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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Interview : U-20 월드컵 준우승 이끈 정정용 감독

“아버지는 어렵고 무서워 삼촌 콘셉트
‘신뢰 속의 자율’이 기적을 만들었죠”

김성모 |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정정용 감독은 올해 5월 말 폴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재기발랄한 Z세대를 이끌고 한국 남자 축구 사상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따냈다. 약체로 꼽혔던 한국 대표팀이 우승 후보들이 즐비한 ‘죽음의 조’에서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정정용 감독은 ‘삼촌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해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과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코치들에게 역할을 분담했다. 코치진의 전문성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상대에 대한 맞춤형 전술을 준비하고, 경기마다 상황에 맞는 과감한 결단으로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조수경(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드라마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극적이다. 이들 또한 그랬다. 바로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이다. 올해 초만 해도 해외에선 U-20 한국 축구 대표팀을 약체로 꼽았다. 이강인(스페인 발렌시아)이라는 유망주가 있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다른 유럽파 정우영(독일 프라이부르크)이 소속팀 문제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합류하지 못하면서 최상의 팀조차 꾸리지 못했다.

대진표가 나오고 나서는 국내에서마저 “축구는 모른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 조를 이루는 등 ‘죽음의 조’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은 포르투갈에 1-0으로 아쉽게 졌고, 남아공과 아르헨티나를 각각 1-0, 2-1로 꺾으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16강 한일전이었다. 치열했던 경기는 후반 38분 오세훈의 헤딩 결승 골이 승부를 갈랐다.

대표팀의 질주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세네갈과 8강전에서는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4강전에서는 남미 지역 예선 1위로 월드컵에 진출한 에콰도르(1-0)를 꺾었다. 이를 통해 역대 최고 성적인 1983년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현 U-20 월드컵) 4강을 뛰어넘었다.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했지만 대표팀은 FIFA 주관 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이뤄냈다.



결과가 나오고 언론에서 각종 분석 기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2골 4도움으로 대회 골든볼(MVP)을 받은 이강인보다 더 주목받은 이가 있었다. 바로 정정용 감독이다. 그는 한국 축구에서 비주류에 속했다. 청구고, 경일대를 거쳐 실업팀 이랜드에서 5년간 뛰다가 부상으로 29세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지도자로 전향한 뒤에도 지하철을 타면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다.

단출한 이력을 가진 이 감독이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에서 준우승 신화를 썼다. 그야말로 ‘신데렐라 스토리’다. 대회 경기마다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상대에 따라 맞춤형 전술 전략을 펼쳐 호평이 쏟아졌다. 정정용 감독의 전략을 두고 ‘제갈용(제갈량+정정용)’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냥 어린 선수들도 아니었다. 이번 U-20 선수들은 1999∼2001년 출생한 ‘Z세대’로 구성돼 있었다. 1 이전 선수들과 세대가 달랐다.

많이 바뀌고 있지만 한국 축구계는 아직 권위적이고, 감독이 지시하면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 문화가 남아 있다. 지도자는 선수를 통제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움직이게 한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지적은 각종 대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Z세대는 이러한 문화를 거부한다. 직설적이고 불합리한 것을 못 견딘다. 이 때문에 ‘정정용의 수평적 리더십’에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대표팀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올해 6월2일 폴란드 루블린 근교 푸와비 훈련장. 월드컵 16강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회복 훈련을 하기 위해 모였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흐를 법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운동장에는 그간 운동장에서 금기시돼 왔던 걸그룹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족구를 하는 선수들의 앳된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어이∼ 정 감독!” 상대편 팀으로 간 이규혁 선수(1999년생)가 정정용 감독(1969년생)을 도발했다. 선을 넘나드는 장난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 순간 정정용 감독이 “그래도 감독인데 ‘리스펙트’ 좀 해줘라”며 웃어넘겼다.

최근 경기도 파주시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사실 그때 내가 말려들었다. 말한 다음에 서브를 넣었는데 아웃됐다”고 말했다. 뒤끝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럴 때마다 속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3번 하고 잊는다”고 답했다.

정정용 감독은 “평소 리더십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소통과 신뢰, 팀워크, 전술 전략 등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리더십 요소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자신 있게 늘어놨다. 다음은 정정용 감독과의 일문일답.



