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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휴잇어소시엇츠 대표 인터뷰

“솔직함은 무기다, 단 실력이 갖춰졌을 경우”

김유영 | 52호 (2010년 3월 Issue 1)

국내 메이저급 생명보험회사에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리. 굴지의 컨설팅회사 임원 5명이 나란히 프레젠테이션(PT)을 했다. 4명은 남성이었고, 1명은 여성이었다. 이들은 그야말로 피 튀기게 경쟁했다. PT가 끝난 뒤 고객사 임원이 여성에게 물었다.
 
“이런 프로젝트 해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쏴해졌다. 앞서 발표한 컨설팅사 남성 4명은 한결같이 ‘다 할 수 있다’, ‘다 해봤다’는 말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성은 “해본 적은 없어도, 비슷한 유형의 프로젝트는 해본 적은 있다. 회사 내 역량을 모두 동원해서 해보고 싶다”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여성이 따냈다. 이는 휴잇어소시엇츠 박경미 대표의 얘기다. 컨설팅 현장에서도 여성 임원을 두루두루 만나본 박 대표는 “나를 비롯한 최근 여성 리더들의 유형은 외유내강(外柔內剛)으로 분류된다”며 “여성 리더십의 원천은 ‘솔직함’이었다”고 강조했다.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도 자신을 과대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이려고 합니다. 단 실력은 갖춰져야 한다는 전제하에서요. 사람 마음은 다들 똑같아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고수하면 싫증을 내지요.”
 
정글과 다름없는 컨설팅업계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드물다. 하지만 박 대표는 2000년 HR 컨설팅을 시작한 지 단 4년 만에 한국 지사의 대표가 됐다. 또 2008년부터는 각국 2만 3000여 명의 휴잇 직원 중 100여 명에 불과한 ‘글로벌 프린서플(Global Principal)’의 자리에 올랐다. 박 대표는 휴잇의 상위 0.5%대에 들어가는 인재가 된 셈이다. 박 대표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만나 성공 비결 및 여성 리더십 고양 방안 등을 말했다.
 
HR컨설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대표로 승진한 걸 보면 직원일 때 상사들에게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꽤나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항상 기대보다 조금 더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엑스트라 마일즈(Extra Miles)’를 항상 염두에 뒀습니다. 맡은 것만 하지 않고 맡지 않은 것도 했던 것 같습니다. 걸출한 인재들이 많은 컨설팅 업계에서는 조금 더 일을 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대표가 되고 보니 Extra Miles를 염두에 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더군요. Extra Miles를 가려는 사람은 ‘열정(passion)이 있다’고 읽혀지게 되지요. 맡은 것을 잘하는 것은 단순한 실력에 그치지만, Extra Miles는 실력에 플러스 알파를 해주는 요인이지요.
 
직원들이 스스로 요청해서 얻는 기회도 있겠지만 직원들이 알지 못하는 기회도 널려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제가 상사가 된 뒤에도 같은 에너지를 쏟을 바에는 이왕이면 열정 있는 직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CEO로서 저의 임무는 Extra Miles를 지닌 인재를 어떻게 발탁하고 이들에게 어떻게 기회를 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얻으려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차이는 기회를 만듭니다.”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합한 직장(right place)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휴잇이 세 번째 직장입니다. 휴잇에 와서 보니까 일하는 방식과 여건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일단 동료들이 굉장히 욕심이 많았습니다. 다들 실력 있는 공부벌레들이었지요. ‘후진국에 있는 부자는 자신의 정원이 동네 공원보다 좋다. 선진국에 있는 부자는 자신의 정원보다 동네 공원이 훨씬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네 공원이 바로 근무 환경입니다. 저 혼자 굉장히 똑똑했는데, 동료들에게 배울 게 없다고 한다면 힘들었겠지요. 반대로 제 동료들은 굉장히 훌륭했고, 배울 게 많아서 좋았습니다.”
 
전공이나 직전 직장에서의 업무가 HR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좌절한 적은 없었습니까.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고, 그래서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더러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대학 은사님께 배운 원을 이용한 ‘파이알제곱(πr2) 이론’을 되새겨봤습니다. 원의 면적은 πr2(r은 원의 반지름)입니다. 이게 자신이 아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원의 둘레인(2πr)이라고 보면 됩니다. 면적만큼 내가 아는 것이고, 둘레만큼 내가 모르는 것입니다. 원의 면적이 넓어질수록 둘레도 길어집니다. 모르는 게 많을수록 많이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회사 내 경험이 많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했습니다. 또 고객사에 계시는 분들도 컨설턴트 못지않게 유능했습니다. ‘까다로운 클라이언트(고객사)가 좋은 컨설턴트를 키워낸다’는 말들이 있지 않습니까.”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면서 여성 임원들도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요.
대표님을 포함해 여성 임원들이 지닌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외유내강(外柔內剛)입니다. 예전에 성공한 여성들을 보면 남성적인 면이 강하거나 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요새 여성 임원을 보면 오히려 평범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겉은 부드러운데 알고 보면 강한 것이지요.”
 
외유내강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솔직함입니다(그는 생명보험사에서 솔직한 태도로 프로젝트를 따낸 일화를 소개했다).”
 
