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 Art

새 인재상 보인 젊은 지휘자의 번뜩임

11호 (2008년 6월 Issue 2)

예술은 경영의 숙제를 푸는 실마리
예술과 경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메세나(문화예술 지원) 활동과 미술품 전시에 관심을 쏟는 경영자들이 왜 늘고 있을까? 한마디로 경쟁의 핵심이 품질 향상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로 옮겨가고 있으며, 기술만으로는 새로운 가치 창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진 국가, 선진 기업의 제품을 모방해 효율성을 더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국내 기업은 모방하고 추격하는 ‘이미테이터(imitator)’에서 벗어나 혁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노베이터(inno-vator)’가 돼야 한다. 품질을 넘어 고객 만족, 혁신적 가치를 지닌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예술을 일컫는 ‘아트(art)’라는 말은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나왔고, 아르스는 테크닉의 어원이 되는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비롯됐다. 초기 고전적 예술은 무엇인지를 산출하고 분석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췄으며, 예술가의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중요시 여겼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상을 묘사하고, 현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넘어 자신만의 세계로 소재를 바라보고 표현하는 개념이 중요해졌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또는 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오페라나 연극 등 훌륭한 예술 작품을 접하면 우리는 평소 경영에서 해결하지 못하던 숙제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평범한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세상을 표현한다. 이들의 번뜩이는 작품 세계를 접하면서 우리의 전반적인 안목은 향상된다. 또 똑같은 현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터득할 수 있으며, 이를 경영에 접목해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무용수 같은 젊은 지휘자, 새로운 가치를 전하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살펴보자.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이끌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음악에 대학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백발의 지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같은 기악에서는 일찌감치 재능을 드러내는 신동이 끊임없이 출현했지만 지휘에서는 재능보다 오랜 경륜이 필요하다는 게 음악계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 음악계에서는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 경륜 있는 지휘자보다 20, 30대의 젊은 지휘자들이 각광을 받으며 주류로 부상하는 추세다. 클래식 음반시장이 든든한 버팀목이던 과거에는 원숙한 표현력을 보여줄 수 있는 노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클래식 시장의 무게중심이 실황 공연이나 영상물로 이동하면서 역동성과 비주얼을 강조할 수 있는 젊은 지휘자들의 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런던심포니의 수석 객원 지휘자 다니엘 하딩, 지난해 런던필하모닉을 이끌고 방한한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등 10여명이 유럽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젊은 지휘자들이다.

 
이들 가운데 최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차기 음악 감독으로 임명된 34세의 필립 요르단(Philipp Jordan)을 소개한다.
 
2003년 글린데본 페스티벌에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서곡을 연주한 그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가 보여준 신선한 움직임, 풋풋한 부드러움은 노장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움을 던져줬다. 필립 요르단의 연주 모습은 기존 지휘자들과 확연히 달랐다. 단순히 지휘봉을 잡은 손과 팔을 부드럽거나 힘차게 휘젓거나 움직이는 차원이 아니다. 그는 지휘봉을 잠시 놓았다가 다시 쥐는 제스처를 보여준다. 이는 보는 이들에게 스릴감은 물론 리듬감과 역동성을 느끼게 하고, 곡에 박진감을 더해준다. 또 오케스트라 부스 난간의 손잡이를 잡고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우아한 무용가를 연상케 한다. 무용수가 봉을 잡고 연습하는 것처럼 그는 부드럽고, 역동적이며 때로는 공기를 가르는 한 마리 새가 된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날카로운 외모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움직임을 구사하면서 그는 열정과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 연주한 바이올린의 부드럽고 격렬한 활의 움직임, 소년합창단 시절의 힘 있는 미성이 숨어있다. 신예 젊은 지휘자 군단 중에서 요르단은 그만의 독특한 지휘로 관중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연주 모습을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공연장에서 직접 보면 가장 좋겠지만 DVD로 감상해도 충분하다. 그의 첫 모습 에 눈이 확 뜨일 것이다. 지금 경영 현장에서도 나이와 근무 연수에 상관없이 역량에 따라 인력을 배치하고 활용한다. 기존 지휘자들의 틀을 과감히 깨뜨리는 요르단의 모습에서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맞춰 조직에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던져줄 인재의 모습을 만나보길 바란다.
 