정정용의 리더십이 화두다. 일반 대기업에서도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강연은 시간 나면 최대한 하려고 한다. 권위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축구계가 바뀌면 일반 기업이나 사회에서도 분위기가 바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주로 ‘수평적 리더십’으로 주제가 잡히는데 이론적 배경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터뷰하면서 나의 리더십에 대해 정리해보게 됐다. 내가 워낙 권위적인 성격이 아니다. 의전도 안 맞는다. 내가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코치나 선수들이 밥 안 먹고 기다리는 것도 안 좋아한다. 여기에 성과를 잘 내려고 자주 소통하다 보니 수평적 리더십으로 주목받게 된 것 같다. 아직도 노력 중이다.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가 호기심이 많다. 선수 시절, 감독이나 선배가 지시하면 ‘왜 그래야 하지’라는 물음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그때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수직관계가 확실했다. 뭔가 질문하면 ‘싸가지 없다’고 봤다. 내가 성격이 강하질 못하고 내성적이어서 하라는 대로 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괴로웠다. 포지션이 맞지 않아도 뛰어야 했다. 수비수인데 골키퍼까지 해봤다. ‘감독이 나를 싫어하나, 난 왜 뛰게 안 해주지?’ 이런 생각은 안 해본 선수가 없을 거다. 이런 이유에 대해 대부분의 감독이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고 뛰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 차이다. 한 선수가 포지션이 맞지 않아 속으로 꽁하고 열심히 안 뛴다고 치자. 결과가 어떻게 되겠나. 코치가 되고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최대한 소통은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리더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실천이 어렵다. 리더 중에 자신은 수평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지 않나.

공감한다. ‘강압’과 ‘지시’는 쉽지만 ‘이해’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는 소통과 공감에서 비롯되는데 소통하려면 힘들지 않나, 그러니 쉽게 포기해버리는 거다. 소통 자체의 어려움도 있다. 그냥 설명해준다고 소통이 아니더라.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중학교에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첫 지도자 생활이니 얼마나 열심히 했겠나. 그런데 하루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선생님이 하는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아이들끼리 하는 말을 듣게 됐다.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충격을 받아서 화장실에서 30분 넘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다음부터 더 많이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반만 이해하고 넘어갔을 때 학습 효과가 얼마나 떨어졌겠나.


특히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은 더 어려울 것 같다.

프로 선수도 그렇지만 어린 선수들은 감독을 더 어려워한다. 그래서 ‘삼촌’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형은 어떻게 보면 무서울 것 같고, 아버지도 엄한 이미지다. 삼촌은 오라고 하면 ‘가기 싫다’고도 할 수 있고, 용돈 준다고 하면 또 오기도 하고. 그런 이미지가 좋을 것 같았다. 최대한 편하게 하고, 대신 자발적인 책임감을 강조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뒤에서 할 거 다 한다고 하지 않나. 어디까지 풀어주고, 어느 선에서는 막을 것인지를 선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합의가 이뤄진다. 상호 간에 신뢰가 생기는 거다. 그 안에서 스스로 책임감이 생기는데 자율은 보이지 않는 힘을 발산한다.

정정용 감독은 자율 속 규율을 강조한다. 축구 대표팀의 각종 관례를 깼다. 긴장감만 흐르던 훈련장에는 걸그룹 음악이 흘러나왔다. 대표팀 소집 기간에는 그동안 금지돼 왔던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했다. 숙소 밖 외출은 오히려 정정용 감독이 더 권했다. 성인 대표팀도 월드컵 소집 훈련 때는 관리를 위해 사생활을 제한해왔다. 정정용 감독은 이를 깨고 어느 정도 자유 시간을 존중해줬다.

훈련장에서 음악을 튼다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한 것도 자율의 일환이었나.

합숙 생활을 하다 보면 연습 때 다들 힘드니까 인상 쓰고 나온다. 분위기가 중요한데 음악 정도는 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회 때 현장에서 몸을 풀면 굉장히 시끄럽다. 그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라는 의미도 있었다. 스마트폰은 큰 고민거리였다. 이 세대는 스마트폰이 삶의 일부다. 일찍 프로 생활을 시작한 선수도 있는데 뺏는 것보단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스스로 절제하게 만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리 상담 전문가를 모셨다. 눈의 피로도가 숙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훈련할 때는 그게 어떤 파장을 주는지, 내 행동이 룸메이트한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교육했다. 이후 확실히 좋은 결과가 있었다. 본인이 느껴야 한다. 앞으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교육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어린 선수들한테 SNS의 비중이 그만큼 크더라.



