존도를 줄이고 싶었지만 GE는 더 이상 GE캐피털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금흐름을 관리하기가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그건 주주도, 투자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금융 위기 때 죽다가 간신히 살아난 경험을 바탕으로 이멜트는 2015년 큰마음을 먹고 GE캐피털 자산의 90%를 매각했다. GE의 캐피털 의존도를 10% 이하로 줄이는 것이 목표였다. 캐피털의 금융 기법에 의존했던 전력과 헬스케어 등 다른 사업부들은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GE캐피털은 웰치의 유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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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이멜트: 지나친 낙관주의

2014년 2월이었다. 제프리 이멜트는 GE 전용기를 타고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로 가는 길에 잠시 프랑스 파리에 들렀다.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속 상대는 에너지와 운송 분야의 프랑스 기업 알스톰 CEO 패트릭 크론. 크론은 이멜트를 상대로 구애에 나섰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알스톰의 전력 부문을 매각하기 위해서였다.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저가 수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미 GE의 최대 라이벌인 독일의 지멘스에도 인수 의사를 타진한 터였다. 보통 때라면 GE는 알스톰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멜트는 이미 몇 달 전 GE의 인수합병팀에게 인수할 만한 기업을 알아보라고 지시한 상황이었다. 이멜트는 자신의 업적이 될 수 있을 만한 ‘큰 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GE가 알스톰 전력 부문을 인수하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로 시장 기반을 넓힐 수 있으며 더 효율적인 가스발전소 터빈을 만드는 기술을 얻을 터였다. 알스톰은 이멜트가 꿈에 그리던 그런 ‘큰 건’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멜트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GE의 부흥을 이끈 전임자, 잭 웰치 회장의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 하지만 CEO가 된 이후의 이멜트는 그다지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CEO 자리에 오른 지 단 4일 만에 9•11테러가 일어났고 숨 돌릴 만하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그 뒷수습을 하다가 10여 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GE에 남아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웰치의 후임이 되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으니까.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기대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웰치가 물려준 GE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불씨는 GE캐피털이었다.

시간은 흘러 2017년 6월12일. 좀처럼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던 GE의 주가가 4% 폭등했다. 증권 시장엔 별다른 이슈가 없던 날이었다. 그런데도 GE의 주가가 오른 이유는 이멜트가 7주 후에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뉴스 덕분이었다. CEO가 된 지 16년 만이었다. 시장은 이렇게까지 이멜트가 물러나는 걸 반겼다. GE 주가가 다시 오르나 하고 많은 이가 기대를 했지만 그뿐이었다. GE의 주가는 이날 28.94달러로 마감을 한 후 계속 떨어져 지금은 10달러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멜트가 CEO 자리에 처음 올랐을 때 GE의 주가는 약 40달러였다.

헤밍웨이가 그랬다. 파산은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온다고. 2017년부터 시작된 GE의 추락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미국의 전반적인 시장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였다. 추락의 씨앗은 오래전 웰치 때 뿌려졌고 전조는 2008년 금융 위기 때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GE의 실질적인 추락은 이멜트가 CEO로 있을 때 일어났다. 이멜트의 GE가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원인을 관통하는 가장 큰 테마는 바로 ‘성공 극장’이라고 불리는 이멜트의 지나친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멜트는 좋은 소식만 듣고 싶어 했다. 실질적인 시장 상황과 GE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회의 때 발표하는 실적 목표치가 자기 생각보다 낮으면 담당 임원에게 “내가 예전에 알던 불도저 같은 O 사장은 어디 갔지?”라고 말하면서 목표치를 높이기를 은근히 강요하기도 했다. 그래도 목표치가 너무 과하다는 얘기가 나오면 이멜트는 “당신들은 절실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꾸짖었다. 여기에는 ‘GE는 할 수 있다’는 자만과 과욕이 녹아 있다. GE라는 세계 최고 기업에 있다 보니 자기 최면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멜트와 GE의 수뇌부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 몇 번의 잘못된 판단을 했고 자산 배분에 실패했다. 최고경영자의 부족한 현실 감각은 재앙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멜트의 첫 번째 잘못된 판단은 전력 부문인 GE파워의 전략적인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는 점이다. GE파워는 GE 전체 매출의 약 30%를 담당하는 GE에서 가장 큰 사업부다. GE는 천연가스와 석탄 발전소 수요가 당분간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보다 높을 것이라 예상하고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 설비 판매가 증가했고 화석 연료 기반의 발전 수요는 줄었다. 실제로 천연가스 발전소 수요가 줄어든 지가 여러 해가 됐는데도 GE 연구개발팀은 ‘가스의 시대’라는 자료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는 고위 경영진에게까지 정확한 시장 상황이 전달되지 않았거나 고위 경영진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얘기다.