사내 직원들에게 솔직함으로 일관하셨나요.
“물론입니다. 위기가 있으면, 직원들에게 그대로 얘기해줍니다. 경영실적은 물론 개인적인 사항을 굉장히 많이 공유하는 편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큽니다. 직원들에게 굉장한 오너십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요. 저 또한 직원들을 부하가 아닌 동료로 여깁니다. 서로 주고 받는 관계, 서로 배우는 관계로 만들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리더십 다면 평가를 실시한 뒤 각자 1년 동안 실천할 리스트를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해야 할 행동의 리스트를 임원들에게 전달하면서 피드백을 받기로 했습니다. 매월 한 차례,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너무 경쟁적인 언사를 사용한다’, ’경쟁사를 많이 언급한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를 고치는 게 목적이지요.
 
또 직원들에게 투 트랙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저를 보면서 야망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하고 있고, 시니어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직원들에게 회의 시간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영어로 이름을 부르는 것도 단적인 예이지요. 일반 직원들과도 친근하게 대화를 많이 하려 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직원들에게 ‘멍석’을 깔아줘서 직원들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회의에서 발언할 때 ‘이 얘기를 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면 잘 안 됩니다. 반면 단 몇 명의 시니어들에게는 전략적으로 대합니다. 이들 시니어는 책임감이 많기 때문에 친근감은 덜 주고 권한을 더 많이 부여합니다. 이들이 경영의 스킬과 성취감을 맛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차세대 리더들에게 신경을 좀 더 많이 씁니다.”
 
여성인력이 많지만 CEO 자리에 오른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박 대표는 칠판 앞에 서서 그래프 2개(그림1 참조)를 그렸다. 그래프②는 왼쪽 위에서 출발해 급속하게 내려오다가 특정 시점에서 경사도가 완만해지는 것이고, 그래프①는 왼쪽 위에서 거의 평행을 유지했다. x축은 입사 후 근무 연차, y축은 임직원 숫자를 나타냈다.)
 
그래프②이 여성 임직원, 그래프①가 남성 임직원을 나타냅니다. 그래프②에서 10년 차가 되기까지는 여성 인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지요. 국내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10∼20%도 채 안 됩니다. 아무래도 가정에서 요구되는 시간과 에너지의 부담이 크니까요. 회사에서는 승진에 대한 압박감도 크고, 자기 계발에 대한 부담도 굉장히 크지요. 여성은 육아 부담 때문에 기회가 찾아와도 이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승진을 하더라도 안주하는 경향이 비교적 높습니다.


남성, 여성의 리더십 차이(그림2 참조)를 파악할 필요도 있습니다. 휴잇은 아시아 지역 리더 1400명을 대상으로 리더십을 12개 척도별로 분석했는데, 여성은 회피(avoidance)하려는 경향이 높았습니다.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때 맞대응하지 못하고 미루는 것이지요. 의존하려는 경향도 있었고요.”
 
여성 인력이 겪을 수 있는 맹점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행운이었습니다. 한 미국 컨설팅사가 운영하는 회사 간 여성 리더십 멘토 프로그램인 ‘멘티엄100(Menttium 100·▶멘티엄 100 참조)’에 참여했으니까요. 중간관리자 시절에 미국 IBM 본사에서 근무하는 파트너급 임원으로부터 리더십 코칭을 받았었습니다. 저도 놀랐던 것은, 이 분이 ‘현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1, 2시간 회의해도 개인적인 얘기 1, 2마디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화로 1시간가량 주기적으로 통화하면서 우리 회사에서 하기 힘든 얘기, 같은 경영진으로서 하는 조언 등입니다. 또 가족 사항 등의 자료를 처음에 한꺼번에 보내 서로 굉장히 자세히 많이 알고 있고요.

한번은 제가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데, 휴잇 본사 모임에서 문화적으로 자신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미국인이라면 특별한 휴잇에서 강점은 없었을 것이다. 당신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휴잇에서 강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고, 당신이 어필을 해야 할 책임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라고 했습니다. 1년간의 프로그램이 끝난 뒤 ‘앞으로 제가 갖고 있는 것을 잘 살리는 게 오히려 저를 단단하게 해주겠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여성으로서의 강점은 어떻게 살렸습니까.
“다른 사람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컨설팅업계에 종사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사를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대부분 남자보다는 여자가 이런 능력을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정답을 줘야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혼자 앞서서 답을 주려는 것은 서로에게 안 좋다는 생각을 하지요.
 
고객분들은 ‘신뢰가 간다’, ‘성실해 보이고 한결같다’, ‘일관성 있다’ 등의 평가를 합니다. 남편한테 ‘대기업 임원한테 여성 임원이 영업을 하면 어떨 것 같느냐’고 물어봤더니, ‘우리 편을 안 들어도, 그렇다고 해서 상대편을 손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여성을 영업인력으로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영업을 하는 것도 고객이 필요한 것을 잘 들어주고,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말씀드리는 과정이니까요. 또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능력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 여성이 속한 회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힘든 상황인데도 하겠다고 나서면 뒤탈이 나서 양측 모두 손해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이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 확률이 높지요.”
 
사회 생활에서 이것만은 꼭 지키겠다는 이른바 ‘골든룰’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세 가지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모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저하되는 일이 생깁니다. 첫 번째로 앞서 말씀드린 πr2 이론의 교훈처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관계는 교집합이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상사와 부하직원, 컨설턴트와 고객사는 모두 교집합 중 일부분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고, 공유할 것만 공유하면 됩니다. 세세하게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제가 잘 모르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한다고 치면, 저는 그것에 대해 많이 알려고 하지 않는 편입니다. 세 번째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입니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는 반드시 보상이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은 꼭 지킵니다. 기여한 만큼 인정해주고 한 만큼 받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장영길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대학생 인턴연구원(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26)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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