U-20 월드컵 세대와 차기 U-20을 준비하기 위해 이번에 모인 선수들이 전부 Z세대다. 이전 세대들(80년대생)과 성향이 다른가.

확실히 다르다. 이 세대는 직설적이고 자기표현이 강하다. 또 무대 체질인 것 같다. 즐길 줄 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손흥민도 그렇고, 대표팀 선수들이 월드컵이나 중요한 경기 끝나고 결과가 아쉬워서 우는 장면이 많지 않았나. 얘들은 안 그런다. 월드컵 끝나고 한 기자가 강인이에게 ‘우승 못해서 아쉽겠다. 눈물이 나지 않느냐’고 하니까 ‘왜 울어야 하나요, 전 후회 안 해요’라며 웃더라. 큰 무대를 ‘신나는 놀이터’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재밌는 건 이번에 대표팀으로 소집한 선수들은 폴란드 월드컵 세대들보다 2살 정도 더 어린데 또 다르더라. ‘축구는 축구고, 내 사생활은 따로 있다’는 거다. 선수들 대부분이 당차다. 이번에 소집하자마자 휴대전화를 걷었다. 이전 대표팀 애들도 이 나이일 땐 걷었다. 그런데 기사가 나온 것을 보더니 ‘왜 형들은 쓰게 해주고 우리는 뺏냐’는 거다. ‘너네는 청소년이고, 그 형들은 프로팀에 소속된 선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거다. 단계가 있다’라고 설명해줬다. 예전 같으면 감독한테 물어볼 생각도 못했지. 80년대생들은 감독을 어려워했는데 확실히 다르다. 내가 얘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꼰대 안 되려면 잘해야지. 하하.


‘할 말은 하는 세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세대’라 이기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형제 없이 혼자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축구 같은 단체 종목은 김연아같이 혼자 잘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운동장에서 뛰는 11명뿐만 아니라 그 뒷단에 있는 후보, 코치, 의료진, 분석팀, 감독까지 모든 멤버가 하나가 돼야 하는 게 축구다. 그래서 ‘팀워크’가 기반이 돼야 한다. 그걸 만드는 게 또 감독의 역할이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 번은 경기 영상을 틀어 주고 ‘내가 힘들다고 덜 뛰었다가 전방 공격에서 압박이 풀리니까 공이 살아서 우리 수비진을 흔들지 않냐, 저기서 한 명이 조금 더 뛰었으면 미드필더, 수비까지 전체가 편했을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성향과 관계없이 협업을 해야 하고 그게 결국 결과로 이어진다. 같은 목표, 지향점이 있기 때문에 조율할 수 있다.


선수끼리의 소통은 어떻게 강화했나.

함께 시간을 보내게 했다. 식사 시간을 아침 20분, 점심과 저녁은 30분으로 정해줬다. 그때는 밥을 다 먹어도 먼저 일어나지 말고 스마트폰도 못 쓰게 했다.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지라는 의미였다. 처음엔 서먹해 했는데 나중에는 장난치고 그러더라. 물론 식탁 밑으로 스마트폰 하다가 걸린 선수들도 있는데 눈 감아 줬다. 다양한 선수가 서로 소통하고 호흡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고등학교 선수부터 프로팀, 해외파까지 다양한 선수가 모이는 대표팀은 더 그렇다. 선수들끼리 운동장에서 싸우고 그런다. 내가 더 돋보이고 싶고, 잘하고 싶은 그런 심리가 있다. 같이 생활하다 보면 충돌한다. 파벌이 생기기도 하고 서로 감정이 상할 때도 있을 거다. 밥을 같이 먹고 이야기만 나눈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결국은 프로답게 자신의 일을 잘하면 소통도 따라온다. 성과를 내려면 소통을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30세에 브라질로 코치 연수를 갔을 때 선수로도 뛰었다. 경기에서 20세 선수가 자기한테 패스 안 했다고 나한테 욕을 하더라. 속으로 ‘어딜 어린 자식이 욕을 해’ 하면서 경기 끝나자마자 혼내주려고 다가갔더니 ‘아미고(Amigo·친구)’ 이러더라. 황당했는데 나중에 이해가 가더라. 외국의 프로 문화가 그렇다. 나이나 직급과 상관없이 일할 땐 서로 최선을 다하고 프로답게 군다. 그다음부터는 형인 내가 더 긴장하게 되고, 욕 안 먹으려고 하다 보니 집중력도 생기더라. 서로 존중하는 법도 그러면서 배우는 것 같다. 진정한 소통은 직급이나 나이를 떠나서 존중하고 신뢰할 때 가능한 것 아닐까.