글 도입부에 언급한 알스톰 전력 부문 인수도 이러한 전략적인 오판의 연장선상에 있다. 알스톰은 화석 연료 기반이 강한 발전 설비 업체다. GE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관련 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에 화석 연료 발전소 설비 업체에 투자를 한 셈이었다. 그것도 최종 인수 금액이 무려 100억 달러가 넘는 GE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M&A였다. GE가 알스톰을 인수할 때 경쟁사들은 화석 연료 발전 시장이 침체될 것을 예상하고 재고를 줄이는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 알스톰 전력 부문도 이미 고전을 하고 있었지만 이멜트는 GE가 인수해서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만큼 그는 GE의 인력과 효율성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게다가 이멜트는 ‘이멜트표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GE캐피털을 없앤 대신 알스톰 인수로 GE파워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키워 장기적인 전력 부문의 틀을 수립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너무 무리해서 비싸게 샀다는 지적이 나왔다. M&A 합의 후 허가 과정은 18개월이나 걸렸다. 프랑스 규제 당국이 까다롭게 나오자 GE파워 내부에서는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멜트는 끝까지 M&A를 고집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알스톰을 M&A했지만 M&A 후 화석 연료 관련 제품 수요가 폭락하면서 GE파워의 이익은 45%나 감소했다. 이멜트가 물러난 이후 GE는 베이커휴스의 지분을 매각했다. 이멜트의 M&A에 대한 과욕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은 ‘승자의 저주’가 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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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트 ‘성공 극장’의 하이라이트는 GE의 차기 CEO 승계 작업과 관련이 있다. GE는 임원들 사이의 경쟁이 어느 회사보다도 치열한 조직이다. 이멜트 자신도 그런 경쟁을 거쳐 CEO 자리에 올랐다. 차기 CEO가 되기 위해선 담당 부서의 실적이 좋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현 CEO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무도 이멜트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멜트의 후임이 되기를 바랐던 GE파워의 CEO 스티브 볼즈의 욕심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이멜트 성공 극장의 주연이 되기 위해 너무 심하게 노력했다. 알스톰 인수가 매듭 지어진 2015년 11월 이후 GE파워는 발전 설비 가격을 올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내렸다.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또 금액을 빨리 청구하는 조건으로 발전소 설비 수리 등 서비스 계약을 할인해주기 시작했다. 단기적으로 실적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GE파워 내부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볼즈가 GE 전체 CEO가 되면 파워 부문의 임원들도 승진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고위 임원들은 볼즈의 ‘꼼수’를 밀어줬다. 문제는 볼즈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 알스톰 인수 후 통합 과정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볼즈의 꼼수로 인해 파워 부문의 재고는 쌓였고 서비스로 쉽게 벌 수 있는 돈은 크게 줄었다. GE파워는 수익성 악화로 2017년 1분기에만 16억 달러 적자를 냈다. 파워 부문의 이러한 부실 경영은 지금까지도 GE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거수기 역할만 한 GE 이사회도 문제였다. GE 이사는 세계 기업인들 사이에서 가장 명예로운 자리로 꼽힌다. 미국 최고의 제조기업인 GE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외에 보상도 든든하다. 모두 18명인 GE의 이사에게는 현금과 주식을 포함해 매년 30만 달러 상당의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진다. 3만 달러 상당의 GE 제품을 받을 수 있고 이사직을 사퇴할 때 GE는 이사가 원하는 곳에 100만 달러를 기부해 준다. 웰치와 이멜트는 이런 이사회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걸로 유명했다. 그렇게 36년 동안 GE 이사회는 CEO 겸 이사회 의장의 의중대로 움직여줬다.

이멜트는 웰치의 GE를 자신의 GE로 바꾸고 싶었다. 방향성은 나쁘지 않았다. 2013년 웰치가 인수한 방송사 NBC유니버설을 팔고, 2015년엔 GE캐피털 의존도를 줄였다. 제조업으로의 회귀였다. 디지털 제조기업이 되겠다며 실리콘밸리로부터 배웠다. 산업 기기에 부착된 센서로 수집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기기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기계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할 수 있는 산업 인터넷 플랫폼 ‘프레딕스’를 론칭했다. 하지만 제조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기존 내부 조직의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GE의 디지털 전환은 GE의 기존 산업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실행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멜트는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결국 16년 동안 별로 이룬 것 없이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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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플래너리: 지나친 신중과 소극적 리더십

