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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명사 초청 특강: 천호균 쌈지 대표이사

“나는 쌈지라는 시를 쓰는 기업인, 사람과 전통을 사랑한다”

정임수 | 11호 (2008년 6월 Issue 2)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나는 쌈지라는 시를 쓴다”
“예술은 보여주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예술은 멀리서 날아와 내 이마를 때리고, 내 가슴을 때린다. 이탈리아에 구찌가 있다면 한국에는 쌈지가 있다. 나는 쌈지라는 시를 쓰는 천호균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내 직업이 무엇인지 아주 궁금해한다. 뭘 할 것 같으냐고 되물으면 대부분 시인이나 영화감독, 화가, PD 같다는 답변이 돌아온다.(천호균 대표는 아들의 결혼식에도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해 직접 주례를 섰으며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서슴지 않고 단발머리를 노랑, 빨강으로 물들이는 ‘괴짜’, ‘기인’으로 통한다.)
 
아무도 내가 직원 1000명 가량에,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회사의 사장이라고는 상상을 못한다. 하지만 ‘쌈지’ 브랜드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쌈지라는 회사의 대표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쌈지라는 브랜드가 그만큼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쌈지는 문화다”
“시처럼 아름다운 쌈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쌈지의 디자인 정신은 ‘문화’가 중심이 된다. 새로운 문화와 늘 함께하며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 것, 이 자체가 쌈지다. 나아가 쌈지는 바로 우리 문화다.
 
피나 바우쉬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안무가다. 바우쉬는 일상 소품을 이용해 예술로 바꾼다.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나라에 맞는 무용을 선보인다.
 
2005년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 ‘러프컷’을 선보였다. 이를 위해 바우쉬는 2주 동안 우리나라를 방문해 시골, 절 등을 찾아다니며 한국에 맞는 무용을 구상했다. 이때 서울 인사동을 방문해 작은 골목을 형상화한 쌈지길에 반하고, 한글로 디자인한 상품에 반했다.
 
바우쉬는 한글을 자신의 공연에 접목하기로 하고 무대를 모두 한글로 꾸민 것은 물론 한글로 장식된 쌈지의 가방을 들고 춤을 췄다. 예술 코드와 문화 상품이 결합해 문화적 가치를 상승시킨 공연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쌈지의 크리에이티브(creative)가 얼마나 아름다운 문화와 상품으로 비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쌈지는 바로 문화를 담는 아트 상품이다.”
 
문화의 힘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의 회장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국 소비자들은 매우 감각적이고 변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신 회사의 디자인은 곧 한국에서 인기가 사라질 것이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우리 브랜드는 미국의 문화를 파는 브랜드’라고 일침을 가하더라.
 
그렇다. 브랜드의 경쟁력은 바로 문화다. 브랜드가 문화를 담는, 무시무시한 얘기지만 브랜드가 문화 식민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브랜드가 담고 있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효순·미선 양 촛불시위를 보라. 거기에 참석한 젊은이 상당수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다. 그들을 꼬집는 건 아니지만 참 재미있는 광경이다. 미국을 반대하면서, 미국의 침략적, 물리적 행태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미국의 문화를 자신도 모르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나는 우리 문화도 젊은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시대를 한번쯤 만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피나 바우쉬가 한글 비주얼에 감동하고, 한글로 장식한 쌈지의 가방에 감탄하고…. 우리 문화를 담은 브랜드들이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날이 올 거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본다.”
 
사랑의 힘
“쌈지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경쟁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나는 특별히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도 특별할 게 없고 리더십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다. 그저 남들이 ‘저 사람 창의적이고 독특하다’는 말은 많이 한다.
 
내가 보기에 나는 사랑을 잘 하는 것 같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통행금지가 있었지만 나는 자정이 넘은 뒤에도 아내가 보고 싶으면 참지 않고 1시간 반 이상을 걸어서 아내의 집을 찾아갔다. ‘사랑하기’ 대회가 있으면 아주 오랫동안 다양한 사랑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것 이다. 사랑하는 것이 이제 생활이 되다 보니, 그것이 나에게 기회를 주고, 남들이 보기에 신선하게 비치는 듯하다.
 
아는 사람 가운데 길에서 시들어가는 꽃이나 남이 버린 꽃을 집으로 가져와 되살린 뒤 남에게 선물하는 걸 즐기는 분이 있다. 그분은 죽어가는 꽃을 살리고, 꽃을 선물받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무척 즐겁다고 한다. 그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희망도, 즐거움도 없이 하루하루 살던 택시기사가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양로원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택시를 태워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그는 ‘나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은 휴일만 되면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제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 택시기사를 보고 항상 즐겁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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