팀워크를 다지려면 신뢰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소집되고 나서 처음에는 신뢰가 당연히 없다. 눈치도 보고 분위기 파악부터 한다. 소집될 때마다 짧은 시간 동안 그걸 쌓아야 하는 게 관건이다. 일단 나는 많이 배워 가라고 한다. 가족끼리도 신뢰를 못 하는 세상인데 말로만 ‘서로 신뢰해라, 믿어라’ 이렇게 할 순 없는 것 아니냐. 분위기를 익히고 경기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발전시키라고 강조한다. 월드컵 준비하는 연습 경기에서 사실 많이 졌다. 선수들이 고생도 많이 했고. 그런 과정에서 더 끈끈해진 것도 있다. 이때 신뢰가 많이 쌓인 것 같다.

대표팀 막내로 참가한 이강인은 대회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삶은 성장 과정이 대중에 낱낱이 공개돼 있어 영화 ‘트루먼 쇼’를 연상케 한다. 이강인은 어린 시절 축구 관련 예능 방송에 처음 등장했다. 우리에게 ‘슛돌이’로 알려져 있다. 이후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 특급 유망주로 성장했다. FIFA가 선정한 ‘주목할 선수’ 10명에 들 만큼 국제무대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볼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고, 압박이 들어올 때 상대를 따돌리는 개인기는 동년배에 비해 월등하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킥도 인상적이다. 대회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막내가 특급 유망주(이강인)라 시기, 질투가 있었을 것 같다. 팀워크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감독으로서도 고민이 많았다. 선수들도 강인이의 존재감은 인지한다. 세계적인 리그에서 몸값이 수백억 원인데 시샘과 질투를 안 할 수는 없을 거다. 다만 선수들도 이 친구가 있기 때문에 팀이 한 차원 더 높아지고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팀에 강인이와 선수들이 잘 융화되도록 하면 큰 시너지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강인이한테 ‘운동장에서 연습 때 선배들한테 태클 넣고 하면 우리 문화에서는 네가 동생이니까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라. 그럼 네가 더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강인이가 붙임성이 있고, 그런 건 하라는 대로 잘한다. 경기장에서 태클 넣고 옷 잡아끌고 치열하게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선배들 쫓아가서 잘 따르고 그런다. 강인이가 로커룸에 들어오면 조잘조잘 거린다. 힘든데 선수들도 짜증 날 때가 있지. 맏형 조영욱 선수한테 ‘한 번 조용히 시켜라’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강인이가 삐져서 며칠 말 안 하더라. 좀 지나서 영욱이한테 풀어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또 조잘조잘 거리더라. 막내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를 많이 이끌었다. 그래서 ‘막내 형’이라는 별명도 생긴 것 같다. 애들이 별명 짓는 걸 참 좋아한다. 세훈(오세훈)이한테는 ‘오바마’라고 하고 원상(엄원상)이는 ‘엄살라(이집트 축구 선수 모하메드 살라를 붙여)’였나 그랬다. 애들은 애들이다. 팀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어린 선수들한테는 자신감 부여나 동기부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엄청 중요하다. 대회 전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중점을 뒀다. 작년에 프랑스에 가서 툴롱컵에 참가했는데 상대 팀 선수들 나이가 우리 선수보다 2∼3살 위였다. 덩치가 크고 강한 상대들하고 부딪쳐본 거다. 경기에서 지고 그러니까 언론에서 욕도 먹고 축구팬들한테 혼나고 그랬다. 그러고 나서 올해 3월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같은 또래의 프랑스 선수들과 붙었다. 오세훈이 ‘해볼 만하다’고 하더라. 자신감은 말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한 단계씩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리더의 목표 설정도 중요하다. 지난해에 AFC 챔피언십에서 내가 ‘월드컵 본선 티켓이 나오는 4강에만 들자’고 이야기했다. 내가 목표 설정한 것에 선수들이 영향을 받더라. 타지키스탄과의 8강에서 선수들이 엄청 경직돼 있었다.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내 방침이 선수들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월드컵 때는 ‘팀이 7경기(3·4위전 또는 결승까지 치렀을 때)를 뛰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굉장히 큰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집에 오니까 아내가 ‘빨리 축구 공부 더 하라’고 닦달하더라. 목표 설정이 실제로 이뤄졌다. 나도 신기하다. 수평적 리더십도 이런 공동의 지향점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신감을 부여하고, 동기부여를 계속해주면 아무리 선수들을 풀어줘도 목표가 있기 때문에 열정을 다 한다.