이멜트에 이어 새 CEO가 된 존 플래너리는 30년 동안 GE에서 일한 베테랑이었다. 2017년 6월 그는 CEO가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자마자 긴축을 시작했다. 이멜트와는 다른 성향을 갖고 있었다. 투자자의 마인드를 가졌고 회계사같이 꼼꼼했다. 일부에서는 너무 무미건조한 CEO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위기에 몰린 GE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그러나 너무 신중한 게 문제였다. 신임 CEO 플래너리가 첫선을 보일 7월 콘퍼런스 콜이 울렸다. 모두 그가 뭔가 중요한 소식을 발표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플래너리는 11월에 GE를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전략을 발표하겠다고 하면서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멜트의 낙관주의에 익숙했던 투자자들은 이런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했다. GE의 주가는 3% 하락했다.

기다리던 11월13일이 됐다. 뉴욕 맨해튼의 한 회의장엔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기자 수백 명이 들어찼다. GE를 살리기 위한 플래너리의 전략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플래너리는 GE의 자랑인 배당금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GE가 그동안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너무 많은 돈을 써왔으며 이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플래너리는 파워와 항공, 헬스케어에 집중하며 운송과 조명 부문은 매각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물론 파워 부문이 다시 본궤도에 오르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GE의 주가는 또 하락했다. 이번에는 2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2018년 6월 GE는 미국 기업들 중 ‘큰 형님들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는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의 창립 멤버이면서 가장 오래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GE라 충격이 컸다.

플래너리는 이사회에서도 두들겨 맞았다.
18명의 이사 중 9명을 내보내고 3명을 새로 선임해 12명이 된 GE 이사회는 더 이상 거수기가 아니었다. 이는 플래너리가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플래너리가 선임한 한 신임 이사는 그를 다른 이사들 앞에서 몰아붙이곤 했다. GE파워의 문제에 대해 캐물었고 제품의 재고량도 모른다며 혼내기도 했다.

플래너리의 1년 동안의 행적과 이사회에서의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그는 너무 신중했고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당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입만 열면 주가가 폭락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GE는 매 상황 압박이 심했고 그때마다 결정을 못하거나 당황하는 CEO를 그대로 두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플래너리는 CEO가 된 지 14개월 만에 해고됐다. GE 역사상 가장 짧은 임기의 CEO였다. 플래너리의 뒤를 이을 새 CEO는 래리 컬프라는 인물이었다. 이사회에서 플래너리를 몰아붙였던 바로 그 이사였다.

래리 컬프: 최초의 외부 출신 CEO

55세의 컬프는 GE의 이사가 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한가로운 은퇴자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14년 동안 다나허의 CEO를 지내고 3년 전에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다나허는 임플란트와 의료장비 분야에서 알려진 제조기업으로 GE보다 규모가 작지만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면에서 GE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기업으로 언급되곤 했다.

새 CEO로서 컬프가 한 일은 전임자인 플래너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GE를 핵심 사업 부문만 남기고 단순화했다. 그가 언론 인터뷰를 하면 주가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플래너리와 달리 조금 더 단호하게 일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CEO가 된 첫 주에 GE 주식 배당금을 분기당 1센트로 줄여 버렸다. 또 빠르게 부채를 줄이고 자산을 매각했으며 GE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GE의 주가는 2019년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12달러대를 회복하기도 했다. (그 이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때문에 다시 6달러대로 하락하기는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컬프가 126년 GE 역사상 최초의 외부 출신 CEO라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매니저를 양성하는 걸로 유명한 인재 사관학교 GE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한 건 GE가 그토록 자랑하던 내부 인재가 아니라 이미 은퇴한 외부 출신 인물이었다는 점은 상당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1년 반 정도 CEO직을 수행한 컬프는 적어도 크게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고 있다. GE의 주가가 6달러에 머물고 있을 때 한 애널리스트는 “컬프가 아니었다면 지금 GE의 주가는 4달러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GE의 수익성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아직도 몇 년이 남았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GE는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GE는 전 세계 18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전 세계 항공기 이착륙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전 세계 전력의 3분의 1을 생산하며, 400만 대 이상의 의료기기를 관리한다. 위기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 거대한 규모와 네트워크를 감안하면 시간이 조금 걸릴 뿐 결국엔 지금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은 종이 가장 강한 것도 아니며, 가장 현명한 것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GE의 추락은 영원한 건 없으며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여야 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같은 이유로 GE의 부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일반 기업에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졌던 GE의 흥망성쇠,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도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선우 경영 칼럼니스트 sunwoo_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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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의 ‘번아웃’에서 배우는 교훈

