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사람들이 잡스를 존경하고 애도하는 것은 그가 애플을 세워 실적을 올리고 회사를 키운 뛰어난 경영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역경에 굴하지 않다. 그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화려한 꽃을 피워낸, 위대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위대함은 ‘좋은 결과(Success)’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가치다. ‘이야기(Story)’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비록 힘들고 고달픈 인생의 여정이었지만 잡스의 성과 뒤에는 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인간이 좌절과 환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좌표가 됐다.
그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 중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영원히 기억될 화두(話頭)를 남겼다. ‘배부름보다 배고픔에 머물러라! 그 고통이 나를 늘 깨어 있게 하리라! 늘 모자라다고 생각하라! 그 낮춤이 나를 더욱 채울 것이다!’ 참으로 동양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없다면 나오기 힘든 말이다.
그가 밝혔듯이 그는 동양의 참선에 심취했었다.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짧은 이 한마디에서 이런 그의 정신사적 배경을 읽을 수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 지식의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일갈(一喝)이다!
Stay hungry!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군자를 역경 속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일명 ‘고궁(固窮)형’ 인간이다. 궁(窮)은 어려운 역경이다. 위대한 군자(君子)는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역경 속에서 오히려 더욱 단단해(固)진다. 추사(秋史)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추사체란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다산은 강진 유배지에서 다산(茶山) 실학(實學)을 완성했다.
위대한 리더에게 배고픔은 더 강해지는 계기다. ‘궁즉통(窮則通)’이라! 궁한 상황은 새로운 통(通)으로 난 기회의 길이다. <맹자(孟子)>에는 역경이 인간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란 뜻으로 ‘사어안락(死於安樂, 생어우환(生於憂患)’이라고 정의한다. ‘안락한 일상이 나를 죽일 것이오, 배고픈 상황이 오히려 나를 살릴 것’이란 뜻이다. 안락한 삶이 나를 달콤하게 하지만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고 우환과 역경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새로운 성공을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다.
Stay foolish! <도덕경道德經>에서 노자는 지식을 비우고 어리석음으로 사는 것이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의 인생방식이라고 정의한다. ‘대지약우(大智若愚)’,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바보처럼 보인다. 바보는 늘 지식에 굶주려 있다. 새로운 지식으로 나를 무장하기 위해 교만한 천재보다 겸손한 바보가 돼야 한다. 청나라 정판교란 사람의 인생철학, ‘난득호도(難得糊塗)’ 역시 같은 맥락이다. 똑똑한 사람이 자신의 광채를 줄이고 바보처럼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강하기 때문에 낮출 수 있고, 채웠기 때문에 비울 수 있으니, 그 비움은 새로운 채움을 위한 새로운 도약이다.
역경(窮)과 겸손(愚)은 스티브 잡스 인생의 핵심가치였다. 그는 안락한 삶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했다. 교만한 천재보다 겸손한 바보로 남고 싶어 했다. 뭔가를 이루고도 버릴 줄 알았고 채우고 비우는 지혜가 있었다. 21세기가 지나가는 역사의 어느 한편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우리가 늘 잊지 않아야 할 화두를 그의 삶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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