코치진(중간관리자)과의 역할은 어떻게 배분하나.

CEO와 임원들 사이가 경직되면 직원들이 모를까? 대부분이 알 거다. 축구도 똑같다. 그동안 한국 축구계에서는 감독과 코치가 ‘가깝고도 먼 사이’이긴 했다. 위아래가 정말 분명했다. 분위기가 경직되면 선수들도 당연히 더 긴장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피해가 선수들한테 가는 거다. 예전에 포르투갈 브라가에 연수를 간 적이 있다. 그때 감독이 32세였고, 코치가 40대였다. 그런데 전혀 불편함이 없고 화기애애하더라. 이때 보고 배운 걸 팀에 많이 녹이려고 했다. 우리 팀에는 ‘말 잘 듣는 코치’가 없다. 많이 싸운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수비 코치든, 골키퍼 코치든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다만 허심탄회하게 서로 이야기하고 최종 결정만 내가 한다. 결정하기 전에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말을 충분히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리면 전적으로 따라 달라고 항상 이야기한다. 코치들도 이를 존중해준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영국 축구에서는 감독을 ‘매니저’라고 한다.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 코칭 스태프뿐만 아니라 의무진, 선수까지 다 관리해야 한다. 구단주 등 윗분들도 관리해야 하고, 지금 하는 인터뷰처럼 미디어도 관리해야 한다. 박지성이 뛰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명장 퍼거슨도 감독을 ‘헤드코치’라고 안 하고 ‘매니저’라고 불렀다. 감독은 매니징하는 것이지 위에서 거느리는 것이 아니다. 코치에게도 역할과 책임을 분배해주는 게 맞다. 월드컵 때도 세트피스 공격 상황에서 공격 코치는 공격을 책임지게 하고, 수비 위치는 골키퍼 코치가 책임졌다. 이들을 전문가로 인정해줘야 팀이 더 성장한다.

여기에는 정정용 감독 본인의 경험도 한몫했다. 그는 과거 중요한 대회 때마다 TSG(Technical Study Group, 기술연구그룹)로 활동했다. 하지만 정정용 감독이 내놓은 분석은 현장에서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월드컵에서 이 TSG 분석을 적극 활용했다. 오히려 정정용 감독이 먼저 자료 제공을 재촉하기도 했다. 여러 의견을 취합해야 최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정용 감독은 이를 기반으로 상대의 전술 변화에 따른 맞춤형 전략을 내놓아 강적들을 물리쳤다. ‘제갈용(제갈량+정정용)’이라는 별명은 이렇게 나왔다.


이번에 맞춤형 전술 전략으로 상대를 제압해 큰 주목을 받았다. 전략은 어떻게 짜나.

집에서 상대편의 과거 경기를 많이 본다. 대표팀은 목적을 가지고 소집되는데, 이에 맞춰 전략을 짠다. 훈련(친선전)이 목적인지, 1차 예선인지, 본선인지 이런 것들을 고려한다. 1차 예선에는 상대 팀들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약체라 수비적으로 나온다. 이걸 어떻게 뚫어낼 것인지 고민하고, 본선 가면 또 맞춰서 달리 짠다. 국내 축구팬들의 눈높이가 크게 높아졌는데 사실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약한 부분이 많이 있다. 순위만 봐도 그렇지 않나. 조 추첨이 끝나고 스터디그룹처럼 TSG를 짜고 직접 다녔는데 실리 축구를 많이 추구하더라. 조 내에 강팀들이 많은 만큼 우리야말로 실리 축구가 필요했다. 콘셉트를 잡고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전술인 쓰리백에 대해 완벽하게 갖출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했다. 전술 노트도 활용했다. 대회 준비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이 빠르게 전술을 숙지할 수 있게 상대 전술 변화에 따라 포메이션을 어떻게 바꾸고 각 포지션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등을 적어서 나눠줬다. 선수들이 이를 잘 숙지해줘서 고마웠다. 감독이 전술을 잘 짜도 선수가 이해 못 하거나 열심히 안 뛰어주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맞춤형 전술이 통했던 사례들이 있다면.