본 사례는 GE가 고전하게 된 원인을 2001년 잭 웰치 회장이 은퇴한 이후 20년 남짓 기간 동안 겪었던 4가지 치명적 실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실책은 GE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타이코(Tyco), 코닥, IBM 등 다른 100년 기업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어 의미가 크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GE는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100년 기업이었다. GE는 우리나라 선두 기업을 포함해 세계 모든 기업이 추종했던 다국적 기업의 표상이었으며 경영학적으로도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잭 웰치로 상징되는 카리스마 리더십, 식스시그마와 품질관리, 1등 제일주의, 재무 기반 성과지상주의, 포트폴리오 기반 다각화 전략,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 전략, 주주가치 우선주의, CAP, PIMS, 사업부제 조직 관리, 세계화 전략 등 지금도 경영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많은 핵심 개념을 창조해 내거나 실무에 그대로 도입해 결과로 입증해 낸 전무후무한 회사다. 특히 GE의 기업 전략은 사업부서 간 시너지를 극대화해 짧은 시간 내에 전 세계 시장, 전 산업군에서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한 표본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런 GE가 위기를 겪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GE 사례를 통해 우리는 ‘100년 기업의 조건’을 다시 기술해야 할까. 이런 측면에서 GE의 추락은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그 의미와 시사점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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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의 조건과 100년 기업 GE

위 질문에 대한 답안은 연구자들이 밝혀낸 100년 기업의 조건,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100년 성공 기업들의 최근 기업 활동 사이에 어떤 괴리(Gap)가 있는지 비교해 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알려진 지속가능한 장수 기업의 조건으로는 획기적 아이디어나 기술이 아닌 경영진의 합리적 선택과 리더십, 협업과 결합의 조직 구조, 합리적이고 유연한 관리 방식,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적인 개선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시장과 산업의 본질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반영해 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한 현재 시점에는 어떤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는가? 경영학계는 더는 통용되지 않는 기존의 경영 전략을 벗어나 거대한 전략적 변형(Strategic transformation)을 주문하고 있다. 전략적 변형의 핵심은 4차 산업혁명이 산업과 사회 전반에 가져올 변화를 ‘Industry 4.0’으로 표현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 대응 방안으로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창의적 사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 유연한 조직 구조, 기술 혁신과 기업 간 협력(융합),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지금 회자되고 있는 100년 기업의 조건과 90년대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레토릭의 변화는 있으나 큰 맥락에서 서로 유사한 기본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황에 대응해 기존의 루틴을 버리고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은 그때와 지금 모두 같다.

그러나 본 사례는 GE가 장수 기업의 기본 원칙에 대한 확고한 인식은 있으나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된 모습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GE가 지난 3차 산업 시대를 통해 축적된 기존의 성공 모델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자원과 에너지만 쏟다 보니 성과는 미진하고 모든 구성원은 탈진하는 번아웃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본 사례가 기술한 GE가 범한 4가지 치명적인 실책은 회사가 변화에 실패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첫째, 새로운 리더십 부재, 둘째, 경직된 성장 전략, 셋째, 뿌리 깊은 관료주의, 넷째, 시장 변화의 둔감한 대응이다.