[DBR TIP] 필립 요르단(Phillip Jordan)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의 제1객원 지휘자이자 파리 국립오페라 2009∼2010년 시즌 지휘자다. 스위스 출신, 1974년 생. 음악원에서 전문적인 지휘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인 지휘자 아르맹 조르당(Armin Jordan)에게서 일찍부터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스위스 출신인 그의 이름도 필립 조르당으로 표기돼야 하지만 본인이 요르단으로 불리길 바란다.) 8세에 스위스 소년합창단에 들어갔고, 11세에 바이올린 공부를 시작했으며, 16세에 취리히 음악원에 입학해 피아노 교육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오페라 코치로 시작해 울름 오페라 카펠마이스터와 베를린 슈타츠오퍼 부지휘자로 있으면서 지휘의 기초를 다졌다. 스위스 작곡가 한스 울리히 레만에게 이론과 작곡을 배웠다. 1994년 울름 극장의 제1지휘자, 1998∼2001년 베를린 도이치 국립오페라의 제1지휘자, 2001∼2004년 그라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했다.
 
2008년 바덴바덴에서 독일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탄호이저의 새로운 버전을 공연할 계획이며, 2008∼2009년 시즌에는 취리히 오페라단과 바그너의 ‘링사이클’ 전곡을 공연할 예정이다.
 
글린데본 페스티벌의 ‘카르멘’ 공연과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에서의 ‘베르테르(Werther)’ 공연이 DVD로 제작됐다.


춘희’에서 접목과 활용을 배우다
우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가치를 얻기 위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한다. 각종 경영기법을 서로 접목하기도 하고, 경영에 새로운 분야의 혁신 아이디어를 접목하기도 한다.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얻고자 할 때는 하나의 작품을 다른 배우가 출연하고, 다른 연출가가 연출한 예술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고 유익하다.
 
베르디의 오페라, 일명 춘희라고 불리는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2004년, 2005년, 2006년 각각 다른 출연진, 연출가, 지휘자에 의해 제작됐다. 이 세 작품을 감상해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작품이지만 각기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모두 완전히 새로운 작품처럼 느껴진다. 바로 하나의 작품이 각기 다른 제작진과 배우들을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을 알 수 있다.
 
2004년 작품에서는 파트리지아 키오피가 비올레타역을, 로베르토 사카가 알프레도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두 성악가의 연기와 노래도 훌륭했지만 상황에 완전히 일치하는 로커트 카슨의 무대 연출이 무척 독특했다. 여기에 천재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이 이끄는 음악은 연기와 노래, 무대 디자인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2005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공연된 안젤라 게오르규와 프랭크 로파르도가 출연, 리차드 에르가 연출한 작품은 전통적인 무대를 연출해 과거의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게 해준다.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안나 네트렙코와 롤란도 비아손이 주연하고, 윌리 데커가 연출한 작품은 미니멀리즘 경향을 오페라에 완벽하게 도입했다. 패션, 실내 장식 등에 모던 아트의 진수를 접목해 성악가의 카리스마가 확실하게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서로 같아 보이지만 너무도 다른 이들 세 작품을 통해 접목과 활용의 무한한 가능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기업경영의 모든 영역에서 창의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이제 기업경영도 자신의 아이디어 없이 남의 것을 베끼거나 모방만 해서는 앞서가는 기업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문화 예술 분야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대표적인 장(場)입니다. 배보경 교수가 예술에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창의력과 통찰력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예술과 경영을 접목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이화여대 졸업 후 한국IBM에서 인사·교육, 기업문화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 부원장을 거쳐 2003년부터 KAIST 경영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고위경영자과정 디렉터를 맡고 있다. 특히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과 경영의 경계를 허물고 감성에 바탕을 둔 경영을 전파한다. 저서로 <움직이는 전략> <지식과 학습 그리고 혁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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