2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20세 월드컵을 했었다. 그때 경기를 하나하나 보면서 준비를 했는데 골키퍼가 승부를 결정짓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골키퍼가 잘해야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광연이 1군 경기에서 한 경기도 뛰지 않았지만 훈련을 많이 시켰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투입했다.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슛을 막아서 ‘빛광연’이란 별명도 생겼더라. 기분이 좋았다. (정정용 감독은 16강 일본전에서 경기가 크게 밀리자 후반전에 스피드가 좋은 엄원상을 투입했다. 엄원상은 오른쪽에서 속도와 돌파력을 바탕으로 일본 수비진을 끊임없이 흔들었고, 결국 팀은 분위기를 살려 승리를 따냈다. 4강 에콰도르전에는 후반 27분에 에이스 이강인을 교체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동점 골을 허용했을 때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정정용 감독은 수비 강화를 위해 결단을 내렸고, 결국 결승 골을 지켜내 결승전에 진출했다.) 물론 다 결과가 좋았던 건 아니다.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1-3 역전패를 당하고 일부 선수들이 축구 팬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다. 팬 입장에선 지적과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화살이 나한테 오는 게 맞다. 해당 선수들의 포지션을 결정했던 것도 나니까. 모든 경기의 책임은 리더가 지는 거다. 기존과 똑같은 포지션에서 똑같은 전술로 했다고 해도 경기 결과가 매번 다를 수 있다. 어떤 선수가 못했다고 치자.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을 리더가 먼저 알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 같은 선택이라도 결과가 좋으면 뛰어난 용병술이라고 칭찬받고, 안 좋으면 욕먹는다. 그게 리더의 역할 같다. 감독은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운영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회사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직원이 실수하고 일을 제대로 못했으면 그 선수한테 일을 시킨 책임자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선수들의 개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선수마다 장단점이 다 다르고, 개성이 강한 선수도 있다. 예전엔 그 개성을 눌러버리는 쪽으로 많이 지도했다. 예전에 내가 선수 할 때도 천재적인 선수가 있었다. 강압적으로 그걸 눌러버렸는데 장점이 사라져버리더라. 지도자마다 팀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선수마다 맞춤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외향적인 이재익 선수에게 ‘넌 헤딩도 못하니’ 이렇게 이야기하면 웃고 넘기겠지만, 상대적으로 내성적인 엄원상 선수에게 ‘그것도 못 넣느냐’고 하면 계속 속으로 생각하고 걱정할 거다.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특히 유소년 선수들은 감독한테 관심을 받으려고 많이 하는데, 더 관심 가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 심리학 교수로부터 조언을 많이 듣는다. 개성을 살리려면 감독이 선수 개개인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지. 감독이 4-3-3 포메이션을 쓰고 싶은데 선수는 3-5-2를 원한다고 치자. 옷이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한 것처럼 선수도 이를 똑같이 느낀다. 감독이 콘셉트를 정하면 여기에 맞는 선수를 뽑을 수 있다. 그러려면 잘 알아야 한다. 애초에 나는 3-5-2 포메이션을 생각하고 있었고, 가운데 포지션에 정호진이라는 선수가 필요해 뽑았다. 축구협회에 연령별로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이 있다. 나이대별로 데이터베이스가 있고, 초청 대회 때 선수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기본 데이터를 가지고 직접 가서 확인하고 선수들을 선발한다.