GE의 4가지 치명적 실책

먼저 잭 웰치 회장 후임인 제프리 이멜트 회장과 존 플래너리 회장은 현 시장 상황에서 GE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2000년 이후 경영학계는 성공적인 CEO 리더십으로 서번트 리더십, 코칭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공동의 목표가 실현될 수 있도록 조직구성원의 역량과 창의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리더가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수직적, 권위적 리더십이 진가를 발휘하던 3차 산업 시대와 달리 융합, 다양성, 조직구성원의 집단적 창의성이 요구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한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멜트 회장은 새로운 리더십으로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보다 잭 웰치의 레거시를 잭 웰치의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데만 골몰했다. 그의 성공과 성취가 곧 GE의 성공이라는 신념이 강했으며 자신이 모든 사안의 중심에 있었다. 후임인 존 플래너리 회장 역시 조력자 역할과는 거리가 먼 무책임과 미숙한 소통으로 오히려 모든 이해관계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둘째, GE는 새로운 산업 환경이 요구하는 창의적인 성장보다 기존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배열하거나 강화하는 경직된 방식만을 모색했다. GE는 제조업에 기반을 둔 다양한 연관, 비연관 산업재와 첨단 기술 제품을 생산하며 사업부 간 내부 역량을 적극 공유하는 성장 모델을 추구했다. 높은 수준의 다각화된 글로벌기업(Conglomerates) 체제를 유지하며 규모•범위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봤다. 많은 사업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이 사업 구조는 2000년 이후 가속화되는 세계화, 전자, 부품, 기계 산업 중심으로 한국, 중국, 인도의 경쟁 기업, 실리콘밸리의 등장, IT의 발전이라는 복병을 만나 경쟁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가치창출의 과정과 기여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사업 구조라 한정된 분야에 특화된 신흥 기업(Emerging giants)과 경쟁하는 데 한계점을 노출했다. 특히 독자적인 산업 경쟁력도 없이 그룹사들에 현금을 수혈하는 역할만으로 핵심적 위치를 차지했던 GE캐피털은 문제아(Problem child)로 전락했다. 핵심 역량의 모호한 공유, 현금흐름과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내적 성장을 추종하는 유기적 성장모델(Organic growth model)은 글로벌 자본시장의 활성화, 외부와의 협업과 네트워크가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셋째, 사례에서 언급된 GE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 성과 제일주의, 순혈주의로 조직은 점점 더 경직됐고 보신주의는 팽배해졌다. 일부 학자는 GE의 성공 모델 중 하나였던 ‘최고 관리자 교육 프로그램(GE Executive management education program)’이 이 같은 조직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더욱 고착화시켰다고 주장한다. GE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부 내 유능한 관리자들에게 전문성을 함양하고 최대 권한과 일괄 책임을 부여해 각 사업부 조직을 이끌게 했다. GE를 이끌어갈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낸 이 프로그램은 엘리트주의, 부서 간 이기주의, 순혈주의 등 몇 가지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이 인재들은 자신의 부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므로 기업 본부로 흘러가는 정보는 가급적 차단하려 했으며 본부와 타협할 수 있는 절충안이 의사결정의 핵심이 됐다. 본부 역시 전사 차원으로 번질 만한 문제 사안은 과소평가하거나 축소하려 했고 당장의 급한 사안이 아닌 한 본부와 부서 간 긴밀한 수평적인 소통도 사라졌다. 이사회를 굳이 놀라게 할 만한 사안을 만들어서는 안 될 만큼 이사회가 무용지물이 된 것도 기업 내부의 우수한 관리자들이 만들어 낸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다.

넷째, 2000년 이후 GE는 급변하는 산업 구조 변화에 매우 둔감하게 대응했다. 지난 1970, 1980년대 GE는 공격적인 인수합병, 높은 시장점유율, 일정 수준의 재무성과 유지라는 방식으로 시장에 대응했다. 이런 식의 대응은 늘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주주들을 흐뭇하게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형적인 방식은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이 발전하면서 경쟁기업들도 GE 못지않게 손쉽게 자본을 조달해서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운영상의 문제가 많은 1, 2위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해 이를 GE의 강점인 효율을 통해 영업이익을 늘리는 방식은 많은 기업(특히 경쟁 기업들)에도 모방돼 더 이상 시장에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과도한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무리한 인수딜을 반복하면서 기업의 부담은 커갔다. 시장은 멈춰 있지 않고 계속 진화하며 새로운 경쟁업체, 소비자를 양산해 내지만 GE는 이에 관심을 두기보다 ‘Buy and Hold(매입해서 우직하게 자기식대로 밀고 나감)’라는 전통적인 전략만을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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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100년 기업의 조건

서두에서 제기했던 100년 기업이 몰락하는 원인, 그리고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는 GE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통해 어느 정도 명확히 정리할 수 있다. 100년 기업의 기본 조건은 이미 우리가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이 조건은 예전이나 지금 모두 변함없이 유효하다. 이는 우수한 신기술, 새제품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경영진의 리더십, 유연한 조직구조와 관리, 변화에 따른 대처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혁신 기업의 딜레마로 몰락한 코닥, 소비자를 무시하다 몰락한 GM, 이사회의 무용지물로 만들다 결국 무너진 타이코. 오랜 성공을 경험한 이 기업들이 무너진 것도 결국에 잘못된 리더십, 어울리지 않은 조직 구조와 관리 방식, 그리고 산업 변화에 둔감한 대응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오랜 성공의 길을 걸었던 기업이 사라져 가는 데는 나름의 특별한 사정과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긴 역사로 누적된 성공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꾸 변해가는데도 말이다.


필자소개 류주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jhryoo@hanyang.ac.kr
필자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유치, 해외 직접투자 실무 및 IR, 정책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국내외 학술저널 등에 기술벤처, 해외 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PMI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