그렇다면 정정용 감독은 어떻게 전술가가 될 수 있었을까. 정정용 감독은 초등학교 때 성적표에 ‘올 수’가 찍혀 있을 정도로 공부를 좋아했다. 선수가 돼서도 무언가를 배우는 데 관심이 많았다. 학생 때는 책을 많이 읽었고, 이랜드에서 프로선수로 뛸 때에는 감독의 허락을 받아 저녁마다 학교(명지대 체육 석사)에 다니는 ‘주축야독’을 했다. 현재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대학 시절 이문열 작가의 평역 삼국지를 비롯해 여러 작가의 삼국지를 읽었다는 그는 인내심을 잃지 않는 ‘사마의’를 좋아한다고 한다. 정정용 감독은 월드컵 Z세대 선수들에게 해외로 시합을 뛰러 갈 때마다 책을 챙겨오라고 권하기도 했다.


다시 리더십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동안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는 다른 모습인 것 같다. 정정용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마땅한 말이 안 떠오르는데. 지금처럼만 하고 싶다. 지금 내가 말한 것들을 변하지 않고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소탈하게 초심을 지키는 게 참 멋있지 않나. 평소 지하철만 타다가 요새 스케줄이 많아져서 축구협회에서 법인카드를 쓰라고 줘서 택시를 타봤다. 엄청 편하더라. 어느 순간 ‘이런 걸 내가 편하게 느끼게 되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들었다. 물론 직급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있을 거다. 과장일 때랑 차장, 대표일 때가 달라지는 게 맞지 않나. 책임감도 더 생기고. 조영욱 선수가 “쌤, 막내일 때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는데 선배가 되니까 영 달라요”라고 그러더라. 거만해지지 않고 역할에 충실한 게 중요한 것 같다. 책임이 느는 것이지 삶이 변해서 되겠나.


정정용이 추구하는 ‘수평적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서도 가능할까.

하루아침에 가능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월드컵 결과가 나오고 성인 프로팀에서 감독직 제안이 들어왔는데 또 U-20 대표팀 감독직을 맡았다. 내가 이번 월드컵(준우승)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긴 사실상 어려울 수 있는데도 감독직을 수락한 것은 이 문화를 연계하고 싶어서다. 고지식하고 딱딱하고 위계질서가 강한 체육계에서, 그것도 대표팀에서 조직문화라든지 분위기가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연계 역할을 하고 싶다. 요새 직장인들 대상의 리더십 강연 을 많이 한다. 막상 가면 곤혹스러운데 새롭고 재미있다. 현장에서 막 부딪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직장인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 같다. 체육계가 바뀌면 사회에서도 변화가 더 빠르게 오지 않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뭐든 열심히는 하고 있다. 리더면 이 정도 열정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김성모 기자 mo@donga.com


DBR mini box: “정정용 감독처럼 듣는 데 주력해보자”


“한국 축구는 기술이 낙후됐기 때문에 엔트리를 빨리 구성해 기술적으로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데 이는 팀워크를 해치는 일이다. 대표팀은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길러야 한다.”

역사적인 2002년 한일월드컵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태에서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지고, 3개월 후 체코 원정 평가전에서도 다시 한번 0-5의 큰 점수 차로 패해 여론의 비난이 이어지자 1983년 U-20 월드컵 멕시코 4강 신화를 만들어냈던 박종환 전 감독이 한 말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런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기본기를 중시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과학적인 전술 분석을 적용하되 선수 개인 생활은 존중했다. 운동장에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선후배 선수끼리라도 존댓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플레이가 잘 안 풀려도 개별 선수를 질책하지 않고 팀플레이에 대해서만 피드백했다.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월드컵 며칠 전에야 최종 엔트리 명단을 결정했고, 주전에서 탈락한 선수도 차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2년 초여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격파했다.

폴란드에서 열린 2019 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이 준우승을 하자 사령탑 정정용 감독의 리더십에 이목이 쏠렸다. 성공 배경에는 ‘수평적인 리더십’과 ‘삼촌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았다. 경영 현장의 리더들이 정 감독의 수평적 리더십 스타일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조직 환경에 맞는 ‘맥락 조정’이 필요하다. 수평적 리더십 실천에 필요한 조건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업무의 중심 이동. 수직적 리더십은 업무의 무게중심이 ‘리더’에게 있다. 자원을 배분하고 의사 결정하는 권한이 모두 임원과 팀장에게 있으니 자연히 권위가 생겨나고, 필요 이상으로 군림하게 되며, 반대로 직원들은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처리할 뿐이다. 수직적 리더십은 ‘영웅적’ 리더십에 가깝다. 위대한 제왕이나 장군의 지략과 카리스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웅 중심’ 리더십 모델은 개인들의 의식 및 기대 수준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21세기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밀레니얼, Z세대 젊은 직원들은 시킨 일만 묵묵히 하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무의 무게중심이 실무자들에게로 옮겨가야 한다. 정정용 감독은 철저하게 ‘선수’ 위주의 팀 운영을 했고, 축구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소신을 지키면서도 구체적인 훈련과 생활 측면에서는 선수 개개인에게 최대한 자율을 부여했다.

상하 간의 거리가 좁혀짐. 수평적 리더십이 부하들이 ‘기어오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어오르는 것은 상대가 존경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을 때 하는 행동이다. 수평적 리더십을 잘 발휘하면 부하들이 리더의 ‘능력’ ‘비전’ ‘인품’ 때문에 존경하기 때문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 상하 간에 가까워지면 자연히 ‘소통의 갭’도 줄어든다. 이렇게 상하 간의 거리가 좁혀진 상태가 수평적 리더십의 증거다. 수직적인 리더들은 종종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는 말을 한다. 수평적 리더는 최종적 책임을 리더가 진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묵살하기보다는 설득하려고 한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리딩하는 것이 수평적 리더십이다. 정정용 감독은 자기보다 스무 살 이상 어린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어울렸으며 화를 내거나 질책하기보다는 진지하게 조언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에 대한 존중. ‘너’와 ‘나’, 즉 개인이 모인 것이 조직이다. 하지만 수직적인 리더는 ‘개인’을 보지 않고 ‘조직’만 본다. 하지만 이런 리더십으로 일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달라졌다. 1979년 ‘국민가치관조사’에서 한국인의 절반 이상은 ‘나라(국가)’를 가장 중요한 지배가치로 꼽았지만 2010년 조사에서는 89%가 ‘나/가족’을 꼽았다. 특히 ‘나(Me)’ 세대라고 불리는 밀레니얼과 Z세대들은 조직의 일원이기 전에 자기만의 개성과 욕구를 가진 개인으로서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 욕구를 읽지 못하고 기성세대 리더의 경험과 생각에 틀에 넣고 망치질하면 튕겨 나갈 뿐이다. 정정용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해 성향과 행동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성격까지 고려해서 코칭을 하며, 선수 외에 코칭 스태프, 의료진, 협회, 미디어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까지 적극적으로 챙겼다.

업무적으로 유능함. 수평적인 리더가 업무 능력은 별로라도 권한 위임만 잘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수평적인 조직일수록 리더가 무능할 때 혼란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조직은 리더의 무능을 실무자의 무한한 노력으로 채울 수 있는데 수평적 조직은 그렇지 않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는 의사결정권과 책임이 실무자들에게 부여되고 매우 수평적인 문화를 자랑하지만 무능한 리더가 발붙이지 못한다. 수평적 조직에서 리더들은 실무자가 써온 보고서를 일일이 고쳐주지는 않지만,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의 운영 방식과 원칙을 명확하게 하며, 조직 관점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등 ‘리더 본연의 업무’를 직접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정용 감독은 선수 시절에도 이론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학원 공부를 병행했고 해외 지도자 유학을 다녀왔을 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데이터와 근거를 가지고 팀을 지도했다.

카리스마보다 취약성. 수직적인 리더십에서는 ‘리더의 명령’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 그러려면 카리스마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뜻하지 않는 대가가 수반된다. 카리스마가 과도한 리더들은 ‘자기 과신’ ‘인정 갈망’ ‘특권 의식’,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과 ‘착취 성향’ 등 문제를 함께 지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평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보다는 취약성(vulnerability)도 드러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 자신의 취약한 내면을 드러내지 못하는 리더는 부하들을 제대로 배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정용 감독은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스타일도 아니고, 술 마시면서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도 아니다. 아마도 어린 대표팀 선수들은 이런 정 감독의 모습을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필자소개 김성남 인사조직 칼럼니스트 hotdog.kevin@gmail.com
필자는 듀폰코리아, SK C&C 등에서 근무했고 머서, 타워스왓슨 등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사의 컨설턴트로 일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고, 『미래조직 4.0』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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